다양한 언어로 ‘재’탄생한 오페라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4월 8일 8:00 오전

SPECIAL

 

다양한 언어로 만나는

OPERA

 

© 국립오페라단

 

4월에 국립오페라단이 선보이는 ‘한여름 밤의 꿈’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바탕으로 영국 작곡가 브리튼이 곡을 지은 ‘영어 오페라’다. 오페라의 양식이 성립된 이후 세계 각국은 일명 ‘모국어 오페라’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번 특집은 각 민족어로 새롭게 태어난 오페라의 역사를 살펴보고, 언어가 오페라 세계의 ‘차이’를 어떻게 만드는지 성악가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또한 서양음악을 수용한 한국에는 모국어로 된 어떤 오페라가 창작되었는지도 살펴본다. 총괄 허서현 기자

 

 

 

PART 1. 언어로 살펴보는 오페라 발전사

PART 2. 성악가의 ‘언어’ 접근법

PART 3. 첫 한국어 오페라를 찾아서

 


PART 1. COLUMN

글 김석영(음악학자)

 

언어로 살펴보는 오페라 발전사

이탈리아부터 중국까지, 다국의 언어로 ‘재’탄생한 오페라

 

프랑스어 오페라 탄생에 일조한 루이 14세 당시의 오페라 공연 모습

대한민국 오페라

중국 歌剧

일본 オペラ

이탈리아 òpera

독일 die Oper

프랑스 opéra

스페인 Ópera

러시아 о́пера

 

 

야코포 페리

1597년, 야코포 페리(1561~1633)의 ‘다프네’(1597-1598)를 시작으로 음악과 극이 결합된 새로운 예술 장르, 오페라가 탄생했다. 1997년을 기점으로 탄생 400주년을 맞으며 세계적인 종합예술의 명성을 이어 온 오페라는 고대 그리스 비극에 담긴 음악적 요소들의 재발견을 목표로 이탈리아 피렌체의 지식인·시인·음악가가 모여 결성한 ‘카메라타(Camerata)’에 의해 시작됐다. 오페라가 당시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만큼, 우리는 지난 400여 년에 걸쳐 현존하는 최초의 오페라인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1607)를 비롯해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1786), 베르디 ‘아이다’(1871), 푸치니 ‘나비부인’(1904) 등 이탈리아어로 된 걸작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그러나 오페라가 점차 유럽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함에 따라 다양한 언어를 기반으로 한 오페라 제작 시도가 나타났고, 이렇게 각국의 언어로 ‘재’탄생한 작품들 또한 오페라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과연 이러한 시도들은 어떠한 배경 속에서 등장하게 됐는지, 그리고 다양한 언어의 유입이 오페라의 발전과 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본다.

 

유럽, 격변하는 정치적 상황 속에서의 태동

하인리히 쉬츠

스페인어로 된 첫 오페라 토레혼의 ‘장미의 피’ 악보.

오페라는 왕실 및 귀족의 후원을 토대로 발전한 예술이다. 유럽의 궁정과 귀족들의 연회를 중심으로 점차 확산했으며, 자국의 언어로 된 오페라를 제작하려는 시도는 유럽의 정치적인 상황과 맞물리기도 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유럽에서 가장 먼저 자국어로 된 오페라를 제작한 국가는 독일이다. 교회음악으로 유명한 작곡가 하인리히 쉬츠가 첫 독일어 오페라로 꼽히는 ‘다프네’(1627)를 작곡했다. 시인 마르틴 오피츠는 당시 작센의 궁정악장이었던 쉬츠에게 오페라의 탄생과 밀접한 야코포 페리의 ‘다프네’를 모델로 한 작품을 작곡할 것을 제안했고, 이렇게 탄생한 쉬츠의 ‘다프네’는 작센의 공주 소피아 엘레오노어와 헤센-다름슈타트의 조지 2세의 결혼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초연됐다.

스페인어로 된 첫 오페라는 1660년에 제작된 토레혼의 ‘장미의 피’다. 스페인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극작가 칼데론이 쓴 그리스 신화의 비너스와 아도니스의 이야기가 대본이다. 이 오페라는 프랑스-스페인 전쟁(1635~1659년) 끝에 맺어진 평화 협정 및 프랑스의 루이 14세와 스페인의 공주 테레사의 결혼식을 기념하기 위해 스페인의 마드리드 궁정에서 필립 4세의 후원 아래 제작됐다. 필립 4세가 궁정 오페라의 위엄을 통해 프랑스의 추기경 쥘 마자랭을 견제하고자 하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 작품을 위촉했다는 사실 또한 주목할 만하다.

헨리 퍼셀

윌리엄과 메리 부부.

