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이 올해 첫 작품으로 베르디 ‘팔스타프’를 무대에 올린다. 헬무트 로너의 ‘팔스타프’ 첫 연출작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독일 연극계의 대배우이자 연극·오페레타 연출가로 활동 중인 그는, ‘콘셉트가 없는’ 연출을 철칙으로 내세웠다.
3월 21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는 국립오페라단의 베르디 ‘팔스타프’ 연출을 맡은 헬무트 로너. 클라우스 마리아 브란다워와 함께 오스트리아-독일 연극계를 양분하는 대배우로 손꼽히는 로너는 올해 우리 나이로 여든 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빈을 중심으로 연극 무대에서 활발한 활동 중이다. 그는 특히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개막 연극 호프만스탈 ‘예더만’의 주역, 그리고 괴테 ‘파우스트’의 두 주인공, 즉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 등의 굵직한 역으로 이미 20세기 독일-오스트리아 연극사에 큰 획을 남긴 대배우의 반열에 오른 지 오래다. 동향인 빈 태생의 유명 연출가 오토 솅크와 평생에 걸친 긴밀한 공동 작업 또한 로너의 명성에 일조한 바 크다. 두 사람은 솅크 연출에 로너가 주역으로 출연하는 형식으로 주로 공동 작업을 해왔는데, 재미있게도 가끔은 로너가 연출을, 솅크가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방식으로 서로의 역할을 바꾸어 작업하기도 한다.
한편 로너는 비단 연극배우로서만이 아니라 연극·오페레타 연출가로도 명망이 높은데, 그가 연출한 취리히 오페라의 오펜바흐 ‘아름다운 헬레네’, 레하르 ‘즐거운 과부’ 등은 DVD를 통해서도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다. 한편 요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박쥐’ 3막에 등장하는 간수 프로슈 역 또한 로너의 대표적인 배역으로 꼽히는데, 그는 평생에 걸쳐 런던·파리·뉴욕·빈 등 수많은 해외 무대에서 이 배역을 연기했으며, 오토 솅크의 디테일한 연출로 유명한 빈 슈타츠오퍼 프로덕션에서 프로슈로 출연한 영상물을 통해 국내에서도 로너의 명연기를 손쉽게 접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 ‘팔스타프’ 사전 준비 차 국립오페라단을 방문한 로너와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국립오페라단의 ‘박쥐‘ 연출가 스티븐 롤리스가 그를 바로 알아보고 경의를 표했을 정도이니, 프로슈 역으로 로너의 유명세가 어느 정도인지는 대강 짐작하고도 남을 듯싶다.
로너는 지난해 11·12월, 빈과 그라츠에서 입센의 희곡 ‘욘 가브리엘 보르크만’의 타이틀롤인 몰락한 은행장 보르크만 역으로 무대에 섰다. 이 작품은 입센의 작품 중 드물게 공연되는 작품으로, 몰락해가는 부호 가문을 짊어진 채 가문의 부흥을 위해 사랑을 포기해야만 했던 주인공의 이야기다. 극의 진행 방식은 토마스 만의 소설 ‘부덴브루크가의 사람들’과 상당히 유사한 점이 많다. 패기 찬 신인 배우들이 종종 극장을 압도하는 큰 성량으로 대사를 내지르듯 읊으며 무대를 장악하려 애쓰는 것과 달리, 로너는 섬뜩하리만큼 정확한 발성으로 큰소리 없이도 등장과 동시에 무대를 홀로 휘어잡는 아우라가 있었다. 동시에 종종 피아니시모에 가까운 작은 목소리와 섬뜩하리만큼 능란하게 구사하는 대사 사이의 침묵은 그야말로 ‘처절하다’라는 표현밖에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그는 명연기를 펼쳤다. 같은 해 여름 뫼르비슈 페스티벌의 ‘박쥐’ 프로슈와는 전혀 다른 명배우 로너의 연기를 직접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연극배우 출신의 연출가인 로너가 오페라를 제대로 연출할 수 있을까라는 선입견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필자가 가까이서 지켜본 바, 로너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이상으로 열렬한 오페라광이면서 또한 선천적으로 음악적인 감수성을 타고났다. 필자는 이번 국립오페라단의 ‘팔스타프’에서 로너의 수석 조연출로 참여하게 되어 이미 작품 준비 기간부터 빈과 그라츠 그리고 서울에서 작품에 관한 대화를 자주 나눌 수 있었다. 다음은 로너와의 일문일답.
국립오페라단에서 처음으로 ‘팔스타프‘를 연출하지만 이 작품과의 인연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팔스타프’는 저 스스로 많은 애착을 가진 작품이자, 오래전부터 연출하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오페라 ‘팔스타프’의 원작인 셰익스피어 희곡 ‘헨리 4세’의 주역으로 무대에서 공연한 적이 있습니다. 절친한 친구였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살아생전 음악감독으로 재직했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함께 ‘팔스타프’ 무대 제작에 관한 대화를 자주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한국의 국립오페라단에서 제게 ‘팔스타프’ 연출을 의뢰해 놀랐습니다. 제가 꼭 연출해보고 싶었던 작품을 드디어 맡을 수 있게 되어서 대단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팔스타프’는 공연이 드문 작품으로, 많은 관객이 낯설게 생각합니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팔스타프’라는 것을 특별히 염두에 두고 연출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오페라나 연극 등 무대 예술 장르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그리고 작품의 주제는 남녀노소·지위고하·시대를 막론하고 보편적인 인간 세계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약간의 문화적 차이가 있을지언정 인간 사회의 본질적인 면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틈나는 대로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제가 여러 나라의 사람들을 접하면서 얻은 결론 또한 그렇고요. 제가 어디에서 ‘팔스타프’를 연출하든 그것을 지켜본 관객의 반응은 대부분 비슷하리라 예상됩니다. 관객을 우선에 두고 연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진실하게 그리고 충실하게 무대화하느냐를 염두에 두고 연출 작업에 임하려 합니다.
