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스테디 레인’

배우에 의한, 배우를 위한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3월 1일 12:00 오전

2013년 12월 21일~2014년 1월 29일
충무아트홀 중극장블랙
두 명의 배우가 객석을 향해 걸어온다. 무대 위에 보이는 것이라곤 겹겹이 세워진 경찰서 철장과 테이블·의자·물병·컵이 전부다. 무대 위에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뒷거래며 불법도 서슴지 않는 시카고 경찰 대니와 그의 곁을 지키는 무기력한 염세주의자 조이의 이야기만이 두 시간 내내 오간다. 하지만 관객은 두 배우가 주고받는 대사 속에서 끔찍한 사건과 마주치고, 치명적인 아픔을 오롯이 느끼기도 했다. 단순하면서 절제된 요소를 통해 상상력을 이끌어내고 무대를 완성하는 ‘스테디 레인’은 오로지 배우에 의한, 배우를 위한 작품이다.
연출가 김광보는 감정선이 큰 캐릭터 대니 역에 뮤지컬 무대 경험이 풍부한 배우를, 자신의 욕망을 겹겹이 감추고 있는 조이 역에 연극 작품에서 주목받아온 배우들을 캐스팅했는데, 결과적으로 작품의 디테일과 완성도를 한껏 높이는 ‘신의 한 수’가 됐다.

이석준·이명행, 문종원·지현준이 짝을 이뤄 오른 이번 공연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페어마다 다른 모습으로 완성된 무대다. 극의 전개나 결말은 모두 같지만 캐릭터의 해석이며 감정 표현은 각기 다른 두 개의 작품을 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차별되는 지점을 마주할 수 있었다.
특히 이석준·이명행은 단순히 들리는 대사를 넘어 눈에 보이는 언어로 관객의 몰입도를 한층 높였다. 번역극임에도 입 안의 대사는 자연스럽게 흘러내렸고, 늘 귀를 의식하게 만들던 외래어 이름마저 그들이 보여준 세상에선 철수와 영희인 듯 친근하게 다가왔다. 눈에 보이는 것들 사이에서 빈틈없이 쌓아올린 합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각 캐릭터의 그림자를 관객으로 하여금 충분히 납득케 하는 근거가 됐다. 오직 대사만이 전부인 대화극에서 관객의 눈과 귀를 기분 좋게 지배하기까지, 두 배우가 얼마나 많은 합을 맞춰왔을지 충분히 가늠되고도 남는다. 덕분에 가장 절제된 무대 위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보았고, 아픔을 공유했으며, 작품의 근원과 마주할 수 있었다. 언제 젖었는지 모르는 스테디 레인처럼 말이다.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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