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헤드윅’

기구한 자의 넋두리 담은 록음악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4월 1일 12:00 오전

1998년 오프 브로드웨이의 소극장에서 공연된 뮤지컬 ‘헤드윅’은
전 세계적인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저마다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여러 종의 음반은 ‘헤드윅’의 수용사를 반영한다

요즘 인기 있는 뮤지컬 넘버를 알고 싶으면 공연담당 기자에게 전화를 걸면 된다. 대부분 노래가 좋은 작품의 뮤지컬 넘버를 핸드폰 연결음으로 해두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대중보다 자주 공연 음악을 접하게 되는 문화부 공연담당 기자가 지닌 일종의 직업병(?)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유독 뮤지컬 음악이 각광을 받는 이유는 사연이 담긴 음악이라 귀에 각인되기에 좋다는 특성이 많이 반영된 듯하다.
몇 년 전인가 가깝게 지내던 한 일간지 공연담당 기자의 휴대전화 연결음이 한참 동안 ‘헤드윅’의 음악이었던 적이 있다. 공연 담당이 된 후 뮤지컬이라면 신물이 나올 만큼 자주 극장을 들락거렸을 텐데, 얼마나 울림이 컸으면 전화 응답도 이 노래일까 한참 미소 지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음악이 좋아 선율이 입가를 떠나지 않기로 유명한 뮤지컬 ‘헤드윅’의 진정한 힘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영어 제목은 사실 흔히 알려진 것보다 조금 더 길다. 원래는 ‘헤드윅 앤 디 앵그리 인치(Hedwig And The Angry Inch)’라는 조금은 이색적인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헤드윅은 동독 태생의 남성이었지만, 자유와 음악 그리고 아메리칸 드림을 동경해 별난 성정체성의 미군 남성을 따라 이민을 하기로 결심하고 성전환 수술을 감행한 인물이다. 문제는 넉넉지 않은 경제적 환경 탓에 싸구려 시술을 받게 됐고, 잘못된 수술로 1인치의 살덩어리가 몸에 남아있게 됐다는 점이다. 이로써 헤드윅은 온전한 남성도, 그렇다고 성전환을 한 여성도 아닌 경계인의 삶을 살게 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어려움 끝에 함께 했던 미군 남성으로부터 버림을 받던 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헤드윅은 희생을 치르지 않고도 동서방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게 되는 역사 속 변화에 버려지게 된다. 그로부터 뮤지컬은 헤드윅의 정체성과 사랑 찾기라는 여정을 함께하는 허름한 콘서트장의 풍경 속 이야기로 전개된다.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스크린을 거쳐 콘서트까지
처음 시작은 오프 브로드웨이의 작은 무대에서부터 비롯됐다. 존 캐머런 미첼이 극본과 주연을 맡고, 스티븐 트래스트가 음악을 만든 소극장 뮤지컬이 첫 막을 올린 게 시발점. 1998년 2월 14일의 일이었다. 공연장으로 쓰인 곳은 제인 스트리트 극장인데, 타이타닉의 생존자들이 잠시 머물렀던 곳으로 알려진 리버뷰 호텔의 볼룸을 개조해 만든 공간이다. 뮤지컬에는 타이타닉의 생존자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이 있는데, 초연됐던 공간이 지닌 특별한 배경을 극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독특하지만 신선하고, 특히 음악이 좋았던 초연 무대는 오래지 않아 사람들의 관심사에 올랐다. 결국 2년여 세월 동안 857회의 연속공연이라는 흥행을 이루게 됐다. 오프 브로드웨이에서의 성공은 세계적 규모로 확장된다. 물론 규모가 작은데다 이색적인 소재가 지닌 문화상품으로서의 경쟁력이 유리하게 작용된 면도 없지 않지만, 역시 언어의 장벽을 넘어설 수 있는 좋은 뮤지컬 음악이기에 가능했던 성과라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헤드윅’은 2000년 영국, 2003년 캐나다를 거쳐 2010년 푸에르토리코와 브라질, 2011년 체코와 태국 등으로 이어지는 전 지구적 흥행을 맞이했다. 브로드웨이로의 입성은 2014년 3월 말로 예정되어 있는데, 뮤지컬 ‘킹키 부츠(Kinky Boots)’의 스타급 출연자인 레나 홀이 남장여성 캐릭터인 이츠학으로 합류하기로 결정되어 일찌감치 마니아들 사이에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무대의 인기는 스크린으로 번지기도 했다. 영화가 제작된 것은 2001년의 일로 무대에서와 마찬가지로 존 캐머런 미첼이 직접 주인공으로 등장해 자신의 사연을 넋두리처럼 늘어놓는 듯한 실감 나는 연기로 시선을 모았다. 특히 영화 버전의 ‘헤드윅’은 그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관객상과 연출상을, 베를린 영화제에서 최우수 장편 영화상을 거머쥐면서 세계적인 유명세를 누리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무대보다 영화를 먼저 접한 이들이 훨씬 많은데, 물론 영화의 흥행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등장하게 된 현상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무대와 영화에서의 흥행이 국내에서는 콘서트의 등장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존 캐머런 미첼이 초대되어 국내 헤드윅 배우들과 함께 무대를 꾸미는 이색 이벤트가 성사됐기 때문이다. 실제 동성애자가 아닌 배우들과 함께 무대를 꾸미는 것이 색다르고 별스럽다는 그의 언론 인터뷰도 있었지만, 역시 음악이 좋은 작품으로서의 정체성답게 콘서트는 성황리에 마감됐다.

