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님이 보고 계셔’

우리를 비추는 긍정을 찾아서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3월 1일 12:00 오전

제목만 보면 요정 같은 여인들이 잔뜩 나오는 일본 만화가 떠오를지 모른다. 하지만 무대에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고립된 무인도에서 벗어나려는 남북 병사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여기에 가상으로 설정된 여신의 존재를 상기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주는 감동은 작품의 묘미다. 1월 15일~3월 10일, 충무아트홀 소극장블루.
글 원종원(뮤지컬 평론가·순천향대 교수) 사진 연우무대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이데올로기 대립과 민족상잔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던 한국전쟁을 시공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무인도에 고립된 남북의 병사들은 난파선을 고칠 수 있지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북한 병사 류순호를 설득하기 위해 여신의 존재를 설정하고 생활 속에 담아낸다. 정치와 이념 그리고 전쟁이라는, 진지해질 수밖에 없는 격변의 시대상을 뮤지컬 속 판타지로 녹여놓은 창작진의 아이디어는 신선하다. 그러나 엄격히 따지고 보면 사실 비슷한 이야기들은 여타 문화산업 장르에서 다양하게 인기를 누려왔다. ‘웰컴 투 동막골’이 그랬고, ‘JSA 공동경비구역’도 마찬가지다.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그리스의 한 섬에 도착한 후 상부로부터 잊힌 이탈리아 군인들이 지역 주민과 함께 생활하는 내용을 그린 영화 ‘지중해’ 역시 감성적으로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어디선가 한 번쯤 봤던 것 같은 바로 그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압축시켜 감동을 전하는 실험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물론 노래와 춤, 환상이 어우러지는 뮤지컬이라는 장르적 특성도 한몫을 한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전쟁이고 등장인물은 군인이지만, 인간이면 누구나 품고 있을 절대적인 긍정의 대상을 여신이라는 존재에 투영시킴으로써 이상향이나 절대적인 존재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치유 과정을 버무려놓았기 때문이다. 뮤지컬 하면 여성 관객이 절대다수를 이루고,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면 소극장 뮤지컬로는 돈 벌기 힘들다는 고정관념을 정면으로 반박한 실험성과 참신함이 오히려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다. 예술의 진보는 결국 발상의 전환에서 비롯된다는 공식을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이 작품은 창작 뮤지컬을 육성하기 위한 여러 단계별 과정을 충실히 수행해왔다는 점에서도 특별하다. CJ문화재단이 주최하는 크리에이티브 마인즈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독회 무대를 가졌고, 지난해 서울뮤지컬페스티벌의 세부 프로그램 중 하나인 예그린 앙코르에 참여해 큰 성과를 올렸다. 예그린 앙코르는 성장 가능성이 있는 초기 개발 단계의 작품을 대상으로 트라이 아웃 공연을 꾸미고 기성의 프로듀서와 연계를 모색하는 등 뮤지컬 시장과의 만남을 주선하고자 한국뮤지컬협회가 주관하는 행사다. 이 무대는 따지고 보면 한두 사람의 노력과 정성이 아닌, 좋은 창작 뮤지컬의 발굴과 성장이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응집된 관심과 기대의 산물인 셈이다.
관객을 위해서도 이런 과정은 중요하다. 아직 무르익지 않은 작품의 어설픈 무대에 앉아 실험쥐처럼 작품성 향상의 희생양 노릇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정식으로 개막된 작품이라면, 게다가 뮤지컬처럼 고가의 입장권을 받는 장르라면 일부 창작 뮤지컬이 보여주는 이런 파행적인 행태는 수정되어야 한다. 단지 해당 작품이나 제작진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전체 시장의 건강과 관객과의 신뢰 구축을 위해서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 초연임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완성도를 지닌 이 작품은 이색적인 소재나 이야기가 담은 참신함뿐 아니라 작품을 조련하고 단련해온 과정을 통해서도 크게 인정받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여신’이라는 단어가 남발되는 요즘이다. 늘씬한 아이돌 스타도 걸핏하면 여신이고, 선정적인 사진은 ‘포스’마저 풍긴다고 호들갑이다. 그러나 뮤지컬을 감상하다 보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기 마련이다. 누구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각자의 진짜 ‘여신님’이다. 일상 속에서 느끼지 못한 소중함이나 고마움까지 찾게 된다면 더욱 금상첨화 같은 관극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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