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포사이스의 ‘헤테로토피아’는 푸코의 논문 ‘다른 공간들’에서 출발했다. 하나로 어우러질 수 없는 공간들을 의미하는 ‘헤테로토피아’는 ‘낯섦’과 ‘다름’의 장이다. 포사이스는 거기에 ‘번역’에서 발생하는 편견을 덧입혔다. 핵폭발·공해·에이즈·스트레스·폭력 등을 그린 그의 대표작처럼 현대사회의 자화상을 그렸다.
4월 10~14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글 장인주(무용평론가) 사진 성남아트센터
무대를 두 개로 나눈 공간에는 이미 여러 명이 움직이고 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말을 하기도 하고, 알파벳 모형을 이리저리 옮기는 이도 있다. 낯선 공간 그리고 낯선 시선들. 관객은 이 공간 안에서는 관객이 아니라, 같은 공간을 배회하는 관찰자가 되었다. 책상이 즐비하게 쌓여 있는 틈으로 들락날락하는 무용수는 동물처럼 움직인다. 관찰자와 시선을 마주치기도 하고, 간간이 소음을 내며 육체를 자유롭게 움직인다. 누군가의 지시와 상관없이 속삭임과 괴성을 번갈아가며 내뱉는다. 피아노 앞에 앉은 남자는 염소 소리를 낸다.
한마디로 기이하고, 낯설다. 그러나 그 기이하고 낯섦이 그리 충격적이지 못했다. 90년대 발레의 혁신가로 불리며 피나 바우슈에 대적하던 포사이스 아닌가. 낯섦의 강도가 무척 약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함께 등장했던 퍼포먼스를 제외한다면 프로시니엄 극장의 공간 배분을 거부한 현대무용계 최초 작품은 1996년 보리스 샤르마츠의 ‘주의(Attention)’를 꼽는다. 이미 공간 중앙 구조물을 중심으로 관객들이 자유롭게 이동하며 춤의 긴장감을 감상했었다. 당시 프랑스 주요 페스티벌을 섭렵하며 그 ‘파격’을 인정받은 바 있다.
애크러배틱하고 다이내믹했던 포사이스 식의 움직임은 이제 남아있지 않았다. 포사이스의 천재성을 담아냈던 ‘표현의 원리’ ‘반복의 원리’ ‘혼미(昏迷)의 법칙’ 등을 더 이상 볼 수 없었으며, 그 빈자리를 우연성에 기초한 컨템퍼러리 댄스 움직임이 대신하고 있었다. 라바노테이션(무보법)으로 기록이 불가능할 정도로 기이했던 동작은 사라졌다. 전통을 버리지 않고, 전통을 개조하는 데 주력했던 포사이스의 전성기적 노력은 온데간데없었다. 관객으로서 한 공간의 설정이 흥미진진한 나머지 보이지 않는 다른 공간에 대한 궁금함에서가 아니라, 지루함이 느껴지면 하는 수 없이 움직이게 되는 그런 소극적인 긴장감이 전부였다. 거장의 천재성을 찾을 수 없는 데에서 오는 실망스러움은 그 공간 안에서 포사이스를 직접 발견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1990년대 파리 샤틀레 극장 객석에서 헤드셋을 끼고 실시간으로 큐 사인을 보내던 그는 여전히 이 공간의 지배자로 있었다. 두 공간을 숨 가쁘게 왔다 갔다 하며 무언가를 지시하고 있었다. 헤드셋 너머로 작곡자 톰 빌럼스와 끊임없이 서로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30년 팀워크가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사운드와 동작에서 발견한 ‘헤테로토피아’의 우연성은 반복이 불가능한 해프닝이 아니라, 이미 거장의 머리에서 잘 짜인 연출이었던 것이다.
반전은 계속되었다. 공간의 지배자 포사이스를 포함한 낯선 공간의 풍경은 흥미로웠다. 가장 긴장한 사람은 포사이스였고, 그를 포함한 관찰자마저도 분주해졌다. 어떠한 움직임, 어떠한 소리, 어떠한 관계가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관찰이 아니라 낯선 공간의 낯섦을 탐지하는 모험가가 되었다.
‘슬링어랜드’ ‘손발의 법칙’ 등 구조주의 철학의 결실을 목격했던 만큼 지금의 포사이스의 예술세계는 소박했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규모도 작고 기술의 강도도 낮추었지만, 예술이 표현해야 하는 낯선 경험에 대한 접근은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포사이스의 구조주의 예술은 그렇게 진화한 것이다.
거장의 전성기적 작품을 기억하는 한 지금의 거장을 만나면 실망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작품 위에 거장의 역사를 오버랩해야 그제야 그의 뜻을 이해할 수 있다. 거장의 이름과 인생, 예술세계까지 덧입혀서 관찰해야 비로소 관찰자의 몫을 다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