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5일부터 7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 ‘총성’은 현대인이 증언할 수 있는 사회사 서적 같다. 프랑스 혁명, 미국 독립, 인종 갈등, 현대의 전쟁, 대중문화, 노동, 그리고 생존을 위한 치열한 노력을 흩뿌리듯 제시한다. 형식과 내용에서 공히 묵은 옷을 멋지게 코디한 빈티지한 감각, 무용수들의 표현, 그리고 무대 효과 등이 노장의 미소처럼 숨어 ‘마랭 스타일 농-당스’를 탄생시켰다.
글 문애령(무용평론가) 사진 LG아트센터
프랑스 마기 마랭 무용단이 ‘총성(Salves)’을 한국 초연했다. 1997년 ‘메이 비(May B)’, 2003년 ‘박수만으로 살 수 없어’ 이후 10년 만의 내한 공연은 이 안무자의 작풍이 변화무쌍함을 보여준다.
2010년 작 ‘총성’은 비무용적인 연출이 특징이다. ‘무용’이라는 단어가 대개 특별한 기술적 동작을 연상시키나 ‘총성’에서는 일상적 움직임이 나열된다. 이러한 일상성은 ‘무용’의 기교적 과제를 기대하는 관객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마기 마랭의 입장에서 보면 “무용은 인간의 모든 것을 탐험하는 도구다. 발레나 현대무용으로 정해진 규칙을 넘어선 영역이다.” 즉, 몸짓을 통한 세상 관찰에서 무용 기교는 필요에 따라 수용·제거될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이러한 주장이 마기 마랭만의 철학은 아니다. 기교 없는 무용, 춤 없는 무용은 미국의 포스트모던에서 출발해 독일 신표현주의와 프랑스 농-당스(non-danse)를 만들었다. 1960년대에 시작되어 1980년대에 절정을 이룬 일상적 동작의 활용법은 나라별로 각기 다른데, 농-당스의 경우에는 움직임의 목적이 상징적이고 암시적이다. 일상의 풍경 속에 감춘 숨은 그림을 관객이 찾아내야 교감이 시작되니 결코 편안한 무대는 아니다.
‘총성’은 현대인이 증언할 수 있는 사회사 서적 같다. 프랑스 혁명, 미국 독립, 인종 갈등, 현대의 전쟁, 대중문화, 노동, 그리고 생존을 위한 치열한 노력을 흩뿌리듯 제시한다.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총살 장면을 그린 고야의 ‘1808년 5월 3일’, 다비드의 ‘나폴레옹의 대관식’, 목이 없는 ‘밀로의 비너스’, 여러 장의 엘비스 프레슬리 포스터, 무대에서 부서지는 ‘자유의 여신상’, 지구본, 식탁 차림, 헬리콥터에 매달려 등장한 예수상이 혼돈 속에서 제 몫의 여운을 남긴다.
컴컴한 무대에 차례로 등장한 일곱 명의 남녀 출연자는 가느다란 가상의 실타래로 연결되고, 무대 각 방향에 설치된 녹음기에서는 둔탁한 소음이 재생된다. 여인의 얼굴을 감싸는 손, 목을 겨누는 칼, 긴 의자의 끝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밀치는 흑인 여자, 군인, 유럽 남자, 구령 소리에 뭔가를 던져 옮기는 군중, 식탁을 차리느라 분주한 사람들, 그리고 반복적으로 깨지는 접시는 결코 기쁘지 않은 세상을 형성한다. 공연 도중 누군가 “목까지 똥에 잠겼을 때, 노래밖에 할 일이 없다”는 문장을 썼다. 삶의 단면과 그에 대한 저항이 전해지는, 이 작품의 내용이라 할 문구다.
마기 마랭은 모리스 베자르 20세기발레단·리옹 오페라 발레 등을 거치며 발레 기본기는 물론 해학적 비틀기까지도 가능함을 입증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기반을 무시함으로써 또 한 번 이름값을 했다. 과거에도 애용한 반짝이는 오색 전구 불빛, 뚱뚱이 분장, 암전을 통한 단절 효과 등이 노장의 미소처럼 숨어 ‘마랭 스타일 농-당스’를 탄생시켰다. 형식과 내용에서 공히 묵은 옷을 멋지게 코디한 빈티지룩 감각이다.
정치적 이유로 이민한 부모를 둔 때문인지 마기 마랭은 “이민과 해방 같은 주제를 탐험”하는 안무가로 회자되기도 하는데, ‘총성’과도 어울리는 평판이다. 해학적 발레의 대가에서 농-당스의 실력자로 부상한 마기 마랭은 “공연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어떻게 신체적으로 소리 낼 수 있는지를 아는 예술가”로 알려졌다. 1951년생이 현역으로 존재하는 힘의 원천이 의외로 원론적이나 그 의미를 곱씹을수록 범인의 범주를 넘어선 경지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