보통 옛 시대의 의상 및 무대장치로 공연되는 무대를 ‘전통적’, 현대적인 무대를 ‘전위적’으로 양분할 때, 현재 독일 오페라계를 중심으로 성행하는 현대적인 무대의 ‘레지테아터(연출가 중심의 오페라)’는 상당히 난해하게 여겨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제 철칙은 ‘연출 콘셉트가 없는’ 연출입니다. 저는 특이한 연출 콘셉트를 선보이고자 연출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작품과 텍스트를 가지고 연출을 하는 사람입니다. ‘팔스타프’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만일 관객 중 한 사람이라도 무대 위의 팔스타프를 보고 ‘저 사람은 팔스타프 같아 보이지 않는다’라는 의구심이 들면 그것은 연출가의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작품 속 등장인물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게 만들어내는 것이 연출가로서 제 주요 임무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원작의 지시문을 그대로 무대화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일례로 이번 국립오페라단의 ‘팔스타프’의 무대는 셰익스피어 원작에 그려진 대로 14세기 영국 왕 헨리 4세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 않습니다. 대신 작곡가 베르디가 ‘팔스타프’를 작곡한 무렵인 19세기 말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요.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팔스타프’는 희극이 아니라 세기말의 불안함, 데카당스를 다룬 작품입니다. 거장 작곡가 베르디의 말년 인생관이 담긴 최후의 작품이기도 하고요. 14세기를 배경으로 희극적인 작품 속 상황에만 맞추어 연출을 한다면 악보 이면에 담긴 작곡가의 의도를 살려내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팔스타프’는 매우 관능적인 작품입니다. 주인공 존 팔스타프 경은 비록 젊은 시절 왕을 모시는 용맹한 무장으로 모험과 여색을 즐기며 한 시대를 풍미했을지는 몰라도 이제는 재산도 없이 선술집에서 몇 년째 외상으로 숙식을 해결하는 늙고 뚱뚱한 몰락 귀족에 불과합니다. 그는 삶에 대한 의지를 다시 찾고자 하는데, 바로 사랑을 통해서입니다. 알리체와 메그를 유혹해서 사랑과 재정 문제까지 해결하겠다는 의도는 불순하지만 말입니다. 어쨌거나 팔스타프의 대사를 잘 보면 그를 그저 단순히 늙은 호색한으로만 볼 수 없게 됩니다. 2막에서 팔스타프가 알리체를 유혹하는 장면은 음악이나 대사 모두 특히나 에로틱한 분위기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영국 14세기 남녀 복식은 실루엣이 매우 둔중하기 때문에 여성미를 살려내기 어렵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무대 디자인과 의상을 담당한 헤르베르트 무라워 역시 같은 의견이었습니다. 동시에 현실적인 이유에서 14세기 시대 의상을 제대로 제작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그 시대의 의상을 완벽하게 재현해낼 수 있는 장인은 이제 유럽 현지에서도 매우 드물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한국의 의상 제작소에서 근대도 아닌 희귀한 중세의 유럽 의상을 고증에 맞게 제작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가구 및 소품 역시 마찬가지고요. 작품이 작곡됐던 1890년대를 배경으로 할 경우 작품 속 세기말 분위기를 돋보이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우아한 S자 실루엣이 일품인, 19세기 말 깁슨 걸 스타일로 여주인공 알리체를 아름답게 돋보이게 할 수도 있겠지요. 반면 주인공 팔스타프는 스코틀랜드풍의 의상을 착용합니다. 무대를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제 연출의 ‘팔스타프’ 는 총 6장의 무대로 진행되는데, 각각을 별개의 장면으로 순서대로 무대화하고 싶지 않습니다. 내부와 외부 공간이 교차되는 방식으로 장면 간 연결점을 두었습니다. 특히 4장(원작의 2막 2장)의 배경인 포드의 집은 19세기 말 이탈리아 밀라노 상류 사회의 느낌을 살릴 예정입니다. 그리고 윈저의 숲이 배경인 6장(원작의 3막 2장)에서는 무대를 시원하게 모두 열린 느낌으로 디자인 하였습니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의 큰 무대에 ‘한 여름밤의 꿈’을 정말 멋지게 그려내고 싶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팔스타프는 누구입니까.
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특히 1950~1960년대 빈 슈타츠오퍼를 중심으로 소위 ‘성악의 황금기‘를 직접 경험했습니다. 당시 빈 슈타츠오퍼를 거쳐 간 전설적인 가수들의 공연들을 추억하는 것은 지금도 매우 즐거운 일입니다. 팔스타프로는 주세페 타데이·티토 고비가 정말 최고였지요. 그들과 한국에서 공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유감이지만 말입니다(웃음).
특별히 애착이 가는 오페라 작품은 무엇입니까.
오펜바흐의 오페레타들이야 말로 음악극의 진수라고 생각합니다. 유머와 위트가 가득한 대사 그리고 센티멘털한 음악이 인생의 희로애락을 기막히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팔스타프’처럼 말입니다. 앞서 제가 말했듯이, 그리고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대로 ‘팔스타프’는 표면상으로는 서로가 속고 속이는, 한마디로 엎친 데 덮친 상황이 빚어내는 한판 희극 같지만 결코 희극이라고 할 수 없는 작품입니다. 오히려 인생의 황금기를 지난 노년의 퇴역 기사 팔스타프가 씁쓸하게 느끼는 세상의 허무함이 희극의 형태를 빌려 표현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팔스타프의 대사들이 더욱 뼈저리게 와 닿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글 이설련(베를린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