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구 소리는 왜 그랬는지, 1막과 2막 사이의 합창 ‘기원의 노래’는 왜 ‘불협’으로 끝나야 했는지, 연출은 왜 합창단을 막후에 위치시켜 이영조 음악의 매력인 합창의 디테일을 맛볼 수 없게 했는지, 이건 왜이고, 저건 왜인지…. ‘처용’ 첫 날 공연에 대한 여러 질문이 적힌 종이를 들고 나는 정치용 앞에 앉았다. 질문이 던져지면, 몇 초의 적막이 흐르고, 돌아오는 건 단답이었다.
“네.” “아니요.” “그랬나요?” “모르겠군요.” “별로.” “그건 문제되지 않았어요.”
정치용의 침묵과 단답은, ‘왜’가 잔뜩 붙어 있는 이 질문들이 지금 ‘왜’ 중요한지를 오히려 묻는 듯했다.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정치용은 입을 열었다. “지휘자로서, 내가 이 작품을 올린 후에 하고 싶은 말들은 그런 게 아니에요.” 때맞춰 나 역시 준비해간 질문지의 맨 뒷장을 맨 앞으로 가져왔다. 이번 특집의 가장 끝에서, 본론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우리 음악계에서 정치용만큼 장르불문ㆍ지역불문으로 움직이는 지휘자는 드물다. 콘서트ㆍ오페라ㆍ발레는 물론, 나는 그를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창단연주회에서조차 보았으니까. ‘서양음악 교육을 받은 지휘자’로서 국악원 중앙에까지 섰던 그에게, 동시대의 창작 음악을 지휘한다는 것은 오히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창작곡을 연주하려 애쓰는 거의 유일한 지휘자가 아닐까 싶어요. 다들 말로는 해야지 해야지 하지만, 베르디 ‘돈 카를로’와 이영조의 ‘처용’이 있으면 대부분 ‘돈 카를로’를 하겠죠. 나는 무조건 ‘처용’이에요.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 음악을 해야 하고, 현대음악이니까 해야 하고, 그런 사명감이 아니에요. 새 악보, 새 작품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굉장히 많아요. 언제나 새 작품이 내게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어요.”
창작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들다 보니, 엉터리 창작 오페라를 지휘한 적도 있다. 심지어 오케스트라 악보가 너무 엉망이어서 80퍼센트를 정치용이 직접 고친 경우까지 있을 정도.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을 접한다 해도 다이내믹과 템포 등을 작곡가와 상의하여 대거 수정하는 건 다반사다. 그만큼 ‘창작’을 무대에 올리는 것은 지휘자에게 많은 수고를 요한다.
“너무 피곤하고 힘들고 지치는 작업이에요. 그런데 대중성은 없고, 표는 안 팔리고, 올린 후에 좋은 소리 듣기 어렵고, 기획자들은 돈이 안 되니 안 하려 하고. 그렇습니다.”
여기저기 만연한 창작에 대한 ‘근본적 관심 없음’ 상황에, 지휘자들은 왜 창작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정치용이야 스스로 밝혔듯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굉장한” 지휘자이니 당연한 선택이겠으나, 그렇지 않은 사람까지 왜 이런저런 수고를 감내해야 하는가.
“나는 뮤지컬도 해보고, 악극도 해보고, 국악도 해봤어요. 한 장르에 국한되면 썩은 물이 되니까,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려고 해요. 이를 위해서는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데, 그래서 늘 새로울 수 있어요. 창작 오페라와 모차르트 오페라의 이디엄은 정말 다르죠. 그걸 동시에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받고, 다시 풀고 해요. 어떤 작품 하는 데 한 달간 너무 고생을 해서 산에 가야겠다, 골프를 쳐야겠다, 하는 지휘자도 있어요. 내 생각은 달라요.”
“음악 안에서의 환기가 가능하다”, 그것만이 이 힘든 여정을 함께해야 하는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작곡가들이 오페라 창작을 하네 마네 하는 환경에, 지휘자들의 관심이 무슨 상관이냐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오래전 베르디ㆍ푸치니ㆍ바그너 가운데 한번 공연을 올려 대성공을 거둔 경우는 희박하다. 성공을 한다손 쳐도 또 고치고, 고치고, 수년에서 수십 년을 그렇게 갈고 닦아 완성되는 것이 오페라다. 그런데 ‘쉽지 않은’ 현대의 오페라들은 어떠하겠는가. 무대에 올렸을 때 어떻게 소리가 나고, 어떤 문제가 있고, 어떤 장점이 있는지 알기 위해 ‘자주’ 이전에 ‘제대로’ 올려야 한다. 그러니 제대로 된 ‘해석자’는 필수다. 국내에서 널리 이름을 알린 지휘자들 중에 창작에 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을 찾기 어렵다는 현실. 정치용은 ‘창작’을 논하기에 앞서 그 안타까움부터 토로했다.
