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란도 비야손의 모차르트 콘서트 아리아집

비야손의 열창이 모차르트를 만났을 때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5월 1일 12:00 오전


▲ 롤란도 비야손(테너)/안토니오 파파노(지휘)/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 DG 00289 479 1054 ★★★★

“스리 테너 이후 최고의 스타 테너!” “안나 네트렙코의 환상의 파트너!” “오페라계의 미스터 빈.” 모두 테너 롤란도 비야손에게 주어진 호감 어린 찬사였다. 그러나 멕시코 출신 이 남자의 현재 위상은 불과 수년 전과 비교할 때 현저한 차이가 있다.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요나스 카우프만·조지프 칼레하 등에게 인기를 추월당한 것은 물론이고 이제 겨우 40세를 갓 넘겼을 뿐인데 벌써 한물간 테너로 치부되곤 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비야손은 다시 오페라계의 중심부로 돌아와 있었다. 우리가 너무 무심했던 셈이다. 먼저 최근 수년간의 험난했던 궤적부터 체크해보자.
워낙 목이 터져라 열창하는 스타일이라 일찍부터 그 위험성을 지적받아온 비야손이 실제로 심각한 보이스 트러블을 겪기 시작한 것은 2007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예정된 여러 공연을 취소했고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8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니노 마차이제와 공연한 ‘로미오와 줄리엣’ 실황 영상물을 보면 지나친 기우였던 듯 보이기도 했다. 특유의 열정적 가창 방식은 여전했고 목소리의 윤기에도 변함이 없어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겉으로만 그랬던 모양이다. 2009년 봄, 비야손은 선천적인 목의 낭종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기 위해 잠시 무대를 떠난다고 발표했고 1년쯤 푹 쉬었다. 복귀한 시점은 2010년이다. 빈 슈타츠오퍼에서 그의 장기인 ‘사랑의 묘약’의 네모리노를 불렀고, 일련의 리사이틀을 시작했다. 그러나 과거 비야손의 모습은 결코 아니었다. 선곡이나 노래하는 방식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몸을 사린다는 느낌이 역력해서 이제는 TV 토크쇼에나 출연해서 마이크에 대고 노래하는 편이 낫겠다는 비아냥거림을 받기도 했으니 말이다.
노래가 아닌 다른 쪽으로 방향을 돌릴 것이란 관측도 있었다. 프랑스 유수 오페라극장인 리옹 오페라에서 마스네의 ‘베르테르’를 깜짝 연출한 것이다. 필자는 비야손이 캐릭터를 그리는 솜씨에 감탄한 바 있는데, 그 정도의 미술적 감각에 무대에서 보여준 순발력 넘치는 극적 감각까지 더해진다면 연출가로서의 재능도 상당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아직은 가수 아닌가. 다행히 비야손은 잠시의 외도를 접고 2012년 말 로열 오페라에서 ‘라 보엠’의 로돌포를 불렀다. ‘베르테르’도 불렀다. 이런 선택은 그의 음성이 다시 전성기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는 신호로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비야손이 요즘 가장 즐겨 부르는 레퍼토리는 모차르트다. 트러블 이전에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모습이다. 모차르트의 노래는 대체로 성대에 무리가 갈 만큼 큰 소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 편이니 목소리 재활훈련이 다소 덜 마무리되었을 수 있는 비야손에게 적합한 선택일 것이다. 그 산물이 이번 호에 소개하는 모차르트의 아리아만으로 꾸며진 독집이다. 문제는 모차르트가 활동했던 18세기 후반은 테너의 존재감이 약했던 시기라는 점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카스트라토가 엄연히 이탈리아 오페라 세리아의 영웅적 주역을 맡고 있었으므로 테너에게 주어진 자리는 없었고, 오페라 부파에서도 주역이 아닌 조연 중의 한 자리를 맡는 식이었다. 예를 들면 ‘피가로의 결혼’에서 음흉한 음악교사 돈 바실리오, ‘돈 조반니’에서 돈나 안나의 심약한 약혼자 돈 오타비오가 그렇다. 물론 ‘코시 판 투테’의 페란도는 남성 주역이지만 단독이 아니라 바리톤인 굴리엘모와 주역의 비중을 나눠야 한다.
이런 문제로 비야손은 모차르트 독집의 콘셉트를 오페라의 테너 아리아가 아닌 ‘연주회용 아리아’로 잡았다. 그래도 한계는 남는다. 워낙 테너의 인기가 없던 시절이라 모차르트가 남긴 테너용 콘서트 아리아는 10곡 남짓에 불과하고, 그중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하나도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비야손은 다른 작곡가의 오페라에 삽입할 목적으로 작곡된 아리아까지 더하여 12개의 트랙을 채우기는 했지만 ‘돈 조반니’와 ‘코시 판 투테’의 좋은 아리아들이 생략된 것은 아무래도 큰 아쉬움이다.
노래를 들어보면 크게 두 가지를 느낄 수 있다. 첫째는 감정을 여과 없이 투영해서 다른 테너가 부르는 모차르트와는 분위기의 차이가 크다는 점이다. 목이 터질 듯 부르던 과거의 열창 스타일이 모차르트에 와서는 일종의 감정 과잉으로 변이되었다고 할까? 결과적으로 개성 넘치는 음반이면서도 고전주의적 단정함을 모차르트의 특징이라고 보는 관점이라면 비야손의 노래는 별로 모차르트답지 않다. 이런 특징은 비야손의 이전 녹음 중 모차르트보다 150년 전에 활동한 몬테베르디의 ‘탄크레디와 클로린다의 싸움’에서도 발견되던 현상이니 어쩌면 별로 새로울 것은 없다. 둘째는 특유의 폭발력을 이전에 비해 자제하는 편이라는 점인데, 그 이유가 모차르트 곡을 부르기 때문인지, 비야손의 성대에 남아있는 문제 때문인지는 판단하기 힘들다.
의외의 재미는 엉뚱한 곳에서 등장한다. 니콜로 피치니의 부파에 삽입될 용도로 작곡된 ‘나의 신부가 되어야 하는 클라리체’라는 곡에서 지휘를 맡은 안토니오 파파노가 부르는 짧은 노래 솜씨를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원래는 베이스가 테너의 노래에 잠깐 끼어드는 부분인데, 파파노의 음성은 걸쭉한 저음과는 거리가 있지만 최고의 음악성을 지녀야 할 지휘자의 노래답게 정확하고 섬세하게 처리되고 있다.

글 유형종(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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