한편, 프랑스의 첫 자국어 오페라는 1669년에 설립된 오페라 아카데미의 첫 작품인 캉베르의 ‘포모나’(1671)이다. 그리스 신화 중 포모나와 베르툼누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포모나’의 대본을 쓴 프랑스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피에르 페렝은 프랑스의 특성을 살린 오페라를 제작할 것을 제안했고, 마침내 루이 14세의 허가를 받아 오페라 아카데미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페렝은 ‘포모나’ 초연으로부터 1년 후 경영난으로 파산하게 된다. 이에 루이 14세는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의 작곡가 륄리(1632~1687)에게 프랑스 오페라 제작의 독점권을 넘겼고, 당시 왕립 음악원으로 개명된 오페라 아카데미는 현재까지 이어지며 오페라의 역사를 함께 한 파리 오페라가 되었다.

첫 영어 오페라는 영국에서 탄생한다. 영국 오페라의 걸작으로 꼽히는 헨리 퍼셀의 ‘디도와 아이네아스’(1689)다.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와 트로이의 왕자 아이네아스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룬 이 오페라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영국의 명예혁명(1688)은 가톨릭교도인 제임스 2세의 폭정을 몰아내기 위해 프로테스탄트인 윌리엄·메리 부부를 즉위시킨 사건인데, 그로부터 1년 뒤에 초연된 ‘디도와 아이네아스’의 대본을 쓴 나훔 테이트는 제임스 2세를 마녀에 의해 조종당한 아이네아스로, 영국인들을 버림받은 디도로 그려냈으며, 오페라의 프롤로그에서 윌리엄과 메리를 그리스 신화의 포에부스와 비너스에 투영해 새로운 정치적 질서를 암시했다.

 

민족의 언어가 된 오페라

프란시스 스쿠르프

17세기에 탄생한 독일·스페인·프랑스·영국의 첫 자국어 오페라가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왕실이나 귀족의 후원으로 제작되어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의 연관성을 보였던 반면, 19세기부터 자국어로 된 오페라를 시도한 체코·러시아는 오페라를 통해 당대의 이념인 민족주의를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또한 20세기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서양음악을 수용하기 시작한 중국에서는 오페라에 민족성을 결합하고자 했다.

먼저 체코의 첫 번째 자국어 오페라는 프란시스 스쿠르프의 ‘전선공’(1826)이다. 당시 체코에서는 민족 부흥 운동이 일었다. 이는 스쿠르프로 하여금 체코 지식인의 수준을 담아냄과 동시에 최고의 예술적 성취로 꼽히는 오페라를 자국어로 제작하는 동기가 됐다. 당시 체코어는 독일어와 비교해 ‘오페라와 같은 고급예술에 적합하지 않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체코의 평범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전선공’의 등장은 체코의 오페라사에 큰 기점이 됐다. 이후에도 스쿠르프는 체코의 민족주의를 드러낼 수 있는 오페라를 작곡했고, 그가 훗날 작곡한 ‘나의 조국은 어디에’는 체코의 국가가 되기도 했다.

러시아 대본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국민 오페라 ‘이반 수사닌’. 마린스키 극장 공연 장면이다

글린카의 ‘이반 수사닌’(1836)은 러시아 대본으로 된 최초의 국민 오페라로 꼽힌다. 글린카가 시인 바실리 주콥스키에게 러시아어로 된 오페라를 작곡할 계획을 이야기하자, 주콥스키는 바로 러시아 민중 영웅인 이반 수사닌의 이야기를 추천한다. 당시 러시아 문화사를 살펴보면 고급 예술에서 ‘국가적’은 ‘애국적’인 것을, ‘민중’은 불가피하게 ‘소작농’을 의미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소작농이었던 수사닌은 폴란드가 러시아를 침공했을 때 목숨을 걸고 폴란드의 대군을 따돌려 로마노프 왕조의 미하일 1세가 황제(차르)의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공을 세운 인물이다. 이후에도 ‘이반 수사닌’은 러시아의 국가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러시아 오페라사의 주요 작품이 됐다.

이후, 20세기에 들어서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서양 오페라 수용 및 창작 양상이 두드러진다. 일본에서는 1906년에 초연된 코스케 코마츠의 ‘날개옷’이, 중국에서는 1945년에 초연된 옌안 뤼신예술학원 작품인 ‘백모녀’가, 한국에서는 1950년에 초연된 현제명의 ‘춘향전’이 각국의 첫 번째 자국어 오페라로 무대에 오른다. 한국과 일본의 작곡가들이 서양 오페라라는 형식을 통해 자국의 이야기를 하는 데 치중했던 반면, 사회주의 체제의 중국에서는 서양 오페라의 형식 자체를 중국의 국가적 특성에 맞게 민족 음악화한 중국형 오페라인 ‘신가극’이 탄생했다. 옌안 뤼신예술학원은 중국 공산당의 혁명 완수를 위해 예술로써 민중을 이끈다는 목적하에 설립되었으며, 이곳에서 제작된 ‘백모녀’는 봉건지주의 탄압을 받던 농민 처녀가 팔로군의 도움으로 상황을 극복해 민중 승리를 이뤄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 공산당의 이념이 드러난 작품으로 꼽힌다.

