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메리 포핀스’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마법의 주문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6월 1일 12:00 오전

소설에서 스크린, 또 무대를 오르내리며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을 사로잡은 마법사 유모의 이야기 ‘메리 포핀스’. 지금, 어깨를 들썩거리게 만드는 매력 가득한 노래들이 들려온다

소설에서 스크린, 또 무대를 오르내리며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을 사로잡은 마법사 유모의 이야기 ‘메리 포핀스’. 지금, 어깨를 들썩거리게 만드는 매력 가득한 노래들이 들려온다

자그마치 34개의 알파벳으로 이뤄진 말이 있다. 영어사전에서는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야 만날 수 없는 희귀한 표현이다. 우리말로 옮겨도 한 번에 다 읽기 힘든 길이인 ‘슈퍼칼리프래질리스틱익스피알리도셔스(Supercalifragilisticexpialidocious)’가 그것으로, 뮤지컬 영화 ‘메리 포핀스(Mary Poppins)’에 나오는 마법의 말이다. 습관적으로 되뇌면 인생이 행복해진다는 설명도 등장하는데, 공연을 보고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입으로 반복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짓게 되는 이색 체험을 할 수 있다. 좋은 뮤지컬 한 편은 정말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마법을 부리기도 한다.

‘메리 포핀스’는 마법을 부리는 내니가 주인공인 작품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장르를 넘나들며 부가 가치를 창출한 이색적인 경력이 오히려 더 마법에 가까운 콘텐츠다. 출판물로 시작돼 뮤지컬 영화로 탈바꿈 되고, 다시 무대용 뮤지컬로 환생했다가 또 스크린을 통해 뒷이야기를 들려주는 등 오랜 세월 생명력을 잃지 않고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쯤이면 가히 가족 뮤지컬 콘텐츠로는 ‘슈퍼 히어로’라 부를 만하다.

앞서 말했듯이 처음엔 소설로부터 출발했다. 호주 태생의 작가 P. L. 트래버스 여사가 1934년부터 1988년까지 여덟 차례에 걸쳐 발표한 아동용 소설 시리즈가 원작이다. 런던의 체리 나무 거리 17번가에서 살고 있는 뱅크스 가족 앞에 나타난 비범한 유모의 이야기인데, 온갖 상상을 초월하는 마법들과 아이들의 신기한 체험이 재밋거리를 만들어냈다. 아동용 소설 속의 흥미로운 마법 세계라는 소재로만 보자면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와도 비교해볼 만하다. 그 스스로도 다양한 장르로 변용되는 원 소스 멀티 유스의 전형적 사례이기도 했지만, 훗날 등장하는 수많은 마법사 유모 이야기의 모태라 불릴 정도로 인기를 누렸던 원형 콘텐츠라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모든 장르에서 ‘대박’을 일궈낸 비결

소설을 가져와 뮤지컬 영화로 만들어진 것은 1964년의 일이다. 하늘을 날거나 지붕 위에서 춤을 추고, 심지어 만화 속으로 들어가 애니메이션 캐릭터들과 경주를 벌이는 등 스크린용 영상은 온갖 특수효과가 집약된 디즈니의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백설공주’ ‘피노키오’ 등 애니메이션 영화들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지만, 여전히 전통적인 영화인들로부터 ‘만화영화나 만드는 회사’쯤으로 치부되던 디즈니 사는 본격적인 실사 영화를 통해 그 역량을 검증받고 싶어 했다. 그래서 등장하게 된 것이 바로 이 영화다. 600만 달러의 예산이 소요되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제작비의 대작 블록버스터 영화는 흥행에 대한 예상이 적중하면서 이듬해까지 2,850만 달러의 순익을 달성하는 ‘대박 성공’을 달성했다. 이 영화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지지자들과 뮤지컬 마니아들로부터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 인기 콘텐츠로 남아있다.