창작에 대한, 창작 오페라에 대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며 산 것일까. 그는 쉬지 않고 생각을 쏟아냈다. 대부분이 부정적인 현실에 대한 이야기인지라, 듣는 이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뭐, 우린 희망이 없는 건가’라는 자의적 해석에 도달했을 즈음, 정치용은 이제부터 대안을 제시한다.
연구기관 설립과 장기적인 실험이 선행돼야
“독일에 가면 폴크스오퍼가 있죠. 거긴 어떤 오페라든 독일어로 번안해서 불러요. 빈ㆍ런던에도 그런 극장들이 있어요. 우리도 수십 년 전에는 번안 오페라를 올렸어요. 그때는 원어를 훌륭히 못 부르니 그렇게 했던 거죠. 번안 오페라는 촌스러운 게 아니에요. 이를 통해 우리 식의 오페라 노하우를 쌓을 수 있습니다. 우리말로 가사를 번안해서 원곡에 붙이다 보면 우리 음절에 맞게 가사를 쓰는 법, 음을 붙이는 노하우를 익히게 됩니다. 자연스러운 수준이 되는 거죠. 지금 창작 오페라의 대본을 작업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뮤지컬계는 시행착오를 통해 어느 정도의 인력이 생겼다던데, 오히려 그들을 영입하는 방법도 있겠죠. 창작 오페라를 만들고 올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행돼야 할 작업들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 연구소 같은 기관이 필요하고, 연구원이 필요하고, 10~20년 꾸준히 실험을 해야 합니다. 오페라는 종합무대로서의 최고봉이에요. 그런 큰 작업인데, 지금 우리는 오페라에 대한 아무 노하우도 없어요.”
번안 오페라를 통해 우리말에 맞는 오페라의 탄생을 희망할 수 있다면, 창극 및 1930년대 악극의 오랜 소재에서 우리 정서에 맞는 오페라 소재를 찾을 수 있다고 정치용은 말한다. 오래 전 이탈리아 사람들이 오페라극장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노래로 들었듯이, 감성에 와 닿는 이야기는 오페라 대중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21세기에 이수일과 심순애 같은 소리냐, 무슨 악극 얘기냐. 그렇게 나오면 할 말이 없어요. 나는 소재에 대한 얘기를 하는 거예요. 대중과 빨리 가까워질 수 있는 ‘이야기’요. 아니면, 정말 문화부에서 마음을 먹고 2018 평창올림픽을 대비하고 있다면… 문화올림픽은 반드시 따라 올 테니 이때 단군이나 세종 같은 우리 역사를 다룬 오페라를 올려도 좋죠. 최소 3~4년 전 시작해서 작곡도 하고, 수정도 하고, 그래야 한국적 요소를 제대로 오페라에 넣을 수 있을 겁니다.”
최근 몇 년 사이 큰 예산을 들여 대극장에 올랐던 창작 오페라들 앞에는 ‘국가브랜드 공연’ ‘서울 문화관광상품 콘텐츠 개발’ 같은 숨막히는 수식들이 붙어 있었다. 다른 것도 아닌 ‘예술’이, ‘외국인을 위한 문화관광상품 집중 육성’이라는 기치 하에 ‘개발’ ‘육성’된다는 현실에 가끔은 낯이 뜨거워질 때가 있다. 그러나 정치용을 비롯하여 이번 특집 기사를 위해 만난 예술가들은 일련의 국가적 ‘제스처’나 이를 지켜보는 제3자의 묘한 눈빛마저 모두 고맙게 여기는 듯했다. ‘창작’에 세상이 얼마나 무관심했는지에 대한 방증처럼.
