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시각예술과 공연예술 접속기
감각의 경계를 허물며 장르적 쾌감을 증폭하다

시각은 물리적으로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감각은 아니지만, 집중을 끌어내기에 가장 ‘효율적인’ 감각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공연예술과 시각예술의 만남은 필연적이다. 공연예술의 장르는 다양하지만, 현장에 자리한 관객들의 흥미를 자극하여 이목을 최대한으로 집중시키는 것이 공연이 추구하는 공통적인 목표이기 때문이다. 시각예술의 동반은 이 역할을 가장 ‘효율적으로’ 수행할 방법이다. 한때 무대미술과 의상, 배경과 장치 등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렀던 시각예술은 이제 공연의 분위기를 만드는 수준을 넘어, 작품의 해석을 바꾸고 장르의 언어 자체를 새로 쓰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전시와 공연의 경계를 허물며, 오페라 무대는 거대한 캔버스가 되고, 안무의 개념에도 근원적 질문을 던지며, 전통에는 새로운 층위를 더한다. 이번 특집은 예술의 그 순간들을 포착한다. 기악·오페라·무용·전통예술이라는 서로 다른 장르를 따라가며, 무대 위에서 ‘보는 것’과 ‘듣는 것’, ‘움직이는 것’이 어떻게 새로운 예술 경험으로 이어지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총괄 최성혁 기자
1. 기악과의 접속 _송주호·홍예원
2. 오페라와의 접속 _최성혁
3. 무용과의 접속 _한석진·허서현
4. 전통예술과의 접속 _윤중강·유내리
CLASSICAL MUSIC +
기악과 접속한 시각예술
음악과 미술의 공존, 꿈에서 삶으로 이어지다
음악이 예술로 간주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유럽의 경우 18세기만 해도 음악은 교회나 궁정을 위한 실용음악에 가까웠고, 사교와 친목 행위의 일부이기도 했다. 그러다 18세기 후반 옛 거장들의 음악을 소개했던 고트프리트 판 슈비텐(1733~1803)이나, 19세기 초 귀족 앞에서 당당했던 베토벤 덕분에 음악에 대한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고, 19세기 중반에는 음악이 철학에서 논의되기에 이르렀다.
음악이 독립 예술로 자리잡은 후
그 변화는 판을 뒤집는 수준이었다. 쇼펜하우어는 저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1844)에서 “음악은 현실에 제약을 받지 않아 세계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존재할 수 있으며, 이는 다른 예술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음악은 어떤 것도 말하지 않는 추상성을 바탕으로 그 자체로 존재하는 자율성을 획득하며, 이로 인해 다른 예술보다 우위에 선다는 것이다. 이에 큰 감명을 받은 영국의 비평가 월터 페이터(1839~1894)는 한발 더 나아가 “모든 예술은 음악의 상태를 지향한다”고 선언한다.
이것이 과장은 아닌 것이, 다른 예술의 구체성에 의존했던 음악이 ‘뛰어난 예술’로서 독립하자, 다른 예술들도 추상성의 획득으로 기수를 돌렸다. 특히 미술은 19세기 후반부터 인상주의의 모호함, 입체주의의 재구성, 표현주의의 해체 등 추상성을 향해 돌진했다.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는 점·선·면의 근본적 요소에 집중하여 자율성을 추구함으로써 ‘음악의 상태’에 다가가고자 했다. 그의 작품들의 제목이 ‘컴포지션(Composition)’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렇게 추상성을 바탕으로 한 자율성의 획득은 예술의 형이상학적 지위를 드높였고, 정신을 지향하기에 이른다. 총체예술을 지향했던 바그너가 예술종교를 추구하고, 음악 작품에 알쏭달쏭한 시각적 제목을 붙인 사티가 스스로 사제를 칭하며, 칸딘스키가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1911)라는 책을 쓴 것은 단순히 신비주의에 빠진 것이 아니라, 역사의 부름에 대한 응답이었다.
화음(畵音)챔버오케스트라의 노력
20세기 중엽 이후 예술은 실험적 융합으로 치달았고, 백남준과 같이 추상성의 시너지를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감상자들의 감상 습관은 이를 따라가지 못했고, 예술과 대중의 거리는 눈에 띄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예술가들은 예술의 역사적 흐름을 거부할 수는 없었으나, 그만큼 동시대인과 공감하려는 미적 의지 또한 강렬해져 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음악과 미술의 만남은 하나의 돌파구가 되었다. 그들의 만남은 공감각적 인상을 통해 감상을 구체화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존은 예술이 추구했던 꿈 같은 이상을 삶의 현실로 이끌어 주었다. 자칫 미술의 공간적 내러티브를 왜곡하거나, 음악의 시간성과 추상성을 훼손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신중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이러한 공존이 각 예술 장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몰입을 돕는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이러한 작업을 선도해 온 연주단체로 화음챔버오케스트라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단체의 이름인 ‘화음(畵音)’에서 알 수 있듯, 그림과 음악의 공존이 바로 이 단체의 설립 이유다. 이는 예술감독 박상연이 말하는 “형이상학적인 예술의 의미를 보다 현실적으로 이해하는 현장”이라는 지향점과도 상통한다.
이들은 1993년 갤러리 음악회를 시작했으며, 2002년부터 미술 작품을 주제로 음악을 위촉하기 시작해 현재까지 240여 곡을 갤러리와 콘서트홀에서 초연했다. 이 과정에서 작곡의 주제를 그림 행위와 영상으로도 확장했으며, 최근에는 미술 작품에 매치된 기존 클래식 음악에 맞춰 영상을 제작하는 능동적인 작업도 시도하고 있다.
미디어아티스트 정연두(1969~)는 최근 음악가에게 작품과 연주를 의뢰하고, 이를 기반으로 영상 작업을 하고 있다. 올해 6월 화음챔버오케스트라는, 그의 영상 작품이 재생되는 가운데 연주할 예정이다.
미술에 음악을 붙이는 차원을 넘어 음악과 미술이 ‘함께’ 작업된다는 점은 매우 특기할 만하다. 이것은 새로운 예술을 찾는 미래적 지향성이자, 한편으로는 모든 예술이 하나로 지각되었던 고대 그리스로의 회귀이기도 하다. 이렇게 역사는 나선형의 시간성으로 발전한다.
글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 ‘TV 첼로’
크기가 다른 세 대의 모니터를 플렉시글라스(투명한 열가소성 플라스틱)에 넣어 쌓고, 첼로 헤드와 테일피스, 현을 붙여 첼로 모양이 되도록 한 비디오 조각이다. 백남준은 1971년 첼리스트 샬럿 무어먼(1933~1991)과의 퍼포먼스를 위해 작품을 처음 만들었다. 초기 ‘TV 첼로’는 무어먼이 실제로 연주를 할 수 있었으며, 현을 켤 때마다 충돌하는 전자음이 만들어졌다.

