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 보이스’

주크박스 뮤지컬의 새로운 실험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1월 1일 12:00 오전

왕년의 올드 팝 그룹 포 시즌스의 노래가 주크박스 뮤지컬을 만나 플래티넘 음반으로 탄생하기까지의 뒷이야기

주크박스 뮤지컬이 인기다. 왕년의 인기 대중음악을 가져다 극적인 이야기를 가미해 무대를 꾸미는 형식이다. 마치 동전을 넣으면 세월 지난 히트곡들을 들려주는 음악상자처럼, 무대가 흘러간 흥행 콘텐츠를 효과적으로 재활용한다는 의미에서 붙인 별칭이다. 자연스레 ‘복고’나 ‘추억’ 마케팅의 소재로 쓰일 수 있는 특징이 장점이다.

우리나라에선 아바(ABBA)의 음악으로 만든 ‘맘마미아!’가 가장 유명하다. 하지만 ‘맘마미아!’를 두고 뮤지컬계의 재앙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 그 자체로는 충분히 완성도 있는 재미난 뮤지컬 콘텐츠가 됐지만, 이 작품의 등장 이후 너무 유사한 형태의 주크박스 뮤지컬들이 무분별하게 양산됐다는 비판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도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과거 인기 대중음악을 활용하는 것은 똑같지만, 다양한 형식적 재미나 무대 실험을 더하는 노력이 등장하고 있다. 배우의 노래 없이 댄서들의 춤으로만 꾸며지는 빌리 조엘 노래의 주크박스 뮤지컬 ‘무빙 아웃(Movin′Out)’이나 하룻밤 녹음실 풍경으로 이야기를 펼쳐내는 ‘밀리언 달러 쿼텟(Million Dollar Quartet)’이 바로 그런 도전의 산물들이다. 선율은 익숙해도 형식이 새롭고, 멜로디는 친숙해도 무대가 생경한 오묘한 조합이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잉태해낸다.

우리말로 제작된 뮤지컬 ‘맘마미아!’의 흥행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흘러간 대중가요의 무대화에 대한 노력은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짜깁기식 구조의 반복만이 되풀이되는 추세다.

 

1960년대를 휩쓴 포시즌스의 전설

‘저지 보이스(Jersey Boys)’는 주크박스 뮤지컬이면서 새로운 형식적 실험을 통해 탈(脫)‘맘마미아!’를 성공적으로 이뤄낸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작품의 소재로 쓰인 것은 여타 주크박스 뮤지컬들이 그렇듯 왕년의 빅 히트 그룹인 포 시즌스(Four Seasons)다. 우리 대중들에겐 올드 팝 넘버인 ‘캔트 테이크 마이 아이스 오프 유(Can′t Take My Eyes Off You)’로 유명한데, 주로 1960~1970년대 절정의 인기를 누린 미국의 남성 그룹이다. 간혹 프랭키 밸리와 포 시즌스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리드 싱어인 프랭키 밸리가 팀의 정체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유로 이해할 수 있다.

포 시즌스가 처음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61년이지만, 사실 멤버들의 활동은 1950년대부터 시작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포 러버스(The Four Lover)나 프랭키 밸리와 트래블러스(Frankie Valley and Travellers), 빌리지 보이시스(Village Voices) 등 수많은 이름으로 클럽을 전전하며 다양한 활동을 펼쳤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포 시즌스라는 이름이 세상이 알려지게 된 것은 10대의 천재 작곡가였던 밥 고디오가 팀에 합류하게 되면서부터다. 음반 프로듀서인 밥 크루는 포 시즌스로 하여금 흑인 전문 음반 레이블인 비제이(Vee-Jay) 레코드와 첫 계약을 맺게 했고,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등장하게 된 노래가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히트곡 ‘셰리(Sherry)’였다. 1962년 발표된 이 노래는 포 시즌스 최초 인기 차트 1위곡이 된다.

그로부터 5년여 세월 동안 포 시즌스는 자그마치 25곡의 빅히트를 연이어 발표하는 기염을 토해낸다. 1백만 장 이상이 팔려나간 싱글 음반만도 수십 개로 올드 팝 애호가라면 선율이 익숙할 ‘빅 걸 돈 크라이’(Big Girl Don’t Cry, 1962), ‘워크 라이크 어 맨’(Walk Like a Man, 1963), ‘캔디 걸’(Candy Girl, 1963), ‘에인트 댓 어 쉐임’(Ain’t

That a Shame, 1955년 발표된 패츠 도미노의 노래를 1963년 포 시즌스 버전으로 재녹음) 등이 대표적이다. 포 시즌스는 비틀스와 함께 1960년대 대중음악계를 지배한 명실상부 최고의 백인 남성 록앤롤 그룹으로 명성을 누린다.

