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객석예술평론상 결과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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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1년 3월 1일 12:00 오전

2011 객석예술평론상 결과 발표

월간 '객석'이 주최하고 대원문화재단이 후원하는 2011 제13회 객석예술평론상이 두 편의 우수작을 선정했습니다. 2011 객석예술평론상은 지난 1월 1일부터 23일까지 자유 주제 평론과 지정 공연평 각 1편을 응모 받았으며, '객석' 편집부의 1차 심사를 거쳐 총 3편의 후보작이 최종심사에 올랐습니다. 최종심사 결과, 김용희 씨(1982년생)의 '다케미쓰 도루의 'Water-ways':무한한 반복의 여정'과 지용 피아노 독주회 지정 공연평, 송현민 씨(1982년생)의 '그가 바라본 것과 우리가 바라볼 것'과 지용 피아노 독주회 지정 공연평이 우수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우수작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함께 대원문화재단(이사장 김일곤)이 후원하는 상금이 각각 500만 원씩 수여됩니다. 우수작 두 편의 전문은 월간 '객석' 3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우수작

김용희
다케미쓰 도루의 'Water-ways':무한한 반복의 여정 (자유 주제 평론)
지용 피아노 독주회 (지정 공연평)

송현민
그가 바라본 것과 우리가 바라볼 것 (자유 주제 평론)
지용 피아노 독주회 (지정 공연평)

* 지정 공연평은 지용 피아노 독주회와 서울시향 익스플로러 시리즈(지휘 성시연•협연 에마뉘엘 파위) 중 응모자가 택일했습니다.

2011 객석예술평론상 시상식
3월 29일 화요일 오후 6시 경남 통영 윤이상기념공원 메모리홀

2011 제13회 객석예술평론상이 지난 3월 1일 심사결과를 발표했다. 2011 객석예술평론상은 올해 당선작 대신 두 편의 우수작을 선정했으며, 수상자 김용희 씨(1982년생)는 다케미쓰 도루의 'Water-ways'를 다룬 과 지용 피아노 독주회 지정 공연평으로, 송현민 씨(1982년생)는 미디어테크놀로지와 급변하는 음악환경에 따른 평론대상의 확장을 다룬 과 지용 피아노 독주회 지정 공연평으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올해 객석예술평론상은 응모자에게 자유 주제 평론과 지정 공연평, 두 편의 평론을 받아 심사했다(지정 공연평은 지용 피아노 독주회와 서울시향 익스플로러 시리즈[지휘 성시연•협연 에마뉘엘 파위] 중 응모자가 택일했다).

수상자 김용희 씨는 1982년 서울생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예비학교와 예술사 과정에서 작곡을 공부했으며 현재 전문사 졸업을 앞두고 있다. 2008년 한국음악협회 주관 서울창작음악제의 실내악 부문에서 작곡상을 수상했고 2009년 웹진 '춤추는 거미'에 클래식 음악에 대한 글을 연재했다. 어려서 우연히 화성학 책을 접하게 된 것을 계기로 작곡을 공부하게 됐다는 김용희 씨는 현재 공부하는 과정 중에 있는 터라 음악에 대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었고, 음악을 다른 시각으로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에 객석예술평론상에 응모하게 됐다고 한다.

수상자 송현민 씨는 1982년 인천생으로 충남예술고등학교에서 클라리넷을 전공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한국예술학과에서 공부했다. 한국예술영재교육연구원 연구직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전문사 입학을 앞두고 있다. “어려서부터 '음악동아'와 '객석'을 보며 성장했다. 고등학생 때 '객석'의 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는 그는 학창시절 직접 쓴 공연 리뷰를 '객석'에 여러 차례 보냈던 경험이 있다면서 “지난해 객석예술평론상이 부활했다는 소식을 듣고 강한 도전의식이 느껴져 응모했다”고 계기를 밝혔다.

올해 객석예술평론상 심사위원장을 맡은 음악평론가 이순열 씨는 “당선작을 낼 수 없었다는 것은 유감이지만, 우수작 두 편을 건질 수 있었다는 것은 심사위원들에게 큰 위안이었다. 게다가 지난해보다 응모작이 많았다는 것과 예선을 통과한 세 편의 주인공이 모두 서른 즈음의 젊은이들이었다는 것도 고무적인 현상이었다”라는 심사평을 내놓았다.

2011 객석예술평론상 시상식은 오는 3월 29일 오후 6시 경남 통영 윤이상기념공원 메모리홀에서 열린다. 이날 우수작 수상자 김용희 씨와 송현민 씨에게는 각각 상패와 함께 대원문화재단이 후원하는 상금 500만 원이 각각 수여된다.