©화음챔버오케스트라
화음챔버오케스트라 실험 시리즈 ‘다큐멘터리 노스텔지아’
‘화음프로젝트 아카데미’의 대미를 장식하는 실험 시리즈로, 미디어아티스트 정연두의 영상 작품 ‘다큐멘터리 노스텔지아’(2007)를 상영하고, 이에 곡을 붙인 장석진의 음악을 연주했다. ‘다큐멘터리 노스텔지아’는 작가가 삶 속에서 기억하는 여섯 개의 장면을 실제로 구현하고 재현하는 과정을 담은 작품으로 2021년 3월 초연 이후, 미디어아트에 특화된 울산시립미술관의 개관 기념 공연으로 재연됐다. 울산시립미술관, 2022
INTERVIEW
LA에서 장르간 랑데부 실현한
시각예술가 양혜규·지휘자 이얼
윤이상이 꿈꿨던 ‘만남’으로 경계를 허물다

©Owen Kolasinski
시각예술과 공연예술의 차이가 가장 뚜렷하게 느껴지는 지점은 시간과 공간을 다루는 방식일 것이다. 흐르는 시간 속에 음을 쌓아 올린 뒤 이내 휘발되는 음악과 달리, 미술은 물성을 지닌 채 특정 공간에 머물며 존재를 드러낸다. 하지만, 이 두 장르는 때로 서로의 영역을 빌려와 관객의 감각을 넓고 깊게 확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장르 간의 긴밀한 ‘랑데부(만남)’가 지난 3월, 로스앤젤레스의 문화적 요충지인 그랜드 애비뉴에서 구현됐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LA 현대미술관(이하 MOCA)과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이 시각예술과 클래식 음악을 매개로 협업을 진행한 것이다.
블라인드 너머로 흐르는 윤이상의 선율
그 중심에 놓인 윤이상(1917~1995)의 ‘오보에와 하프를 위한 2중 협주곡’(1977)은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일 년에 단 하루 만나는 설화를 바탕으로 한다. 이 곡은 서로 다른 음색의 두 악기가 무대 양 끝에 멀리 떨어진 채 시작해 오케스트라라는 은하수를 건너 만나고, 다시 각자의 길로 흩어지는 극적인 구성을 보여준다. 이처럼 윤이상의 음악이 품고 있는 물리적이고 시각적인 구조는 이번 협업의 단단한 밑거름이 되었다.
베를린과 서울을 기반으로 산업적 재료를 활용한 설치 작업을 선보여온 시각예술가 양혜규는 10여 년간 천착해온 윤이상 연구의 결실인 ‘윤에 따른 엇갈린 랑데부’(2024)를 통해 이 음악적 서사를 공간화했다. 2019년 9~11월에 열린 개인전 ‘양혜규: 서기 2000년이 오면’(국제갤러리)에서 윤이상의 ‘영상’(1968)이 연주되기도 했다. 2024년 10월,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에서의 대규모 개인전 ‘양혜규: 윤년’에서 처음 공개한 뒤 MOCA에서 북미 최초로 선보이는 이번 작품은, 한국의 격동기를 온몸으로 겪어낸 윤이상의 유산을 겹겹이 쌓인 블라인드의 층(Layer)으로 새롭게 해석해낸 결과물이다.
이 시각적 경험은 길 건너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로 이어진다. 한국계 캐나다 지휘자 이얼이 이끄는 LA 필하모닉 뉴 뮤직 그룹은 수석 오보이스트 라이언 로버츠, 수석 하피스트 에마뉘엘 세송과 함께 윤이상의 ‘2중 협주곡’을 선보였다. 이번 프로젝트는 미술관과 콘서트홀이라는 물리적 경계를 허무는 동시에, 50여 년 전 윤이상이 꿈꿨던 ‘랑데부’를 시각과 청각이 융합된 동시대적 감각으로 부활시킨 현장이었다.
이번 전시는 시각예술과 현대음악의 이례적인 만남이다. 윤이상의 음악을 시각화하며 가장 고심했던 지점은 무엇인가?
양혜규 윤이상은 지난 10여 년간 나의 개인적인 연구 화두였다. 그의 음악은 동서양의 단순한 결합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역사적 배경 속에서도 지켜낸 ‘문화적 압축’의 결과물이다. 이번 작업에서는 ‘2중 협주곡’ 특유의 대칭적인 구조와 그 안에 담긴 그리움의 정서를 시각적인 층으로 번역하는 데 집중했다. 블라인드라는 소재는 안과 밖, 보임과 보이지 않음의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든다. 오보에와 하프가 서로를 부르며 소리의 층위를 쌓듯, 시각적으로도 그라데이션과 겹침을 통해 음악적 깊이를 표현하고자 했다.
작품 제목인 ‘엇갈린 랑데부’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나?
양혜규 윤이상의 삶과 음악에는 항상 경계가 존재한다. 서로 반대되는 요소들이 만나는 순간은 완벽한 합일이라기보다, 늘 조금씩 어긋나기 마련이다. 그 어긋남 속에서 발생하는 긴장과 에너지가 바로 ‘랑데부’의 본질이라고 생각했고, 그 지점을 포착하고 싶었다.
길 건너 MOCA에 설치된 양혜규의 작품을 마주하고, 콘서트홀에서 윤이상의 음악을 지휘하는 과정은 어떠했나?
이얼 지휘자의 역할은 악보에 담긴 작곡가의 의도를 최상의 해석으로 재현하는 것이다. 양혜규 작가의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 보이지 않던 소리가 물리적인 무게와 빛을 얻어 공간 속에 머물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사실 윤이상의 음악은 구조적으로 꽤 복잡하지만, 이 설치 작품은 그 속에 숨겨진 ‘관계의 서사’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시각예술이 현대음악의 추상적인 면면을 구체적인 경험으로 안내하는 친절한 가이드 역할을 해준 셈이다.
두 악기가 멀리 떨어져 시작해 중간에서 만나고, 다시 흩어지는 곡의 구조를 블라인드로 어떻게 표현했나?
양혜규 블라인드는 공간을 나누면서도 동시에 연결하는 이중적인 장치다. 겹겹이 쌓인 블라인드 큐브들은 윤이상의 핵심 작곡 기법인 ‘주요음(Hauptton)’이 지닌 울림 및 잔향과 시각적으로 닮아있다. 관람객이 보는 각도에 따라 투명함과 불투명함이 교차하도록 설계해, 두 악기가 은하수를 가로질러 대화하고 소통하는 여정을 공간의 깊이감으로 표현했다.
소리와 형상, 그 틈새의 미학
기악곡이 시각예술을 만날 때 발생하는 장르적 시너지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양혜규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라 흐르고 나면 사라지지만, 미술은 공간 속에 머물며 자리를 지킨다. 관객이 블라인드 사이를 거닐며 시점을 바꾸는 행위는 음악에서 휴지나 전조를 몸으로 겪는 것과 같다. 서로 다른 매체가 부딪히며 생기는 이 ‘엇갈린 랑데부’가 관객에게 감각을 일깨우는 해방감을 선사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2중 협주곡’의 매력을 꼽는다면?
이얼 윤이상은 현대음악의 어법 안에 한국적인 정서와 도교적 철학을 깊이 심어놓은 거장이다. 특히 ‘2중 협주곡’은 음색이 확연히 다른 오보에와 하프가 주인공이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두 악기가 오케스트라라는 거대한 파동 사이에서 서로를 갈구하며 만나는 과정은 지휘자에게도 매우 드라마틱한 음악적 여정이다.
이번 협업에서 LA 필하모닉 뉴 뮤직 그룹과의 호흡은 어떠했나?
이얼 LA 필하모닉 뉴 뮤직 그룹은 새로운 시도에 열려 있는 연주 단체다. 양혜규 작가의 설치 작품이 주는 시각적 에너지를 연주자들이 즉각적으로 소리에 반영하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연주자들 역시 이번 과정을 통해 단순히 음표를 나열하는 것을 넘어, 거대한 예술적 맥락 안에서 연주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현대예술에서 장르 간 경계를 허무는 시도는 왜 중요한가?
양혜규 이제 예술은 하나의 감각에만 머물지 않는다. 시각과 청각, 공간과 시간이 융합될 때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비로소 입체적으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특히 윤이상처럼 복합적인 인물을 다룰 때는 미술관이라는 정적인 공간과 콘서트홀이라는 동적인 공간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이 필수적이었다.
작품과 음악을 접한 관객들이 무엇을 느끼길 바랐나?
이얼 작곡가나 연주자가 메시지를 강요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지휘자는 그저 최선을 다해 악보를 살아있는 소리로 불러낼 뿐이며, 나머지는 온전히 청중의 몫이다. 양혜규 이번 작업은 관객이 블라인드 사이를 직접 걸어 다니며 스스로 시점을 바꾸는 경험이 중요하다. 블라인드가 겹쳐지며 생기는 그라데이션의 변화를 통해, 윤이상의 음악적 서사가 눈앞에 풍경으로 펼쳐지는 순간을 마주하게 되길 바란다.
글 홍예원 기자 사진 MOCA/국제갤러리
이얼(1983~) 한국계 캐나다 지휘자로, 미국 앤아버 심포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진은숙, 토드 마코버 등 동시대 작곡가들과 협업하며 오케스트라 음악의 영역을 확장하는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양혜규(1971~) 산업적 재료를 활용한 다감각적인 설치 작업으로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해 왔다. 2017년부터 프랑크푸르트 국립미술대학교 슈테델슐레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25년부터 베를린 쿤스트베어케(KW) 의장을 맡고 있다.
PERFORMANCE INFORMATION
전시 ‘양혜규: 엇갈린 랑데부’ 2월 24일~8월 2일 미국 로스엔젤레스 현대미술관(MOCA)
REVIEW
LA의 밤을 물들인 두 한국 예술가의 협업
빛과 선율로 만든 오작교

