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설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초연은 1992년. 세계 초연과 비교해 턱없이 늦지만 무대의 열정만큼은 남부럽지 않다. 2013년 시즌 개막작 ‘백조의 호수’는 ‘발레의 대명사’란 별명답게 특별히 높은 인기를 과시했다. 만석에 가까운 객석의 환호가 유니버설발레단의 대중적 성공을 가늠케 했다. 3월 8~12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글 문애령(무용평론가) 사진 유니버설발레단
3월 8일부터 12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오른 총 6회 중 필자는 두 중국인 스타가 등장한 마지막 공연을 관람했다. ‘백조의 호수’에 여섯 커플의 주역을 배치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발레단의 자랑일 것이고, 그중에서도 폐막은 황혜민과 엄재용이 맡은 개막 못지않은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팡멍잉(方夢穎)과 황전(?震)의 무대는 상당한 기대를 모았다.
베이징무용학원 출신인 팡멍잉은 유니버설발레단에 군무로 입단해 지난해 ‘잠자는 미녀’에서 라일락 요정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백조·소녀인 슬픈 운명에 짓눌린 존재는 ‘지젤’의 윌리 역처럼 길고 가는 발레리나들이 우선적으로 선발되는 배역으로 팡멍잉은 오데트의 이미지를 잘 살릴 만한 뛰어난 매력의 소유자다. 황전은 홍콩발레단 수석무용수를 거쳐 작년 유니버설발레단으로 이적했다. 긴 신체의 선, 가벼운 도약과 착지가 장기인 그는 스무 살 생일을 맞은 지크프리트 왕자 역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동양인이 없을 것 같은 외모다.
그러나 오딜 역을 다른 발레리나가 맡았다. 이 사건의 주된 이유는 아마도 팡멍잉이 푸에테 32회전을 소화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탁월한 서정성을 지닌 발레리나를 위해 1인 2역의 전통을 깨는 경우가 있으나, 그 파격을 수용할 때는 그만큼 대단한 무엇이 요구된다.
이번 공연의 모태인 1895년의 프티파·이바노프 공동안무 ‘백조의 호수’에서는 오데트와 오딜 역을 한 명의 발레리나가 연기했다. 레프 이바노프가 안무한 2막에서는 백조·소녀 역을, 마리우스 프티파가 안무한 3막에서는 사랑을 파괴하는 악의 화신 역을 한 사람이 번갈아 연기해 ‘백조의 호수’는 발레리나의 모든 능력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회자된다. 마리우스 프티파는 푸에테 회전 기교를 넣기 위해 이탈리아 출신 피에리나 레냐니를 러시아로 초청했고, 이후 이 주역 2인무에서의 32박자 회전은 모든 발레리나들의 의무가 되었다.
오딜 역으로 등장한 이용정은 다른 날 이동탁을 파트너로 오데트·오딜 역을 했는데, 뛰어난 회전기교 덕에 마지막 무대에 다시 선 것 같다. 32박 동안 이용정은 두 바퀴 회전을 연달아 반복하는 어려운 기교를 구사했고, 마무리도 보기 드물게 깔끔했다. 솔로 베리에이션의 연속 회전 역시 거리낌 없이 유연하게 처리해 안정감이 돋보였다. 반면 흑조 해석에서는 공감대가 크지 않았다. 아버지의 소유물에 손댄 침입자를 응징하는 악역을 즐기며 왕자를 농락하기에 오딜의 연기는 관능적이고 표독스럽다. 그러나 이용정의 흑조는 마치 숙제를 해치우는 개구쟁이 같다. 팡파르에 등장해 시든 검정 꽃을 던지고 퇴장하기까지, 죄의식이 없어 보이는 예쁜 미소를 극에 맞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
주역들의 섬세한 영역을 제외한다면, 출연진 모두가 제 역할에 충실한 유니버설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는 세계적 수준이다. 무대 규모나 색감, 다양한 캐릭터 댄스, 등장 인물 간의 조화, 군무의 고른 기량, 한 순간의 빈 구석도 용납하지 않는 지도력 등 관객을 사로잡는 전문적인 매력이 있다. 광대의 회전기와 긴 3인무의 정돈된 기량, 왕비의 마임, 로트바르트의 위력, 모두가 주역과도 같았던 군무가 채운 20년 경력의 ‘백조의 호수’는 성인식을 기념할 만큼 여유롭다.
4막 구성인 평소와 달리 2막 4장의 연출은 막을 길게, 휴식은 한 번으로 줄인 현대화 작업이다. 1막에 있던 왕자 솔로가 2막 2장 앞에 붙어 무대전환 시간을 벌어준 변화가 효과적이며, 악마와 두 연인의 대결 장면이 보다 역동적으로 묘사된 변화가 감동을 배가한 성공적 연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