-2011 객석예술평론상 심사위원-
심사위원장 이순열(음악평론가)
윤석화(월간 ‘객석’ 발행인)
강해근(한양대학교 음악대학 학장)    
민경찬(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
오희숙(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부교수)
윤중강(음악평론가·제1회 객석예술평론상 수상자)
박용완(월간 ‘객석’ 편집장)

심사 일정-
▪ 2011년 1월 23일 마감                   
▪ 2011년 1월 28일 편집부 1차 심사 – 예심 통과작 7편 대상
▪ 2011년 2월 7일 심사위원 최종심사 – 편집부 심사 통과작 3편 대상 

최종 심사 대상작-
▪ 김상헌 ‘민족’을 넘어선 ‘민족음악론’:문화이론을 통해 본 민족음악론(자유 주제 평론)
지용 피아노 독주회(지정 공연평)
▪ 김용희 다케미쓰 도루의 ‘Water-ways’:무한한 반복의 여정(자유 주제 평론)
지용 피아노 독주회(지정 공연평)
▪ 송현민 그가 바라본 것과 우리가 바라볼 것(자유 주제 평론)
지용 피아노 독주회(지정 공연평)

* 지정 공연평은 지용 피아노 독주회와 서울시향 익스플로러 시리즈(지휘 성시연·협연 에마뉘엘 파위) 중 응모자가 택일했다.

 

우수작


우수작 수상자 김용희
1982년 서울생.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예비학교와 예술사 과정에서 작곡을 공부했으며 현재 전문사 졸업을 앞두고 있다. 2008년 한국음악협회 주관 서울창작음악제의 실내악 부문에서 작곡상을 수상했고 2009년 웹진 '춤추는 거미'에 클래식 음악에 대한 글을 연재했다.

어떻게 객석예술평론상에 응모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어려서 클래식 음악은 물론 록음악을 매우 좋아해 밴드를 만드는 게 꿈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보게 된 화성학 책 한 권 때문에 작곡을 공부하게 됐다. 작곡을 공부한 것과 음악에 대한 글을 쓰게 된 것 모두 '한번 해볼까?'란 호기심에서 비롯됐다. 공부하는 과정 중에 있기 때문에 많은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던 중 객석예술평론상 소식을 듣게 되었고 수상의 욕심보다 음악을 다른 시각으로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에 응모했는데 이렇게 상을 탔다.

왜 다케미쓰 도루의 'Water-ways'였나?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객석예술평론상에 응모하기로 결정한 뒤 어떤 작품에 대해 쓰는 것이 유익할지 많이 고민했고, 결국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골라야 정성을 쏟을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 섰다. 이 작품이 우리나라에서 거의 연주되지 않았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Water-ways'는 1978년 작으로 작곡된 지 오래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적인 면이 많이 드러난다. 지금의 현대음악은 음악적으로나 기법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실험이 가해졌고 아방가르드 시대도 지났기 때문에 앞으로는 실질적으로 선율이 많은 비중을 차지할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다케미쓰의 음악이 크게 부합한다고 생각했다.

작품을 다루는 데에 있어 음악적 텍스트에 대한 분석이 부각된 편이다.
평소 음악평론을 많이 접해온 편이 아니다. 의도적으로 멀리한 것도 있는데, 무의식적으로 모방하게 되는 것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남들과 다른 글을 쓰고 싶었고, 작곡을 전공했기 때문에 곡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작품 속에 내재된 음악적인 요소들을 끌어내 독자들로 하여금 글을 읽고 난 뒤 음악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끔 만들고 싶었다.

평론이란 무엇인가?
평론은 음악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쳐야 한다. 평론가가 글 속에서 제시하는 객관적 정보와 주관적 이해가 지면에서만 이야기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연주자들의 시각을 바꿀 수 있을 만큼의 설득력과 실용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품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선행된 연주자들의 음악은 그 색채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음악평론가'로서 등단했다. 앞으로 무얼 하고 싶나?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싶다. 최근 열리는 음악회에서 신선한 레퍼토리들을 찾아볼 수 없단 점이 안타깝다. 다케미쓰 곡의 경우 연주하기 어려워서 자주 무대에 올리지 않는 것도 있지만, '수요자'들을 고려했을 때 쉽게 택할 수 없는 음악일 수도 있다. 평론가로서 생소한 작품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과 정보를 제공하는, 음악을 듣는 데에 유용한 글을 쓰고 싶다.


우수작 수상자 송현민
1982년 인천생. 충남예술고등학교에서 클라리넷을 전공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한국예술학과에서 공부했다. 한국예술영재교육연구원 연구직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전문사 입학을 앞두고 있다.