‘윤에 따른 엇갈린 랑데부’(2024) ©Zak Kelley

‘윤에 따른 엇갈린 랑데부’(2024) ©Zak Kelley
프랭크 게리(1929~2025)의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이 뿜어내는 은빛 곡선과 아라타 이소자키(1931~2022)가 설계한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이하 MOCA)의 붉은 사암 외벽이 마주 보는 그랜드 애비뉴는 로스엔젤레스를 대표하는 문화지구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현대미술과 클래식 음악이 공존하는 이 거리에서, 양혜규의 시각적 언어와 윤이상의 청각적 유산이 조우하는 ‘랑데부’가 실현되었다.
비대칭의 균형, 블라인드 사이로 흐르는 추상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윤에 따른 엇갈린 랑데부’(2024)는 윤이상의 ‘오보에와 하프를 위한 2중 협주곡’(1977)을 토대로 한다. 양혜규는 견우와 직녀 설화를 바탕으로 한 이 곡을 시각화하며, 의도적으로 ‘반쪽짜리 다리’의 형태를 취했다. 전시장에서 마주하는 ‘쌍(Doubles)’의 개념-두 연인, 두 개의 스피커와 조명-은 역설적으로 완전한 전체를 이루지 못한 분단 상태를 상징한다. MOCA 수석 큐레이터 클라라 김은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 얽혀 있으면서도 삶의 대부분을 유럽에서 보낸 윤이상의 디아스포라적 면모가, 세계 최대의 한인 공동체가 있는 로스앤젤레스 관객에게도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작품은 두 개의 사이클로 진행된다. 첫 번째 사이클은 1985년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가 지휘하는 자르브뤼켄 방송교향악단과 오보이스트 하인츠 홀리거(1939~), 하피스트 우르줄라 홀리거(1937~2014) 부부가 협연한 ‘2중 협주곡’의 녹음 시간(35분 40초)에 맞춰져 있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조명은 선율에 맞춰 춤추듯 움직이며 빛의 궤적을 그린다. 이어지는 두 번째 사이클은 침묵의 시간이다. 이때 조명은 독립된 생명체처럼 유기적으로 흩어진다.
전시장에는 윤이상의 서사를 담은 신작과 더불어, 미니멀리즘 거장 솔 르윗(1928~2007)의 구조물을 재해석한 양혜규의 ‘솔 르윗 뒤집기 – 1078배로 확장·복제하여 다시 돌려 놓은 K123456’(2015)가 쌍을 이루며 관객을 맞이한다. 동일한 블라인드를 사용했음에도 두 작품의 성격은 대조적이다. ‘솔 르윗 뒤집기’가 엄격하고 체계적인 질서를 보여준다면, ‘윤에 따른 엇갈린 랑데부’는 윤이상의 삶과 분단이라는 형상화하기 어려운 주제를 겹겹의 레이어로 펼쳐 보인다.