 

다양한 언어와 목소리, 그리고 오페라의 변화

중국 오페라 ‘백모녀’

오페라가 이탈리아어로 시작됐다는 사실을 되짚어보면, 오페라는 이탈리아어가 가진 특성이 최적화된 장르로 해석될 수 있다. 동시에 새로운 언어로 제작될 때마다, 작곡가들은 이탈리아어와 상충하는 자국어의 특성 사이에서 고민해야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양한 언어로 제작된 오페라들은 오페라의 발전과 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을까?

첫째, 이들은 이탈리아어의 속성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창법, ‘벨칸토 아리아’를 대체하며 오페라사에 음향적 다양함을 더했다. ‘아름다운 노래’를 뜻하는 이탈리아의 벨칸토는 이탈리아어 발음의 특성을 닮아있는 창법으로 시작돼, 이후 오페라 아리아에 적극 사용되면서 로시니·벨리니·도니체티 시기의 오페라를 의미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니벨룽의 반지’ 시리즈로 독일 오페라의 가능성을 세계에 알린 바그너는 독일어의 강한 악센트와 맞지 않는 벨칸토 창법에 반대하며 “영적인 활력과 심오한 열정을 비교할 수 없는 궤도로 끌어들이는” 독일의 창법을 제안했고, 이는 벨칸토 창법과 대조를 이루는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이와는 달리 중국 출신 작곡가 저우롱은 동명의 중국 전설을 소재로 한 오페라 ‘백사전’(2010)에서 벨칸토와 유사한 특성을 갖는 중국 희곡의 선율 및 창법을 융합하는 전략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언어의 유입은 오페라 아리아가 가질 수 있는 다양성에 기여했다.

두 번째로는 이탈리아 오페라에 대한 비평의 기능이다. 동시에 오페라를 통한 문화교류의 장이 되기도 했다. 20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된 오리엔탈리즘은 이탈리아 오페라에 나타난 왜곡된 동양의 모습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1993년 중국의 극작가 위명륜은 ‘중국 공주 두란도’라는 제목으로 경극 버전의 ‘투란도트’를 작업하기 시작했다. 제목에 있는 ‘두란도’가 투란도트의 보다 정확한 중국어 발음을 반영하듯이, 위명륜은 푸치니가 투란도트를 잔혹한 여성으로 부각했던 것과 달리 투란도트의 고뇌 및 인간적인 면모에 집중하는 전략을 펼쳤다. 위명륜의 작품은 이후 이탈리아 로마에서 공연되며 중국과 이탈리아 사이 문화교류의 장을 열었다.

또 다른 예로는 푸치니의 ‘나비부인’을 각색한 퍼시픽 오페라 프로젝트의 ‘나비부인’(2019)을 꼽을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초초상을 비롯한 일본인 등장인물은 일본어로, 핑커톤을 비롯한 미국인 등장인물은 영어로 노래하는 이중언어 오페라다. 보다 현실적인 관점으로 ‘나비부인’의 이야기를 전한 이 오페라의 대본은 퍼시픽 오페라 프로젝트의 예술감독인 조쉬 쇼와 이소무라 에이키의 협업으로 만들어졌다.

탄둔의 ‘진시황’

마지막으로, 다양한 언어로 ‘재’탄생한 오페라는 21세기에 이르러 오페라가 시대의 다양성에 대한 요구에 부합하는 예술형식으로 발전하는 데에도 기여한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최근 발자취는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준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중국 출신의 작곡가 탄둔에게 영어 오페라를 위촉했고, 탄둔은 ‘진시황’(2006) 프롤로그에 중국어로 된 경극의 도입을 삽입하며 문화융합의 사례를 남겼다. 더불어 2016년에는 핀란드 출신의 여성 작곡가 카이야 사리아호가 프랑스어 오페라 ‘이룰 수 없는 사랑’(2000)을, 2021/22 시즌에는 흑인 작곡가 테렌스 블랜차드가 ‘파이어 셧 업 인 마이 본즈’(2019)를 무대에 올리며 다양한 목소리를 가진 작곡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여러 언어를 거쳐 계속 발전해온 오페라는 각국의 문화와 정치적 상황을 보여주기도 하고 글로벌 시대의 다양성을 담기도 하는 등 전 세계적인 예술 장르로서의 가치를 증명하는 데 기여해왔다. 다양한 언어의 유입은 오페라가 언어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 세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는 살아있는 예술로서 자리하게 된 원동력이었다.