특히 국내에서도 유명한 ‘캔트 테이크 마이 아이스 오프 유’는 음반 제작에 얽힌 사연이 적지 않은 노래로 유명하다. 뮤지컬 안에서도 극적 장치와 함께 설명되는데, 원래 이 노래는 너무 진지하고 어렵다는 이유로 여러 음반사들로부터 제작을 거부당한 이색적인 경력이 있다. 그러나 프랭키 밸리의 1967년 작 싱글 음반으로 제작된 이 노래는 당시 음반 제작사들의 우려와 달리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몰고 왔고, 프랭키 밸리에게 또 하나의 골드 레코드상을 안겨주는 결과를 낳았다. 이후 세계 각지에서 수백 종에 이르는 커버 버전이 등장했는데, 그중에는 아바(ABBA)의 안니 프리드를 비롯, 엥겔베르트 훔퍼딩크·다이애나 로스·훌리오 이글레시아스·시나 이스턴·스테레오포닉스 그리고 우리나라 걸그룹 소녀시대도 있다.

 

플래티넘에 등극한 오리지널 캐스트 앨범

형식적인 면에서 저지 보이스는 그야말로 획기적인 작품이다. 기존 짜깁기식 구조를 벗어나 무대로서는 기상천외한 다큐멘터리 기법을 활용해 인기 그룹 포 시즌스가 어떻게 만나 의기투합해 인기를 누렸고, 갈등을 겪었으며, 마침내 각자의 길을 걷게 됐는가를 연대기적 구성에 맞춰 재연했다. 덕분에 객석의 관객은 자신이 즐겼던 노래의 탄생 뒷이야기나 그룹의 비화 등을 극적 구성에 따라 감상할 수 있다.

무대만의 특성도 작품의 완성도를 더하는 데 큰 몫을 했다. 연극에서 만날 수 있는 독백이나 방백을 요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카메라 앞의 인터뷰처럼 관객들과 소통하는 방식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마치 인기가수의 활동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다큐멘터리를 감상하며 다시 그 위에 그들이 직접 노래하고 연주하는 모습을 라이브로 감상하는 재미까지 더하는, 전에 없던 독창적인 주크박스 뮤지컬 작품으로 인정받게 됐다.

주크박스 뮤지컬답게 음반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처음 세상에 소개된 것은 2005년 라이노 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한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캐스트 앨범이다. 리드 보컬인 프랭키 밸리 역으로는 존 로이드 영, 그룹의 맏형이자 말썽꾼인 토미 드비토 역으론 크리스천 호프, 그리고 천재 작곡가 겸 건반주자인 밥 고디오 역으로는 대니얼 리처드가 참여했다.

워낙 익숙한 선율에 무대 재미가 더해진 탓인지 이 음반은 오래지 않아 골든 디스크상을 수상했고, 미국 이외의 지역으로 수출된 물량만 50만 장이 넘는 빅히트를 기록했다. 결국 2009년 10월, 이 음반은 미국 내에서만 100만 장 이상이 팔려나가 플래티넘 음반으로 등극하게 됐다. 2007년에는 그래미상 최우수 뮤지컬 음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뮤지컬 영화 제작 소식도 들린다. 2010년부터 여러 차례 소문이 무성했지만, 올해 들어 영화배우 겸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제작자로 나서며 급물살을 타고 있는 형세다. 영화에는 오리지널 캐스트인 존 로이드 영이 프랭키 밸리로, LA 공연 등 3년여간 작품에 참여한 에릭 버건이 밥 고디오로, 미국 TV의 인기 탤런트 빈센트 피아자가 데니 드비토로 출연할 것으로 알려져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물론 뮤지컬 영화의 제작은 영상 버전의 사운드 트랙 앨범의 등장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저지 보이스’, 우리나라에서도 뜰까?

저지 보이스’는 글로벌 흥행 뮤지컬로 성장하고 있다. 초연이 된 브로드웨이에서는 지난 2013년 9월 3,200회 상연을 돌파해 뉴욕 극장가에서 15번째로 오래 공연된 작품이 됐다. 대서양 건너 런던에서는 2008년 막을 올려 지금까지도 순항 중이고, 지구 반대편 호주에서는 2009년 첫 선을 보인 이래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인기리에 투어 공연 중이다. 이는 비단 영미권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시작된 해외 투어팀 공연은 싱가포르와 터키 등지에서 막을 올린 바 있다. 영어권 이외에서 처음 제작된 곳은 2013년 네덜란드로, 노래는 영어, 대사는 네덜란드어의 이중적 구조를 가진 이색 버전으로 만들어져 여전히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2014년 1월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이 작품을 볼 수 있다. 오리지널팀 내한 공연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1월 17일~3월 23일,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 한국 관객들에게까지 대중적이라 부르기엔 다소 낯선 노래들이 크고 작은 우려의 대상이 되지만 작품이 지닌 진정성만은 확실한 매력을 지니고 있어 흥행 여부가 주목된다. 좋은 매출 기록으로까지 이어진다면 우리말 버전의 제작도 뒤따를 전망이다. 네덜란드처럼 ‘노래 따로, 대사 따로’의 이중적 구조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음반 제작 실험을 꼭 시도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노래 듣는 재미가 쏠쏠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물론 오리지널 캐스트 음반은 뮤지컬에 관심이 있다면 꼭 들어야 할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다. ‘강추’란 이럴 때 적합한 신조어일 것이다. 꼭 감상해보기 바란다.

글 원종원(뮤지컬 평론가·순천향대 교수)

원종원은 1980년대부터 활동해온 뮤지컬 칼럼니스트이다. ‘오페라의 유령’ ‘뷰티풀 게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한국 라이선스 공연 번역 작업에 참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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