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체아 현악 4중주단의 베토벤 현악 4중주 1집

베토벤을 정복한 앙상블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4월 1일 12:00 오전

“현악 4중주단 멤버들의 실제 인간관계는 씨줄과 날줄로 얽힌 음악만큼 그다지 가깝지 않다.”
영국의 음악평론가 에마 폼프릿의 지적은 흥미롭다. 해외 연주 여행을 다닐 때 비행기 안에서 옆자리에 같이 앉지 않는 것은 물론 호텔 방조차 다른 층을 사용할 정도로 멀리 떨어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때로 부부 사이보다 비밀이 없어야 한다는 현악 4중주단의 한 몸과 같은 유기적인 호흡을 생각하면 의외다. 하지만 연주만 좋다면 네 명 단원들의 개인적인 친분은 논외로 두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벨체아 현악 4중주단이야말로 여기에 딱 들어맞는다. 1994년 창단부터 루마니아·영국·폴란드의 다국적 용광로를 지향한 벨체아의 앙상블은 제2바이올린과 첼로가 교체되었음에도 여전히 건재하다. 더구나 리더인 코리나 벨체아와 비올리스트 크시슈토프 호셸스키는 결혼 직전까지 갔던 연인 사이였다. 그러나 이들의 이별은 오히려 음악의 완성도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파가니니의 고향이자 지중해에 면한 로맨틱한 도시 이탈리아 제노바에는 1828년에 개관한 카를로 펠리체 극장이 우뚝 서 있다. 2012년 3월 12일 벨체아 현악 4중주단은 이곳에서 역사적인 베토벤 사이클의 서막을 열었다. 이후 지난해 5월 22일 프랑스 리옹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리기까지 무려 82회의 콘서트를 오로지 베토벤에게만 바쳤다.
유럽 전역은 물론 보스턴·뉴욕·오타와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대장정은 거칠 것이 없었다. 한 공연장에서 엿새간 아무렇지도 않게 16개 전 작품을 연주한 것까지 합하면 벨체아는 사흘에 한 번 꼴로 가장 어렵다는 베토벤 현악 4중주로 공연을 한 셈이다.
그럼 양에 비해 질은 어떨까? 2012년 상반기 국내에 소개된 베토벤 전곡 사이클의 프리뷰 음반(6·12번 수록)의 음악적 성숙도는 대단했다. 도시적인 이미지 속에서도 긴장과 열정의 끈을 놓지 않고 절묘한 줄타기를 하는 네 명의 ‘베토벤 마니아’는 벤저민 브리튼 스튜디오에서 라이브로 녹음을 감행했음에도 테크닉의 문제점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여기에 지그재그 레이블의 최상급 레코딩은 완벽한 음질로 듣는 이로 하여금 오디오적인 쾌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2012년 11월과 이듬해 4월 벨체아 4중주단은 전곡 사이클 공연 도중 전집을 출시하는 기염을 토했다.
1집에서 벨체아 현악 4중주단이 추구하는 음악의 지향점은 한결같다. 치열하게 파고들어가는 아카데미즘과 거기에 인간미를 투영해 살아 숨 쉬게 재창조해 가슴과 귀를 동시에 만족시키게 하는 능력이다. 영화 ‘카핑 베토벤’에 삽입되기도 했던 ‘라주몹스키’ Op.59-3 2악장의 둔중한 피치카토를 들어보라. 과거 부슈 현악 4중주단·부다페스트 현악 4중주단·줄리아드 현악 4중주단의 곰삭은 소리가 도시 안으로 들어온 느낌이다.
악장의 시작과 끝도 없이 영원으로 이어지는 14번 Op.131의 4악장 천국적인 아름다움은 끝내 탄식으로 이어진다. 벨체아 현악 4중주단이 우리 곁에 있음은 진정 행복하다. 별 5개 만점을 주지 못함은 향후 이들의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아직 기회가 많다.

글 유혁준(음악 칼럼니스트)


▲ 벨체아 현악 4중주단
Zig-Zag Territoires ZZT315(4CD, DD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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