 


 

PART 2. INTERVIEW

글 허서현 기자

 

성악가의 언어 접근법

공연·연구서·교육·좌담을 통해 만나는 ‘딕션의 세계’

 

‘딕션(diction)’의 사전적 정의란 말을 하기 위한 발음을 의미하지만, 성악가들에게 있어 ‘딕션’은 조금 더 다양한 의미로 다가온다. 이들이 말하는 곳은 소리가 울리는 무대 위다. 심지어 수천 명의 관객에게 들리도록, ‘노래를 하면서’ 그 발음을 정확하게 말해낸다는 것은 발성과 창법에까지 연결되는 문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오페라가 다양한 언어를 거치며 발달해온 탓에 성악가들에게 ‘딕션’이란 산적해있는, 끝나지 않는 공부의 영역이다.

때문에 하나의 오페라 프로덕션이 시작되면, (익숙하지 않은 언어일 경우는 특히 더) 성악가들은 ‘딕션 코치’의 도움을 받아 발음을 정비해 나간다. 각 언어가 가진 특징은 물론이고, 언어를 이해하기 위한 문화적·음악사적 배경도 알아야 한다.

 

공연

국립오페라단 ‘한여름 밤의 꿈’ 오베른 역

 

카운터테너 장정권

영어에 걸맞은 뉘앙스를 찾는다

 

오페라 공연 중인 장정권(왼쪽 두 번째)

벤저민 브리튼은 셰익스피어의 희극 ‘한여름 밤의 꿈’을 기초로 한 동명의 오페라를 남겼다. 1960년 초연된 작품으로, 국내에는 오는 4월 국립오페라단이 첫선을 보인다(4.11~14/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원작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는 오페라 ‘한여름 밤의 꿈’은 세 가지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된다. 요정 퍼크의 실수로 오해에 쌓인 두 커플 허미아·라이센저, 헬레나·드미트리어스의 사랑 이야기, 요정의 왕 오베론과 여왕 티타니아의 갈등, 그리고 평범한 마을에서 아마추어 배우들이 준비하는 공연 이야기다.

이 오페라에서 눈에 띄는 특징은 두 가지, 셰익스피어 희극을 원작으로 하기 때문에 영국 영어가 사용되었다는 것과 카운터테너가 요정 왕 ‘오베른’ 역을 맡는 것이다. 카운터테너 장정권은 독일 함부르크 음대에서 학업을 마치고, 런던 국립 오페라 스튜디오 영아티스트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영국에서 조지 벤저민의 ‘Written on Skin’, 진은숙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공연하며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쌓은 그는 이번 공연에서 오베른 역을 맡으며 한국 전막 공연 데뷔 무대에 오른다.

 

‘런던 국립 오페라 스튜디오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에서 경험한 것은 무엇인가.

47년간 이어져 오며 많은 연출가와 오페라 가수를 배출한 유서 깊은 프로그램이다. 한 극장에 소속되지 않고, 영국에 있는 총 6개의 오페라 관련 공연과 극장(로열 오페라 하우스·잉글리쉬 내셔널·오페라 노스·스코티쉬·글라인드 본 페스티벌·웨일스)의 무대에 오르게 된다. 다양한 작품과 연출가를 만나고, 코치를 받을 수 있는 대단히 좋은 기회였다.

영국에서는 영어 오페라의 공연 비중이 높은 편인가.

앞서 언급한 극장들은 한 시즌에 바로크부터 현대까지 모든 시대의 오페라를 반드시 포함하는 편이다. 그래서 현대 작품은 포함될 수밖에 없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잉글리쉬 내셔널 오페라의 경우, 모든 작품을 영어로 번안해서 공연한다. 영어로 번안하더라도 오페라에 자막을 사용하는 것은 동일하다.

이번 공연 또한 영어 오페라다. 딕션을 준비할 때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 유의하는가.

단순히 언어에 대한 이해를 넘어 시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 같다. 헨리 퍼셀처럼 바로크 시대에 작곡된 작품은 영어가 고어로 되어 있어 의미를 찾는 데에 시간을 많이 쏟는다. ‘한여름 밤의 꿈’은 1960년대 작품이지만, 셰익스피어의 희극을 원작으로 하고 있어 몇몇 19세기 용어들이 등장한다.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도 실제로 영어 딕션 코치가 와서 이 부분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외에도 영어에 걸맞은 말의 뉘앙스를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다.

