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악원 원장 임재원·국악연구실장 김희선

새로운 국악과 기록을 짓는 공장(公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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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8월 6일 12: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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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의 대중과의 거리 좁히기, 세계 속 국악의 새로운 좌표 설정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국립국악원의 내부와 기능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하다. 정악단·민속악단·무용단·창작악단과 같이 공연을 담당하는 예술단이 있고, 이론적 연구와 기록을 위한 국악연구실과 국악박물관, 국악아카이브가 공존한다. 각각의 고유한 기능과 영역을 맡고 있으며, ‘새로운 전통’이라는 강령 하에 한 무대에 그 기능들을 합치기도 한다. 따라서 여러 공연물을 생산하는 거대한 공장처럼 운영된다. 분위기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보존과 전승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제는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생산물을 제때마다 국민에게 제공해야 한다.

지난 3월, 김해숙 전 원장에 이어 제19대 임재원 원장이 취임했다. 임기는 3년. 그가 그리고 있는 국립국악원의 청사진을 김희선 국악연구실장과 함께 들여다보았다.

과거에 국립국악원 정악단에 대금 단원(1982~1985)으로도 재직했다. 격세지감을 표현한다면.

임재원 국악인들의 직장 개념으로 인식되던 과거와 달리 관객과 다양한 방법을 통해 만나는 플랫폼이 되었다고 느낀다. 국민의 정체성은 자국의 문화를 향유할 때 생긴다. 이를 위한 플랫폼 강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취임 이후 계승·발전시키고 싶은 선배 원장들의 아이템이 있을 것이다.

임재원 국립국악원의 공연은 크게 전통예술을 순수하게 보존하는 것과 타 장르와의 협업을 통한 창작물로 나눠진다. 세종의 이야기를 다룬 소리극 ‘까막눈의 왕-세종어제훈민정음’처럼 국악과 극이 만나고(2012년 초연), ‘꼭두’처럼 영상과 만나고(2017년 초연), ‘다담’처럼 이야기와 음악이 함께 하는 공연이 있다. 관객들에게 지속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오직 국립국악원만 할 수 있는 공연들이다!”라는 찬사가 최고이지 않을까 싶다.

국립극장 산하의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예술감독으로 재직(2016~2018)했다. 업무상 가장 먼저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창작악단이 아닐까 싶다.

임재원 국립극장과 달리 국립국악원 내에는 정악단과 민속악단이 있다. 이들이 계승하는 음악들은 살아 있는 유물이다. 창작악단의 방향성은 이러한 음악들을 토대로 변화를 입히는 것으로 잡고 있다. 연구실 산하에 악기연구소와 연계하여 다른 악단과 차별화된 음향을 만드는 것도 계획 중 하나다.

음악가의 입장에서 무용단을 바라본다면.

임재원 무보와 의궤(조선왕실의 주요행사를 정리한 기록)에 기인한 작품들을 구현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정악단과 민속악단이 음악을 직접 연주하며 무용단과 함께 하는 것도 매력이다. 녹음된 음악보다 훨씬 살아 있는 무대를 제공한다.

국립국악원의 상반기 행보에서 ‘화평’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5월에 선보인 ‘세종 하늘의 소리를 듣다’는 세종이 바라는 민생과의 화평과 평화를 담고 있다.

임재원 국악은 그동안 ‘보존’을 빌미로 사회에서 많은 지원과 보호를 받아왔다. 그에 대한 보은이라고나 할까. 국립국악원의 역할 중 사회적 책임을 인지하고 이끌어가려고 한다. 사회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못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고. 8월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공연도 앞두고 있다.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음악과의 협업이 크게 보도되었다. 남북교류의 물꼬가 트일 때마다 전통음악을 통해 동족의 뿌리를 확인하는 교류가 예전부터 많았다.

임재원 북한에 산재한 전통음악들이 많다. 예를 들어, 산야의 구석마다 전래되는 민요들이 있을 것이다. 개인의 기억에 남아 있는 민요는 그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다. 그래서 그 기억에 대한 보존, 공동의 것임을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다. 음악을 기억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예를 들어 ‘영산회상’이라는 곡을 없애려 한다고 치자. 악보와 악기를 모두 불태웠다. 하지만 그것을 연주했고 기억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영산회상’은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남북이 힘을 합쳐 협력할 길을 모색해봐야 한다. 쉽지 않지만 해보려 한다.

원장마다 공을 들인 기획물들이 있다.