“작곡 전공 학생들이 방향성을 잃었습니다. 뮤지컬 쪽으로 많이 빠지고, ‘고상한’ 작곡가는 가물에 콩 나듯 할까 말까입니다. 창작 장르의 폭을 넓게 하고 관심을 갖게 하는 게 중요해요. 기존 작곡가들에게 기대한다기보다, 아니 기존 작곡가 가운데서도 젊은이들이 있을 테니 ‘젊은 작곡가’들에게 많은 기회를 줘야 합니다. 문화부는 진지한 한국적 소재를 다루어 바깥에 내놓을 수 있는 작업이 필요하고, 반면 우리 생활 속에서 마치 드라마 보듯 접할 수 있는 소재의 오페라도 필요하죠. 아예 아방가르드한 현대 오페라도 소수 마니아들을 위해 필요하고요. 그런 걸 다 수용할 수 있는 사회는 200년쯤 지나면 올까요. 정말 의식이 높은 사회 말이에요. 200년 후라도 그런 사회가 되려면, 시작을 해야죠. 시작은 언제 할 겁니까. 이런저런 작품들이 오르는데 청중은 없다, 사람들이 무식해서 안 보러 온다.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청중은 아무 죄가 없습니다.”
많은 문제는 그것이 ‘토착화’되지 않아 발생한다고 정치용은 말한다. 한국의 오케스트라 역사를 50~60년이고, 오케스트라 문화 역시 아직은 토착화 단계에 진입하지 못했다. 일부 악단의 독식, 관심의 집중, 문제의 확대, 여론의 분화와 갈등, 실망, 상처… 이러한 문제도 결국은 ‘일부에 한정된’ 현실, 즉 토착화되지 못하여 나타나는 증상이다. 나름 각 시도마다 오케스트라를 보유했음에도 이러한데, 오페라는 어떻겠는가. 우리 지역을 대표하는 단체, 작품, 나의 자랑과 사랑이 될 만한 오페라. 우리에겐 아직 없다.
우리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우리
“그나저나, 한국적인 요소는 해외에서 경쟁력을 지닙니까?”
나는 정치용에게 아주 진부하고 치졸하다 못해 ‘사대주의적’으로까지 여겨질 우문을 던졌다.
“100퍼센트. ‘너무’ 상식적인 얘기죠. 빈 신년음악회에 수천만 원짜리 기모노 입고 오는 일본 사람들이 있어요. 난리가 나요. 그런데 어느 날 한복 치마저고리가 등장했어요. 뒤집어졌죠. 예쁘기도 하지만, 남달랐으니까요. ‘정체성’의 문제를 자꾸 거부해선 안 됩니다. 여전히 유럽에 가면 남이냐 북이냐를 물어봐요. 한국이라는 ‘국적’은 여전히 (음악계에서) 경쟁력이 없어요. 앞서 ‘경쟁력’이란 표현을 써서 하는 말이에요. 오자와 세이지가 빈 슈타츠오퍼에서 감독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간의 투자 덕입니다. 일본이 그곳에 투자한 엄청난 돈이요. 실력으로 똑같이 경쟁하려면 여섯 살에 유학을 가든 거기서 태어나든 그쪽 사람들과 똑같이 살면 돼요. 물론 진은숙 씨처럼 현지화를 이룬 작곡가도 있죠. 그렇게 인정받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압니까. 작품 몇 개 쓰고 콩쿠르 수상하고, 그런 걸로 되는 게 아니에요. 상상도 할 수 없는 노력과 고생이 있었어요.”
정작 서양음악의 본토인 유럽에서 한국 작곡가들이 듣는 이야기는 “네 것을 해라, 네 나라 것을 해라. 우리는 거기에 관심과 흥미가 있다. 왜 독일ㆍ오스트리아 음악을 하려고 하느냐”이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우리 것이 녹아있어야 한다고, 정치용은 “100퍼센트” 확언할 수 있다 강조했다.
“그래도 자꾸 우리 것, 우리 것 하고 외치는 제가 촌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나의 이 말에 정치용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국적’이 아닌 ‘한국적’을 경쟁력으로 삼아야 하는 세대가 자기 정체성이 무엇인지 모르고,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조차 거부하려는 건 결국 교육의 문제다. 독도를 다케시마라 부르면 광분하면서, 우리의 머리와 가슴에 담긴 정체성을 잃어가는 것은 경계하지 못하는 오늘. 언제가 그 ‘정신’마저 도둑 당했을 때, 나는 무엇을 도둑맞았는지 과연 인식할 수는 있을까.
나만큼 개인적인 ‘개인’조차 우리를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다다른 정체 모를 2013년 서울 한복판. 질문이 희망이다. ‘메디아’와 ‘처용’은 창작의 또 다른 원년을 여는가.
글 박용완 기자(spir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