이얼/LA 필하모닉 뉴 뮤직 그룹 ©Farah Sosa
윤이상의 거친 선율 사이로 흐르던 화합
해가 저문 저녁 8시, 길 건너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로 향했다. 공연장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건 무대 뒤편에 자리한 파이프 오르간이었다.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이 오르간은 독특한 생김새 덕분에 ‘프렌치 프라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LA 필하모닉 대표 킴 놀테미는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 “음악을 콘서트홀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가두지 않고, 전시장이라는 맥락으로 확장해 사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여는 협업”이라고 설명했다.
연주 전, 양혜규는 관객이 연주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 조명 작업을 곁들였다. 객석의 불이 꺼지고 정적이 내려앉자, 무대 위로 두 줄기의 강렬한 서치라이트가 교차했다. 조명은 처음부터 합쳐지지 않고, 무대 양 끝을 더듬으며 서로의 궤도를 탐색하듯 느릿하게 유영했다. 빛은 빗소리, 천둥소리와 함께 가늘게 떨리며 불안감을 조성하다가도 어느 순간 길게 뻗어 나가며 건너편의 빛에 닿으려 애썼다. 관객은 이 ‘시각적 서곡’ 덕분에 복잡한 음의 층위 속에서도 두 악기가 서로를 향해 나아가는 ‘랑데부’의 여정을 따라갈 수 있었다.
윤이상의 ‘오보에와 하프를 위한 2중 협주곡’은 그가 평생을 매달렸던 주제인 ‘화합과 합일’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으로, 작품 속 오보에와 하프는 각각 견우와 직녀를 상징한다. 곡 초반, 두 악기는 오케스트라의 거친 파열음 사이로 애틋한 선율을 띄우지만, 쉽게 만나지 못한다. 지휘자 이얼은 이 지점에 주목해 독주자들을 무대 양 끝 뒤편에 배치했다. LA필 수석 오보이스트 라이언 로버츠와 수석 하피스트 에마뉘엘 세송은 연주가 전개됨에 따라 점차 무대 중앙으로 이동했고, 마침내 서로를 향해 합쳐졌다.
곡의 백미는 약 6~7분에 달하는 카덴차. 국악의 농음처럼 음의 떨림을 섬세하게 조절하는 오보에의 비브라토와 은하수의 물결을 그리듯 유려하게 흐르는 하프의 글리산도는 은하수 한복판에서 마주한 두 연인의 긴밀한 대화처럼 들렸다. 연주가 끝나고 기립박수 속에 무대로 오른 양혜규는 이얼, 그리고 두 협연자와 포옹을 나누며 ‘소리와 형상의 랑데부’를 완성했다. 객석 곳곳에서 보이는 한국인 관객들의 모습은 이번 협업의 의미를 더욱 각별하게 만들었다.
로스앤젤레스는 다양한 언어와 문화가 경계 없이 섞여드는, 여러 층위의 삶이 교차하는 도시다. 미술관과 콘서트홀 사이에서 주고받은 두 장르의 긴밀한 대화는 그랜드 애비뉴의 밤을 한층 더 깊고 풍성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글 홍예원 기자 사진 MOCA·LA 필하모닉
이얼/LA필 뉴 뮤직 그룹 (협연 라이언 로버츠·에마뉘엘 세송) 3월 10일 오후 8시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전시 ‘양혜규: 엇갈린 랑데부’ 2월 24일~8월 2일 미국 로스엔젤레스 현대미술관(MO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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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와 접속한 시각예술
연출가의 상상력을 구현하는 거대한 캔버스가 되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오페라 무대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오늘날 신식으로 건축된 극장들은 정교하게 설비된 기계 장치를 통해 회전이나 승강 등 다양한 형태로의 무대 조작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갖췄다. 조명기기는 미세한 단위까지 제어하며 풍부한 색채 표현과 섬세한 빛의 조절이 가능해졌다. 또한, 기술 발전에 따른 미디어의 발달은 영화나 TV와 같은 시각적인 오락 매체를 탄생시키며 대중이 시각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테두리의 전반을 넓히는 역할도 동반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연출가들은 오페라의 음악뿐이 아닌 무대에 나타나는 시각 요소에 점차 비중을 높였고, 이러한 시대의 풍조 속에서 시각예술과 오페라는 자연스럽게 맞닿았다.
시각적 미학을 앞세우는 연출가들의 등장
기존의 오페라 무대 미술은 서사를 보조하는 배경 역할이었지만, 점차 오페라 무대를 거대한 캔버스 삼아 시각적인 미학을 앞세우는 연출가들이 등장하게 됐다.
로메오 카스텔루치(1960~)는 군더더기를 덜어낸 무대에 상징적인 조형물이나 출연자의 특수한 행위를 내세우며 서사를 이끈다. 그가 빚는 무대 전반은 미니멀하지만, 도발성으로 가득하여 관객의 시선을 끌곤 한다. 흑과 백의 색채 대비를 통해 물들어가는 군중을 잉크로 뒤덮는 파리 오페라 ‘모세와 아론’(2015)의 연출은 그의 도발성이 가장 잘 드러난 무대다.
스테파노 포다(1973~)는 배경 설정을 배제하고 현실과 떨어진 무대를 선보인다. 거대한 큐브 형태의 궤를 바탕으로 기하학적인 문양과 상징물로 무대 전체를 뒤덮으며 시각적인 압도감을 선사한다. 한국에서도 국립오페라단 ‘안드레아 셰니에’(2015), ‘보리스 고두노프’(2017), ‘나부코’(2021·2023)의 연출가로 참여한 바 있다.
미술가와 오페라 연출가를 겸하는 아힘 프라이어(1934~)는 그의 작풍을 미술과 오페라에 동일하게 드러낸다. 특유의 원색적인 색감과 거친 터치, 과장된 표현이 의상과 소품에 반영되며 기괴한 동화와 같은 심상을 불러일으킨다.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07) 초연 연출에 그러한 특성이 잘 나타난다.
영상 예술 분야로 유명한 윌리엄 켄트리지(1955~)는 그가 연출하는 무대에 필름 몽타주와 같은 방식의 영상을 배경에 덧입히며 무대의 역동성을 높인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보체크’(2017)가 유명하다.
한편, 오페라는 서사와 화면이 공존한다는 점에서 영화와도 공통분모를 가지는데,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연출한 영화감독 프랑코 제피렐리(1923~2019)는 오페라 연출가로도 유명하다. 그의 영화는 전반적으로 화려한 세트로 장식되는데, 오페라 연출에도 이런 특성을 반영한 풍부한 볼거리를 자아낸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20세기에 초연된 ‘투란도트’를 비롯한 그의 여러 프로덕션은 지금도 무대에 오르고 있다.
영화감독이 오페라 연출에 도전하는 사례는 꾸준히 등장하고 있는데, ‘연인’ ‘황후화’ 등 중국 사극 영화로 유명한 장이머우(1950~)는 자금성에서 ‘투란도트’ 야외 공연(1998)을 선보였고, 영화 ‘리플리’ ‘콜드 마운틴’의 감독인 앤서니 밍겔라(1954~2008)가 말년에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연출한 ‘나비부인’(2006)은 올해 1~3월간 재상연됐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감독 소피아 코폴라(1971~)도 ‘라 트라비아타’(2016)로 오페라 연출에 데뷔했다.
오페라는 지금도 움직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시각예술의 비중이 높은 여러 무대에 대해 ‘보이는 것’에 치중한 나머지 극적인 이해나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의견을 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자명한 사실은 4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오페라가 지금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상기 언급된 사례를 포함한 수많은 시도는 관객 개개인의 호불호를 떠나, 오페라가 꾸준히 사회의 흐름과 함께 움직일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되짚어 보면, 400여 년의 세월 중 오페라 무대에 지금과 같은 변화가 나타난 시기는 아직 2할이 채 되지 않는다. 결국 필연적으로 마주쳐야 했을 하나의 과정일 수도 있고, 영원한 대세라는 보장도 없는 것이다. 이런 시류에 대한 논쟁은 지속될 수밖에 없겠으나, 그 가운데에서도 오페라는 지금까지 그래 왔듯, 꾸준히 나아갈 것이다.
글 최성혁 기자
시각예술이 더해져 더욱 빛난 무대

바그너 ‘신들의 황혼’(2013) ©Nationaltheater Mannheim/Hans Jörg Michel
아힘 프라이어 ‘헨젤과 그레텔’ 외
오페라계의 피카소라 불리는 프라이어는 추상화 같은 무대로 유명하며, 전반적으로 강렬하고 원색적인 색감과, 다소 난폭하고 과장된 듯한 굵은 선의 사용이 눈에 띈다. 거대 가면의 사용은 그의 연출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요소다. 그의 미술 작품과 비교해 보면 캔버스 위의 형상이 온전히 무대에 재현된 듯한 인상을 준다. ———베를린 슈타츠오퍼, 2017 외

훔퍼딩크 ‘헨젤과 그레텔’(2017) ©Monika/Rittershaus

진은숙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07)

아힘 프라이어 ‘BILDER’ ©Burghard Engel

아힘 프라이어 ‘Light Shadows and Ring Processions’

©KNO/Piljoo
스테파노 포다 ‘나부코’
베르디(1813~1901) 오페라 ‘나부코’는 성서에 등장하는 바빌로니아의 왕 나부코도노소르의 이야기를 바탕으로한 작품이다. 포다는 바빌로니아인과 유대인을 각각 적색과 백색의 강렬한 대비로 표현했으며, 유대인들이 탄압받던 민족이라는 점에 착안해 소녀상의 형상과 같은 한국의 역사적 요소를 활용해 낸 점이 눈에 띈다.
———국립오페라단, 2021

©KNO/Piljoo
윌리엄 켄트리지 ‘보체크’
베르크(1885~1935) 오페라 ‘보체크’는 궁핍하고 괴로운 삶을 이어가는 군인 보체크에게 벌어지는 암울한 비극을 그린 작품이다. 켄트리지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착안한, 암울하고 기괴한 이미지를 몽타주 형식으로 무대에 배치하여 이 오페라의 폭력성과 잔혹함을 부각하는데, 그 위로 덧입혀지는 영상 프로젝션은 무대 효과를 극대화한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2017

©Salzburg Festspiele/Ruth Walz
로메오 카스텔루치 ‘모세와 아론’
쇤베르크(1874~1951)가 유작으로 남긴 오페라 ‘모세와 아론’은 성서 중 출애굽기(탈출기)에 픽션을 가미한 오페라다. 카스텔루치는 흑과 백의 대비를 이용해 아론과 유대인들이 금송아지를 숭배하며 광기에 차는 모습을 검은 잉크에 뒤덮이는 형태로 묘사한다. 계시를 듣고 돌아온 모세만이 순백으로 나타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본 무대는 일말의 희망을 비추는 3막을 과감히 제외하고 절망 속에 끝맺는다. ———파리 오페라, 2015

© Javier del Real
프랑코 제피렐리 ‘투란도트’
푸치니(1858~1924) 오페라 ‘투란도트’는 중국 베이징을 배경으로 하며, 동양을 향한 이국적 환상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제피렐리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1987년에 초연한 ‘투란도트’는 원작에 충실한 채,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웅대함의 극한을 끌어낸다. 초연 이래 현재까지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대표하는 프로덕션으로 자리하고 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2024

