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ice review
기자들의 공연 관람 후기
목격과 관찰을 넘어, 음악으로
정명훈/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협연 임윤찬
2월 1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이른바 ‘임윤찬 신드롬’이 시작된 이래 그의 연주를 그간 두 번 ‘목격’했었다. 첫 번째는 2022년 12월, 연주보다 관객의 환호성이 더 오래 귓가에 맴돌았던 독주회. 리스트의 ‘순례의 해’ 중 ‘이탈리아’에서 보여준 열정보다 바흐 ‘신포니아’를 마치 필사하듯 읽어 내려가는 그의 성실함에 응원을 보냈다. 데카와의 계약 후, 2024년 쇼팽 연습곡 전곡을 담은 음반에서 만난 선율의 전복(顚覆)에도 유쾌함을 느꼈고, 같은 해 돌연 쇼팽에서 차이콥스키의 ‘사계’로 프로그램이 바뀌었던 독주회 현장도 흥미로웠다. 울리는 동시에 휘발되듯, 순식간에 번쩍이는 그의 재치는 이듬해의 음반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햇수로 4년 사이, 세 번째 마주한 임윤찬은 그간 경험했던 것 중 가장 설득력 높았다. 한없이 느린, 마치 영겁 속에 존재할 듯한 임윤찬의 슈만에 귀 기울인 것은 노련한 마에스트로와 동독의 파삭한 음향을 지켜온 오케스트라였다. 이들은 숨겨진 선율과 프레이징을 찾아내는 그의 번뜩임을 품은 맥락이 되었고, 이로써 슈만 피아노 협주곡은 오랜만에 전에 없던 세련됨으로 옷 입었다. 자신의 해석을 악단에 이만큼이나 충분히 전달할 경험과 이력을 쌓았다는 점에서, 임윤찬에게 또 하나의 강점이 생겼음을 알 수 있었다.
협주곡을 사이에 두고,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가 선보인 베버 ‘마탄의 사수’ 서곡과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에선 이들의 본거지 드레스덴 젬퍼오퍼가 오페라 극장임을 떠올리게 하는 묘사적 순간들이 펼쳐졌다. 땅을 울리는 듯한 현악의 저음으로 시작해 네 대의 호른 앙상블은 유럽 신화의 기묘하고 어두운 숲속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이 나란히 마주 보는 유럽식 배치였는데, 이에 걸맞게 음향의 거대한 압도보단 면밀하게 구조화된 앙상블이 감상의 즐거움을 주었다. 16세기에 만들어진 이 악단 역사상 첫 수석객원지휘자직을 2012년부터 맡고 있는 정명훈은 그간 쌓아온 호흡의 특별함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음악을 듣는 이’로서 포디엄에 존재하는 그는 모든 현상을 아우르는 음악의 진정한 힘을 여전히 든든하게 붙잡아주고 있었다.
글 허서현 기자 사진 빈체로/Woohee Lee
계절의 음향이 빚어낸 명상
김덕우 바이올린 리사이틀 ‘다시 만난 사계’
1월 31일 오후 2시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
‘사계’는 예로부터 여러 음악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그 계보의 시작에는 비발디가 있으며, 이후 차이콥스키, 피아졸라 등이 ‘사계’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해석해 왔다. 김덕우는 2024년 비발디·피아졸라의 ‘사계’를 엮은 리사이틀 ‘팔계’에 이어 올해는 비발디의 ‘사계’를 재해석한 막스 리히터(1966~)의 리컴포즈드 ‘사계’(이하 ‘사계’)를 통해 탐구를 이어갔다. 무대에는 현악 앙상블 에드 무지카와 하프·하프시코드가 함께했다.
첫 곡인 아르보 패르트의 ‘프라트레스’(형제들)은 어둡게 내리깔린 조명 속에서 시작됐다. 바이올린 독주로 1분 가까이 진행되는 도입부는 가장 여린 음량부터 점진적인 크레셴도를 이루는데, 조명도 그에 따라 서서히 밝아지며 주제부로 진입했다. 현악 앙상블의 반주 사이로 하프시코드 연주자는 타악기 우드 블록을 연주했으며, 김덕우는 거칠게 치솟는 음형까지도 조심스런 호흡으로 연주를 이어갔다. ‘사계’에 앞서 효과적인 서곡의 역할이 돋보인 선곡이었다.