어떻게 객석예술평론상에 응모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어려서부터 '음악동아'와 '객석'을 보며 성장했다. 음악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갖고 있던 차에 클라리넷을 배우게 됐고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입학하자마자 어느 수업에서 대금 소리를 처음 들었는데, 이 사소한 경험이 내 인생의 행로를 바꿔놓았다. 클라리넷과 마찬가지로 숨을 불어넣어 연주하는 악기인데 전혀 다른 느낌의 소리를 들려주는 데에서 모호한 호기심을 느꼈다. 음악에만 집중되어 있던 시야를 문화예술 전반으로 넓혀준 결정적 사건이었던 것이다. 객석'의 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어서 학창시절 직접 쓴 공연 리뷰를 여러 차례 보냈던 경험이 있는데, 지난해 객석예술평론상이 부활했다는 소식을 듣고 강한 도전의식이 느껴져 응모했다.

자유 주제 평론 '그가 바라본 것과 우리가 바라볼 것'에서 박용구의 평론을 소재로 삼은 이유는 무엇인가?
평소 존경하는 평론가다. 처음에는 박용구의 인물론에 클래식 음악계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내려고 했는데, 이 둘을 하나의 논리로 풀어내는 데에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글의 방향을 바꿨다. 매스미디어의 영향이 클래식 음악에 거의 닿지 않았던 1960~1970년대, 보통의 평론가들이 공연장에서 감상한 음악에 대한 평론행위가 이뤄지던 때에 박용구는 당시 새로 등장한 미디어의 기술력이 만들어내는 제3의 음악공간에 대해 언급했고, 내가 말하고 싶었던 미디어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따른 평론 대상의 확장에 대한 이론의 고전적 근거로 적합하단 생각이 들었다.

과거 박용구가 바라본 것에 집중한 나머지 우리가 바라볼 것에 소홀했다는 점이 심사 과정에서 문제로 지적됐다.
미디어테크놀로지의 발전이 음악계에 가져온 변화들을 재고하고 비평하며 미래에 대한 패러다임을 제시하려 했으나 자칫하면 추상적인 이야기로 흐를 위험이 있을 거라 판단했고, 이를 설명하기 위해 장황하게 이야기하다 보면 단편적인 예시들의 나열에 그칠 것 같았다. 음악계 한편에서는 테크놀로지에 대해 보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현실을 주지시키고 거기에 맞는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안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음악평론의 대상이 '음악'을 넘어, 미디어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따라 새롭게 생겨나는 음악적 '현상'들로 확장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때 이뤄지는 평론의 성격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사실은 음악비평보다도 문화비평으로 생각하는 것이 더 맞다. 녹음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음반 리뷰'란 형태의 글이 생겨난 것과 같이, 이제는 미디어테크놀로지가 생산하고 있는 새로운 음악적 장소와 감상법에 대한 평론이 나와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변화들은 기자들의 취재 대상에 머물 뿐, 제대로 된 비평은 찾기 힘든 실정이다. 이 글을 통해 평론가들에게 지금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가 어떤 식으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알리고 청중이 경험하고 있는 음악적 현상에 그들도 동참해 소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싶었다.

'음악평론가'로서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나?
음악회에 대한 청중의 인식 변화에 관심 갖고 있다. 음악을 듣기 위해 음악회장을 찾는 것보다도 음악회장에 가는 행위 자체를 여가문화로서 즐기고 있는 청중이 있는가 하면 음악회를 소비의 대상으로 여기는 청중도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담론을 만들고 싶다. 평론은 컨설팅과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올해 대학원에 진학하는데, 평론가로서 좀더 탄탄한 이론적 안목을 세울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할 것이다.