©Karen Almond
INTERVIEW
연출가 박종원
영화 스크린과 오페라 무대의 접점 살리기

‘구로아리랑’(1989)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92)으로 잘 알려진 영화감독 박종원이 올해 국립오페라단 ‘베르테르’를 통해 첫 오페라 연출에 도전한다. ‘베르테르’는 괴테(1749~1832)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원작으로 하는 마스네(1842~1912)의 오페라로, 베르테르가 이미 약혼한 상태인 샤를로트를 사랑하게 되며 돌이킬 수 없는 파국에 휘말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머릿속 상상과 마음의 심경을 ‘시각화’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낀다고 밝히며, 오페라를 ‘훌륭한 예술’이라고 표현했다. 영화를 연출하던 시선은 어떠한 연결점을 통해 오페라로 향할 수 있었을까?
기존에도 오페라 연출에 관심이 있었나?
오페라를 비롯한 공연예술 전반에 관심이 있었는데, 특히 오페라는 음악 연주와 목소리를 통해 서사를 만들고, 관객에게 실시간으로 전달한다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인 장르라고 느꼈다. 오래전부터 기회가 닿을 때마다 오페라를 관람하기도 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재직 중에 음악계 관계자와 접할 기회가 많았는데, 이런 경험이 공연 현장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높였다.
영화와 오페라의 연출이 갖는 공통점과 차이점은?
영화와 공연예술 모두 시청각 요소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맥락을 가진다. 그것을 직접적으로 비출지, 상상으로 발휘할 영역을 남길지를 정하는 영역의 차이다. 또한, 영화는 등장인물과 시각 요소를 통해 내러티브를 형상화하는데, 오페라도 본질은 동일하지만, 영화는 인물과 사건의 심리 진행이 긴장을 자아내고, 오페라는 음악이 흐름의 중심이라는 차이를 가진다. 때문에, 영화를 연출하는 기초 설계의 틀을 오페라에 적용할 경우 악보에 표기하고 설명해야 한다. 이런 차이를 상쇄하기 위해 등장인물의 동선을 모의로 그려낸 도면을 성악가들의 연습 과정에 참조 자료로 미리 전달했다. 이 과정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악보 읽는 법을 익히고 외국어 발음에 익숙해지기 위한 노력도 필요했다. 연출을 본격적으로 준비한 순간부터는 여러 오페라 실황 영상과 리브레토를 참고하며 연주·연기·동선 등을 비교했다. 결론적으로 극 중 부여되는 수많은 정보와 눈으로 볼 수 없는 인물의 정서를 이미지에 담아내는 것이 연출의 핵심이었는데, 이는 영화 연출과도 상통하는 부분이었다. 결국 인물들 간의 관계가 극의 본질이며, 배역 간의 앙상블이 극적인 효과의 주요소이다.
‘베르테르’ 연출에서는 무엇에 주안점을 두었는가?
제목은 베르테르지만, 사실 변화와 갈등의 여정을 수시로 겪는 인물은 샤를로트다. 이상을 좇는 베르테르와는 달리 가정적, 사회적 책임을 지닌 샤를로트의 운명적 갈등이 중요한 서사라고 생각하여, 이 부분을 확실하게 그려내려 했다. 일례로, 두 사람의 깊은 심리를 드러내는 순간에 무용수로 그들의 아바타를 표현하여 아리아의 애절한 감동을 시각화하도록 노력했다.
앞으로도 연출하고 싶은 작품들은 없는가?
아직 특정 작품을 택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오페라가 그렇듯 남녀상열지사가 서사의 바탕을 이루는데, 그 안에서도 여러 심리적인 요소를 면밀하게 다루는 작품을 다뤄보고 싶다. 복잡한 내면의 흐름을 무대로 표현할 시청각 요소들을 끄집어낸다면 충분히 대중적인 공감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시각예술과 오페라의 접속에 대한 의견이 있다면?
시각적 요소는 효율적으로 관객의 감흥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잘 활용하면 관객들에게 효과적인 흥미 요소를 부여할 수 있다. 다만, 오페라 본연의 가치가 음악이라는 점은 잊지 말아야겠다. 시각적 요소가 그 본질을 뛰어넘는 양상은 경계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글 최성혁 기자
박종원(1960~) 한양대 연극영화과 졸업 후 한국영화아카데미 제1기를 수료했으며, 샌프란시스코 예술대학교에서 석사 졸업했다. 1989년 ‘구로아리랑’으로 데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청룡영화상·백상예술대상, ‘영원한 제국’으로 대종상·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수상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제6대 총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영상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PERFORMANCE INFORMATION
국립오페라단 ‘베르테르’ 4월 23~26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홍석원(지휘)/국립심포니/이범주·김요한(베르테르), 정주연·카리스 터커(샤를로트), 노동용·조병익(알베르), 문현주·홍혜인(소피) 외/박종원(연출)
DANCE+
무용과 접속한 시각예술
춤의 창작 파트너를 넘어, 장르의 재정의를 돕다
무용의 역사에서 시각 예술가의 역할은 무대 배경을 제작하는 것이었다. 시공간적 배경을 표현하거나 허구적 세계에 실재감을 더하는 등 무용의 서사를 뒷받침하는 보조적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20세기에 이르러 배경막 수준이 아닌 무용의 이미지 또는 감정을 표현하는 독립적인 장치로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발레 뤼스의 안무가 레오니드 마신(1896~ 1979)과 파블로 피카소(1881~1973)가 함께 작업한 ‘퍼레이드’(1917)에서 피카소는 기하학적으로 해체된 도시 이미지를 구현하는 동시에 무용수가 구조물로 장식된 의상을 착용하도록 하여 움직이는 배경을 만들어냈다. 조각가이자 공간 디자이너인 이사무 노구치(1904~1988)는 현대무용의 어머니인 마사 그레이엄(1894~1991)의 작품 속 캐릭터의 내면을 상징적으로 시각화하여 무대 공간으로 인물의 심리적 풍경을 그려냈다.
종합예술인 무용에서 타 예술 장르가 무용을 위해 존재했다면, 머스 커닝햄(1919~2009)은 무용과 타 예술 간의 수평적 관계를 전면화하였다. 존 케이지의 음악과 로버트 라우션버그의 무대는 커밍햄의 무용에 맞춰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작품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만 주어진 채 무용과 개별적으로 창작되었고, 공연에서 무용·음악·무대 디자인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였다. 무용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을 이끈 저드슨 댄스 시어터의 안무가들은 도날드 저드·로버트 모리스와 같은 시각 예술가가 추구하는 미니멀리즘 미학을 공유하고 있었다. 미니멀리즘이 말하는 객체성을 추구하면서 춤이 무엇을 재현하는 것이 아닌 그 자체로 존재하도록 하였다. 12개의 낡은 매트리스와 상호작용하는 31개의 일상적 동작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이본느 레이너(1934)의 작품 ‘어떤 6중주의 부분들’(1965)에서는 라우션버그·모리스를 포함한 여러 예술가가 참여하여 노동하는 평등한 몸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안무가 빌 T. 존스(1952~)와 디지털 미디어 아티스트 셸리 에스카·폴 카이저의 협업작 ‘고스트캐칭’(1999)은 디지털 무용의 시작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작품이자 ‘안무가’의 개념을 재정의한 실천이었다. 존스의 움직임을 모션캡처로 포착하고 그의 신체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상무용수의 움직임을 새롭게 구성한 이 작품에서 안무 개념은 물리적 움직임뿐 아니라 가상공간 속 다시 체화된 움직임 구성까지 포괄하게 된다.
춤을 위한 새로운 공간, 미술관
2000년대에 들어서 무용과 시각예술의 조우는 또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안무가들은 시각 예술가의 협업을 통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시각예술의 제도권 내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발레의 엄격한 문법을 급진적으로 해체한 컨템퍼러리 발레 안무가 윌리엄 포사이스(1949~)는 ‘무용’과 ‘안무’를 분리하고, 안무적 사고가 구현되는 장소로서 인간 신체가 아닌 사물을 제안한다. 포사이스는 관객이 움직이면서 운동감각을 경험하는 설치 작품 ‘안무적 사물’들을 선보였다.
현재 리움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3.3~6.28)을 열고 있는 티노 세갈(1976~)은 인간에 체화된 경험을 바탕으로 ‘살아있는 조각’을 창작한다. 작품을 언제든 관람할 수 있는 미술계의 전통을 따르지만 동시에 촬영·녹음·도록 제작을 금지하는 등 물리적 흔적을 남기지 않는 ‘퍼포먼스’의 본질적 성격을 유지함으로써 미술의 제도적 맥락을 거부한다. 보리스 샤르마츠(1973~)는 ‘만약 테이트 모던이 무용 박물관이라면?’(2015)을 기획하면서, 무용이 전시된다면 그것은 공연 후 남은 흔적 또는 박제물이 아니라 체화된 유산이자 기억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살아있는 몸의 역사를 재현하였다.
올해는 10년 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지난 3월 12일에 개관한 퍼포먼스·미디어 아트 중심의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금천구 독산동)이 다양한 안무가의 작업을 선보일 예정이다. 무용가와 시각 예술가의 독자적 세계가 만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작업부터 무용가가 미술계에 침투하여 미학적, 제도적 규범을 깨뜨리는 시도까지 2026년은 무용과 시각예술의 조우가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경험할 수 있는, 놓쳐서는 안 되는 특별한 해임이 분명하다.
글 한석진(무용연구자·비평가)
시각예술이 더해져 더욱 빛난 무대
레오니드 마신·파블로 피카소 ‘퍼레이드’
디아길레프가 세운 발레단 ‘발레 뤼스’는 무용이라는 종합 예술 아래 당대의 유망한 예술가들을 모아들이는 힘이 있었다. 그러니 이 단체의 안무가 레오니드 마신(1896~1979)의 혁신작 ‘퍼레이드’에 피카소(1881~1973), 에릭 사티가 함께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 작품은 1917년 전쟁 중이던 파리의 샤틀레 극장에서 초연됐다. 3차원의 조각 의상은 발레에 색다른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폼페이 대극장, 2017

