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통 페스티벌

폭염보다 더 뜨거웠던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9월 1일 12:00 오전


▲ 환상의 호흡을 자랑한 디아나 담라우와 자비에르 드 메스트르

풍부한 상상력과 섬세한 감성으로 가득했던 디아나 담라우의 무대는 공연 전 우려를 불식시키며 최고의 극찬을 받았다

제64회 망통 페스티벌이 8월 1일부터 14일까지 열렸다. 망통은 이탈리아와 국경을 이루는 도시로 음식뿐 아니라 생활 면에서도 이탈리아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곳이다. 레몬 생산지로서도 유명해 음악 페스티벌은 레몬 페스티벌과 함께 지역 관광공사가 주최하는 축제 중 하나이다.
올해 망통 페스티벌에 새로 취임한 음악감독 폴 에마뉘엘 토마는 과거와 현재의 개성 넘치는 연주자들과의 만남을 이번 테마로 선정했다. 페스티벌의 프로그램을 자세히 살펴보면 클래식 음악에서 탱고 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구성됐다. 3일 줄리아노 카르미뇰라가 모차르트의 밤, 4일 디아나 담라우가 리트와 샹송의 밤, 6일 고티에 카퓌송과 프랑크 브레일리의 소나타 리사이틀, 7일 아르카디 볼로도스가 페데리코 몸푸의 프렐류드와 다이올로그를 중심으로 리사이틀을 꾸몄다. 9일 라베크 자매는 거슈윈과 필립 글래스의 작품을 연주했는가 하면, 10일 아코니오니스트 리샤르 갈리아노와 그의 현악 6중주단은 피아솔라의 탱고를 연주했다. 13일 크리스토프 루세가 이끄는 르 탈랑 리리크는 페르골레시의 ‘스타바트 마테르’와 ‘살베 레지나’를 연주했다. 페스티벌의 마지막 날인 14일, 세르게이 하차투리안과 신포니아 바르소비아는 베토벤의 밤을 꾸몄다. 필자는 이 가운데 8월 2~4일까지의 페스티벌 현장을 취재했다.

“앞으로 피아노 현을 손으로 튕기는 주법을 들으면 파질 세이를 떠올리게 될 것”
8월 2일 밤, 오프닝 프로그램으로 파질 세이와 슈투트가르트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무대에 올랐다. 슈투트가르트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과거의 화려함을 되새기며 30년 만에 다시 망통 무대에 서는 시간이었다. 파질 세이는 앙리 보로츠에 의해 터키에서 발탁된 뒤 망통 페스티벌 무대에 데뷔하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제2의 고향 같은 망통을 방문한 파질 세이로 인해 공연장 분위기는 뜨거웠다.
무대 위에는 모차르트 교향곡 34번 K338과 협주곡 21번 K467, 소프라노와 피아노 그리고 오케스트라를 위한 아리아 협주곡 등과 더불어 파질 세이가 ‘괴테 서동시집을 텍스트로 한 소프라노와 현, 타악기를 위한 창조’ Op.44를 노르마 나운과의 협연으로 선보여졌다. 파질 세이의 말 많은 연주 스타일은 소문대로였다. 그가 나쁜 피아니스트이거나 형편없는 음악가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날 연주는 분명 가십감이었다. 이날 연주가 이뤄진 장소가 야외 공연장이었기에 어쿠스틱을 고려해 비평을 위한 비평을 한다는 것은 난센스다. 그러나 오케스트라와의 앙상블 차원에서 파질 세이의 포르테는 오케스트라의 볼륨에 비해 지나치게 큰 나머지 괴리감을 자아냈다. 피아니시모로 멜로디가 흐르는 2악장의 분위기를 깨는 요소는 파질 세이의 흥얼거림이었다. 때로 그는 연주 중 지휘하듯 이리저리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상당수의 피아니스트들이 무의식적으로 종종 이런 제스처를 연출한다. 하지만 이날 파질 세이의 연주는 음악에 대한 봉사이기보다 나르시시즘적인 부분이 더 커보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창작곡은 터키 현재의 정치 현실로 보아 무척 눈여겨볼 만한 작품이었다. 자유와 진보를 노래한 괴테의 시에 부친 이 작품은 카를 오르프적인 낭송조의 운율과 터키 전통음악 같은 구슬픈 멜로디가 비교적 좋은 밸런스를 이뤘다. 무척이나 감성적인 작품으로, 이슬람을 모독한 혐의로 터키에서 추방당한 그의 사회 참여적인 예술성이 잘 드러났다. 특히 파질 세이는 피아노 현을 타악기처럼 손으로 튕기거나 치는 주법을 구사했다. 음악 전문가들에게는 눈에 익은 기법이지만 대부분의 망통 청중에게는 매우 색다른 주법인지라 많은 청중이 “앞으로 피아노 현을 손으로 튕기는 주법을 들으면 파질 세이를 떠올리게 될 것”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 아주 새콤한 고음과 구리 빛의 음색을 지닌 노르마 나운의 공연은 저음 소프라노들이 불러왔던 모차르트의 아리아 협주곡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다.

