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든 통영국제음악제에서 한 번쯤 보는 사람이 있다. 통영 시내에서 열리는 프린지 무대든, 공연장이든 음악이 있는 곳 어디엔가, 셔터 소리와 함께 그가 있다. 혹 그를 보지 못했더라도, 매년 그가 내놓는 생생한 증거물은 누구나 분명 눈여겨봤을 것이다.
지난 4월 16일부터 31일까지, 통영시민문화회관 대전시실에서 사진전 ‘더 아티스트(The Artists)’가 열렸다. 이번 전시에는 그간 통영국제음악제를 다녀간 음악가들을 찍은 30만 장의 사진 가운데 추리고 추린 40여 점이 소개됐다. 전시장을 둘러싼 사진 속에는 찰나의 기록을 넘어 치열함과 고뇌, 놀람과 환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하염없이 기다리며 한 번의 셔터에 승부를 걸었기에 얻을 수 있었던 아름다운 결과물이다. 전시실에서 만난 통영국제음악제 기록사진 작가 최명만은 “사람과 진실을 사진에 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최명만과 음악제의 인연은 우연히 시작됐다. 그의 지인인 가수 노영심이 2002년 통영국제음악제 프린지 무대에 오르는 모습을 촬영하던 것이 발단이 됐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그 이듬해 열린 통영국제음악제 교가합창제로 이어졌고, 매년 봄이면 통영국제음악제 가을엔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까지… 찰나가 기록으로, 기록이 역사가 되는 현장이면 어김없이 그가 있었다. 여기에 올해 준공을 앞둔 통영국제음악당 건립 과정들도 빠짐없이 그의 카메라에 담겼다.
통영국제음악제 기간 중 그의 주머니에는 너덜너덜한 종이 한 장이 있다. 음악제를 찾는 음악가들의 리허설과 공연 시간이 빽빽하게 적힌 시간표다. 리허설이야말로 본 공연과는 또 다른 음악가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는 현장기에 음악제 기간 중 열리는 모든 리허설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 역시 그의 몫이다. 이번 전시에서 유독 눈에 띄는 조르디 사발의 모습도 2007년 리허설 현장에서 촬영한 것이다. 작가는 당시의 에피소드를 들려주면서, 연주자 한 명 한 명을 챙기는 사발의 자상함과 손수 포디움을 옮기는 소탈함,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사진에 담으려 했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2007년 칭다오 심포니와 함께 무대에 선 바이올리니스트 리우양이 공연 중 흘리는 땀방울을 포착한 사진은 작가의 집중력과 집요함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케 한다.
음악제 초창기 최명만은 각종 촬영 장비며, 필름 카메라 시절 인화비 모두를 자비로 해결했다. 스스로 좋아해 시작한 일이라, 딱히 계산기를 두들기지도 않았다. 몇 년 후, 캐논이 통영국제음악제의 공식 스폰서로 나서게 된 것도 그의 노력이 컸다. 이런 작가를 오랫동안 지켜본 지인은 그를 두고 “돈 안 되는 일, 제 일처럼 생각하면서 동분서주하는, 재주는 많지만 실속은 없는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사서 고생한 이유를 작가 자신도 논리정연하게 설명하진 못하지만, 아마 통영에서 태어나 통영 사람으로 살아온 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예술가를 좇아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올해도 공연장에는 사진작가 최명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연주자와 음악이 혼연일체 되는 순간마다 그의 눈은 빛났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음악제에서, 음악의 절정이 치솟는 현장에서 그의 변함없는 셔터 소리를 들을 수 있길 바란다. 이번 전시는 통영거북선호텔에서 8월 말까지 이어진다.
글 김선영 기자(sykim@) 사진 최명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