조명의 활용은 ‘사계’에서도 이어져, ‘봄’이 시작되자 무대 뒤편은 화사한 연둣빛으로 물들었다. 여기서 김덕우는 본곡에 앞서 짧은 전주를 추가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불규칙한 트릴과 트레몰로로 구성된 전주는 움트는 새싹을 느끼게 했으며, 본곡에 진입하기 전부터 봄의 기운에 한껏 젖어 들게 했다. 붉은 조명 속에서 시작된 ‘여름’에서는 솔리스트와 첼로 수석의 호흡이 눈에 띄었으며, 김덕우는 ‘여름’ 뒤에도 조용히 가라앉는 후주를 추가하여 여름을 떠나보내는 아쉬움을 표현했다. 인터미션 뒤에 이어진 ‘가을’과 ‘겨울’에서는 각각 주황색과 보라색 조명을 통해 분위기를 조성했다.
공연 전반에서 김덕우와 앙상블은 잘 준비된 호흡의 연주를 선보였으며, 파편처럼 해체되고 재구성된 비발디의 선율은 감상자의 심상을 원곡과는 다른 지점으로 안내했다. 명확한 구성을 설정하지 않은 채 규칙과 불규칙을 넘나들며 반복되는 주제는 고요한 내면으로 서서히 잠기는 듯한 감흥을 선사했고, 급작스레 정지하며 매 악장을 끝맺을 때는 꿈에서 깨어난 듯 했다. 감상보다는 명상에 가까웠던 이번 공연은 짜릿함의 연속이었던 재작년의 ‘팔계’와 대조를 이루며 또 한 번의 인상적인 탐구를 이룩해냈다.
글 최성혁 기자 사진 CNDK
길 잃은 모든 ‘아해’들을 위한 치유의 질주
공놀이클럽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
2월 6~14일 명동예술극장

강훈구(구성·연출), 김재훈(음악감독)/장성익, 이지민, 류세일, 남재국, 오예현, 김강민, 김지은, 김찬유, 민유경, 박나연, 박아윤, 박지안, 이주안, 조마리
무대 위로 9명의 어린이와 5명의 성인 배우가 뒤섞여 질주하기 시작한다.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되어 “미친놈의 잠꼬대”라는 혹평 속에 중단되었던 이상(1910~1937)의 연작시 ‘오감도(烏瞰圖)’가 90여 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오늘날 아이들의 목소리로 재탄생했다.(2월 9일 관람)
기존 어린이극의 관습을 과감히 탈피한 공놀이클럽의 이 ‘이상한’ 연극은, 시대를 관통하는 공포의 실체를 아이들의 생생한 언어로 추적해 나간다. 이상의 ‘오감도 제1호’는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누가 무서운 아해(兒孩)인지, 누가 무서워하는 아해인지 알 수 없는 그 기묘한 불안감은 공연의 핵심 동력이 된다. 무대는 총 13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제1의 아해’부터 ‘제13의 아해’까지 각자가 마주한 구체적인 공포를 나열한다.
과거의 아해들이 정체 모를 근대적 불안에 떨었다면, 오늘날 무대 위 아해들은 지극히 동시대적인 공포를 노래한다. 부모님의 기대와 학업 경쟁(제3·5의 아해), 스마트폰과 아이돌이라는 거대한 자본의 소용돌이(제7·8의 아해), 노키즈존과 전쟁이라는 사회적 배제와 폭력(제11·12의 아해)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는 넓고도 날카롭다.
연출가 강훈구는 엄숙한 문학적 텍스트를 해체하여 놀이적 감수성으로 재조합했다. 어린이 배우들의 서툴지만 당당한 몸짓은 즉흥 안무와 K팝, 랩, 그리고 스크린으로 송출되는 실시간 라이브 방송 형식을 빌려 무대 위로 쏟아진다. 이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어린이 문화의 생생한 언어를 공공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실험이다.
공포의 화살표가 타인과 사회를 넘어 결국 ‘자아’를 향하는 마지막 장면, ‘나 무섭다그리오’(제13의 아해)에서 관객들은 아이들의 눈망울에 투영된 자신을 발견한다. 아이들의 언어는 난해했던 이상의 시보다 명쾌하게 가슴에 스며들고, 객석에는 따뜻하면서도 서늘한 여운이 감돈다. 막이 내리고, 공연장의 불이 켜지면 관객은 깨닫는다. 이 연극은 어린이를 위한 교육극이 아니라, 길을 잃은 모든 아해(어른)들을 위한 치유의 질주였음을.
글 홍예원 기자 사진 국립극단/공놀이클럽(이지응)
끝내 닿지 못할 이상향
뮤지컬 ‘몽유도원’
1월 27일~2월 22일 국립극장 해오름
굽이치는 강 한복판, 백제의 왕 여경(민우혁·김주택 분)이 홀로 위태롭게 서 있다. 짙은 어둠과 긴장이 감도는 이 장면은 작품의 결말을 예고하는 ‘심리적 배경’이다.
