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배우 박강현, 백지 위에 오롯이 새겨질 그만의 색깔

폭넓은 연기력과 흡입력 있는 목소리를 가진 차세대 뮤지컬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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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4월 8일 9:00 오전

INTERVIEW

종잡을 수 없는 매력이다. 생글생글 웃는 모습을 보고서 외향적이라고 생각했으나, 스스로는 내성적이란다. 하얀 피부와 조곤조곤한 목소리는 소년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이야기하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자면 배우로서 꽤 강단을 갖고 있다. ‘백지 같다!’ 뮤지컬배우 박강현을 수식할 때, 많이 사용하는 단어다. 어떤 배역도 자신만의 색깔로 흡수하기 때문일 것이며, 그만큼 2015년 데뷔 이후 폭넓은 배역의 스펙트럼을 선보여 왔다. ‘베어 더 뮤지컬’(2016)의 피터는 내면적인 상처를 지닌 소년이었고, ‘웃는남자’(2018)의 그윈플렌은 순수하면서도 관능적인 청년이었으며, ‘엘리자벳’(2018)의 루케니는 활기차면서도 광기 어린 살인마였다. ‘쉽게 예측할 수 없는 배우’가 되는 것이 목표라는 박강현을 보며 무릎을 쳤다.

‘그가 대중의 큰 사랑을 받는 이유는 뻔하지 않기 때문이구나!’

 

청춘의 배우가 맞이한 봄

지난해 뮤지컬 ‘킹키부츠’ ‘웃는남자’ ‘엘리자벳’ 등 대극장에서 주역을 맡았고, 제7회 예그린뮤지컬어워드에서 신인상을 받았다. 배우로서 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좋은 기회들이 많이 찾아와서 봄이라고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닐 만큼 행복한 한 해를 보냈다. 감사한 마음이 가장 크다.

신인상을 거머쥐게 한 ‘웃는남자’의 그윈플렌은 본인에게도, 관객에게도, 관계자들에게도 모두 인상 깊은 작품이었다. 특히 회차가 거듭할수록 성장한 모습을 보였는데. 진정한 프로라면 첫 공연과 마지막 공연의 컨디션이 같아야 한다. 그러나 매 공연을 하면서 감정적으로 깊어지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배우들은 늘 그런 사소한 변화들을 찾아 나가려고 한다. 나 또한 공연이 계속될수록 모든 장면들에서의 감정이 깊어져서, 그윈플렌의 감정이 박강현이라는 사람에게 점차 온전하게 와 닿게 되었다.

연기와 노래가 함께 가야 하는 뮤지컬 배우로서 감정 몰입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다. 노래보다 연기를 먼저 공부하고 전공한 것이 감정 몰입에는 큰 도움이 된다. 뮤지컬도 음악이 있는 드라마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다만, 뮤지컬 장르의 좋은 점은 음악을 들었을 때 느끼는 통일된 감정이 있다는 것이다. 슬픈 전주를 듣고서 기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것이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 연기와는 다른 점이다.

처음 뮤지컬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원래는 영화를 하려고 했다. 지금도 영화를 하고 싶은 마음은 변함없다. 연극영화과 입시에서는 연기 외에 특기가 필요한데, 입시생들은 주로 춤을 추거나 노래를 한다. 노래를 택한 사람들은 대부분 뮤지컬 노래를 부르고, 나 또한 자연스럽게 뮤지컬 넘버를 찾게 되었다. 결정적으로는 의무경찰 홍보단에서 만난 한지상 배우와 서경수 배우의 영향이 컸다. 형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뮤지컬의 매력에 빠졌다.

흡입력 있는 노래 실력 역시 큰 장점이다. 노래를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다는 것이 사실인가? 배울 만한 여건이 되지 않았다. 부모님께 보컬 레슨을 시켜달라고 하는 것이 불효인 것처럼 여겨졌을 뿐 아니라 왠지 모르게 어깨너머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다. 원래 노래를 좋아했고, 못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길을 찾았다. 한지상 배우에게 도움을 많이 청했는데, 자신이 불렀던 노래를 직접 녹음해서 많이 들어보라고 하더라. 그러면서 고쳐야 할 점들을 조금씩 수정해나갔다.