임재원 신년음악회를 즐기는 방식을 바꾸고 싶다. 신년음악회라고 하면 왈츠를 떠올릴 것이다. 국악계에도 신년음악회가 널리 퍼져 있긴 하다. 하지만 서구식 신년음악회를 답습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종묘제례악을 신년음악회로 해보면 어떨까 싶다. 누군가는 제사음악을 신년부터 올린다며 반감을 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례악이라는 음악보단 그 안에 담긴 의미를 공유하는 것이다. 한 해를 시작하며 지내는 제사(제례)에는 조상에게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생활과 밀접해지면서도 그 의미를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고 싶다.

예악당·우면당·풍류사랑방과 야외마당인 연희마당 외에 국악박물관도 운영되고 있다.

임재원 국악박물관은 공연장만큼 중요한 곳이다. 지나간 소리가 만든 흔적과 기록이 모인 곳이다. 1995년에 개원했다. 2015년에 국립으로 전환됐고 2018년에 국제악기박물관협회(MIMO)에 가입하여 전세계의 악기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교류전시도 하고 있다. 유럽의 고악기와 국악기를 함께 전시하며 인류가 만든 음악사를 입체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2012년에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에 전시된 국악기 11점을 프랑스음악박물관의 협조로 국내에 들여오기도 했다. 올해는 바르셀로나 음악박물관에서 한국음악특별전을 개최했다. 국악 관련 유물 82점을 선보인 시간이었다. 앞으로 해외 순회전을 계획 중이다. 이 과정에서 해외의 전통음악과 한국음악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학술과 영문책자 발간 등 국악연구실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국악산업 실태 파악 3개년 계획이란 무엇인가.

임재원 국악과 산업의 연결고리를 한 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가 없다. 이러한 취약점을 보완하고 기초를 설립하기 위한 프로젝트이다. 연구실에서 정책연구사업도 활발히 진행 중인데 2020년 즈음에 여러 결과물이 나올 예정이다.

하반기에 국립국악원의 정수를 보여줄 수 있는 공연을 꼽는다면.

임재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공연(8월), ‘까막눈의 왕’(10월), ‘왕조의 꿈, 태평서곡’(12월) 등이다. 모두 아날로그적인 매력이 살아 있는 공연물이다. 8월에는 사할린한인회 주최로 북한의 예술단체와 합동공연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고, 9월에는 북한과의 교류를 위해 북한의 민족가극을 살펴보는 자리도 갖는다. 학자와 예술가들이 모여 이론적 맥락을 살펴보고, 작품을 직접 무대에 올린다. 대만국립전통예술센터와의 3개년 협약도 맺었다. 올해는 민속악단이 현지에서 공연하고, 내년에 단원들이 대만국립국악단과 협연하는 무대를 준비 중이다.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을 들여다보다

국립국악원 내에 국악연구실이 생긴 때는 1987년이다. 예술단들이 무대를 만들고, 국악연구실은 기록물을 만든다. 기록물은 공연에 기초가 되는 기획물이 되기도 한다. 임재원 원장은 취임과 동시에 국악연구실에 많은 힘을 실기로 약속했다. 그동안 원장 중심으로 인터뷰를 진행해온 ‘객석’이 국악연구실장과 만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국악연구실을 소개한다면.

김희선 34명의 연구원·학예연구사·학예연구관들이 국악박물관과 아카이브 업무와 학술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기능이 한 곳에서 이뤄지고 있는 국내 유일의 음악연구기관이기도 하다. 학술적 이론은 물론 공연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실용적 이론들을 생산하고 있다.

시대에 따라 공연 형태가 달라지듯이 기록과 학예의 형태와 그 대상도 변화를 입는 것 같다.

김희선 1960~1970년대에는 고(古)악보 발굴·수집·영인 작업을 주도했다. 한마디로 연구를 위한 1차 사료를 보존하는 작업이었다. 획기적인 성과는 ‘한국음악학자료총서’이다. 전래되어온 고악보와 악서(樂書)들이 이를 통해 영인되었다. 1988년에 서초동 청사 이전과 함께 연구실의 기능도 다양해졌다. 1988년 월북예술가들에 대한 해금 이후에는 북한음악과 그 뿌리를 연구하고 있다. 1990년대부터 국악발전을 위한 여러 정책들이 나오면서 그에 대한 연구도 시작했다. 국립국악원에는 여러 공연단이 공존한다. 이들과 함께 공연으로 연결될 수 있는 소스를 발굴하고 고증작업을 하기도 한다. ‘왕조의 꿈, 태평서곡’은 국악연구실의 고증작업이 책 같은 기록물이 아니라 공연으로 이어진 좋은 사례이다. 1795년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기록된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무대예술로 재연한 것이다.

변화하는 음향 환경과 매체에 대한 연구도 있다. 이것이 앞서 말한 실용적 이론이 아닌가 싶다.

