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남부의 아름다운 중세 도시 레겐스부르크의 주립극장에서 어린이 오페라 ‘빨간모자’가 2013년 지난 11월, 공연됐다. 독일 고전 동화 ‘빨간모자’는 민담·구전 설화 등 다양한 버전이 있는데, 그중 19세기 그림 형제의 동화가 가장 유명하다. 편찮으신 할머니께 병문안을 가던 소녀 빨간모자는 숲 속에서 늑대를 만난다. 포악한 늑대는 할머니의 집에 먼저 도착해 할머니와 빨간모자를 차례로 뱃속에 삼킨다. 다행히도 늑대를 뒤쫓던 사냥꾼이 급히 늑대의 배를 갈라 할머니와 빨간모자를 구한다.
작곡가 시모어 베래브은 주요 관객인 어린이들의 눈높이를 고려하여, 빨간모자가 나쁜 늑대의 속임수를 물리치고 무사히 집에 돌아가는 내용으로 순화시키고 약 45분 가량의 짧은 오페라로 작곡했다. 오페라 ‘빨간모자’는 레겐스부르크 오페라극장 본 무대가 아닌 2층의 홀에서 단순한 무대 장치와 피아노 반주로 공연되었는데, 교실 학예회 오페라에 가까운 소박한 분위기였다. 어린이들은 극장 소속 성악가들이 자연스럽게 연기한 과장된 몸짓과 율동에 재미있어 했고, 주인공들이 때때로 고난이도의 성악 테크닉으로 아름다운 아리아를 노래할 때는 아낌없이 박수를 치며 극에 빠져들었다. 어두운 불협화음과 함께 등장하는 늑대는 무섭고 음산한 분위기가 났는데, 극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빨간모자에게 “늑대를 따라가면 안 돼!” 하고 소리친 어린이들도 있었다.
오페라 ‘빨간모자’는 결말 부분이 특히 재미있게 각색되었다. 할머니와 빨간모자에게 눌려 도망가던 늑대는 숲에서 나무꾼 할아버지와 마주친다. 나무꾼 할아버지는 들고 있던 도끼로 늑대를 죽인 후 늑대 가죽을 선물로 들고 할머니의 집을 방문한다. 할머니는 나무꾼 할아버지의 선물을 수줍게 받아 들고, 빨간모자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 우리에게 축하해야 할 일이 생긴 것 같아요!”라고 이야기한다. 이어 세 사람이 “못된 늑대를 물리친 우리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하고 노래하는 가운데 막이 내린다. 그런데 늑대 역과 나무꾼 할아버지 역을 한 사람이 1인 2역으로 연기하다 보니 마치 ‘미녀와 야수’에서 야수가 왕자로 탈바꿈하는 것처럼 늑대가 나무꾼 할아버지로 변신한 것 같아 보여 더욱 유쾌했다.
레겐스부르크 극장은 단순한 무대장치와 피아노 반주 그리고 세 명의 성악가가 각각 1인 2역으로 출연하는 방식으로 예산을 최소화하여, 저예산으로도 얼마든지 재미있고 훌륭한 어린이 오페라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우리나라 오페라 공연 분야에서도 벤치마킹할 수 있는 좋은 사례로 생각된다.
글 이설련(베를린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