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들이 말하는 베토벤 ‘합창’의 조건

연말을 앞두고 지휘자들에게 물었다. “베토벤 ‘합창’ 어떻게 연주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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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12월 1일 12:00 오전


▲ 정치용·리신차오·조규진

“함께 어우러질 때 음악은 완성된다”
_리신차오 부산시립교향악단 수석지휘자

베토벤 ‘합창’을 지금까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연주했다. 그중에서도 1988년 플루티스트로 프로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했던 것이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있다. 더불어 1996년 중국국립오페라와 함께 지휘자로서 처음 연주했던 공연 역시 기억에 남는다.
‘합창’을 지휘할 때는 메트로놈 숫자보다는 속도 기호에 중점을 둔다. 기호 표시에 담긴 속도뿐 아니라 음악적 표현을 중요하게 생각해서다. 베토벤 당대의 오케스트라에 비하면 지금의 오케스트라는 규모나 악기 구성 면에서 상당한 변화를 갖고 있다. 때문에 모든 지휘자들이 서로 다른 템포로 연주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소규모 오케스트라와 ‘합창’을 연주할 때는 템포를 다소 빠르게 가는 경향이 있지만 그때에도 속도 기호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4악장 연주 시 합창단에게 독일어 가사 표현을 명확하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가사를 정확히 표현한 다음 노래를 해달라고 하는 것이다. 남성 합창으로 시작되는 중간 부분의 경우, 파트에 따라 소리가 커지거나 강조될 수 있지만 파워풀하고 드라마틱한 표현보다는 함께 어우러지는 조화를 요청하는 편이다. 이것은 솔리스트들에게도 공통적인 사항이다.

“4악장에서 전체 오케스트라가 긴장감을 상실하지 않아야”
_박성완 경북도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지금까지 지휘한 베토벤 ‘합창’ 중에서 만족할 만한 공연은 아직 없었다. 공연 시에는 스스로의 해석에 의해 악보를 수정·보완하여 메모해놓고 사용하는 편이다. 또한 4악장은 합창 주도의 음악이기에 자칫 전체 오케스트라가 긴장감을 상실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또한 합창단에서 소프라노 외 다른 파트들에게 충실함을 요구하는 편이다. 템포를 중시한 베토벤은 자신의 교향곡에 메트로놈 표기로 빠르기를 일일이 지정해 넣었다. 특히 교향곡 ‘합창’의 템포에 관해선 논란도 많고 그 해석도 천차만별이지만 베토벤의 메트로놈 표기를 따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시기에 구애받지 않고 공연하는 것도 필요하다”
_장윤성 서경대 음대 초빙교수

오케스트라와 연습하는 동안 급격한 감정 변화에 맞는 각 악기의 표현·음색·비브라토 등을 요청한다. 느린 악장의 템포와 긴 호흡의 라인, 목·금관의 음정 등은 거의 모든 오케스트라와의 리허설에서 지휘자가 요구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거기에 보다 폭넓은 다이내믹과 감정대비를 요구하고, 합창자들에게는 발음을, 솔리스트 네 명에게는 템포와 앙상블 음색 부분에 시간을 하례하는 편이다. 요즘 교향곡 ‘합창’은 연말에 하는 것이 관례적이지만, 정작 이 곡은 5월 7일에 초연됐다. 가사의 의미도 어떻게 보면 한 해를 정리하는 것보다 환희와 찬란함, 진취적인 것이 담겨 있어 신년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합창’이야말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계기가 있다면 그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곡 중 하나며, 클래식 음악 작품 중에서도 가장 완벽한 대작이므로 시기에 구애받지 않고 공연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첼로와 콘트라베이스 연주 부분이 실러의 가사 의미를 충분히 전달해야”
_금노상 대전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대전시향은 매년 12월에 갖는 송년음악회에서 ‘합창’을 연주하며 한 해를 마무리한다. 시민들의 요청에 의해 음악회를 이틀간 갖는데, 매번 모두 가득 찬 객석을 볼 때면 매우 감사하고 만족스럽다. 4악장은 성악 독창과 합창이 포함되어 있기에 성악과 관현악의 양보가 필요하다. 또한 처음 도입부에서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연주하는 부분은 이후 바리톤 솔로에 의해 연주되는 부분이다. 실러의 가사 의미를 첼로와 콘트라베이스만 연주하는 부분에서부터 충분히 전달해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템포 변화를 가지고 연주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템포의 유기적 관계에 주의해야 한다”
_조규진 충남대 음대 교수