약해진 왕권과 끊이지 않는 고구려의 위협. 악몽에 시달리던 여경의 꿈속에 어느 날 한 폭의 수묵화처럼 도원경이 펼쳐진다. 그곳에서 여경은 평화를 닮은 여인, 아랑(하윤주·유리아 분)을 만난다. “그 어떤 여인도 곁에 두지 않겠다”던 다짐은 허물어지고, 여경은 신하 향실(서영주·전재홍 분)에게 꿈에서 본 그녀를 찾아오라 명한다. 하지만 여경은 이미 목지국 지도자인 도미(이충주·김성식·윤제원 분)와 혼인한 유부녀.
‘삼국사기’의 도미 부부 설화를 모티프로 삼은 최인호의 소설 ‘몽유도원도’(2002)를 원작으로, 뮤지컬이 새롭게 재탄생했다. 뮤지컬 ‘명성황후’와 ‘영웅’을 제작한 연출가 윤호진은 2002년 초연작을 리부트하며, 2028년 브로드웨이를 향한 도전이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밝히기도 했다.
세계 시장을 겨냥하면서도 오히려 한국적인 미학을 선명히 드러낸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렇기에 작품을 이루는 모든 요소는 덧없이 한국적이다. 힘을 지닌 질감의 푸른 한복과 여백의 미를 살린 무대 구성, 그리고 절제된 빛의 움직임이 미학을 완성한다. 대극장의 벽면을 채운 LED 위로 수묵화의 미디어 아트가 흐르며, 고전 회화와 현대 기술이 자연스럽게 공존했다.(1월 27일 관람)
작품의 백미는, 아랑을 두고 벌이는 여경과 도미의 바둑 장면이었다. 도미의 흑은 낮은 직진 동작으로 표현되고, 여경의 백은 점프의 움직임으로 구현이 되며, 배우의 몸은 바둑판 자체가 되어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흑과 백이 어지럽게 엉키며, 함께 달아오른 음악이 뚝 멈추고 여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바둑은 나의 승리다.”
권력 다툼 속 사랑이 희생되는 이야기는 동양이고 서양이고 이미 즐비하다. 자칫 뻔한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사랑이란 시간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감정이기에 관객들은 쉽게 몰입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는 말처럼, ‘한국적’이라는 정체성이야말로 세계 시장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이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글 유내리 기자 사진 에이콤
제19회 쇼팽 콩쿠르 위너스 갈라 콘서트
6인의 콩쿠르 스타, 개성을 드러내다
2월 3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콩쿠르의 연주자는 무대 위에서의 스트레스와 더불어 특정한 작품을 통해 ‘많은 이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는, 제약을 이기는 힘도 갖춰야 한다. 어지간한 콩쿠르는 ‘실제상황’을 전 세계인들에게 공유하는 상태이니, 이 젊은이들의 심장은 특별한 보호막이 하나 더 있어야 할 듯하다. 지난 2월, 쇼팽 콩쿠르 위너스의 무대는 극도의 긴장을 이겨낸 여섯 사람의 가공되지 않은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청중 대다수는 이미 그들의 콩쿠르 무대를 샅샅이 경험한 바, 흥미로운 개성은 실제 연주에서 더욱 확대돼 드러났다.
폴란드 정통파의 카리스마를 지닌 안토니 비트가 이끄는 바르샤바 필하모닉은 현재 쇼팽 피아노 협주곡을 위한 최고의 파트너다. 여유 있는 박자와 정확한 인토네이션의 관현악 반주로 시작된 피아노 협주곡 1번의 주인공은 케빈 첸(2005~)이었다. 대회 내내 탄력 있는 박자감과 정확한 손놀림을 통해 놀라움을 자아낸 첸의 연주는 다듬어진 음상과 밝은 음색이 인상적이었다.
독주 무대의 첫 순서는 시오리 쿠와하라(1995~) 연주의 ‘뱃노래’ Op.60이었다. 진지한 태도가 인상적이었으며 프레이징마다 심사숙고 후 만들어진 모양새가 느껴졌다. 일본인다운 명확한 짜임새와 탁월한 균형감각도 고르게 나타났으며, 후기작임을 고려한 원숙미 역시 과도하지 않게 표현되었다. 대회에서 깔끔한 루바토를 강조해 다소 건조하게 느껴졌던 윌리엄 양(2001~)은 녹턴 두 곡에서 의외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속삭이는 듯한 노래가 두드러지는 Op.32-1에서는 다소 딱딱한 음상으로 심각한 정서를 내세웠고, 대규모에 속하는 Op.62-1은 오히려 화사한 선율미를 강조하며 모나지 않은 진행을 들려주었다.