김희선 연주자가 표현하는 방식도, 관객의 청취환경도 달라지고 있다. 국악연구실 소속의 악기연구소는 이를 위한 국악기개량과 새로운 음향 환경을 연구한다. 2000년대가 되면서 기록에 대한 환경도 달라졌다. 창작국악을 목록화하고, 2007년에 시작한 국악아카이브는 국악 관련 자료들을 수집하고 온라인상에서 접할 수 있도록 연구와 서비스 마인드가 함께 가는 프로젝트이다. 국악아카이브를 통해 국립국악원뿐만 아니라 민간에서 생산된 여러 음악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자 한다.

다가오는 8월에 15개국에서 동아시아음악을 연구하는 100여명의 학자들이 국립국악원에 모이는 자리가 펼쳐진다.

김희선 국제전통음악학회(ICTM)의 동아시아음악연구회(MEA) 국제학술대회를 국립국악원·한국국악학회가 공동으로 주최와 주관하는 자리다. 한국은 이미 1981년 당시로는 가장 큰 규모의 ICTM 세계대회를 서울에서 유치한 바 있다. 국제전통음악학회는 유네스코 산하 비정부기구인 국제민속음악학회로 시작되었다. 현재 연구 주제별 22개의 연구회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동아시아음악연구회는 동아시아의 전통음악, 서양음악, 대중음악 등 포괄적 연구를 주제로 삼고 있다. 이번 주제는 ‘공연예술과 사회적 이행’이다.

동아시아음악연구에서 각국의 연구자들이 공동으로 삼는 화두가 있다면.

김희선 연구를 하다보면 놀라운 연결지점들을 발견하곤 한다. 중국과 일본의 고대음악의 연결점이 보일 때도 있다. 20세기 제국주의를 겪은 비서구지역, 즉 동아시아에는 민족음악의 보존과 복원이 초기의 주된 관심사였다. 그런데 요새는 ‘어떻게 현대화하고 세계화할까’라는 방향으로 고민과 질문이 옮겨지고 있다. 일제 식민지로 인한 자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고민이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변화의 양상이 다양해진 오늘이기에 고민의 양태도 다양하다.

그 다양한 고민들이 곧 오늘날의 한국음악이 처한 상황인 것 같다.

김희선 그 고민이 곧 연구 주제가 된다. 이번 서울대회의 세부 주제는 다양하다. 전통음악의 제도화, 창조적 적용, 연행과 정치적 저항, 연행과 트라우마, 초국적 네트워킹, 변화하는 사운드스케이프 등이다. 음악과 자연재해 같은 것은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한 주제였다.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따져보면 앞으로도 다양한 주제들이 나올 것이다. 이러한 주제들이 한국음악의 글로벌 소통으로 가는 데에 중요한 징검다리가 될 것이다.

음악가에게 이론이란 무엇인가.

임재원 한마디로 음악과 연주를 살찌우는 것이다. 그 안에는 이론을 위한 이론도 있고, 악기와 연주를 위한 이론도 있다. 개인적으로 연구실의 선도적인 작업들이 기대된다.

국민들의 국립국악원 사용법을 소개해 달라.

임재원 국립국악원은 늘 열려 있다. 공연의 막이 오르는 8시 전에도 국악박물관은 늘 열려있다. 온라인상에서는 국악아카이브를 통해 못 본 공연을 다시 챙겨볼 수도 있고, 중요한 기록을 영상과 음반으로 담기도 한다. 관심을 더욱 살찌게 하는 여러 책자와 전시회도 열린다. 많은 이들이 잘 활용했으면 한다.

송현민(음악평론가) 사진 심규태(HARU)

 

임재원 국립국악원 대금단원 KBS국악관현악단 부수석·수석 대전시립연정국악원 상임지휘자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목원대와 서울대 교수를 지냈다

김희선 국립싱가포르대학교 아시아연구소연구원과 재단법인 월드뮤직센터 상임이사 역임 국민대 교수(휴직중)이며 2016년 9월 국악연구실장으로 임명되었다

국립국악원 하반기 주요 일정 우면산 별밤축제(6월 16일~9월 1일 매주 토요일)/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소녀를 위한 아리랑’(8월 14일)/국제전통음악학회 동아시아 음악연구회 국제학술대회(8월 21~23일)/민속악단 ‘우리가 사랑하는 민간풍류’(8월 31일~9월 1일)/창작악단 ‘Prime&Passion’(9월 7~8일)/무용단 ‘세상의 춤, 시간의 춤’(9월 13~14일)/정악단 ‘우리가 사랑하는 정악풍류’(9월 20~21일)/북한의 민족가극(9월 29일)/소리극 ‘까막눈의 왕-세종어제훈민정음’(10월 11~14일)/‘꼭두’(11월 16~24일)/‘왕조의 꿈, 태평서곡’(12월 21~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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