2011 객석예술평론상 심사총평
_2011 객석예술평론상 심사위원장•음악평론가 이순열

열두 편의 응모작 가운데 예심을 거쳐 심사위원들에게 넘어온 것은 '민족'을 넘어선 '민족음악론'(김상헌), 다케미쓰 도루의 'Water-ways'(김용희), '그가 바라본 것과 우리가 바라볼 것'(송현민) 세 편이었다. 그중 어느 것도 당선작으로 뽑을 수 없었다는 것은 유감이지만, 우수작 두 편을 건질 수 있었다는 것은 심사위원들에게 큰 위안이었다. 게다가 지난해보다 응모작이 많았다는 것과 예선을 통과한 세 편의 주인공이 모두 서른 즈음의 젊은이들이었다는 것도 고무적인 현상이었다.
우수작으로 뽑힌 두 편 중 송현민의 '그가 바라본 것과 우리가 바라볼 것'은 '미디어테크놀로지와 급변하는 음악환경에 따른 평론대상의 확장'이라는 당면과제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음악평론의 대상이 연주회장을 거처 인쇄매체에서 전기매체로, 그리고 다시 디지털매체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환기시키려 한다. 그렇기는 해도 그 초점이 '우리가 바라볼 것'보다 '그가 바라본 것'에 더 집중되었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이 글을 쓰면서 송현민은 '거인의 어깨 위에 서기'를 시도하고 있다. 거인의 어깨 위에 서기(Standing on the Shoulders of Giant), 이 말은 후학들이 선인들의 도움으로 비상하려는 도약대를 찾을 때 자주 인용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된 이 교훈을 음미하고 날아오르려 할 때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그것은 비록 거인 오리온의 어깨 위에 올랐을 때만 좀더 먼 곳을 볼 수 있다고는 하지만, 눈이 먼 오리온을 빛이 있는 곳으로 인도하는 것은 오히려 그 어깨 위에 있는 케달리온이라는 사실이다. 케달리온은 단순히 거인의 어깨 위에 얹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눈먼 거인이 미처 보지 못했던 곳을 보고, 스스로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송현민은 '그가 바라본 것'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우리가 바라볼 것'을 소홀히 한 흠이 있다. 그는 미디어테크놀로지가 구현한 새로운 현실을 강조하면서 '음악평론의 임무이자 의무는 그런 음악의 현실에 대한 관찰과 탐구'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막상 그 새로운 현실에 대해 무엇을 탐구하고 관찰했는지는 명확치 않다.
그 새로운 현실을 제공한 것으로 근래 가장 떠들썩했던 현상 가운데 하나는 2010년 6월 뉴욕 구겐하임미술관과 유튜브가 공모한 비디오 작품이었다. 이 공모에는 음악가•미술가•사진작가•비디오 아티스트•무용가 등 여러 장르의 예술가들이 합작한 작품 2만 3천여 편이 응모했고, 그 중 25편이 선정되어 2010년 9월 20일 'Youtube Play, Live from Guggenheim'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송출되었다. 미디어테크놀로지가 운위될 때는 으레 장르 간 경계의 폐기 또는 탈 장르의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새로운 현실의 무한한 가능성이자 동시에 혼란과 위기이기도 하다. 이런 현실에 대해 '우리가 바라볼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우리는 지금 모든 분야에서 멸종 또는 대량소멸의 시대(Period of Mass Extinction)에 직면하고 있다. 이 혼돈의 시대에서 무엇이 살아남고 무엇이 소멸해버릴 것인지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각 분야에서는 그 소멸에서 살아남을 길, 즉 그린(Green)과 에코매지네이션(Ecomagination) 등을 통한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의 활로를 애타게 찾고 있다. 음악 분야에서도 그런 흐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평론의 임무이자 의무'를 천착하려는 젊은 음악도들 가운데 음악이 당면한 새로운 환경과 지속가능성에 대해 좀더 고민하는 글이 나왔으면 한다.
그런데 그 바람을 풀어주는 글로 여겨도 좋을 만한 응모작이 한 편 있었다. 김용희가 쓴 다케미쓰 도루의 'Water-ways'가 그것이다. 'Water-ways'라는 소재부터 산뜻하다. 상선약수(上善藥水), 무엇이 물보다 더 아름다우랴. 그의 글은 다케미쓰에게는 물과 관련된 작품이 많다는 데서 시작된다. 물의 이미지를 추적해가는 그의 사고는 종종 물길처럼 아름답게 흐른다. 다케미쓰의 작품에서 물이 어떻게 꿈속으로 녹아들고 그 꿈이 어떻게 자연의 호흡과 조화를 이루는지 차분하게 풀어간다. 다케미쓰의 작품에서 그가 찾아낸 물의 이미지는 물 또는 개울과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고서는 근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편중한 사랑을 받은 악기” “물이 내포하는 조화로움과 유함(流함)” “메트로놈의 빠르기로서 즉각 은유 되어진다” 등의 해괴한 표현에서 글의 자연스러운 흐름은 꽉 막혀버린다. 때로는 침묵하고 때로는 튕기고, 때로는 노래하듯 흐르는 그 물길을 적어 내려가는 글에 어떻게 이리도 생경한 표현을 쓸 수 있었을까. 혹시 빌려온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또 한 가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 것은 자유 주제 평론과 지정 공연평 사이에 질적인 차이가 커서 같은 사람의 글 같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 의구심을 지우려면 글쓰기에 좀더 많은 조탁의 공을 쌓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너무나 많은 문제들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의 갈증은 더욱 심화되어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지나친 요구를 줄여 마음을 비우고 생각한다면, 이번에 우수작으로 선정된 두 편만 한 글을 쓰기도 쉽지 않다는 데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더군다나 두 사람 모두 뻗어가는 젊은이들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들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기대해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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