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연극제 공식 초청작 ‘우리는 난파선을 타고 유리바다를 떠돌았다’는 참혹한 인권유린이 벌어진 1980년대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뤘다. 이 작품은 당시 자신이 겪은 복지원의 폭력적 실체를 증언하는 한종선과 작가 장지연이 만나 올해 말 공연 예정인 ‘유리바다’라는 제목의 희곡을 써나가는 과정의 기록이기도 했다. 7월 4~6일, 명동삼일로창고극장.
글 이은경(연극평론가) 사진 변방연극제
‘우리는 난파선을 타고 유리바다를 떠돌았다’(장지연 작·연출)는 무대 밖의 현실을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무대 위에 펼쳐놓은 다큐멘터리 연극이다. 1987년 ‘박종철고문치사사건’으로 촉발된 민주화 투쟁의 열기 속에 부산 형제복지원의 비극은 묻혀버렸지만 살아남은 자들로 인해 그 고통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임을 환기시킨다.
극에는 한종선과 장지연의 대화를 담은 영상, 희곡 ‘유리바다’의 연극적 재현, 무대 위에 오른 한종선의 실제 이야기가 혼재되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개입하는 코러스가 존재한다. 코러스는 복지원 희생자들과 같은 사회적 타자를 상징하는 존재이자 ‘유리바다’의 극중 인물이며, 다층의 서사를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매개자이다. 연극성을 보완하기 위해 설정했겠지만 코러스의 미숙함(연기뿐만 아니라 움직임까지)이 오히려 공연의 맥락을 훼손하여 작품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무대는 단출했다. 사면에 여닫이 커튼이 달려 있는 철제 프레임이 중앙에 놓여 있고, 그 속에는 병원용 이동침대가 있다. 커튼은 실제 병원 공간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영상을 위한 스크린, 공간·상황의 변화를 위한 가림막으로 활용된다. 매우 효율적으로 디자인된 무대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침대 위에 얼기설기 뒤엉킨 채 매달려 있는 진료용 호스들이었다. 사회의 총체적 부조리가 뒤섞인 이 사건을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은유처럼 보여 자꾸 신경이 쓰였다. 극장에 들어가면 형제복지원의 미담을 담은 흑백의 뉴스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암전과 함께 공연이 시작되면 뉴스의 내용이 완전히 거짓임을 반증하는 생생한 ‘리얼’이 등장하면서 참혹한 과거가 현재로 소환된다. 피해자에 대한 연민이라는 도식적이며 감상적인 접근을 배제하려고 애쓴 영상 속 두 인물의 대화는 식당·카페·치킨 집 등의 일상 공간에서 진행된다. 식사 장면에서 영상을 촬영한 다큐멘터리 감독 선호빈이 무대 위로 나와 영상 속 인물들과 마주 앉아 함께 밥을 먹는다. 영상 속 이야기가 바로 우리의 현실임을 환기시키기 위한 서사극적 연출이다. 복지원의 폭력으로 죽음에 이른 유지성 모자의 비극을 그린 ‘유리바다’의 연극적 재현은 허구이지만 한종선의 기억과 맞물리며 사실의 영역에 놓이게 된다. 객석에 앉아있던 한종선이 자신이 그린 그림들을 보여주며 복지원에서의 육체적·정신적 폭력이 얼마나 잔인했는지를 담담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무대에 올라 지금까지도 정신병원에 있을 수밖에 없는 가족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의 감정을 자제하려 애쓰는 그의 모습이 절절하게 마음에 와 닿았다. 완벽한 연기는 아니지만 진정성이 부여된 행위들이 무대 위에서 드러나는 순간 이 작품의 미학적 지향점은 극대화된다. 돌발적이고 즉흥적인 그의 행위는 무대의 환상을 해체하여 현실을 환기시키는데, 이 점이 이 작품의 중요한 재질이자 기반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힘은 ‘리얼’이 주는 울림이다. 한종선으로 대표되는 수많은 이웃의 인권이 어떻게 부조리한 국가권력에 의해 유린되었으며, 그 참혹한 진실을 어떻게 우리 모두 잊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진다. 실제 자료들을 몽타주하여 허구가 아닌 현실을 반영한 이 작품은 이화효과를 통해 관객의 주체성을 회복시켜 현실 인식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의도했고, 이를 충실히 수행했다. 이것이 이 시대 연극이 수행해야 하는 사회적 역할이 아닐까. 그렇기에 기적을 바라게 되는 연극 ‘유리바다’의 공연이 진심으로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