영어는 영국식과 미국식 발음이 다르다. 영국 작곡가가 쓴 작품이라서 그 특성이 반영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모든 발음은 영국식으로 표현한다. 대표적으로 다르다고 잘 알고 있는 ‘th’가 포함된 발음이나, ‘and’와 같이 더 오픈되고 강조되는 발음들을 노래 딕션에도 모두 반영하고 있다. 이 부분을 이해하는 데에는 오히려 독일에서 공부한 시간도 도움이 됐다. 각진 느낌의 발음은 독일어와도 유사하다고 느낀다.

이탈리아·독일어가 익숙한 관객에게는 이 영어로 된 현대 오페라가 낯설 수도 있을 텐데, 감상의 포인트를 이야기 해준다면.

오히려 더 친숙함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일 수 있다. 오페라로 된 것이 낯설 뿐 영어는 사실 이탈리아어나 독일어보다는 무슨 뜻인지 더 많이 알 수 있는 언어다. 원어의 의미를 음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또한 브리튼이 바로크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시대의 음악을 모두 이 작품에 반영했고, 익숙하게 느낄 수 있는 리듬이나 아름다운 멜로디들도 많다. 스토리텔링도 잘 되어 있는 ‘행복한’ 희극 작품이기에, 평소 익숙하던 오페라 감상 범위를 벗어나 다양성을 접하기 시작하는 데에 안성맞춤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어렵다는 편견을 내려놓고 꼭 경험해 보시길!

국립오페라단 ‘한여름 밤의 꿈’ 4월 11~1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연구서

‘프랑스어 딕션과 예술가곡’ 저술한

 

소프라노 심선화

“프랑스어는 ‘아’ 발음이 여러 개예요”

 

‘프랑스어 딕션과 예술가곡’은 2010년 출판된 전공서다. 서울대 음대를 졸업 후, 프랑스 파리 에꼴 노르말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소프라노 심선화는 많은 성악도들이 프랑스곡을 부르면서 마치 이탈리아어로 된 곡을 부르듯 노래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책에는 프랑스어의 특징과 국제 음성학 기호에 따른 발음법, 발음법의 예외가 되는 사례를 비롯해 프랑스 예술가곡에 대한 곡 해석도 게재되어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오페라 ‘카르멘’이나 ‘호프만의 이야기’는 프랑스어로 부르는 오페라이다. 프랑스어로 된 노래를 할 때에 성악가들이 실제로 접근해야 하는 방식이 무엇인지 그 구체적인 방법을 듣고자 저자와 직접 이야기를 나눴다. “프랑스어 노래는 왜 어렵냐”라는 기자의 단순한 질문에, 그는 “어쩌면 한국어가 너무 우수해서 모든 언어의 발음 기호를 한국어로 표기할 수 있다는 오해 때문에 생기는 문제일지도 모른다”며, “프랑스어는 앞에서 소리 나는 ‘아’, 뒤에서 소리 나는 ‘아’의 발음법이 서로 다르고, 그에 따른 단어의 의미도 다르다”는 자세하고 긴 설명을 시작해 주었다.

 

성악가들도 타 언어에 비해, 프랑스어는 어렵게 느끼는 편인 것 같다.

전공 과정에서 성악가들은 노래에 사용되는 모든 언어의 딕션을 공부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프랑스어는 이탈리아어처럼 알파벳 발음 그대로 읽히는 언어도 아니고, 규칙도 까다롭고 예외적인 발음도 많다.

프랑스어 딕션을 이해할 때 가장 필요한 공부는 무엇인가.

우리말에서 사용되는 모음만으로는, 프랑스어의 모음을 모두 표현할 수 없다. 모든 언어는 모음의 빛깔이나 뉘앙스가 다르다. 실제로 프랑스어는 이탈리아어만큼 밝은 빛깔을 가지고 있으며, 얼굴 앞쪽에서 소리나는 특징이 있다. 입을 여는 정도, 입술의 모양, 조음되는 위치로 발음의 뉘앙스가 만들어진다. 이를 위해서는 모음 조음표에 따라 구체적으로 발음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노래를 배울 때 ‘귀’로만 듣고 따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큰 문제다.

딕션과 발성은 큰 연관이 있다. 딕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프랑스어 노래 발성에도 도움을 주는가.

실제로 여러 차례 오페라 공연의 딕션 코치를 한 적도 있는데, 오페라 가수들이 직접 올바른 발음을 하며 오히려 더 좋은 노래를 하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프랑스어의 발음 특징 중, 비강을 열고 소리를 내야 하는 ‘비모음’들이 있는데 이것을 우리말의 ‘앙’ ‘앵’ ‘옹’처럼 닫힌 발음을 하면 고음에 위치할 때 소리가 닫히기 때문에 노래하기 무척 어렵다.