개인적으로 많은 응원을 보낸 피오트르 알렉세비츠(2000~)의 무대는 자신의 정체성과 맞아떨어지는 선곡부터 빛났다. 명랑한 기조로 연출한 ‘안단테 스피아나토와 화려한 대 폴로네즈’ Op.22는 긴박한 속도 위 폴란드인 특유의 낙천성이 두드러진 호연이었다. 텍스트 안에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가는 듯한 모양새의 테크닉은 차별화된 느낌으로 다가왔으며, 청중이 느끼는 감정은 짜릿함보다 포만감에 가까웠다.
이날의 소득은 왕쯔통(1999~)이 연주한 피아노 소나타 2번이었다. 큰 그릇이 느껴지는 음악적 소신이 마디마다 드러나는 왕쯔통의 스타일은 대회에서도 이미 공감받았는데, 실제 연주로 접한 그의 장점은 세련된 페달링과 다채로운 가짓수의 음색 블렌딩이었다. 풍성한 양감을 지향하면서도, 거친 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댐퍼의 사용법은 놀라웠다. 깔끔한 루바토로 오히려 긴 뉘앙스를 전달한 1악장, 품격과 박진감이 함께 한 2악장도 훌륭했지만, 섬세한 서정성만으로도 이렇게 깊은 공감이 가능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 ‘장송 행진’의 3악장과 순식간의 환영처럼 쳐내려 간 에필로그의 4악장까지, 모두 훌륭했다.
피날레를 장식하기 위해 등장한 챔피언 에릭 루(1997~)는 피아노 협주곡 2번 연주에서 한층 깊어진 타건과 더욱 침착해진 진행으로 그간의 변모를 엿보게 했다. 이색적이었던 것은 2악장에서 나눈 오케스트라와의 대화다. 레치타티보 부분에서 폴란드의 오케스트라만이 내놓는 강렬한 트레몰로가 등장했는데, 에릭 루의 자세 역시 단단한 음상을 유지하면서 정중동의 감성을 멋지게 뽑아냈다. 작품이 빚어내는 형형색색의 음악적 요소에 가볍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쇼팽을 한 땀 한 땀 만들어내는 에릭 루의 스타일은 빠르지 않게, 그러나 오랫동안 쇼팽을 사랑하는 애호가들의 지지를 받을 듯하다.
글 김주영(서울사이버대 피아노과 교수) 사진 마스트미디어/Roman Lee
이자벨 파우스트 & 알렉산더 멜니코프 듀오 리사이틀
낭만을 건너, 현대의 심연으로
2월 4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모든 면에서 놀랍고 참신했다. 무엇보다도 20세기 작품들로만 구성된 프로그램이 그러했다. 프로코피예프의 ‘다섯 개의 멜로디’를 시작으로,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 소나타, 쇤베르크의 환상곡, 부소니 바이올린 소나타 2번으로 이어진 구성은,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에 익숙한 국내 청중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법했다.
그러나 흥행에 대한 우려를 깨고 공연장은 이자벨 파우스트(1972~)와 알렉산더 멜니코프(1973~)의 연주를 들으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 이들의 연주에 대한 기대감이 낯선 음악에 대한 두려움을 이긴 것이다.
연주의 첫 작품, 프로코피예프 ‘다섯 개의 멜로디’에서부터 두 음악가의 섬세하면서도 독창적인 연주가 펼쳐졌다. 파우스트 특유의 예리하면서 섬세한 음색과 음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멜니코프의 피아노 터치는 감탄스러웠다. 다만 소리가 큰 편은 아니었기에 미세한 음의 뉘앙스 하나까지 음미하기에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 다소 크게 느껴졌다. 큰 홀에서 2중주를 듣기 위해서 귀가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어진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소나타는 한결 귀에 잘 들어왔다. 쇼스타코비치는 그의 친구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1908~1974)의 60세 생일을 위해 이 소나타를 작곡했는데, 생일 선물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어두운 분위기의 곡이다. 당시 건강이 좋지 않았던 쇼스타코비치는 삶의 끝자락을 예감하고 있었으리라.
1악장의 음울한 시작과 유령 같은 아르페지오, 기괴한 트레몰로는 파우스트의 긴장감 어린 음색과 절묘히 어우러졌다. 2악장에서 두 음악가의 날 선 연주는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를 떠올리게 했고, 3악장의 파사칼리아 변주는 계속되는 전쟁으로부터 벗어나 완전한 자유를 찾으려는 몸부림처럼 처절했다.
