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디자이너 정승호

무대에 담긴 네모난 철학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4월 1일 12:00 오전

어떤 무대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입니까? 누군가는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거나, 구조가 짜임새 있게 꾸며지거나, 작품을 대변하는 상징성이 강력하게 느껴지는 무대를 생각할지 모르겠다. 다짜고짜 던진 질문에, 디자이너 정승호의 답은 단순했다. “관객이 숨 쉴 수 있는 여지,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무대.”

올해 초 막을 올린 뮤지컬 ‘레베카’에서 관객을 압도하는 무대 장치로 작품의 완성도를 한층 높였다는 평을 받고 있는 무대 디자이너 정승호. 사실 그의 디자인이 세간의 화제가 된 것은 이번뿐이 아니다.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평범한 이발사의 잔혹한 복수극을 그린 ‘스위니 토드’에서 그는 금속 소재와 톱니바퀴 같은 복잡한 장치를 사용해 서늘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극대화시켰고, ‘내 마음의 풍금’에서는 봄날을 연상시키는 분홍빛으로 채색한 무대를 만들어냈다. ‘남한산성’의 인조가 머리를 찧으며 절하는 것을 인형으로 대체해 극적 긴장감을 높인 것이나, ‘됴화만발’에서 객석 쪽으로 긴 직사각형 무대를 등장시켜 뚜껑처럼 열리게 만든 무대 장치 뒤에도 역시 정승호가 있었다. 이후 ‘내 마음의 풍금’은 그에게 제14회 한국뮤지컬대상 무대미술상을, ‘스위니 토드’는 제2회 더뮤지컬어워즈 무대미술상을 안겨주었다.
무대에 상상력과 스토리텔링을 더하는 정승호의 무대 디자인이 만들어지는 작업실을 찾았다. 그가 교수로 재직 중인 서울예술대학 안에 자리 잡은 공방. 수업과 무대 소품을 만드는 작업이 함께 이뤄지는 곳 한 편에 그의 공간이 있었다. 연구실 겸 작업실로 쓰는 방에는 제자들이 그의 얼굴을 스케치해 선물한 것이며, 그가 틈틈이 빨래판에 조각한 작품, 젊은 시절 그가 아내에게 선물로 준 해바라기 꽃과 부부의 이름이 새겨진 조각판이 걸려 있었다. 그 사이로 그가 작업했던 작품들의 무대 모형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작업실보다는 기억을 하나하나 모아둔 골동품 가게 같은 느낌이랄까. 책상에 가까이 다가가니 나무로 만든 마리오네트가 눈에 들어왔다. 그가 미국 유학 시절 과제로 만든 것인데 책상에서도 시선이 맞닿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마리오네트에서 시작된 정승호와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를 10년 만에 졸업한 뒤 떠난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배운 무대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디자인의 축, 역사 그리고 박스
무대 디자이너 정승호는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참 많은 과정을 거쳤다. CF감독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들어간 그는 학교를 다니는 동안 무대 스태프·단역 배우·공사장 인부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 영화나 광고 쪽에 뛰어들 여력이 없었어요. 그래도 연극은 할 수 있겠다 싶었죠. 학생 때 연기 연습을 하다가 뭔가 잘 안 풀리면 선후배들과 같이 술 마시면서 배역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어요. 그 캐릭터가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이 참 재밌었죠. 나중에 연기에 재주가 없는 걸 깨닫고선 배우에 대한 마음을 접었어요. 대신 무대 디자인 수업 시간에는 교수님께 망치질 좀 한다는 칭찬을 자주 들었죠.”
졸업 후, 그는 대학교 동문인 여자 친구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는 러트거스 뉴저지 주립대학교에 합격한 아내를 따라 바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의 아내는 최근 ‘히스토리 보이즈’ ‘러브, 러브, 러브’에서 의상 디자인을 맡은 이주희 씨다.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먼저 시작한 아내가 학교 교수인 마이클 밀러와의 만남을 주선하면서 그의 본격적인 무대 디자인 인생이 시작됐다. “전 정말 보잘것없는 사람이었어요. 영어도 못했고, 심지어 포트폴리오도 없는 상태였죠. 그런데 마이클 밀러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 사람에게 꼭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의 무대 제작소에서 일할 수 있는지 물어봤죠. 이제와 생각해보면 꽤 곤란한 부탁이었을 텐데, 흔쾌히 허락하셨어요. 그리고 제가 일을 좀 하거든요(웃음). 나중엔 제작소 사람들이 저를 굉장히 좋게 봐주셨어요.”
이듬해 그는 러트거스 뉴저지 주립대에 입학해 무대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마이클 밀러는 평소 따뜻하고 다정하지만 스승으로서는 굉장히 엄격한 사람이었다. 그의 수업에서 과제를 하지 않거나 지각하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이클 밀러 선생님과 함께 하면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역사 공부의 중요성이에요. 장식사 시간에는 수업 후 다 같이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가서 하루에 스무 장씩 스케치를 하다가 왔죠. 고대 이집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양 건축과 장식사 흐름이 확 잡히더라고요.” 당시 역사의 흐름을 살피고 손으로 그려낸 시간은 그의 작업에 중요한 축이 되었다. 더불어 그가 체득한 것은 자신만의 스타일이다. ‘코넬 박스 프로젝트’란 수업을 통해 알게 된 현대 미술가 조셉 코넬과 당시 뉴욕 현대미술관을 오가는 동안 눈여겨본 조각가 루이즈 네벨의 작품들은 지금 정승호의 스타일을 대표하는 ‘박스 디자인’에 큰 영향을 끼쳤다. 틀 안에 주제를 정리해 담아내는 작업에 관한 발상은 지금도 그의 무대에서 끊임없이 변형되어 발전하는 중이다.
이후 이어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의 인턴 생활은 꿈같은 시간이었다. 학생인 그에게 주어진 일은 아카이브 구축을 위한 스케치 정리였다. 겉보기엔 평범한 단순 작업 같지만, 프란코 제피렐리 프로덕션의 ‘투란도트’를 비롯해 세계적인 무대 디자이너들의 스케치 원본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이때의 경험은 그에게 더 넓은 시야와 더 높은 꿈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됐다.