2017년 출연했던 JTBC ‘팬텀싱어 2’에서는 남성 4중창 그룹 미라클라스로 준우승을 기록했다. 참여자 중 대다수가 성악을 전공한 사람이었을 텐데, 힘든 점은 없었나? 물론 다른 점은 느꼈다. 그러나 엇비슷하게 부르는 창법을 찾아서 세미 클래식 음악의 느낌으로 노래를 불렀다. 과연 그렇게 부르는 것이 맞나 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공명을 내고 비강을 울리면서 소리를 내는 방식이 맞는다고 하더라. 대신 아주 완벽하게 맞진 않았고, 마이크 없이 노래하는 오페라의 특성상 호흡을 많이 쓰고 멀리 보내기 위한 보충 훈련을 했다.

타고난 것 같다. 잘 찍은 것이다(웃음).

보다 많은 사람이 박강현이라는 배우를 알게 됐다는 점에서 ‘팬텀싱어 2’가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봐도 될까? 뮤지컬 배우로서의 인생에 좋은 시너지가 됐다. 한참 작품을 하고 성장해나가는 과정에서 ‘팬텀싱어 2’에 출연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좀 더 성장했다. 그렇게 같이 성장해나가면서 지금까지 이어지게 된 것 같다. 정말 감사하게 작품들도 끊이지 않고 있고.

이제 서른 한 살이다. 이르면 이르다고 할 수 있는 나이에 많은 것을 이뤄낸 만큼 두려움은 없나?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두려움이라는 것을 가져봤자 도움 되는 것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공연이라는 것도 사람들이 하는 일이고, 무대에서 행하는 것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 감정만 잘 짚고, 진심으로 전달하고자 한다면 두려울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하게

다양한 스펙트럼의 배역을 소화해왔다. 가장 도전이 되었던 작품은 무엇인가? 뮤지컬 ‘엘리자벳’의 루케니다. 화자가 돼서 직접 관객과 소통해야 하는 것이 도전이었다. 이전까지는 무대와 관객 사이에 있는 프로시니엄, 즉 ‘제4의 벽’이라고 불리는 것을 깨고 나오는 인물을 연기한 적이 없었다. 남들 앞에서 발표나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닐 뿐 아니라 수줍음도 많이 탄다. 무대에서 연기할 때는 캐릭터에 집중해서 상대 배우에게 액션과 리액션을 오롯이 전달하면 됐지만, ‘엘리자벳’에서는 다수의 불특정 관객에게 직접 이야기를 건네야 하는 것이 도전이 됐다.

내성적이라는 말이 의외다. 연기하면서 바뀐 부분이 있나?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외향적인 사람들을 볼 때 아직 내성적인 부분이 남아있다고 느낀다. 같은 소속사의 정원영 배우나 서경수 배우는 연습실 분위기를 항상 화목하게 만드는데, 보고 있으면 신기하다.

그들의 외향적인 면이 부러울 때는 없나? 외향적인 면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그건 박강현의 모습이 아니다. 물론 그런 캐릭터를 맡게 됐을 때, 형들의 모습을 가지고 와서 연기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오는 6월 개막하는 뮤지컬 ‘엑스칼리버’에서는 아더의 오른팔이자 빼어난 무술 실력과 남다른 기개를 지닌 랜슬럿 역할을 맡았다. 공개된 캐릭터 컷에서의 수염 분장이 눈길을 끌었다. 처음으로 수염 분장을 해봤다. 공연에서 수염을 붙일지 말지는 아직 고민하는 단계다. 랜슬럿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역할이다. 제대로 된 사랑을 알지 못했던 그에게 진정한 사랑을 알려준 이가 친구인 아더의 여자였다는 점 때문에 마음 아파한다. 그러나 죄책감 때문이었는지 결국 아더를 위한 죽음을 택한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라도 죽고 나면 조금의 용서하는 마음이 들지 않나. 랜슬럿 역시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으로 바라봐 줬으면 한다.