후반부의 쇤베르크 환상곡 Op.47은 음악회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이 작품은 한 옥타브의 열두 반음을 동등하게 다룬 12음 음렬기법이 사용된 곡이라서 난해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두 연주자는 쇤베르크 음악의 표현주의적인 면을 잘 부각시킨 강렬한 연주로 단번에 청중을 사로잡았다. 또한 파우스트의 바이올린 연주에서는 빈 왈츠풍의 미묘한 춤 리듬의 맛이 배어 나왔는데, 덕분에 ‘제2빈악파’라고 불리는 쇤베르크 음악의 핵심이 확실하게 드러났다.
마지막으로 연주된 부소니 바이올린 소나타 2번은 낭만적 정서로 흘렀는데 3악장에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주제가 등장하자, 무대의 공기는 단번에 경건하게 가라앉았다. 파우스트와 멜니코프는 부소니 음악의 낭만적인 성격을 부각시키면서도, 3악장의 바흐 주제가 나오는 순간부터는 기도하듯 절제된 변주를 이어가며 관객의 갈채를 받았다.
앙코르는 또 다른 놀라움을 안겼다. 슈만의 ‘환상소곡집’ 중 ‘석양’에 이어 존 케이지의 ‘녹턴’을 선보이며, 파우스트는 정교함의 극한을 보여주었다.
리사이틀 내내 만만치 않은 레퍼토리를 소화했음에도, 그는 전혀 흐트러짐 없이 활을 제어했다. 첫 곡에서 앙코르에 이르기까지, 두 연주자는 단 한 순간도 긴장을 놓지 않았다. 청중을 놀라게 하기보다, 끝내 설득하고 사유하게 만드는 연주였다. 이 시대에 이토록 참된 예술가들이 있음에 감사하게 되었다.
글 최은규(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예술의전당
제17회 아르코창작음악제
오늘의 창작음악이 서 있는 자리
1월 27일(국악) & 2월 6일(양악)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진솔(지휘)/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왼쪽부터) 작곡가 최지운, 김현민, 조윤제, 오용철, 김신
더 이상 양악이네 국악이네 하는 해 묻은 논쟁 배경은 서양음악이 유입된 지 100여 년이 지난 2020년대에는 종식하고 음악인들이 자신의 전공을 초월하는 통섭적 융합이 진정한 한국음악이다. 그런 점에서 “여기서 어디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는 지금, 동시대 작곡가의 한 사람으로서 직면한 질문이자 아르코창작음악제가 품은 함의일 것이다. 여기에는 “지금까지 우리가 서 있던 곳은 어디였나?”와 함께 “과연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게 맞나?”라는 근원도 포함되어 있다.
1월 27일 국악부문(이승훤/서울시국악관현악단 연주)에서 드러난 가장 큰 특징은 서양음악의 작곡 기법을 국악기로 이식한 결과, 그대로 서양 오케스트라가 연주한다고 해도 별 차이가 없다는 점이었다. 거칠 것 없는 크로스오버와 완전한 자의성이 지배하는 지금, 때론 실험적인 분야에도 포스트모던이라는 치트키로 찬양받는 융합으로 인해 “무엇이든 다 된다”라는 원칙 없는 원칙에 따라 가능한 모든 것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뒤섞고, 인용하고, 패러디하고, 콜라주하고 기계적으로 만들어내었다.
2월 6일 양악부문(진솔/국립심포니 연주) 역시 국악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오용철의 클라리넷 협주곡은 베를리오즈의 ‘이탈리아의 헤럴드’처럼 클라리넷이 방관자처럼 지켜보는 제3자의 역할인데, 조성호(협연)라는 뛰어난 클라리네티스트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아쉬웠다. 도리어 국악부문 이고운의 대금 협주곡 ‘숨, 생, 시’(협연 김정승)는 기교 과시적인 낭만 협주곡의 형태로, 대금 대신 플루트로 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이중교배의 협주곡이었다. 국악부문의 유재영·서민재, 양악부분의 김현민·최지운은 과거의 재료도 능숙하게 다루지 못하는 마당에, 확대된 자유의 영역에 자의성을 침투시켜 모든 걸 집어삼키며 ‘모든 것을 가지고픈’ 욕망과 성공의 의지가 강렬했다. 유린당한 도덕과 노골적인 거짓을 서슴지 않으면서 작품이 작곡가의 양심을 판 출세의 수단이 되어버리면 안된다.
작곡가들이 현재 속해있는 상황과 위치, 영역과 단체에 따라 스타일이 규정되었다. 음악극이나 창극의 부수음악으로 어울릴만했던 김지호(국악부문)의 ‘기억의 노래’나 정치·사회·환경 등의 의제를 관철하기 위한 조윤제(양악부문)의 ‘고래’가 그랬고 오용철은 다른 작곡가들과는 한 세대가 확연히 다른 작법이었다.
