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템퍼러리 댄스 작품에서 관객들이 안무가의 의도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무대 위에서 표출되는 여러 가지 장면들, 안무가가 펼쳐놓은 각각의 이미지들은, 공연의 중반을 넘어서고 난 시점에 조합해보더라도 그것이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것인지, 지금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좀처럼 선명하게 각인되지 않는다. 홍승엽이 안무한 국립현대무용단의 신작 ‘개와 그림자’ 역시 예외가 아니다. 6월 28~30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필자 30일 관람.
글 장광열(춤 비평가) 사진 국립현대무용단
안무가 시디 라르비 셰르카위가 세 드 라 베 발레단과 함께 만든 ‘믿음’은 미국에서 일어난 9.11 사건을 소재로 만들었다. 이 작품에서처럼 실제로 벌어진 어떤 역사적인 사건을 소재로 춤을 만든 경우 관객들은 안무자의 분명한 메시지를 읽어내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 자샤 발츠가 안무한 ‘The Body’는 제목 그대로 인간의 몸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무용수들의 몸, 인간의 신체를 매개로 엮어낸 안무가의 기발한 상상력이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관객들을 감동시킨다. 이런 류의 작품은 안무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 없이 그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것들을 즐기기만 해도 흥미롭다.
‘개와 그림자’는 후자에 가깝다. 13명 댄서들의 움직임은 무대 전면을 가득 채운 2천 개가 넘는 작은 박스로 꾸며진 엄진선의 무대 미술과 맞물려 70분 동안 이어진다. 안무자가 펼쳐놓은 이미지들은 다양했다. 댄서들이 보여주는 움직임의 조합은 어느 부분에서는 안무가 홍승엽 특유의 감각적인 에스프리로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미지들은 그리 새롭지는 않았다. 안무가에 의해 만들어진 움직임의 조합도 홍승엽의 전작에서 보았던 것과 별반 달라보이지 않았다.
부서진 무대 세트로 인한 공간의 변화, 바닥에 흐트러진 무대 세트의 파편들을 제거하는 무브먼트와 연결된 댄서들의 동선, 공중을 떠다니는 깃털, 빨간색 구두, 밀가루를 연상시키는 백색의 분말들, 검정색 널빤지들, 보통 사람 신장 두 배 크기로 변신한 폭이 넓은 치마를 착용한 댄서와 그 치마의 활용법 등등… 그것들은 여타의 춤 작품 속에서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이미지들이었다.
각각의 댄서들의 특성을 살려내는, 인간의 신체를 매개로 하는 고유의 예술적 특성을 움직임을 통해 음미하지 못한 것 또한 아쉬웠다.
엄진선의 무대 미술은 탁월했다. 2012년 두 명의 안무가 이브기와 흐레번과의 작업 ‘소셜 스킨’에서 보여준 수백 벌의 의상을 조합한 것 못지않게 ‘개와 그림자’에서 수천 개의 박스를 조합한 그의 디자인 감각은 국제무대에서도 경쟁할 수 있을 만큼 손색이 없다. 관객들이 컨템퍼러리 댄스를 통해 안무가에게 기대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예술작업이다. 새로운 컨셉트, 작품을 풀어내는 새로운 아이디어, 그리고 차별화된 움직임의 조합이 그 핵심일 수 있다. 스토리텔링을 전제로 한 대본 없이 60분 이상 길이의 괜찮은 컨템퍼러리 댄스 작품을 만들어내기란 그리 쉽지 않다. 이를 위해서는 스태프들과의 협업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유럽의 유명 안무가들이 음악ㆍ조명ㆍ의상ㆍ무대 미술ㆍ영상 스태프들과의 긴밀한 소통과 그들의 아이디어를 조합하려 노력하는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개와 그림자’에서는 엄진선의 무대 미술을 제외하고는 안무가와의 소통을 통한 제대로 된 스태프들 간의 조화를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국립현대무용단이 지난 3년은 예술감독 홍승엽의 작업(신작과 기존 작품)과 외국 안무가들에 의한 두 개의 작품, 국내 안무가에 의해 만들어진 소품 제작으로 요약된다. 작품들마다 편차가 있었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작품의 질이나 운영 면에서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은 초대 예술감독의 공으로 돌릴 수 있다. 관객들이 국립현대무용단에 기대하는 것은 일정 수의 무용수들과 제작 예산이 확보되어 있는 만큼 개인 안무가들이나 소규모의 전문 단체들의 작업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안무가와 스태프들 간의 긴밀한 협력에 의한 예술성 높은 작품의 제작이다. 그리고 그것은 세계 춤 시장에서 하나의 상품으로서 당당히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