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23일 명동예술극장
연극계의 뜨거운 감자인 국립극단의 2014년 첫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관록의 연출가 이병훈과 무대미술의 거장 신선희가 손을 잡았고, 남성미 넘치는 박해수와 한층 연기가 깊어진 김소희가 주연을 맡았다. 셰익스피어 탄생 450년을 기념하며 기획된 세 편 중 첫 작품인 ‘맥베스’. 기획 의도는 물론 배우와 스태프 등 화려한 진용을 뽐내며 기대를 모은 ‘맥베스’는 그 화려함에 넋을 놓고 있는 사이 중요한 무엇인가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듯하다.
무엇보다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무대를 가로막는 거대한 철문이다. 구멍이 숭숭 뚫린 철문은 때로는 맥베스의 성문이 되기도 하고, 그의 침실 벽이 되기도 하는 등 커다랗게 무대를 분할하여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그 철문이 열리면 중앙의 무대는 비어 있다. 장면에 따라 단순한 몇 가지의 무대가 그 공간을 채우는데, 세 개의 단을 쌓은 위에 고독하게 놓여 있는 왕좌는 권력의 근원적 고독을 시각적으로 제시해준다. 왕이 된 맥베스가 파티를 열 때 왕과 왕비의 의자가 객석을 등지게 배치함으로써 맥베스 부부의 불안과 균열을 가시화했다.
거대한 철문만큼 적극적으로 활용된 것은 위아래로 이동하는 난간이다. 마녀들이 등·퇴장을 할 때 그녀들의 신비로움을 강조하기 위한 공간이기도 하며, 맥베스가 덩컨 왕을 살해할 때는 왼쪽 끝을 무대 면에 고정시켜 기울기를 극대화하여 맥베스의 권력을 향한 질주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반면 악몽에 시달리는 맥베스 부인이 자신의 악행을 꿈결에 고백하는 장면에서는 오른쪽 끝을 바닥에 닿게 하여 맥베스 부부의 몰락을 시각화했다. 커다란 문짝 같은 방패와 번쩍이는 투구를 쓰고 등장하는 수많은 군사들의 머리 위로 위치한 난간에서는 맥더프와 맥베스의 결투가 진행되고 결국 죽임을 당한 맥베스는 난간에 걸쳐진 채 무대 위로 사라져버린다. 극의 전개상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건들은 대부분 이 난간에서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다층 무대를 사용했던 셰익스피어 시대의 극장 관습이 투영된 듯 무대 공간의 한가운데를 활용한 아이디어는 돋보이는 부분이다.
의상에서 맥베스를 포함한 남성 캐릭터는 대체로 검은색 혹은 회색의 어두운 색이다. 이에 반해 세 마녀는 몸매를 드러내는 빨간 원피스를, 맥베스 부인은 흘러내리는 듯한 파란색 드레스를 입었다. 이것은 마치 흑백 화면 속에 컬러를 입혀 포인트를 둔 것 같은 효과를 주어 의도하지 않게 여성 캐릭터에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를 자아냈다.
그래서일까? 상하로 움직이는 무대, 거대한 철문의 열고 닫힘, 포인트 같은 의상, 거기에 적절히 사용되는 영상에 모든 주의를 두다 보니, 정작 이 작품의 주인공인 맥베스가 안 보였다. 권력을 탐하는 욕망은 맥베스 부인의 파란 드레스에 묻혔고, 왕좌를 지키기 위한 불안과 초조는 조금씩 어긋난 조명 뒤에 가려졌다. 처절한 몰락이어야 할 맥베스의 죽음은 허공으로 사라지는 무대와 함께 흩어져버렸다. 아름답고 세련된 미장센에 갇혀버린, 그래서 제작진의 해석이 도드라지지 않는 맥베스. 관객들이 맥베스의 고뇌에 감정이입하고 충분히 그를 이해하기엔 맥베스에 대한 배려가 많지 않았던 작품이었다.
글 배선애(연극평론가) 사진 국립극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