딕션에 대한 이해 외에, 프랑스어 작품을 잘 표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더 필요한가.

이에 대한 필요성을 더 절실히 느껴 최근 한국프랑스가곡연구회에서 연주와 세미나 등을 열며 프랑스어 발음과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특히 예술가곡에 대한 연구인데, 프랑스의 작곡가들은 대단히 정확하게 언어의 강세와 리듬으로 시에 노래를 붙인 것을 볼 수 있다. 단어에 대한 묘사, 즉 ‘워드 페인팅’이 매우 구체적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노래하지 말 것’과 같은 지시 사항이 있을 정도로 이성적 표현을 요구한다.

프랑스어 작품을 계속 공부해 나갈 학생들에게 남기고 싶은 한마디.

어려운 프랑스어 딕션들을 기특할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역시 그런 친구들이 무대에서도 빛을 발하더라. 노래라는 것은 선율과 리듬, 아름다운 음색도 중요하지만, 발음이 가지고 있는 빛깔과 하나가 될 때 진정한 의미가 전달되는 것 같다. 프랑스어 레퍼토리는 예술적 아름다움이 뛰어나서, 놓칠 수 없는 분야다. 이 언어의 뉘앙스를 위해 조금 더 애쓴다면, 국제 무대에 진출할 때도 더 아름다운 레퍼토리를 많이 선보일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처음 썼을 때처럼, 여전히 배운 것들이 후배들에게 전해지고, 이를 디딤돌 삼아 더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교육

독일 오페라 현장에서의 경험과 교육에 대하여

 

소프라노 양귀비

영리한 독일어 딕션은, 캐릭터를 살린답니다!

 

양귀비

양귀비는 2012년부터 독일 켐니츠 오페라에서 극장 소속 솔리스트로 활동하며 수백 회에 달하는 무대에서 노래해 왔다. 귀국 후 2021년부터 이화여대 성악과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전공 수업은 물론, 독일어 딕션 수업까지 맡고 있다. “독일어는 무대에서 제대로 말하기 위해 숨소리까지 따라 하던 언어”였다는 그에게 오페라 속 독일어의 묘미를 물었다.

오페라의 시작은 이탈리아어입니다. 지금은 많은 독일어 오페라 작품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두 언어 자체의 뉘앙스는 많이 다르게 들려요.

우선, 독일어가 가진 가장 큰 특징은 자음이 많다는 것입니다. 연음되는 경우가 적고, 그 특징이 독일어를 조금 딱딱하게 들리게 하죠.

언어의 특징으로 인해, 독일어로 노래할 때 성악가 입장에서 고민하게 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발성적으로는 레가토 라인이 끊어지지 않고 노래하면서, 동시에 자음이 많은 독일어 텍스트를 잘 전달하려면 많이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몇몇 발음은 한국어보다 더 입체적으로, 장음과 단음을 구분해서 발음해야 하죠. 예를 들자면, ‘Meine Rose’라는 가사 있다면, 한국어로는 [maine rose]라고 하겠죠. 하지만 실제로는 [máınǝ ró:zǝ]로 구체적으로 발음해야 한달까요. 독일어의 ‘a’는 한국어의 ‘아’보다 더 크고 열린 모음이고, ‘j’ ‘g’ 발음도 더 깊게 발음해야 합니다.

독일 현지에서 극장 생활을 하면서 얻게 된 독일어에 대한 지식도 있을 것 같아요.

공연과 무대를 위한 독일어 딕션은 학교에서 배웠던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을 요구했어요. 언어에 담긴 뉘앙스까지 전달해야 했으니까요. 당시 모차르트 ‘마술피리’ 안에 있는 모든 소프라노 역할을 한 것 같아요. 가장 많이 한 역할은 주인공 파미나 역이었는데, 연극처럼 대화를 하는 씬이 있었어요. 독일 사람 앞에서 연극을 해야 한다니! 노래하는 것보다 훨씬 더 떨렸죠. 현지 사람들과 많이 대화하며 그들이 말하는 문장의 높고 낮은 멜로디, 말하면서 숨 쉬는 소리까지 다 따라 하고 배우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독일어가 생각보다 딱딱한 언어가 아닌, 선율이 있는 음악적 언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어요.

학생들이 독일어 오페라를 잘 이해하기 위해 취해야 할 올바른 접근 방식은 무엇일까요.

우선은 가사를 많이 읽어보도록 얘기하죠. 모국어처럼, 그냥 툭 치면 말이 나올 정도로 가사가 몸과 머리에 익숙해지는 거죠. 많이 읽고 보고 써야 합니다. 작곡자와 시대 배경, 작품에 대한 충분한 이해도 필요하죠. 하지만 무엇보다, 기본적으로 건강한 발성과 정확한 딕션을 위한 훈련이 가장 중요합니다!