©Luciano-Romano
머스 커
닝햄·라우션버그 ‘서머스페이스’
이 작품의 음악을 쓴 작곡가 모턴 펠드먼은 머스 커닝햄(1919~2009)과의 작업 과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딸의 웨딩드레스가 결혼식 당일 아침에야 완성된다고 가정해 보라. 그런데 만약 그 드레스가 디올 제품이라면?” 불안함을 견디고 흔쾌히 당일에 드레스 수령을 하고 싶어질지도. 머스 커닝햄은 공연 전까지 안무와 무대, 음악을 개별적으로 작업해 합쳤다. 이 독특한 협업 방식에도 그와 오래 작품을 선보인 화가 라우션버그(1925~ 2008)의 점묘화 기법 의상이 두드러지는 이 작품은 1958년 초연됐다.
———뉴욕 시티 발레, 2019

©Julian Gabriel Richter
윌리엄 포사이스 ‘검은 깃발’
안무가 본인의 말에 따르면 “본능적으로 위협적이면서도 매혹적이고, 섬뜩하면서도 경이로운” 작품. 8톤에 달하는 판 위에 고정된 산업용 로봇은 기계 소음을 내며 13m 반경까지 움직이는 거대한 검은 깃발을 움직인다. 움직임의 방식은 다양하다. 사람이 수행할 수 없는 규모의 움직임, 그러나 그 깃발 사이의 공기까지 느끼는 것이 이 ‘안무가의 작품’ 감상법.
———가고시안 갤러리, 2014
보리스 샤르마츠 ‘만약 테이트 모던이 무용 박물관이라면?’
무용이라는 공연예술이 만약 시각예술의 형태로 ‘전시’된다면 어떨까. 런던의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에서 이틀간 그 상상을 실현해 본 작품. 무용 박물관이 된 테이트 모던엔 무용 작품의 사진이나 영상이 걸리지 않았다. 대신 90여 명의 무용수들이 공간을 채웠고, 이들은 홀로 추거나 함께 추며 춤이 그곳에 존재하도록 했다. 무용과 시각예술이 만나, ‘춤추는 박물관’이 탄생한 순간. ———테이트 모던, 2015

©Hugo Glendinning

©Hugo Glendinning
PREVIEW
웨인 맥그리거 ‘인프라’
‘그래픽 인간’이 그려내는 휴먼 드라마

©ROH/Bill Cooper
느리게 흐르는 막스 리히터의 음악 위로, 무대를 가로지르는 18m의 LED 스크린에 익숙한 미디어 작품이 보인다. 서울스퀘어 미디어파사드로 익숙한 줄리언 오피 특유의 ‘걷는 사람’ 이미지다. 컴퓨터로 이미지를 단순화해 얻은 이미지는 몇 개의 선과 모양만으로 인간을 그려낸다. 경쾌하고 익숙하면서도, 현대인의 익명성이 비친다. 특히 걷는 이미지의 반복은 도시의 분주함 아래 숨겨진 인간의 이면을 건드린다.
웨인 맥그리거는 이 미디어아트를 두고 라틴어로 ‘아래’를 뜻하는 제목의 안무작, ‘인프라’를 만들어냈다. 맥그리거(1970~)가 상주 안무가로 있는 로열 발레에 의해 2008년 초연된 작품으로, 12명의 무용수가 솔로·듀엣·앙상블 등 다양한 형태의 안무를 선보인다. 마치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사람의 눈빛에서 알 수 없는 슬픔을 얼핏 읽었을 때처럼, 이들의 고도화된 발레 안무는 일상의 순간과 겹치며 섬세한 감정을 표현한다. 컴퓨터로 도식화된 ‘그래픽 인간’의 전시가, 인간의 몸을 타고 흐르는 감정을 어떻게 드러내는지 경험할 수 있는 공연이다.
나와 코헤이 X 다미앵 잘레
춤추는 몸을 실시간으로 빚어내는 연금술