2019년 광주여성필하모닉이 연주한 ‘님을 위한 행진곡에 의한 교향적 환상곡’은 필자가 처음 접한 김신(양악부문)의 작품이었고, 목관악기를 통해 낼 수 있는 최대한 많은 소리를 끄집어내려고 해 온갖 바람과 비말이 난무했던 ‘Mouth Music: Extraordinary Phenomenon’(구음: 경이로운 현상)은 2021년 화음챔버오케스트라가 백남준을 주제로 한 위촉곡이었다. 두 작품 모두 목적과 의도와 부합했으며, 김신 역시 작년 11월 국립심포니의 ‘작곡가 아틀리에’ 등을 통해 사운드 디자이너에서 한 단계 도약한 엄연한 작곡가로 성장해 있었다. 이번 아창제에서 발표한 김신의 ‘스즈키 씨의 모험’은 풍부한 상상력이 참신한 기법들과 맞물려, 자기만의 고유한 목소리를 찾아내었다.
모든 작품은 저마다 간단히 축약하고 간과할 수 없는 독자성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생산된 시대의 일부로 치부된다. 그러면서도 독자적인 길을 걸어야만 “미래가 기억할 오늘의 우리 음악”을 창작할 것이라는 묵직한 과제를 남긴 아창제(아르코창작음악제)였다.
글 성용원(작곡가) 사진 한국창작음악제추진단·포토바이원
더뮤즈오페라단 ‘찬드라’
완성된 무대 위 남은 선율의 과제
1월 31일~2월 1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2008년부터 우수 창작 레퍼토리를 발굴하기 위해 공연예술창작산실 사업을 수행해 왔다. 취약한 순수 공연예술 분야를 지원하고, 창작오페라 분야에서는 이를 통해 레퍼토리로 발전한 동시대 우리 오페라를 여러 편 발굴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올해 공연예술창작산실 창작오페라 분야 ‘올해의신작’은 두 작품으로, 그중 오페라 ‘찬드라’는 안정된 제작진 구성과 무대화 계획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초연 무대에서 ‘찬드라’는 기대했던 대로 음악적 전개와 서사, 무대 연출이 일관된 좋은 성과를 보여줬다. 아르코예술극장이 그랜드오페라를 하기에 적합한 장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회전하는 무대와 조명 등을 활용해 무대를 입체적이고 풍성하게 구성했다.
‘찬드라’는 달을 상징적 모티프로 삼아 사랑과 욕망, 신념이 어떻게 비극으로 귀결되는지를 그리고 있다. 아라와 사만은 서로 다른 욕망과 선택 속에서 점차 파국으로 치닫고, 말없이 모든 것을 비추는 달 아래에서 인물들은 구원에 이르지 못한 채, 스스로 만든 비극과 마주하게 된다.
‘찬드라’의 완성도를 크게 높인 요인은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무대 디자인이다. 현대와 과거 신화적 세계를 오가는 장면의 전환을 위해 회전무대를 효과적으로 사용했는데, 적절한 조명과 더불어 두 이질적인 세계를 오가는 작품의 서사를 완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둘째 연출 측면에서, 김숙영은 무대의 배치와 서사를 잘 연결하는 연출가로, 이번 작품에서도 강점을 잘 살렸다. 특히 1막은 6장으로 이뤄져 장면의 전환이 빈번했으나 인물의 동선을 무리 없이 확보하면서 이야기를 매끄럽게 연결했다.
마지막으로 출연진의 기량이다. 출연 성악가들 모두 안정적인 연기력과 좋은 가창력을 보여줬고 오케스트라, 합창단과 좋은 조화를 이뤘다. 아라 역의 소프라노 이경진, 사만 역의 테너 이사야는 중창이 많은 이 작품에서 다른 연주자들과 조화롭게 어울리며 작품의 비극성을 끌어올렸다.(2월 1일 관람) 특히 2차 제작 지원 무대에서도 사만 역할을 맡았던 이사야는 배역을 능숙하게 소화해 욕망에 눈먼 어리석은 인물을 잘 그려냈다. 이밖에 양진모가 지휘하는 뉴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위너오페라합창단 역시 안정된 연주력으로 작품을 뒷받침했다. 초연 작품임에도 양진모는 유연한 해석으로 무대 위 성악가들과 관현악의 조화를 잘 이끌었다.
