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슈토크하우젠(트럼펫)/크리스토프 포펜(지휘)/데트몰트 체임버 오케스트라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9월 1일 12:00 오전


▲ 마르쿠스 슈토크하우젠(트럼펫)/크리스토프 포펜(지휘)/데트몰트 체임버 오케스트라
EMI Classics 6150732 (DDD)

뛰어난 트럼피터이자 작곡가, 즉흥연주자인 마르쿠스 슈토크하우젠의 1993년 음반이 20년 만에 재발매됐다. 20세기 전자음악 작곡가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의 아들이기도 한 그는 10대 시절부터 이미 아버지의 음악작업에 참여했고, 쾰른 음대에서 클래식 트럼펫과 재즈 트럼펫을 복수 전공한 뒤 두 영역 사이를 그야말로 ‘크로스오버’ 하면서 영화음악 작곡까지 병행해온 다재다능한 음악인이다. ‘피콜로 트럼펫의 새로운 색깔’이라는 제목의 이 음반은 요한 프리드리히 파슈·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레오폴트 모차르트의 18세기 음악을 트럼펫 독주와 실내악 앙상블의 협주곡 양식으로 담은, 언뜻 평범해보이는 음반이다. 하지만 슈토크하우젠은 ‘조율’이라는 제목의 전주곡과 ‘멀어지며’라는 제목의 후주곡을 연주 시간 1분이 안 되는 짧은 즉흥곡 형식으로 음반의 앞과 뒤에 붙이고, 네 곡의 본 연주곡 사이의 연결 지점에 각각 세 곡의 연작 즉흥곡들(‘나그네’Ⅰ·Ⅱ·Ⅲ)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음반의 독특한 색깔을 만들어냈다. ‘나그네’ 연작의 경우 연주 시간 3분 이상에서 5분에 이르는 상당한 규모의 현대음악 작품으로 장식적 성격을 훌쩍 넘어서 음반 전체의 성격을 규정한다. 아버지 슈토크하우젠의 영향이 느껴지는 첫 번째 즉흥곡 ‘조율’에서 사람들의 목소리와 현악기 피치카토 소리가 짧게 섞여 들려오다가 두 번째 곡인 요한 프리드리히 파슈의 전형적인 바로크 협주곡 양식의 연주곡으로 넘어갈 때부터 음반이 주는 느낌은 예사롭지 않다. ‘조율’의 현대적 성격과 협주곡의 고전적 성격이 서로를 부각시켜준다고나 할까. 듣는 이의 시공간을 확인시켜주는 이러한 일종의 ‘낯설게 하기’ 효과는 이어 연주되는 ‘나그네Ⅰ’을 통해 더욱 두드러진다. ‘조율’에서 언뜻 비추어졌던 현악기 피치카토가 짧게 증폭되다가 슈토크하우젠의 느린 즉흥적 트럼펫 솔로 선율로 이어진다. 이후 현악기가 트럼펫 솔로 선율을 뒷받침하며 긴장감을 키우다가 곡은 마무리되는데, 현악기와 트럼펫 솔로의 앙상블은 이내 현대작곡가 베른하르트 크롤이 작곡한 바흐의 ‘마니피카트’ 주제에 의한 변주곡으로 확대된다. 바흐의 18세기적 선율과 영화음악 등 현대음악의 짜임새가 절묘하게 섞인 크롤의 음악은 다시 ‘나그네Ⅰ’의 긴장감을 잇는 ‘나그네Ⅱ’로 연결된다. 음반은 이런 식으로 음악사를 방랑한다. 슈토크하우젠은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처럼 낭만적이면서도 가볍지 않은 방랑의 이미지를 담아내보려 한 듯하다. 그의 트럼펫 소리는 맑고 거침없지만 깊은 그늘과 여운을 남긴다.

글 최유준(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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