‘합창’ 공연에서 무대 위 합창단 자리는 오케스트라 뒤에 배치한다. 더불어 솔리스트들의 자리 문제가 늘 고민이다.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사이에 솔리스트들이 있는 것이 이상적이나 공연장 음향이 문제가 생겨서다. 오케스트라 앞에 배치해도 좋겠지만, 때론 지휘가 보이지 않아 솔리스트 앙상블이 곤란해진다는 단점이 있다. 물론 음향이 좋은 공연장이라면 이런 부분을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합창’ 연주 시 템포의 유기적 관계를 강조한다. 예를 들어 4악장 포코 아다지오(4분음표=60, 베토벤은 표시하지 않음)는 알레그로 마 논 탄토(2분음표=60)에 비해 정확히 두 배 느리다. 이 부분이 두 번 나오는데 특히 두 번째 포코 아다지오가 나오는 지점, 합창의 가사 “모든 인간(alle menschen)”에서 ‘인간(menschen)’ 부분을 솔리스트들은 포코 아다지오로, 합창은 알레그로를 유지해야 한다. 많은 합창단이 이 부분에서 실수를 하곤 한다. 무엇보다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은 4악장이다. 초입부 프레스토의 경우, 주제부가 나오기 전까지의 템포를 일관되게 고집해서는 곤란하다. 템포는 가사 내용에 따라 빠르기도 느리기도 하는 레치타티보의 성격을 갖고 있다. 또 이 부분은 성악이 아닌 기악을 위한 오케스트라 반주의 레치타티보다. 그러므로 첼로와 콘트라베이스는 템포 개념을 떠나 말하듯 연주해야 한다.

“연주자들이 서정성과 긴장감을 동시에 유지하도록”
_정치용 창원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2011년 겨울 일본 나고야에서 있었던 베토벤 교향곡 ‘합창’ 공연이 지금도 생생하다. 합창 단원 평균 연령 70대, 전부 아마추어 단원이지만 모두가 악보를 외워 열정적으로 노래하던 모습이 정말 감동적이었다. ‘합창’ 연주를 위해 최근 베렌라이터 판본을 사용한다. 원본에 가장 가깝다는 이유로 많은 지휘자들이 선호하고 있는데, 몇몇 속도 기호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나름의 해석을 하고 있다. ‘합창’ 연주 시 3악장의 느린 템포에 주의를 기울인다. 또한 서정성과 긴장감을 동시에 유지하도록 연주자들의 집중도를 최대한으로 요구한다. 4악장에서 솔리스트들의 위치는 합창단 앞쪽에 배치하는 것을 선호하는데, 무엇보다 이들의 앙상블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너무나 치열했던 인생을 스스로 위로하기 위해 만들었을 3악장” _최수열 지휘자
피날레 ‘환희의 찬가’로 들어가기 전, 우리는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느린 악장을 거치게 된다. 신의 숭고한 세계, 천국에서의 삶을 동경하면서 동시에 속세에서의 삶을 추억하는 듯한 3악장은 어쩌면 베토벤 자신의 너무나도 치열했던 인생을 스스로 위로하기 위해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교향곡 ‘합창’에 관한 수많은 명반이 있지만 아다지오 악장의 기준에 맞춘다면 2012년 BBC 프롬스에서 다니엘 바렌보임과 서동시집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실황을 추천하고 싶다. 바렌보임은 기본적으로 구조감을 중시하는 지휘자이면서 풍부한 낭만적 표현력으로 독일 낭만주의 음악에 큰 강점을 보인다. 특히 느린 패시지, 크게는 느린 악장에서 음과 음 사이에 이뤄지는 그의 긴장감의 조절은 월등하다고 생각한다. 목관 악기끼리의 밸런스 문제, 파트끼리 서로 잘 끼워 맞춰지지 않는 몇 부분들이 감상에 살짝 거슬리지만, 천국과 속세의 삶에서 긴장감을 조절하며 유려하게 3악장을 이끄는 바렌보임과 젊은 악단의 전체적인 흐름이 4악장으로 가기 전 세상의 모든 것들을 추억하고 회상하기에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아직 베토벤 교향곡 중 6번과 9번을 제대로 무대에 올려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 시기가 언제쯤이 될지 항상 기대하며 살고 있다. 작품의 성격상 보통 연말에 많이 연주되지만, 이 교향곡은 지친 사람들에게 힘을 불어넣어줘 다시 정진할 수 있게 해주는 희망의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 몸이 약한 사람들, 절실한 희망이 필요한 사람들 앞에서라면, 큰 무대의 여건과 송년의 시기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연주해보고 싶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남북이 하나 되어 통일이 될 때 연주하게 되기를”
_아드리엘 김 지휘자

‘합창’이 매력적이고 참신하게 다가왔던 순간을 꼽는다면 사이먼 래틀과 빈 필의 공연을 실황으로 접했을 때다. 래틀 특유의 주관적으로 들릴 수 있는 다이내믹한 표현이 있지만 음표 뒤에 숨어있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 아카데믹하면서도 드라마틱한 공연이었다. 나무 대신 숲을 보고 가듯 음악의 큰 흐름을 역동적이고 초자연적인 힘과 더불어 멋지게 끌어가는 푸르트벵글러 음반 또한 뇌리에 깊게 남아있다. 앞으로 교향곡 ‘합창’을 연주하고 싶은 때를 손꼽아 본다면 남북이 하나가 되어 통일이 될 때를 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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