주로 본인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과 동일한 배역을 맡는 경우가 많았다. ‘엘리자벳’에서도 그랬고, 이번 ‘엑스칼리버’에서도 배우 엄기준·이지훈과 더블 캐스팅됐다. 선배들과 같은 배역을 연기하는 것이 부담스럽지는 않은가? 어차피 다른 사람이니까 똑같이 연기한다고 해도 다르게 표현될 것이다. 연륜을 가진 배우들이 풍기는 뉘앙스가 있다면 아직까지 사람들이 나를 봤을 때 기대하는 ‘영(young)’한 이미지가 있다. 여기에 맞춰서 대중들을 설득할 수 있는 연기를 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캐릭터를 해석하는 본인만의 노하우가 궁금하다. 캐릭터의 이미지를 연구할 때는 영화를 참고할 때가 많다. ‘엘리자벳’의 루케니 역할을 위해서는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이는 살인마인 안톤 시거 역할을 참고하려고 했다. 극을 이끌어나가는 해설자이든, 익살맞은 이야기꾼이든 결국 루케니도 엘리자벳을 죽인 살인마이기 때문에 해당 역할을 맡았던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이 짓는 섬뜩한 표정이나 이미지를 차용하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영화 속 캐릭터는 너무 차분한 느낌일 뿐 아니라 대극장에서는 배우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더라.

더욱이 ‘엘리자벳’에서는 ‘죽음’이라는 역할이 무게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루케니에게는 분위기를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극 자체가 너무 무겁게 흘러가는 것을 막고자 루케니에 발랄한 매력을 불어넣은 것을 다행히 많은 분들이 긍정적으로 봐주신 것 같다. 그러나 살인마의 모습도 분명 필요했기 때문에 마지막 장면에서 특별히 섬뜩한 모습을 집중해서 보여주려고 했다. 뮤지컬 ‘베어 더 뮤지컬’을 할 때는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을 참고했다. 선하지만 연민이 많이 가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 단지 피터라는 인물이 잘못한 것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것밖에 없는데, 그 친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그를 아프게 하는 것을 표현하려고 했다.

향후 맡고 싶은 배역이 있다면 무엇인가? 가끔 어떤 캐릭터를 고민해서 연기하다 보면 아주 기본적이지만 소중한 것들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인간의 본질적인 도리랄까, 그런 것들의 소중함을 관객에게 상기시키면서도 순수한 감정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배역을 맡고 싶다.

2017년 연극 ‘나쁜 자석’의 프레이저를 연기하면서는 어렸을 때 철부지처럼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놀았던 때가 생각났다. 극 중에는 네 명의 친구들이 등장하는데, 9·19·29세 때 이들의 모습이 나온다. 9세 때 이들은 모두 모여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타임캡슐에 묻는다. 19세에 한 친구가 자살하면서 모두 뿔뿔이 흩어지나, 29세에 다시 만난 이들은 마지막으로 이런 대사를 한다. “옛날 타임캡슐에 뭔가 묻기는 묻었는데, 뭘 묻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 되게 소중한 거였는데.” 그 대사가 굉장히 기억에 많이 남았다. 결국 우리 모두 소중했던 시절을 잊고 산다는 것이지 않나.

배우 박강현을 보고서 ‘백지 같은 배우’라는 말을 많이 한다. 큰 장점이다. 그에 반해 일관된 이미지를 구축해 나가는 배우들도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어떤 이미지의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의도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관객들이 보는 나만의 색깔이 자연스럽게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하고 있다. 다만 그런 것은 있었으면 좋겠다. 잘 예측하지 못하는, 뻔하지 않은 배우가 되고 싶다.

글 권하영 기자 사진 황필주(studio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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