©Rahi Rezvani

©Rahi Rezvani
일본의 조각가 나와 코헤이(1975~)와 벨기에 출신의 안무가 다미앵 잘레(1976~)의 만남은 시각예술과 무용의 물성을 직접 활용한 방식 중 가장 화제다. 2015년 첫 협업작 ‘베셀’을 시작으로 ‘플래닛[방랑자]’(2021) ‘미라지’(2025)까지, 두 사람이 만나 만들어낸 퍼포먼스의 언어는 분명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박제된 사슴에 크리스털 구슬을 붙여 만든 ‘픽셀 시리즈’로 유명한 나와 코헤이의 작업 방식은 움직이는 무용수의 몸에 고체·액체·기체 등의 다양한 물성이 닿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확장된다. 마치 무용수가 실시간으로 조각되는 것 같아 보이기도, 또 동시에 해체되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특히 오는 6월, GS아트센터에서 선보일 ‘플래닛[방랑자]’는 행성 위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모래와 연기, 밀랍 등의 불안정한 물질들. 여덟 명의 무용수는 그 물질 사이에서 태어났다, 방황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다미앵 잘레는 예테보리 오페라 댄스 컴퍼니 내한에서 2017년 ‘스키드’, 2023년 ‘카이츠’로 알려진 바 있다. 긴장감 넘치는 움직임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면, 이번엔 느리지만 파격적인 움직임으로 신선함을 자아낼 듯하다.
28일에는 두 사람의 협업 작품 ‘픽셀’ 시리즈 일부인 ‘프리즘’을 쇼케이스 형태로 선보인다. 관객이 무대를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관람하는 특별한 방식이다. 댄스 필름 ‘미스트’(2022)도 상영된다. 두 사람이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 1과 협업한 작품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푸마토 기법을 떠올리게 하는 흐릿한 이미지 사이로 무용수들의 신체가 새로운 질감으로 다가오는 영상이다.
글 허서현 기자
PERFORMANCE INFORMATION
국립발레단 ‘더블빌_맥그리거&테틀리’ 5월 8~10일 GS아트센터 ‘인프라’ 웨인 맥그리거(콘셉트·연출·안무), 막스 리히터(음악), 줄리언 오피(무대) ‘봄의 제전’ 글렌 테틀리(안무), 스트라빈스키(음악), 나딘 베일리스(무대·의상)
나와 코헤이 X 다미앵 잘레 ‘플래닛[방랑자]’ 6월 24~26일 GS아트센터 특별 쇼케이스 ‘프리즘’ 6월 28일 오후 3·7시 GS아트센터 댄스필름 ‘미스트’ 6월 28일 오후 5시 GS아트센터
TRADITIONAL+
전통예술과 접속한 시각예술의 역사
소리의 판 위에서 살아 움직이다
돗자리에 앉아 학이 날아가는 병풍만을 배경 삼아 연주하는 것이 국악 공연의 정석이라 알았던 국악인에게, 다양하게 변화하며 삽입되는 영상은 충격 그 자체였다. 한복 색감만으로 무대를 채우던 시절을 뒤로하고, 이후 무대 위에는 점차 오브제와 미장센이 더해지며 시각예술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전통예술과 시각예술, 두 장르는 서로의 영역을 폭넓게 확장하며 공연예술 안에서 서로를 잇는 하나의 ‘교량’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보는 국악’의 연대기적 변천사를 따라가 본다.
1980s 시각적 충격과 무대미술의 인식
1984년, 백남준(1932~2006)의 비디오 아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국악과 시각예술이 만나는 상징적인 출발점이었다. 이 무대에서 황병기(1936~2018)가 가야금 산조를 연주했다.
이후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으로 큰 이목을 집중시킨 ‘바이바이 키플링’은 이러한 시도를 더욱 널리 알려주었다. 뉴욕 라마마 극장에서 황병기가 가야금을 연주할 때 사용된, 이른바 ‘추상화 현대 병풍’에는 김창열·박서보·백남준·이우환이 참여했다. 여기에 재미 인류학자이자 신내림을 받은 채희아의 무속 퍼포먼스가 더해졌고, 그 뒤로 큰무당 김금화(1931~2019)가 보내준 무속 그림이 시선을 끌었다. 이 시도는 국악 공연에서 ‘시각적’ 효과와 무대미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만든 계기였다.

‘바이바이 키플링’ 생방송 클립(1984) ©백남준비디오아카이브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 ©백남준비디오아카이브
1990s 오브제와 공감각, 그리고 아날로그의 미학
1990년대에 들어서며 국립국악원 예악당의 공연도 변하기 시작한다. 한국음악발전연구원(대표 최지혜)은 예악당 무대를 여러 개의 독(옹기)으로 채웠다. 가야금 연주가 지애리는 우면당 무대를 가야금으로 가득 채우기도 했다. 이는 무대 오브제로서도 의미가 있지만 ‘공명’ 효과에도 일조했다. 국악기 특유의 울림이 독과 다른 현악기를 통해 전달되면서, 관객들도 서서히 ‘공감각적’ 경험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 대표적으로 가장 큰 성공 사례는 ‘다악(茶樂, 1998)’이다. 차를 마시며 듣는 음악을 표방한 한국창작음악연구회(대표 김정수)는 여러 공연 속에서 음악을 바탕으로 다도, 서예, 꽃 등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전통음악 기반으로 한 창작음악이 격조 있게 공감을 얻은 자리였다.
2000s 인디와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결합
2005년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는 윤중강의 ‘현무도(絃舞圖)’가 펼쳐졌다. 이예랑, 박우재, 이화연 등 젊은 연주가들이 그림·영상·사진을 보며 자유롭게 연주하는 모습이 관객에게 전달되었다.
그 무렵 2005국악축전에서는 ‘국악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인디 애니메이션 작가 한병아가 프로그래머로 참여해 공명·그림·사계·바이날로그 등 국악계 젊은 그룹의 음악을 애니메이션으로 옮겼고, 이를 국악 축전 현장에서 연주와 함께 선보였다. 수묵화풍의 전통적 화풍부터 팝아트적 느낌까지 다양한 스타일이 애니메이션과 만난 당시, 많은 사람에게 “국악이 젊구나! 국악이 보인다”라며 새롭게 다가갔다.
2010~ 융합의 남발과 비움의 미학
이후 국악과 시각예술의 결합은 점차 확대되었지만, 다소 남발된 경향이 있다. 필연적인 만남이나 무대의 미장센 속에서 의미를 갖기보다, 만남을 위한 만남이나 융합을 위한 융합도 많았다.
정가악회가 만든 ‘평롱’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주목할 만한 사례다. 전통음악을 비롯한 무형유산을 기반으로 한 공연인데, 클래식한 서울과 모던한 서울의 이미지를 동시에 집어넣었다. 영상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었으나, 남산국악당이 마치 작은 형태의 아이맥스 영화관처럼 변했다. 작은 공간에서의 현란한 영상 움직임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이 공연은 ‘국악과 시각예술’이 만난 역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다.
국악과 무대미술의 접목은 여러 작가에 의해 여러 방식으로 시도되었는데, 그중 단연 박동우를 꼽는다. 그는 국립국악원의 주요 브랜드 공연의 미술 및 연출을 맡았다. 그간 여타 작업이 불필요하게 눈을 자극하지 않고 전통음악의 본질을 잘 볼 수 있게 하는 무대미술이었다면, 박동우에게는 특유의 수리적인 개념과 철학적 사고가 밑바탕에 깔린 ‘비움의 미학’이 존재했다.
시각과 소리의 공존

