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인 최초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악장이 된 그가 만드는 열정적 무대
개인적으로 데이비드 김의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2000년 광화문 신사옥에 금호아트홀이 개관하면서 였다. 그는 당시 뛰어난 테크닉을 가진 연주자로 등장해 젊은 패기와 진지한 연주로 음악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 후 15년이 흘러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상자라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라이징 스타에서 이제 그는 매년 마스터클래스와 어린이들의 클래식 음악 교육을 위해 헌신하는 중견 연주자로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동양인 최초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 활동 중인 그는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1989년 창단한 킹스턴 체임버 뮤직 페스티벌을 설립해 20년 동안 음악감독을 역임했다. 2009년부터는 금호아트홀 체임버 뮤직 소사이어티의 정단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가 6월 25일 솔로 리사이틀을 갖는다. 이날 무대에서는 스트라빈스키 ‘이탈리아 모음곡’, 드뷔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브람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스케르초 C단조, 크라이슬러 ‘빈 카프리치오’, 마스네 ‘타이스의 명상곡’, 사라사테 ‘카르멘 환상곡’을 연주한다.
이번에 연주하는 각 작품에 어떤 메시지가 들어 있나요?
특별한 메시지는 없습니다. 청중 대부분이 이번 연주회의 작품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확실한 건, 어떤 특별함을 보여주기 위한 깜짝 연주나 시도는 하지 않을 거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제 고유의 음색을 잘 느끼실 거라 믿고, 또 음악과 청중에 대한 저의 애정과 열정이 잘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솔리스트면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악장이기도 한데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만의 음악적인 특징은 무엇인가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벨벳처럼 부드럽고 풍성한 음색을 자랑합니다. 세계 최정상급 젊은 지휘자로 꼽히는 야닉 네제 세갱은 저희 오케스트라와 환상적 호흡을 보여주고 있고요. 그의 목표는 오케스트라의 훌륭한 전통을 지켜가면서 동시에 창의적인 연주자와 함께 미래를 열어가는 준비된 세계 명문 오케스트라로 만드는 것입니다.
특히 저희 단체가 세계를 돌며 다양한 무대에서 연주할 수 있다는 점은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필라델피아와 펜실베이니아 주, 더 나아가 미국 음악계를 대표한다는 책임감을 느낄 뿐 아니라 그 명성에 걸맞는 공연을 하기 위해 단원 전체가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콘서트홀마다 다른 음향 시설에도 적응해야 하므로 긴장감 속에서 연습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음악의 표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자의식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유럽 또는 미국 어디에서든 모두 세계 최고의 훈련을 받습니다. 하지만 연주자의 연주가 훈련된 것처럼 들리면 청중은 바로 외면하고 결국 예술은 사라질 것입니다. 물론 우리 인간 자체가 불안정한 존재이기에 자의식에서 벗어나는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 타인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기도 하죠. 모든 일이 그렇듯, 자신을 내려놓고 무대에서 자유로워지는 것도 연습과 반복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연주는 어떤 연주인가요?
기본적으로 아름다운 선율과 흔들리지 않는 음색, 정확한 음조, 훌륭한 리듬, 뛰어난 음악성이 연주에 녹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설명하기 힘든 특별한 자질이 필요합니다. 바로 청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와 심오함, 강함, 느슨함, 매력이 결합된 감각입니다. 일부 거장들은 이 재능을 타고나기도 합니다. 감사하게도, 아주 가끔은 우리 같은 보통 연주자도 그 감각을 발휘하는 순간이 있답니다.
어린이 클래식 음악 교육에 헌신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많은 연구에서 증명되었듯, 음악과 악기 연주를 어릴 때부터 꾸준히 배운 아이들은 다른 과목의 시험과 문제 해결 능력에서 우수한 실력을 발휘한다고 합니다. 그런 걸 떠나서도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음악을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학교에서 음악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미래의 세상을 문화적 불모지로 만드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이 시대 음악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는지요?
고등학교에서 우리 아이들은 학업과 대입시험 준비라는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말 그대로 지옥 같은 생활이죠. 그러다 일단 대학에 들어가 부모님과 떨어지면서 아이들은 무방비 상태로 빗나가기 시작합니다. 저는 우리의 삶이 종종 균형을 잃고 맹목적 성공에 집착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병들고 불안정한 삶은 결국 우리의 목을 조이게 됩니다. 부모 세대는 누구나 이렇게 살아가기에 선택권이 없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전반적 시스템이 바뀌어야 합니다.
이번 음악회를 통해 전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음악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싶습니다. 저는 매년 세계의 유명한 콘서트홀을 다니며 연주회를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제 뿌리이자 부모님의 나라인 한국에서 연주하는 것이 가장 행복하고 좋습니다. 매번 소중한 추억과 선물을 받는 기분이니까요. 이번 무대 역시 늘 그리웠던 제 마음의 영원한 고향에서 연주하며 느끼는 벅찬 감격을 청중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다음 연주 계획은 무엇인가요?
지휘는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웃음). 물론 실력도 형편없습니다. 저는 지휘 경력 없이 악장으로 취임했지만, 지금은 전체적으로 오케스트라의 훨씬 많은 부분을 이끌고 있습니다. 이런 역할을 맡게 될 거라고 예상하진 못했지만, 지금은 꽤 즐기게 되었습니다. 현재 자리에서 내려오면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칠 계획입니다. 젊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을 좋아하고, 또 학생들도 표정으로 봐서는 제 가르침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언젠가 한국에서 수업하는 제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합니다. 한국어도 꽤 유창한 편이고, 현재에도 가르칠 때 한국어를 즐겨 사용합니다.
사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