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시대 해빙에 큰 역할을 했던 피아니스트 밴 클라이번이 지난 2월 27일, 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부끄러운 얘기일까. 나는 아직 음악을 듣거나 연주하면서 크게 울어본 기억이 없다. 감성이 부족한가 싶어서 쑥스럽기도 하지만, 앞으로 그럴 기회가 있기를 바라기도 한다. 다행히 음악으로 다른 사람을 울려본(?) 적은 있다. 유학을 마치고 마지막 독주회 때 앙코르가 끝나자,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외국인 학생 담당부서의 주임교수로 내 학교 생활을 모두 지켜본 여자 교수님이 눈에 눈물을 가득 담은 채로 축하의 말을 건넸다. “주영! 네가 이 작품을 이렇게 잘 해석하다니, 이제 러시아 사람이 다 된 것 같구나!”
마지막 앙코르로 연주한 곡은 ‘포드모스코브니예 베체라(Подмосковные вечера)’, 영어로는 ‘모스코 나이트(Moscow Nights)’라 불리는 곡으로 1950년대에 발표되어 전 국민이 즐기고 있는 국민가요였다. 노래가 유명한 탓에 이 작품의 피아노 버전도 많은 러시아 청중에게 익숙한데, 다름 아닌 미국 출신의 피아니스트 밴 클라이번이 즉석에서 만들어 치다시피 한 차이콥스키 콩쿠르 축하 음악회에서의 앙코르 피스가 바로 이 곡이었다.
우연히 악보를 입수해서 별 생각 없이 연주한 곡이 청중에게 잊을 수 없는 음악회의 추억을 선사한 셈인데, 나에게는 피아니스트 밴 클라이번에 대해 남아 있는 제일 짙은 추억이라고 하겠다. 물론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고향에서 공부를 했으니 센세이셔널했던 그의 활약담에 대해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간 연주의 스타일이나 레퍼토리 면에서 다소 나와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 후 클라이번에 대해 알아가며 내가 받은 느낌은 당시 소련과 미국의 음악적 가교를 만들어내기 위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라는 것이다. 무관심이 무지를 낳았던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 1악장의 저 유명한 카덴차가 클라이번의 콩쿠르 당시 연주를 통해 인기를 얻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 악보에 적혀 있는 카덴차, 즉 작곡가 자신이 추천한 카덴차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버전보다 짧고 연주하기는 더 어렵다. 또 하나의 대안으로 적혀 있는 좀 더 큰 카덴차를 본격적으로 다룬 첫 번째 인물이 클라이번인데, 거인적인 손과 체구에서 나오는 음향의 자연스런 폭발력과 텍스트가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악장 중앙의 카덴차를 전곡의 하이라이트로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그의 선택 이후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이 큰 카덴차를 연주하며, 작곡가의 의도를 충실히 살려 작은 카덴차를 선택했던 사람은 호로비츠·아르헤리치 등 극소수다. 클라이번의 연주로 피아니스트들의 필수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한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이 작곡가가 혁명을 맞아 미국으로 이주하기 한참 전, 최초의 미국 연주 여행 당시 만들어진 곡이라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지금 생각하면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클라이번이 한창 주가를 날리며 세계 피아노계의 영웅으로 군림했을 당시만 해도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곡을 진지한 성격의 작품으로 이해하는 애호가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가볍게 흘려서 즐기기만 하는 곡이라고 치부되던 그의 협주곡을 음악회의 메인 프로그램으로 올린 공로와, 특히 처음부터 인기가 높았던 2번에 비해 산만한 흐름과 난해한 기교로 청중에게 낯설던 3번을 한달음에 친숙하게 만들어놓은 클라이번의 연주는 그 자체로도 박수갈채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고 가장 오래 추억할 만한 클라이번의 협주곡을 꼽으라면 브람스의 두 곡이다. 긴 손가락과 상체의 무게를 합리적으로 사용해 연주하는 당당한 타건과 꽉 찬 느낌의 화음, 말쑥하게 쭉 뻗어나가는 프레이즈는 그가 타고난 브람스 연주자였음을 증명한다. 야구에서 흔히 얘기하는 ‘무심타법’에 가깝다고나 할까. 그가 연주하는 브람스의 패시지들은 멋스럽게 보이려는 노력이나 오버하는 표정이 없다. 무덤덤하고 조금은 각진 다이내믹의 나열처럼 보이지만 그의 브람스에는 작곡가 특유의 수줍음으로 채워진 열정이 숨어있다. 열정은 그 누구에게나 뜨거운 것일 텐데, 클라이번의 뜨거움은 한번에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서서히 달궈지는 성격이다. 건반을 누르고 페달을 밟는, 악기를 다루는 물리적인 행위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고 할 수 있는 타고난 피아니스트가 악기와의 일체감을 최상으로 발휘하는 순간이 클라이번의 브람스라고 할 수 있겠다. 긴 호흡으로 작품의 무게감을 살린 1번(에리히 라인스도르프/보스턴 심포니)과 타고난 비르투오소의 모습이 적절히 투영된 2번(프리츠 라이너/시카고 심포니) 모두 그리운 녹음이다. 오래전부터 명연으로 알려진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에서도 비슷한 특징이 느껴진다. 장중하고 품위 있는 자세를 강조한 피아니스트의 스타일에서 다소 예스러움이 배어나오는데, 그야말로 솔직담백한 자세의 클라이번 자체다.
슈만-리스트의 ‘헌정’에서 흘러나오는 달콤한 정서도 좋고, 독특한 고집이 매력적인 쇼팽의 소나타도 훌륭하지만, 지난 2월 27일, 클라이번의 사망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떠올린 연주는 드뷔시의 소품 ‘기쁨의 섬’이다. 그가 늘 그렇듯 드뷔시의 해석에서도 불필요한 꾸밈이나 허세는 찾아보기 힘들다. 갑작스런 인기와 주위의 부담스런 시선들을 그가 어떻게 이겨냈는지 알 길이 없으나, 많은 이들이 그렇듯 그도 결국 건반을 두드리며 흔들리는 내면을 다잡으려 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유독 사색적인 모습의 드뷔시가 그 숱한 고민의 조각들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연주의 하이라이트는 느린 중간부의 도입이다. 드뷔시의 피아노 곡 중 명랑하고 밝은 분위기의 작품인 ‘기쁨의 섬’을 클라이번은 수줍은 미소와 풋풋한 흥분이 섞인 설렘으로 탈바꿈시킨다. 거대한 클라이맥스를 향해 서서히 음악의 문을 열어가는 거인의 모습은 언제 들어도 매력만점이다. 이제는 역사속 인물이 되어버린 클라이번이지만 그를 추억하는 이들 모두의 기억은 그가 남긴 피아니즘의 은밀한 아름다움과 함께 더욱 또렷해져 가기를 기대해본다.
글 김주영(피아니스트·서울종합예술학교 교수) 사진 Dave Hec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