▲ 1 뮤지컬 ‘레베카’의 무대 모형.


▲ 2 연극 ‘갈매기’에서 사용했던 소품. 쫑파티 때 스텝들에게 롤링 페이퍼를 받은 하나뿐인 갈매기다.


▲ 3 연극 ‘됴화만발’의 무대 모형.
무대바닥을 뚜껑처럼 들어 올리거나 바닥에 나 있는 구멍으로 인물을
드나들게 하는 아이디어를 연출가
조광화와 계속 발전시켜 나갔다.

확신과 소통이 더 좋은 무대 디자인을 만든다
연극과 뮤지컬, 창작과 라이선스 작품을 오가며 다양한 작업을 선보이는 정승호. 한 해에도 여러 프로덕션과 작업하는 그가 작품을 택할 때 고려하는 것은 ‘얼마나 잘 맞느냐’ ‘누구와 함께 하느냐’이다. 평소 유쾌하거나, 농담을 즐기는 성격이 아닌지라, 그가 선호하는 대부분의 작품은 진지하거나 심각한, 어두운 것이 많다. 그래서 ‘마이 스캐어리 걸’처럼 알콩달콩하고 행복한 로맨틱 코미디류는 예외인 작업에 속한다. 사랑 이야기라도 가슴 찡한 정서를 담아낸 ‘내 마음의 풍금’은 머리에 번개처럼 내리꽂힌 직관으로 그가 조광화 연출가를 설득해 밀어붙인(?) 특수한 경우다. 취향도 취향이지만, 사람도 중요하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함께하는 구성원이 어떤 사람들이냐에 따라 선택이 달라진다”라는 것이 그의 솔직한 마음이다.
“무대 디자인은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완성되는 공동 작업이고, 무대 디자이너는 연출가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는 자리에 있죠. 그럼에도 제가 참여한 무대들에 박스 디자인이 등장할 수 있었던 건 연출가들이 제 의견을 존중해주고 믿어준 덕분이에요. 운이 정말 좋은 거죠.”
박스 디자인은 최근 그가 작업한 ‘레베카’에서도 전면에 등장했다. 의자나 시계같이 다양한 물건들이 담긴 수십 개의 상자로 이루어진 무대 위 벽은 작품 속 ‘나’의 과거에 대한 기억과 삶의 흔적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외에도 음악의 리듬에 맞춰 회전하고 이동하는 발코니 등은 해외 프로덕션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장치다. 라이선스 작품임에도 국내 프로덕션이 새롭게 선보인 이번 무대는 연출가 로버트 요핸슨뿐 아니라 작곡가 실베스터 레버이와 극작가 미하엘 쿤체에게 인정받았다. 무대 규모나 비용 면에서 해외 프로덕션보다 열악했던 조건에서 거둔 아이디어의 승리였다.
“라이선스 뮤지컬 작업 때는 일단 오리지널 프로덕션의 영향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요. 원작을 봐도 카피가 아닌, 다르게 만들려고 보는 거죠. 또 그런 재미에 라이선스 작품을 하는 것 같아요. ‘레베카’는 독일 프로덕션이 정말 거대한 세트들을 사용했지만, 우리나라에선 무대 공간이 굉장히 제한적이라 그 세트를 카피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어요. 게다가 다른 작품에 비해 준비 기간도 상당히 짧았고요. 이래저래 부족하니 도전의식이 커져 굉장히 열심히 한 작품이죠.”
어느 작품이든 공연 날짜가 임박할수록 에너지는 더 끓어오른다. 공연이 올라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모두가 치열하다 보니 작품이 만들어지는 공간 안에서 논쟁이나 설득은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무대 디자이너는 아이디어도 좋고 그림도 잘 그려야 하지만 소통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디자인에 확신이 있다면 그 가치를 확실히 전할 수 있어야 하죠. 하지만 구성원 모두가 각자의 확신을 갖고 작업을 하니 의견 충돌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는 이유 있는 고집으로 포장된, 확신 없는 아집을 경계한다. 연출가와 스태프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려 노력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무대 디자이너로서 그가 추구하는 목표 중 하나는 경청을 통해 서로 다른 확신을 가진 사람들의 공통분모를 찾아 엮고 한데 버무리는 것이다.
무대가 좋아서 지금까지 미친 듯 달려왔다는 무대 디자이너 정승호. 그에게 인생의 시간을 물으니, 하루 24시간 중 오후 5시에 다다른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실제의 시간과 관계없이 스스로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적게 느껴진다는 의미일 터다. 그래서일까. 기회가 된다면 그는 작품을 연출하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다. 아직 ‘언젠가’라는 말로 미뤄두고 있지만, 연출에 올인 할 수 있는 때가 오면 정서적으로 짙은 작품을 꼭 하고 싶은 바람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거리에 붙은 뮤지컬 포스터를 보며 정승호의 무대를 떠올렸다. 빛과 그림자, 신념과 소통을 담아내는 무대 디자이너의 네모난 철학을.

글 김선영 기자(sykim@) 사진 박진호(studio B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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