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일까지 대학로스타시티 예술공간SM
올해로 극단 목화가 창단 30주년을 맞았다. 사람으로 치면 마음을 확고하게 세운다는 ‘이립(而立)’의 나이. 그것을 기념하기 위한 첫 번째 작품은 극단 목화의 대표이자 연출가 오태석의 지속적 화두인 한국전쟁을 극화한 ‘자전거’이다. 1983년 김우옥의 연출로 초연된 이 작품은 극단 목화의 이름으로 오태석이 직접 연출한 것이 1987년과 2004년이니, 10년 만에 다시 공연되는 것이다.
확실히 연출가 오태석은 노년에 접어들면서 매우 친절해졌다. 비약과 응축, 생략이 그의 연극 작업을 관통하는 전반적 특징이었다면, 이제는 그 많은 틈을 간결하면서도 세밀하게 채워넣고 있었다. 이번 공연은 사건의 순서를 재구성하면서 보다 선명하고 담백하게 내용과 주제를 정리했다. 한국전쟁 당시 후퇴하던 북한군에 의해 마을 주민 127명이 몰살당한 비극적 사건이 윤서기의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경험담으로 현재화되는 중요 맥락을 유지하면서도 등기소에서 몰살당하는 과거의 사건을 가장 먼저 보여줌으로써 이 작품의 화두가 한국전쟁임을 분명히 했다. 특히 중앙이 낮게 만들어진 사각의 무대 뒤편, 등기소에서 죽임을 당하는 이들은 반투명 창을 통해 흡사 영정사진처럼 나란히 섰고, 관객을 바라보는 그들의 응시는 수십 년을 훌쩍 뛰어넘어도 여전히 현재의 그림자로 존재하고 있음을 시각적으로 완성했다.
이 공연에서 무엇보다 눈길이 닿는 것은 무대 왼편에 서 있는 자전거였다. 윤서기가 사건을 당한 날 타고 다녔던 자전거는, 이전 공연에서는 어쨌거나 윤서기의 기억을 따라 무대 위를 움직였다. 페달을 밟아 앞으로 나아가는 자전거는 흔히 역사의 흐름과 발전, 반복을 상징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2013년 가장 큰 화제를 모은 김재엽 연출의 ‘알리바이 연대기’에서 무대를 끊임없이 돌아다니던 자전거가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 이번 공연의 자전거는 거위 집 둘째 딸을 태울 때만 잠시 움직일 뿐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조명을 받으며 고독하게 서 있는 자전거는 북한과의 긴장 관계뿐만 아니라 종북(從北)이니 용북(用北)이니 하며 갑론을박 서로를 비난하고 싸우기만 하는, 그래서 어떠한 진전도 이뤄내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지금 우리의 모습을 닮았다. 극단 창단 3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 한국전쟁의 이야기를 첫 번째로 풀어내는 연출가 오태석의 의도가 멈춰버린 자전거를 통해 선명하게 드러난 셈이다.
등기소에 많은 사람들이 불속에서 죽어갔고, 솔매집 문둥이 엄마는 스스로 집에 불을 지른다. 그러나 한편으론 목숨을 바쳐 지키고 싶은 사랑하는 자식이 있고, 도망간 소를 뒤쫓는 부부가 소를 찾기 전 뱃속 아기가 먼저 나올 기세다. 무대에는 시뻘건 불과 죽음이 넘쳐나지만 그 속엔 뜨거운 불길을 견디는 생명이 꿈틀대고 있었다. 이렇게 극단 목화와 연출가 오태석은 죽음 속에서도 생명을 발견하는 선한 태도로 30년의 세월을 묵묵히 걸어왔다. 비록 무대 위의 자전거는 우리의 역사처럼 멈춰버렸지만, 극단 목화는 그 바퀴를 멈추지 말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길 오래된 팬의 마음으로 기원해본다.
글 배선애(연극평론가) 사진 극단 목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