다소 아쉬운 것은 음악적인 부분이다. 현악의 파찰음으로 시작된 음악은 전반적으로 선율보다는 리듬감이 강조됐다. 비극으로 설정된 작품의 극적 효과 때문이기도 하고 주요 인물의 극단적인 행동을 강한 리듬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파악된다. 달을 비롯한 주요 모티브는 반복되는 유도동기로 통일감 있게 들려왔다. 그러나 오페라라고 하기엔 뚜렷한 아리아가 없는 점이 가장 약점으로 생각된다. 남녀 주역 모두에게 아리오소나 카바티나 정도의 노래를 줬을 뿐 작품의 규모나 성격에 걸맞은 극적인 아리아의 부재가 아쉬웠다. 때문에,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핵심 선율이 나타나지 않아 정통 오페라로서는 음악적 요소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작품의 처절한 비극성에 비해 주요 인물의 개별적 호소력이 약하게 여겨지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위와 같은 점을 보완한다면, 오페라 ‘찬드라’는 향후 단체의 대표적 레퍼토리는 물론이고 공연예술창작산실의 우수한 사례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한다.
글 손수연(오페라평론가)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정형일발레크리에이티브 ‘잠자는 숲속의 미녀:Awaken’
17세기 동화와 21세기 SF의 만남
2월 6~8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고전의 재해석이 예술의 한 영역이 된 시대다. 그런데 고전발레의 교과서라 불리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1899)는 성공적인 재해석 작품이 드물다. 유독 웅장한 차이콥스키의 음악과 화려한 볼거리, 그리고 왕자의 키스에 깨어나는 공주 이야기에 현대인이 공명하기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정형일발레크리에이티브가 선보인 ‘Awaken’은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재해석한 창작발레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이다. 왕자와 공주가 결혼한다는 왕실 동화를 유전자가 계급과 권력이 되는 미래 사회로 옮겨오면서 금빛 장식으로 물든 화려한 궁궐이 차가운 실버톤의 미니멀한 실험실로 바뀌었다. 발레 작품에서 17세기 궁전을 구현하는 것만큼이나 미래 공간을 그리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원형 및 타원형 구조물로 구현한 시노그래피가 꽤 설득력 있는 미장센을 만들었다.
작품은 원작의 3막 구성을 살린 데다 차이콥스키 원곡을 대부분 사용하기 때문에 원작과 평행하게 전개된다. 원작이 오로라 공주의 탄생과 성인식, 데지레 왕자에 의한 구원과 결혼식으로 이어진다면 ‘Awaken’은 불완전한 수정체인 왕자의 탄생과 성인식, 완전한 유전자인 공주와의 만남, 각성한 공주에 의한 구원으로 전개된다. 원작에서 작품의 중심이지만 수동적으로 이성에 의해 구원받던 오로라 역할이 데지레로 바뀌면서 젠더 규범을 미묘하게 뒤흔든다.
오로라와 데지레 외에 원작의 다양한 캐릭터도 그대로 등장한다. 마녀 카라보스는 완벽한 유전자만 추구하는 과학자로서 악역을 대표하며, 플로레스탄의 여왕, 라일락 요정과 요정들, 고양이, 파랑새, 빨간 망토 등 원작의 여러 캐릭터와 디베르티스망을 조금씩 변형하며 살렸다. 살색 튜닉과 흰 재킷을 휘두르는 세련된 동시대 발레의 외관 속에 원작의 줄거리와 캐릭터, 춤과 마임이 남아 있기에 원작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두 버전의 대위법을 읽어낼 수 있다.
안무뿐 아니라 세계관에서도 17세기 동화와 21세기 SF가 묘한 이중주를 이룬다.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왕자’를 ‘요정들’이 축복해 준다니, 과학 실험 성공을 기원하며 굿을 하는 것만큼 개연성이 부족한 설정일 수 있다. 하지만 발레를 하나의 ‘장르물’로 인정한다면 현실과는 다른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내적 일관성과 논리성을 확보하느냐이다. 안타깝게도 이 작품은 무려 3막 22장에 달하지만, 캐릭터나 이야기가 충분히 구체화기 전에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왜 이렇게 몰아치는가? 더 많이 춤추기 위해서다. ‘Awaken’은 확실히 춤으로 꽉 찬 작품이다. 정면성을 해체한 움직임이 역동적으로 연결된 춤은 입체적이고 풍성하다. 안무가 정형일은 기하학적이고 조형적인 디자인이 강점이며 여러 명의 남성 무용수가 여성 무용수의 몸을 섬세하게 조작하거나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동작을 자주 구사하는데 이 작품에서도 특유의 구성법이 보였다. 스무 명이 넘는 무용수의 기량도 고른 데다 많은 움직임, 다양한 솔로와 군무가 끝없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종합 선물 세트 같은 원작의 특성을 잇고 있다. 다만 춤의 물량 공세를 추동하는 이야기적 동력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아쉽다. 스토리발레를 재해석한 작품에서 기대하는 건 멋진 춤과 참신한 설정뿐 아니라 짜임새 있는 전개를 따라 낯선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일 테다.