독일어 오페라만 가진 매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물론, 처음에는 목이 조금 빡빡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자음이 많아 발음을 열심히 하다보면 목이 피곤해지죠. 하지만 무엇보다 노래할 맛이 나는 작품이 바로 독일 오페라랍니다! 자음을 영리하게 발음하면, 오히려 그 강한 자음들이 레가토를 더 잘 표현할 수 있게 돕습니다. 특정 자음 뉘앙스 표현을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어 재밌기도 하고요. 비유하자면 자동 기어와 수동 기어 자동차라고 비교할 수 있달까요? 배우는 과정은 어렵지만, 진정한 드라이버들이 수동 기어 자동차에서 운전할 맛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죠.

 

 

좌담

한국 창작오페라의 언어와 발음에 대한 토론

 

지휘자 지중배 작곡가 나실인·전예은 테너 김승직 연출가 표현진

한국적인 느낌은 한국어로부터 시작된다

 

(왼쪽부터) 나실인, 표현진, 김승직, 전예은, 지중배

한국어로 된 창작 오페라에 대한 역사는 1950년대 이후로 이어져 왔다. ‘한국 오페라’이기에 발생하는 음악 양식에 대한 문제 제기와 뜨거운 비평을 두고 ‘객석’은 보다 다각적 관점을 반영하기 위한 인터뷰를 진행한 바 있다. 지휘자부터 성악가, 창작 오페라를 쓰고 있는 작곡가와 연출가가 한데 모여 나눈 ‘한국어 오페라’에 대한 의견을 옮긴다. (‘객석’ 2020년 8월 호 ‘한국의 창작 오페라, 드디어 성장기일까?’ 발췌)

언어 사용에 관한 지속적인 고민

Q. 한국어가 주는 특유의 언어 미학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대중은 한국어로 된 오페라를 보고 난 뒤에 “어색하다”는 평부터 시쳇말로 “오글거린다”고 하기도 합니다. 오페라에서의 한국어 사용 문제, 현재 어디까지 논의된 상태일까요?

지중배(지휘자) 한국 오페라는 한국어로 쓰여야 합니다. 가사가 붙은 음악의 색깔은 곧 언어에서 오게 됩니다. 언어가 달라지면 작곡 과정에서 색깔이 달라지죠.

나실인(작곡가) 한국어가 잘 표현되는 오페라를 만들기 위해 많은 작곡가가 다양한 방식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우정 작곡가의 경우 작품을 쓸 때 ‘한국어 발음 사전’을 참고해 우리가 평소에 잘 느끼지 못하는 한국어의 장음과 단음을 올바르게 음악에 적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 역시 최우정 작곡가의 방법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장르에 따라 판소리나 창극에서의 한국어 활용법을 적용하기도 하고, 한국어 표현에 맞는 강세와 리듬을 활용해 레치타티보를 구성합니다.

‘빨간 바지’(2020)는 연극과 같은 대화체의 대사 없이 아리아와 레치타티보만으로 오페라를 만들었습니다. 반면 ‘춘향 2020’은 전라도 사투리가 자연스럽게 표현되도록 하기 위해 레치타티보 없이 아래아와 대사로만 작품을 구성했습니다.

전예은(작곡가) 한국어는 어순·강세·고저 등에서 외국어와 상당히 다른 구조를 지닌 언어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선율을 붙이는 데 있어서 발음이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말에 많이 사용되는 ‘의’와 같은 발음, 그리고 받침이 있는 단어 중 ‘을·를’ 같은 것입니다. 또한 ‘마음’이라는 단어가 있을 때 긴 음가의 선율에 이 단어를 붙이면 “마으―음”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역시 까다로운 부분 중 하나입니다.

한국어 대본에 선율을 붙일 때 굉장히 많이 고민을 하게 됩니다. 작곡가인 저 역시 모국어인 한국어보다 영어·불어 등의 외국어를 가사로 하여 성악곡을 만드는 것이 더 수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꼭 서양 오페라의 전통 창법에서만 해결 방안을 찾지 말고, 판소리·뮤지컬·가요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서 한국어가 사용되는 방법을 보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김승직(테너) 사실 성악가들이 창작 오페라에서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은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는 일일 겁니다. 많은 모음과 자음을 가진 한국어는 노래 부르기에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또 오페라에서 한국어로 대사를 하는 것이 아직 어색하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한국어로 된 작품이 더욱 늘어나서 한국 대중은 물론, 서양인에게도 한국어로 된 오페라를 알리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Q. 한국어로 된 오페라임에도 불구하고 자막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사의 내용을 보다 뚜렷하게 전하기 위한 방편이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부분도 있다’는 것을 전제한 움직임이기도 합니다.