“아, 그 바이올리니스트!”
8월 3일 저녁, 장 콕토 박물관에서 이뤄진 양미사(바이올린)·빅토르 줄리앙 라페리에르(첼로)·아당 랄룸(피아노)으로 구성된 트리오 공연은 매진을 기록했다. 모차르트 피아노 트리오 B♭장조 K502에서 첼로 파트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해 약간의 희생을 했다면, 슈만 피아노 트리오 3번 G단조 Op.110에선 각 연주자들의 기량과 폭발적인 음악성이 청중을 압도했다. 수줍은 얼굴과 가냘픈 실루엣을 지닌 양미사는 제2바이올린 주자 때 볼 수 없었던 카리스마와 놀라운 기량을 과시해 “아, 그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청중의 극찬을 자아냈다. 곱고도 긴 호흡을 자랑하는 라페리에르의 첼로 음색은 별미였으며, 아당 랄룸의 피아노 또한 좋은 밸런스를 보여줬다. 양미사는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인 2세로 현재 프랑스 실내악 분야에서 크게 인정받으며 빛나는 커리어를 쌓아올리는 연주자다.
같은 날 밤, 프랑크 페터 치머만이 소유했던 과르넬리를 들고 협연 겸 지휘에 나선 줄리아노 카르미뇰라와 슈투트가르트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전날에 이은 모차르트 시리즈의 후속으로 모차르트 디베르티멘토 F장조 K138·교향곡 29번·협주곡 5번 A장조 K219 그리고 하이든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연주했다. 가장 먼저 놀란 작품은 하이든 협주곡이었다. 카르미뇰라와 슈투트가르트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앙상블이 뛰어났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E선상에서 연주되는 고음 중 옥타브 패시지는 더욱 이상했다. 튜닝의 문제인지, 아니면 음정 불안인지 그 어느 것으로도 치부하기도 모호한 가운데서 연주는 마무리됐다. 이러한 문제는 모차르트 협주곡에서 더욱 심해져 듣는 이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반면 모차르트 교향곡 29번 4악장은 완전히 바로크적이었다. 현악 파트의 경쾌하고도 빠른 보잉은 매우 바로크 레퍼토리적인 음색을 만들어냈다. 금관 파트의 울림은 비발디나 헨델의 작품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바로크 연주자로 알려진 카르미뇰라의 개성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체임버 오케스트라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놀라웠다.
연주 후 예술감독 폴 에마뉘엘 토마는 체임버 오케스트라 현악주자들이 시대악기 활을 사용해 더 바로크적으로 들렸을 것이라 설명했다. 더불어 카르미뇰라의 음정 문제는 그가 입은 손 부상에 있었다. 때문에 원래 디베르티멘토와 교향곡 29번에서 그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지휘할 예정이었으나, 부상으로 지휘밖에 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디아나 담라우의 성공적인 무대
8월 4일 바질리크 광장에서는 디아나 담라우의 리사이틀이 있었다. 레퍼토리는 슈베르트의 대표적인 리트를 비롯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포레의 작품 등을 선보였다. 최근 담라우의 활동으로 미루어볼 때 망통에서의 이번 무대는 매우 큰 이벤트임이 분명했다. 특이한 점은 무대 위에 피아니스트 대신 프랑스 출신의 하피스트 자비에르 드 메스트르가 오른 것이다. 두 사람은 이미 여러 차례 연주를 함께 했었고, DVD를 내놓기도 했다. 이번 무대는 메스트르가 담라우에게 망통에서의 연주를 권유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말로만 듣던 그녀의 명성은 외유내강형의 카리스마에서 잘 드러났다. 겸손함이 느껴지는 무대 매너 역시 그녀가 인정받는 이유를 짐작케 했다. ‘아베 마리아’ 등과 같이 쉽고도 잘 알려진 곡으로 리사이틀을 시작한 그녀는 슈베르트의 ‘눈물이 강이 되어’에서 오페라 가수 특유의 호소력으로 드라마틱한 모습을 선보여 청중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여기에 하피스트의 기량이 돋보이도록 편곡된 타레가의 ‘알람브라의 추억’은 한여름 밤의 몽상적인 감성을 고취시켰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자장가’ ‘뛰는 가슴’ 등은 리트가 얼마나 화술적이고 풍부한 상상력을 선보일 수 있는지를 시·청각적으로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연주된 ‘제비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네’는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인 그녀의 고음을 돋보이게 하는 레퍼토리였다. 담라우는 필자가 본 성악가들 중 보기 드물게 테크닉적으로 완벽하고 뛰어난 분석력을 갖춘 연주자였다. 문제는 이날 야외무대의 어쿠스틱이었다. 무대 정면에 자리 잡은 청중이 그녀의 퍼포먼스를 100퍼센트 맛보았다면 무대 측면 자리는 그렇지 못했다. 대다수의 고음이 거의 증발되어 피아니시모로 들렸고, 꾀꼬리의 노래처럼 감칠 나야 할 더블 트릴의 경우 저음이 고음보다 더 강하게 공명되어 불균형을 유발했다. 그럼에도 객석의 상당수를 차지한 이탈리아 출신의 음악 애호가들은 이러한 야외 공연장의 문제를 잘 이해한 듯 매번 열정적으로 감탄사를 연발해 공연장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폴 에마뉘엘 토마는 이번 담라우의 리사이틀을 앞두고, 레퍼토리에 대한 관광공사 관련자들의 우려가 있었다고 전했다. 망통을 찾는 청중에게 어필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공연은 매우 성공적으로 끝났다. 담라우에게 사인을 받으려는 이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고, 그녀는 밤늦게야 모나코로 떠날 수 있었다. 이쯤 되면 예술감독 폴 에마뉘엘 토마의 도전은 분명 성공한 듯싶다. 그래서 망통이 열대지방 기후에 준하는 폭염을 자랑하는 도시라도 내년에 다시 한 번 이곳을 찾고 싶다.

글 배윤미(파리 통신원) 사진 Office de Toutisme de Men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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