신박서클X나승열 ‘들어·보다’ ©나승열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펼쳐진 신박서클(신현필·박경소·서영도·크리스티안 모란)과 사진작가 나승열의 협업도 빼놓을 수 없다. 나승열은 재즈와 국악 등 공연 현장에서 연주자의 순간을 포착해 온 포토그래퍼다. 2019년 서울 남산국악당 기획의 ‘남산컨템포러리-들어·보다’는 제목처럼 사진(보는 예술)과 음악(듣는 예술)을 결합했다. 나승열이 직접 무대 연출과 구성을 맡아, 렌즈로 포착한 아티스트의 찰나를 무대 위 영상으로 투사했다. 그 위에서 신박서클의 즉흥 연주와 신곡이 이어지며 시각과 소리가 동시에 작동하는 경험을 만들어냈다.
이희문의 공연도 또 다른 방식의 시각적 접근을 보여준다. 2016년 서촌공간 서로에서 선보인 ‘깊은 사랑’에서 과거의 음반이나 사진 자료를 영상으로 활용해 무대의 일부로 제시했다. 보통 이런 공연을 ‘토크 콘서트’라고 분류하지만 필자는 ‘아카이빙 콘서트’라고 부른다.
미래를 위한, ‘설멋진’ 융합을 넘어
이제는 ‘투머치’를 경계해야 할 때다. 때론 맥락 없이 남발하는 지금의 추세라서다. 옛 국악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른바 ‘설멋진’ 경우다. 무조건 넣기보다는 어떻게 배치할지 연구해야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필요조건이 있다. 첫째, 장르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져야 한다. 음악과 미술 등이 각자 제 할 말만 하며 따로 노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둘째, 21세기의 감각으로 ‘한국적 정서의 시각화’라는 공통분모를 마련하는 것이다.
시각예술은 실제 ‘없어도 되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있어야 할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가장 명심해야 할 것은 ‘오버’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많은 협업에서 이것을 간과하고 있다. 앞으로 ‘소리의 공간화’를 신중하게 생각하면서, ‘덜어냄의 미학’이 절실하다.
글 윤중강(음악평론가)
INTERVIEW
소리꾼 이희문 · 무대미술가 여신동
‘소리’와 ‘시선’으로 오감을 증폭시키다
이희문 이름 앞에 붙는 ‘소리꾼’은 보통 대중이 떠올리는 이미지와는 결이 다르다. ‘국악계의 이단아’ ‘전통을 재창조한 괴짜’라는 숱한 수식이 따라붙는 이유다. 민요 록밴드 ‘씽씽’, ‘오더메이드레퍼토리’ ‘잡(雜)·쾌(快)·탐(貪)’ 등 시리즈를 거치며 그는 전통 음악의 외연을 시각적으로 확장했다. 이희문이 선보이는 무대는 더 이상 소리를 담는 그릇이 아니라, 감각을 총체적으로 구성하는 하나의 장터로 기능한 것이다.
그가 진행하는 협업에서 드러나는 핵심은 서로 다른 예술 언어가 만날 때 생기는 ‘예상 밖의 오감’이다.
이희문컴퍼니가 내놓은 신작, ‘남창전집’은 경기소리에서도 백미로 꼽히는 노랫가락의 평시조와 창부타령의 장형시조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2022년 ‘강남오아시스’에서 협작했던 무대 연출가 여신동과 재회해 두 번째로 호흡한 작품이다. 텅 빈 무대 위에서 음과 빛이 얽혀 점차 채워지는 여신동의 연출은, 긴 호흡을 가진 소리를 시각적인 흐름으로 번역할 예정이다. 여기에 경기민요의 젊은 남성 소리꾼 이채현과 정준필이 합류한다.
‘강남오아시스’(2022) 이후 두 번째 협업이다. ‘남창전집’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작업했나?
이희문 ‘강남오아시스’는 내 유년 시절과 노래를 담은 작업이었기 때문에 이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었다. 무대에서 풀어내고 싶은 것들을 이야기하면 여신동 작가는 정확히 이해하고 무대와 조명으로 구현해 몰입도를 높여준 기억이 난다. 전통예술에서는 극단적인 표현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 편인데, 여신동 작가는 이 특징을 잘 이해하면서도 과감하게 표현할 줄 안다. 무대 위의 공간과 이미지가 달라지면, 그 안에 서 있는 나 또한 다른 소리를 내게 될 것이라고 느낀다.
여신동 이희문의 소리는 물성이 굉장히 강하다. 바람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깊은 물결처럼 다가오는 게 특징이다. 소리가 흐를 수 있는 여백과 방향을 잡는 게 중요하며, 공간·조명·이미지 등 서로의 언어가 자연스럽게 겹치는 지점을 찾는 것이 핵심이었다. ‘남창전집’에서는 전통 남창의 소리를 오늘날 무대 언어 안에서 경험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과제인 터라, 소리의 질감과 과거와 현재를 또렷하게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근 공연예술에서는 시각예술 매체가 적극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공연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나?
여신동 기술과 시각 매체의 활용 자체가 공연의 본질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공연의 감각을 어떻게 확장하느냐’다. 시각 매체는 공연 경험을 풍부하게 만드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과도하게 사용되면 오히려 핵심을 흐릴 수도 있다. 앞으로 공연예술은 기술의 발전과 함께 더욱 다양한 형태로 확장되겠지만, 중요한 것은 무대 위에서 순간 일어나는 경험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희문 시각예술의 적극적인 활용은 관객에게 오감을 작동시키는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가고 있다. 공연예술은 결국 ‘순간의 예술’이기 때문에, 그 순간에 감각이 깨어나고 확장되는 경험 자체가 중요하다.
양손프로젝트를 비롯해, 뮤지컬 ‘빨래’, 연극 ‘목란언니’ ‘가까스로 우리’, 밴드 혁오와 장기하 등 다양한 장르에서 무대미술·연출을 맡았다. 무대를 설계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여신동 무대미술은 ‘공연이 머무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내가 먼저 떠올리는 건 시간의 흐름과 감각의 밀도다. 배우의 몸과 소리, 빛과 시간, 그리고 관객의 시선이 한 공간 안에서 서로 스치고 겹치며 하나의 경험을 만들어내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배우의 움직임이 어떻게 공간을 가르고 지나가는지, 소리가 공기에서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 관객의 시선이 어디에서 머물고 어디로 이동하는지 상상한다.
국악 공연의 무대 작업은 어떤 방식으로 설계하나?
여신동 나는 전통적인 형식을 그대로 재현하려 하지는 않는다. 다만 전통 공연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철학인 ‘판’의 감각은 무대 안에 살아 있기를 바란다. 판은 사람들이 모여 소리와 몸이 만나며 공연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상태다. 그래서 관객이 자연스럽게 들어와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 무대는 장면을 보여주는 곳이라기보다 소리와 사람, 관객의 감각이 함께 만나 하나의 판이 만들어지는 환경이어야 한다고 본다.
‘남창전집’에 사용되는 평시조와 창부타령의 장형시조 등을 무대 공간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참고하거나 영감을 받은 자료·요소가 있었나?
여신동 특정한 시대의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재현하기보다는, 소리의 질감과 시간의 길이에서 출발했다. 평시조와 장형시조는 특히 긴 호흡을 가진 음악이다. 그 흐름이 공간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를 바랐다.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전통 공연 기록뿐 아니라 자연의 풍경이나 빛의 변화 등도 많이 참고했다. 천천히 움직이는 구름이나 물결, 혹은 하루 동안 조금씩 달라지는 빛의 방향처럼, 느리지만 분명하게 흐르는 시간의 감각이 이번 무대를 상상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소리꾼 이희문에게 ‘소리’는 몸과 무대까지 포함된 예술로 보인다. 더 나아가 무대 외에 의상·조명·색조·화장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시각적 이미지에 많은 재미를 담을 것 같다.
이희문 물론이다. 내가 하는 소리도 어떤 공간과 무대에서 하느냐에 따라 많은 변화가 생기니까. 같은 소리라도 무대의 구조나 분위기에 따라 다르게 들리고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음악 스타일이나 함께하는 뮤지션에 맞춰 비주얼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의상과 조명, 색감 같은 시각적 요소 역시 소리와 함께 무대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언어다.
깊은 사랑 시리즈 ‘사계축’(2014), ‘한국 남자’(2017) 등 남성 소리꾼의 애환을 다뤄왔다. ‘남창전집’에서는 젊은 경기민요 소리꾼 이채현·정준필이 함께 참여한다. 선배 소리꾼으로서 남창의 흐름이나 계보를 어떻게 보여주고 싶었나?
이희문 굳이 내가 보여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함께하는 이채현과 정준필은 마치 애늙은이처럼 경기민요를 깊이 사랑하는 친구들이고, 어떤 소리꾼들을 동경해 왔는지 스스로의 노래로 자연스럽게 드러낼 것이라 믿으니까. 다만 나는 자리를 내어주고,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갖는 것일 뿐이다. 이 친구들의 소리가 어떻게 보이며 들려질지에 대해 시각적인 연출을 조금 도와줄 뿐이고, 나머지는 각자의 몫이지 않을까?
글 유내리 기자 사진 이희문컴퍼니
이희문(1976~) 국가무형유산 경기민요 이수자이다. ‘씽씽’ ‘오방신과’와 같은 그룹 활동, 타 장르와의 여러 협업으로 전통음악을 활용해 ‘이희문’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드러냈다. KBS국악대상 민요상(2014),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2021) 등을 수상했다.
여신동(1977~)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무대 미술을 전공한 후, 뮤지컬 ‘빨래’의 무대 디자이너로 데뷔했다. 이후 동아연극상 무대미술기술상(2010), 한국뮤지컬대상 무대미술상(2011), 대한민국 연극대상 무대예술상(2012) 등을 수상했다.
PERFORMANCE INFORMATION
‘남창전집’ 4월 15·16일 오후 7시 30분 국립극장 달오름 소리꾼 이희문·이채현·정준필, 전통음악집단 ‘샛’(연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