전예은 작곡가로서 저는 자막 사용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오페라 아리아의 벨칸토 창법은 성악가의 화려한 기교를 보여주는 수단이기도 해요. 한국어를 이에 대입하여 사용했을 때 이질감이 생기는 부분들이 있는데요, 벨칸토 창법에 섞어 대사의 전달력이 약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자막의 사용은 불가피할 겁니다. 하지만 자막의 도움이 있더라도 근본적으로는 한국어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대본과 음악을 만드는 것, 그리고 성악가들의 명확한 발음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표현진(연출가)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자막은 활용해야겠지요. 하지만 전적으로 자막에만 의지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가수들의 소리만을 듣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관객은 더 정확한 발음을 원합니다. 더 이상 그들의 감정을 자막을 통해 전달받고 싶지 않고 직접적으로 전해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저는 연출적인 입장에서 가수들이 음향의 도움을 받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명확한 발음과 가사 전달을 위해 음향 기술을 적절히 사용해야 하는 시대가 됐어요.

지중배 가사의 내용은 음향적인 면에서도 잘 전달이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관객은 자막의 도움으로 극의 흐름을 알게 됩니다. 자막 기술이 없었던 시절의 음향과 연출의 방향은 지금과 많이 다릅니다. 연출 효과도 더욱 다양해지고 있어서 노래를 들으며 내용을 따라가는 일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기에 자막의 사용은 중요합니다.

나실인 가사를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문제는 비단 한국어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오페라뿐 아니라 대중가요도 가사 전달을 위해 자막을 활용하고요. 공연을 즐기는 관객에게 작품의 전달력을 높이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다만 자막이 극의 흐름을 방해하는 경우가 있어요. 자막의 타이밍이 너무 빠르거나 느린 경우가 있는데요, 자막 사용에 더욱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히려 작품의 세계화를 위해 영문 자막을 만들어 제공하는 등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PART 3. HISTORY

글 허서현 기자

 

첫 한국어 오페라를 찾아서

해방 이후 음악인들이 품었던 희망

 

한국 최초의 오페라 ‘춘희’

우리나라에서 오페라에 대한 기록이 시작된 것은 1945년 해방 전후가 기점이다. 1940년, 일제강점기에 일본 후지와라 오페라단에 의해 ‘카르멘’이 전막 공연된 기록이 있지만 한국인에 의해 공연된 최초의 오페라는 베르디 ‘춘희(라 트라비아타)’다.

해방을 맞이하면서 활동에 자유를 얻은 시기, 당시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출신이었던 테너 이인선은 의사로 일하며 번 돈으로 오페라 운동을 시작했다. 조선오페라협회를 조직하고, 국제오페라사를 창단하는 등의 활동을 이어가는 그는 1948년 1월 16일,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를 ‘춘희’라는 제목으로 무대에 올린다. 현재 명동예술극장으로 불리는 당시 ‘시공관’에서 공연됐고, 이인선이 직접 제작·번역을 맡았다. 김자경·마금희가 비올레타 역을 맡았다.

한국에서 최초로 오페라가 공연된 지 단 2년 만에, 한국어 창작 오페라가 탄생한 것은 당시 오페라에 대한 음악인들의 뜨거운 열정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1950년 5월 20일, 10일간 한국 최초의 창작 오페라인 현제명의 ‘춘향전’이 초연됐다. 해방 직후, 어지러운 시국에서도 ‘춘향전’은 5만 여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을 거뒀다. 한국 전쟁이 발발한 1951년에 대구와 부산에서 다시 공연될 정도로 인기였다.

당시 인기 방송작가이자 극작가인 이서구가 대본을 맡았고, 첫 공연은 유치진이 연출을 맡았다. 오페라는 판소리 ‘춘향전’과 유사하게 5막 6장으로 구성됐다. 누구나 아는 익숙한 소재, 어렵지 않은 멜로디로 관객에게 사랑을 받았으나 초연 당시에는 미흡한 관현악법 등이 지적을 받기도 했다. 현제명의 ‘춘향전’을 기준으로, 한국 창작 오페라는 74년간 이어져 왔다. 이후 1962년, 국립오페라단이 창단됐고 다수의 작곡가에 의해 100여 편이 넘는 창작 오페라가 탄생했다. 이영조(1943~)의 ‘처용’ ‘황진이’, 이건용(1947~)의 ‘봄봄’ ‘박하사탕’, 임준희(1961~)의 ‘천생연분’, 최우정(1968~)의 ‘1945’ 등이 그 명맥을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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