앨범도 수십 가지, 입맛 따라 즐겨라
다양한 언어와 세계 각지에서의 프로덕션, 그리고 스크린용 뮤지컬 영화의 제작 탓에 ‘헤드윅’을 만날 수 있는 음원은 그 종류만 수십 가지에 이르는 재미를 담아내게 됐다.
가장 잘 알려진 음반은 역시 무대용 오리지널 캐스트 음원이다. 초연이 오른 이듬해인 1999년 애틀랜틱 레코드에서 발매된 이 앨범에는 오리지널 캐스트였던 존 캐머런 미첼의 음성이 담겨 있다. 12개의 뮤지컬 넘버를 감상해볼 수 있는데, 특히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누렸던 ‘The Origin Of Love’ ‘Sugar Daddy’ ‘Wig In A Box’ ‘Wicked Little Town’ 등은 언제 들어도 감미롭고 친근한 이 음반의 명곡들이다.
영화 제작에 맞춰 등장한 앨범도 있다. 2001년 발매된 영화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앨범이다. 무대에서의 초연 음반 재킷은 짧은 원피스를 입고 붉은 립스틱을 바른 존 캐머런 미첼의 전신사진이었던 데 반해, 영화의 OST는 금발 가발을 쓰고 눈을 감은 채 열창을 하고 있는 헤드윅의 얼굴이 강조된 이미지를 사용했다. 영화에서도 존 캐머런 미첼이 감독 겸 주연으로 등장했기 때문에 무대 버전의 앨범과 음악적인 차이가 크게 두드러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음악의 배열이 바뀌었고, 토미 버전의 노래와 더불어 ‘Nailed’ ‘Freaks’ ‘In Your Arm Tonight’ 등 몇몇 노래들을 추가해 14곡이 수록된 이 앨범은 이미 공연 버전을 소유하고 있는 마니아들의 지갑을 다시금 유혹했다.
우리말 음원도 있다. 가장 먼저 제작된 것은 2005년으로 연출가 이지나가 대학로 씨어터SH에서 막을 올렸던 버전의 음반이다. 오만석·조승우·송용진·김다현이 헤드윅을 맡고, 이영미와 백민정이 이츠학으로 참여했던 버전의 뮤지컬 넘버들을 감상할 수 있다. 여러 배우들의 노래를 한 음반에 수록하다 보니 특정 배우의 육성으로 전곡을 들을 수 없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멀티 캐스트가 일반적인 한국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나름 만족할 만한 다양성이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오만석과 조승우의 ‘Wicked Little Town’은 각각 배우의 개성이 잘 담겨 있어 마니아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음원들이기도 하다.
2006년에 다시 제작된 또 다른 우리말 음원도 있다. 헤드윅 역의 송용진·김다현·조정석·엄기준·송창의·이석준·조승우, 그리고 이츠학 역의 안유진과 전혜선의 목소리가 담겨 있는 버전이다. 시즌 3까지의 참여배우들이 주축을 이룬 셈으로, 앞서 설명한 음반보다 다양한 배우들의 노래를 감상할 수 있어 흥미로운 앨범이다. 특히 송용진과 전혜선이 부르는 ‘The Origin Of Love’는 일부러라도 따로 감상해볼 가치가 있을 만큼 절절한 소리를 담아 매우 인상적이다.

헤드윅, 인간성의 본질을 추구하다
뮤지컬 ‘헤드윅’의 감상 포인트는 노랫말의 배경이 된 신화를 이해하는 것이다. ‘The Origin Of Love’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플라톤의 ‘향연’에서 아리스토파네스가 설파했다는 자웅동체의 신화를 빌려와 인간이 왜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가를 흥미롭게 설명한다. 원래 인간은 두 사람이 한 몸이었으나 스스로의 교만과 신들의 질투로 찢겨졌고, 그로부터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을 그리워하게 된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설명이다. 뮤지컬 넘버에서는 여기에 이집트 나일 강이나 인디언의 신들까지 더해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이야깃거리를 제공해주는 섬세한 디테일의 완성도는 명작이 되기 위한 중요한 조건 중 하나다.
‘헤드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헤드헤즈’라 부른다. 특히 우리나라 ‘헤드헤즈’들은 주로 여성이 절대다수다. 꽃미남 배우들이 화장을 하고 여자보다 고운 모습으로 등장했던 배경 탓이다. 지금도 잘 생긴 배우들의 무더기(?) 등장은 여전한 홍보 전략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역시 이 작품의 본질은 캐릭터의 이면에 감춰져 있는 인간적인 매력을 찾아낼 때 극대화된다. ‘헤드윅’ 공연장에 더 다양한 배경과 연령, 다양한 성정체성의 ‘헤드헤즈’들이 늘어나기를 바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글 원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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