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듣고 그저 아름다운 이야기일 것이라는 상상은 접어주시길. 이것은 낭만 동화가 아니다. ‘숲 속의 잠자는 옥희’는 친구를 자살케 했다는 죄책감에 혼란스러워하는 여배우와 작가의 삶을 교차시키며 개인의 비극과 사회의 부조리를 보여주는 시대의 레퀴엠이다. 2012년 11월 22일~12월 2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글 이은경(연극평론가) 사진 극단 백수광부
낭만적 동화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인터넷의 마녀사냥을 소재로 한 ‘숲 속의 잠자는 옥희’(최치언 작·이성열 연출)로 새롭게 창작되었다. 친구를 자살케 했다는 죄책감에 혼란을 느끼는 여배우 옥희와 작가 옥희의 삶을 교차시키며, 이들을 현실에서 잠(죽음)으로 도피하게 만드는 인터넷 악플러의 폭력성을 비판한다. 관객은 악플에 시달리다 자살을 택한 실제 연예인들을 떠올리기에 현실성을 확보한다. 특히 그녀들의 비극을 확대시키는 배경으로 표절·불륜·성상납·변절·황색언론 등 다양한 상황을 제시하여 이 시대의 부조리도 강조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배우 옥희가 잠들어 있는 침대로 작가 옥희가 찾아와 함께 눕는다. 두 인물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난 장면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왜곡·확대·재생산된 정보들에 의해 잠(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그녀들의 비극과 이 역시 상품화하는 현실의 그악함이 끔찍해진다. 관객의 입장을 대변하는, 객관적 시각을 부여받은 견자(見者)를 등장시키지만 그 역시 모호함에 빠져들기 때문에 진실이 부재한 시대의 모순을 더 강조한다. 결국 ‘옥희’라는 이름에 담긴 대중문화적 이미지까지 더해져 옥희는 진실을 듣는 ‘커다란 귀’를 잃고, 안개 숲에서 ‘길을 잃어버린’ 이시대 우리들의 자화상이 되었다. 익숙한 동화의 제목을 비튼 것은 불편함을 의도적으로 전경화하는 최치언 글쓰기의 맥락과 닿아 있다. 하지만 이전 작품인 ‘언니들’의 그로테스크함이나 ‘미친극’의 모호함이 약화되고, 현실인식이 강화되어 작가의식의 변화 조짐을 느끼게 했다.
무대 중앙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캐노피가 달린 공주풍 침대가 놓여 있고, 우측에는 열두 면으로 구분된 커다란 창문이 달려 있다. 이 창문은 일러스트 영상을 상영하는 영사막, 1인 2역을 구분하려는 듯 인물에 따라 다른 색의 조명을 비추는 창 등으로 활용된다. 무대 전체를 아우르며 숲을 상징하는 나무들이 줄지어 있고, 무대와 객석 경계에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다. 그녀들이 대중으로부터 유리되어 은둔하는 현실을 시각화한다. 그리고 중앙에는 소파와 탁자 등 최소한의 소도구가 놓여 있는데, 이는 그녀들의 생활공간이다. 이처럼 옥희들의 세계를 강조하는 현실적 공간과 동화적 상상력이 담긴 환상적인 공간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무대였다.
이번 공연에서 배우들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친구 란(김현영 분), 매니저(박정민 분) 등의 사실적인 연기와 견자(이태형 분), 의사(박혁민 분) 등의 양식적인 연기가 조화를 잘 이루었다. 특히 옥희를 연기한 이지아의 연기가 두드러졌다. 표절과 불륜 스캔들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에 정신적으로 피폐한 작가 옥희와 오랜 무명을 거쳐 세계적 영화제에서 수상하게 된 중견 여배우 옥희 1인 2역을 적절한 사실성과 과장으로 설득력 있게 연기했다. 인물 간의 변화가 급박하게 이루어지지만 어색하지 않게 인물의 특징을 충분하게 살렸다.
작가는 옥희들을 1인 2역으로 명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연에서 1인 2역으로 설정된 것은 그녀들의 비극을 개인이 아닌 사회적 문제로 확장시키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특정 개인이 아니라 누구든 옥희가 될 수 있다는 이성열 연출의 의도는 성공적으로 구현되었다. 나무 뒤에 숨어서 욕설을 퍼부어 그녀들을 괴롭히는 장면 연출로 익명성 속에 숨는 악플러들을 은유한 것처럼 현실의 부조리를 과장하지 않으면서 감각적으로 연출했다. 하지만 너무 현실에 기대 환상성과의 균형이 깨진 점, 동화를 그대로 재현해 일러스트 영상이 진부해진 점 등은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