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비나의 C.P.E. 바흐 건반 독주곡 전집

모던 피아노로 띄운 승부수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5월 1일 12:00 오전

개별 악곡으로 300여 편, CD 26~27장, 총 연주 시간 약 33시간. C.P.E. 바흐의 건반 독주곡 전집 레코딩은 텔덱의 바흐 칸타타 전집이나 필립스의 모차르트 전집에 비할 만한 사료적 의의를 지닌다. 지난해 헝가리 연주자 미클로시 슈파니가 비스에서 스물일곱 번째 앨범을 발매해 17년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한 데 이어, 크로아티아 출신 피아니스트 아나 마리아 마르코비나와 헨슬러 레이블이 작곡가 탄생 300주년이 되는 올해 또 하나의 역사적인 작업을 마쳤다.
슈파니가 작곡가의 악기였던 클라비코드와 하프시코드를 이용한 것과 달리 신보는 모던 피아노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최초 타이틀을 갖는다. 바흐의 카탈로그는 1905년 처음 나온 알프레드 보트켄의 전집과 1989년 출간된 유진 헬름 판본, 두 가지에 기초하는 게 보통이다. 전자엔 149개의 3악장 소나타 형식 작품을 포함한 주요 작품 250여 편이 수록돼 있고, 후자엔 나중에 진품을 인정받거나 진품으로 의심되는 단악장 작품이 추가돼 있다. 마르코비나는 선별 보트켄 번호 순서대로 소나타를 수록한 뒤 남은 여백에 단악장의 악곡들을 분산 배치하는 식으로 방대한 목록을 정리했다.
모던 피아노로 연주하는 C.P.E. 바흐는 미하일 플레트뇨프의 2001년 앨범과 대니 드라이버의 2010년 녹음을 빼면 거의 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두 음반이 입증했듯이 과거·현재·미래가 모두 투영된 작품의 진가를 드러내는 데 모던 피아노는 더없이 잘 어울린다. 물론 연주자가 우아한 갈랑 양식과 아버지 바흐의 형식미,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 더 나이가 낭만주의를 예견케 하는 진보적인 속성을 얼마나 간파하는가가 숙제일 터다.
마르코비나의 연주 스타일은 앞선 두 음반과 유사하다. 또랑또랑한 터치감과 나긋한 프레이징이 균형 잡혀 있고, 악센트와 장식음은 시대 양식에 맞다. 플레트뇨프의 수록곡을 비교하면 해석은 거의 비슷하다. 다만 마르코비나는 소나타 Wq65-17과 론도 Wq58-1에서 악곡을 조금 무겁게 다루고 있는데다 취미성이 다소 떨어진다. 하지만 앞선 두 연주자와 비교하지만 않는다면 귀를 거스르는 정도는 아니다. 작곡가 최초의 소나타집인 프러시아 Wq48과 뷔르템베르크 Wq49 각각 여섯 곡씩에서 라모에게서 파생된 우미함과 감상성을 이상적으로 표현했고, 후기작 Wq61~63 세트의 단조곡에선 베토벤 초기 소나타의 원류가 된 질풍노도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로카텔리 변주곡’ Wq118-7 등 열 편에 달하는 변주곡이나 건반 협주곡과 교향곡 편곡 작품의 스케일과 테크닉을 들으면 바흐를 현재 피아노로 즐기는 재미와 명분을 일깨우게 된다. 모차르트의 그것을 연상케 하는 스무 편의 ‘판타지’ 역시 피아노의 깊은 울림과 잘 어울린다. 마르코비나는 감정을 조절하면서 작곡가의 잠재적 낭만성을 마냥 감추려 하지 않는다. 소나타 중앙의 느린 악장이나 단조 소나타에 배치된 느린 도입구식의 1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뵈젠도르퍼 피아노의 둥근 울림은 귀에 편안하게 와 닿는다. 녹음은 2010년 7월에 시작돼 지난해 말 끝났다. 슈파니와 비교하지 않더라도 초고속 작업이다. 하지만 졸속이라고 생각될 만한 허점은 없다. 전곡 완성이라는 목표에 연주적인 가치가 매몰되지 않는 수작이다.

글 이재준(음악 칼럼니스트)


▲ 아나 마리아 마르코비나(피아노)
Hanssler Classic CD98.003
(26CD, DD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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