영화 ‘메리 포핀스’는 주인공 줄리 앤드루스를 빼놓고 이야기하기 힘들다. 능청스런 연기와 노래, 그리고 기가 막힌 춤 실력으로 주목 받았던 남자 주인공 딕 밴 다이크도 회자됐지만, 역시 정확한 발음과 시원스런 가창력, 야무진 표정과 연기로 줄리 앤드루스는 소설 속의 추상적이고 신비로웠던 이미지를 영상에서 완벽하게 구현했다는 평가를 이끌어냈다. 사실 원작자 트래버스는 디즈니의 뮤지컬 영화가 현실 사회나 시대풍자의 미학을 담은 자신의 원작 소설보다 너무 아동용 콘텐츠로 희화화됐다며 불만을 자주 말했지만 줄리 앤드루스만큼은 완벽하게 자신의 이미지를 승화해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흥미로운 이야기는 또 있다. 줄리 앤드루스는 같은 해 제작된 뮤지컬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의 무대 버전에서 오리지널 캐스트로 큰 활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드리 헵번에게 주연을 뺏겨야 했던 설움을 겪었다. 영화사 입장에서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글로벌 마케팅에서 줄리 앤드루스보다 오드리 헵번이 더 적합하다 판단했던 것이다. 그래서 줄리 앤드루스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다른 뮤지컬 영화인 ‘메리 포핀스’에 출연하게 된 셈인데, 오히려 전화위복이 찾아왔다. 노래 실력이 뒷받침 되지 않았던 오드리 헵번이 매니 닉슨의 도움을 받아 립싱크 영화를 찍었던 탓에 진짜 실력파인 줄리 앤드루스가 오히려 더 큰 인지도를 얻는 ‘인생사 새옹지마’의 반전이 전개된 것이다. 결국 그해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한 오드리 헵번을 제치고 그녀는 수상의 영광을 차지하는 일대 파란을 일으키며 시원스런 복수를 완성시켰다.

인기 있는 뮤지컬 영화답게 최근에는 무비컬로도 완성됐다. 1950~1960년대 뮤지컬 영화들이 주로 무대를 영상화했던 데 반해, 이 작품은 뮤지컬 영화가 먼저 제작되고 훗날 무대용 뮤지컬이 선보인 별난 경우라서 흥미롭다. 무대용 뮤지컬은 영화가 만들어진 지 자그마치 4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인 2004년 12월 초연됐다.

곰곰이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겠지만, 이토록 오랜 세월이 소요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우선 영화의 특수효과가 무대에서 라이브로 선보이기에 결코 만만찮은 수준이다. 게다가 뮤지컬 영화에 불만이 많았던 작가 트래버스가 공연권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뮤지컬 프로듀서인 캐머런 매킨토시가 수년간 노력과 정성을 기울여 마침내 허락을 얻어냈고, 영화를 만들었던 디즈니와 함께 무대 버전을 제작하기에 이른다. 물론 무대용 뮤지컬 역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고, 가족 뮤지컬의 새로운 신화를 기록하고 있다.

영화가 갖가지 특수효과로 시선을 모은 경우라면, 무비컬에서는 볼거리 많은 무대장치들이 큰 몫을 했다. 마치 여자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인형 집처럼 객석 쪽으로 단면이 드러난 거대한 2층집 모양의 세트가 등장하는가 하면, 와이어를 몸에 달고 하늘로 솟은 메리 포핀스가 관객의 머리 위로 날아와 극장 천장에서 사라지는 입체적인 장면도 구현됐다. 심지어 극장의 벽면을 걸어 올라간 길거리 예술가 버트가 거꾸로 매달려 탭댄스를 추는 장면에서는 그야말로 감탄과 환호가 절로 터져 나온다. 인기 있는 대형 뮤지컬에는 노래와 춤뿐만 아니라 묘기나 마술에 가까운 볼거리도 있어야 한다는 요즘 무대의 흥행 공식이 충실히 반영된 셈이다.