글 정옥희(무용평론가)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컨템퍼러리 서커스 ‘곡예사훈련’
공연집단 컨컨의 ‘실패’를 실패하지 않는 방법들
2월 5~7일 두산아트센터 Space111
“이 기술은 제가 2019년에 로프를 처음 했을 때부터 하고 싶었던 기술이었어요.” 충격 완화를 위한 두터운 파란색 매트 위에 선 서커스 공중곡예사 김준봉이 천장에 수직으로 매달려있는 긴 로프에 올라, 오랫동안 성공을 꿈꿔왔던 ‘피루엣(pirouette)’ 기술을 다시 한번 시도한다. 양손으로 로프를 잡은 상태에서 전신을 좌우로 크게 흔들어 반동을 주며 체공 시간을 확보한 다음, 손을 순간적으로 놓아 공중에서 전신을 한 바퀴 회전한 뒤 다시 로프를 낚아채는 고난도의 기술이다. 단 한 번도 완벽히 성공한 적 없는 기술을 시도한 그는, 과거의 어느날처럼 다시 한번 실패한다. “잘 안되네요. 이걸 꼭 해야 하는 건 아니거든요. 근데 하고 싶어요, 언젠가는.”
두산아트센터 두산아트랩의 일환으로 사흘간 쇼케이스 형식으로 발표된 컨컨(CONTCONN)의 ‘곡예사훈련’에는 서커스를 생업이자 삶의 동력으로 삼는 세 명의 서커스 예술가 권해원, 김준봉, 박상현이 등장한다. 20대 중반에 서커스를 시작해 어느덧 30대 중반에 이른 이들은 거대한 금속의 원형 도구인 씨어휠에서 쉬지 않고 회전하거나(권해원), 천장에 매달린 에어리얼 로프와 실크를 오르내리며 아크로바틱 동작을 구현하거나(김준봉), 금속의 줄을 느슨하게 연결한 형태의 슬랙와이어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는다(박상현). 이들은 ‘해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의 경계, 그리고 ‘어떻게든 해낼 수 있는 것’과 ‘결코 해낼 수 없는 것’의 경계에서 부단히 진동한다.
마치 정방향의 힘과 역방향의 힘이 이루는 완전한 접점을 찾아가는 밸런싱 액트가 서커스의 기반 원리를 이루는 것처럼, 반복되는 실패와 그럼에도 가능성을 향한 믿음 안에서 이어지는 시도는 지속적인 훈련을 특성으로 하는 서커스 예술가들의 일상 원리를 이룬다. 그러나 지난한 훈련의 끝에서 마침내 완전한 균형의 순간이 도래하는 즉시, 균형이 보장하는 안정성에 균열이 가해지며 불균형의 상태로 회귀한다는 점에서 이들이 체현하는 서커스란, 곡예의 결과라기보다는 과정의 곡예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기예 외에도 타 예술 장르들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일종의 창작 경향인 컨템퍼러리 서커스를 표방한 ‘곡예사훈련’은 다큐멘터리 연극 및 렉처 퍼포먼스 등의 형식을 취하며 세 사람의 서커스 시작 계기에 대해, 그리고 도구를 가지고 몸을 푸는 컨디셔닝 방식과 서커스 훈련을 지속하기 위한 개별 노하우에 대해, 더 나아가 부상의 위험과 실패하는 기예에 대해 75분간 이야기를 이어간다. 10여 년의 시간이 압축된 에피소드들을 관통하며 극 중 모더레이터(드라마투르그)를 통해 세부적으로 해설되는 서커스적 몸의 서사는 공연 후반부로 갈수록 곡예사를 위한 훈련이라는 맥락을 넘어서서 보편적 삶의 서사로 재발견된다.
이때의 보편성은 관객의 해석을 요하는 메타포로서가 아니라, 관객의 직관을 자극하는 하나의 실제이자 실천의 순간으로 극장 공간에 출현한다. 감상이 아닌 감탄이, 관람이 아닌 무언의 공감과 혹시 모를 두려움이 극장의 환경을 이루는 순간, 무대 안과 밖은 손을 맞잡고 서로에게 온전히 몸을 내어주며 서로를 매개 삼아 지지하게 된다.
실패를 멈추지 않기. 도망가지 않기. 다른 몸에, 다른 몸이 건네는 낯선 언어에 귀 기울이기. 그리고 믿어주기. 어쩌면 이번 ‘곡예사훈련’을 통해 우리가 마주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처럼 무대 안과 밖의 경계 위에서 서로가 서로를 지향하고자 했던 서커스적 순간이 아니었을까.
글 손옥주(공연학자) 사진 두산아트센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