 

다양한 장르의 음반으로 듣는 마법 같은 즐거움

다양한 장르와 형식으로 여러 차례 인기를 누렸던 별난 이력 탓에 ‘소리’로 듣는 재미도 남다르다. 이른바 음반으로 감상하는 ‘메리 포핀스’ 즐기기다.

먼저 영화에 쓰인 주옥같은 뮤지컬 넘버들은 요즘 들어도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매력이 가득하다. 일명 ‘굴뚝 송’이라고도 불리는 ‘Chim Chim Cherry’, 아무리 쓴 약도 달콤하게 만들어주는 ‘A Spoonful of Sugar’, 아버지와 함께 가족의 사랑을 확인하는 마지막 장면의 ‘Let′s Go Fly a Kite’ 등 주옥같은 노래들이 꼬리를 물고 등장한다.

애초 시작이 뮤지컬 영화에 사용될 목적으로 만들어진 음악들이라 몇몇은 완성된 모양새를 갖추지 못하거나 아예 음반에서는 누락된 경우가 있음에도 영화의 흥행과 더불어 앨범 역시 큰 사랑을 받았고, 결국 영화음악계에서 손꼽히는 명반으로 인정받게 됐다. 이듬해인 1965년 아카데미 수상식에서는 주제가상과 작곡상을 거머쥐는 파란을 연출하기도 했다.

무대용 뮤지컬 음반은 초연했던 영국에서 처음 발매됐다. 오리지널 런던 캐스트 음반인데, 무대 음악으로 각색되면서 영화음악보다 한 곡마다의 완결성을 강화시켰다는 점이 영화음악과의 차이점이다.

공연을 보고 음악을 듣는 재미도 한층 배가됐다. 대표적인 경우가 ‘슈퍼칼리프래질리스틱익스피알리도셔스’이다. 만화영화와 합성을 시도한 스크린과 달리 무대는 이 긴 단어의 스펠링을 하나씩 몸으로 표현하는 안무가 더해졌다. 남자 백조를 만들어낸 매튜 본이 공동 연출 겸 안무로 작품에 합류하며 더해진 흥미로운 변화다. 덕분에 뮤지컬 넘버 역시 영화와 다르게 영어 스펠링을 하나씩 노래하는 형태로 탈바꿈 됐다. 음반을 들으며 무대에서 봤던 안무를 따라 해보는 재미는 감히 비할 바가 없는 이 앨범만의 묘미다.

작품이 글로벌한 규모의 흥행을 기록하며 여러 파생 앨범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비교하며 감상하면 좋은 음반 중에서는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캐스트나 오리지널 호주 캐스트의 음반도 있다. 같은 영어지만 배우에 따라 느낌이 다르게 다가오는 별난 체험도 할 수 있다. 영어 외의 언어로 만들어진 음반은 오리지널 네덜란드 캐스트의 음원도 있다.

마지막이지만 감칠맛을 더한 것은 최근 등장한 영화 ‘미스터 뱅크스 지키기’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앨범이다. 뮤지컬 영화의 뒷이야기를 담아낸 탓에 일종의 ‘외전’ 같은 성격을 담고 있다. 덕분에 영화 OST에는 작곡자였던 셔먼 형제들이 깐깐한 트래버스 여사의 비위를 맞춰가며 어떻게 뮤지컬 넘버들을 작곡했는지, 메리 포핀스 탄생 비화(?)를 흥미롭게 담아내고 있다. 뮤지컬 영화를 보고, 무대용 뮤지컬을 즐기고,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만나게 되면 예술가들이 의도하지 않은, 완성된 3부작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아쉽게도 ‘메리 포핀스’의 한국 공연 소식은 아직 없다. 외형적인 규모도 그렇거니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몇 년씩 장기공연을 할 수 있는 대형 공연장이 있어야 하건만 현실은 단 몇 달 대관도 어려운 실정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반과의 만남은 더욱 감칠맛 나고 소중한 체험이 된다. 꼭 즐겨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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