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앙상블블랭크 음악감독 최재혁, 10년의 호흡으로 쌓아온 진심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6년 6월 8일 11:24 오전

ANNIVERSARY 10

작곡가·앙상블블랭크 음악감독 최재혁

10년의 호흡으로 쌓아온 진심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는 연주자들이 낯선 음악을 연주하는 방법

현대음악을 많이 다뤄본 연주자는 귀하고, 그들이 마음을 모아 꾸준히 연주를 이어 나가는 것은 더욱 어렵다. 야심차게 첫발을 뗀 현대음악 앙상블이 자신만의 색깔을 찾기도 전에 여러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고, 곧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곤 하는 것이 부지기수. 하지만 앙상블블랭크는 조금 특별한 노선을 택했다. ‘낮잠 공연’ ‘와인과 함께 하는 저녁 공연’으로 공연장 밖에서 관객들과 소통하고 ‘작곡가는 살아있다’ 시리즈로 동시대 젊은 작곡가들의 곡을 초연하며, 조금씩 ‘현대음악 전문 연주단체’로서 존재감을 키워 왔다.

그런 그들이 창단 10주년을 맞아 기념 콘서트를 연다. 현대음악에 ‘진심’인 단체답게, 20세기 현대음악의 발전을 주도했던 작곡가들의 대표작을 한데 모았다. 작품의 음색과 분위기, 음향 변화, 연주자들 사이의 호흡까지 살피며 공연을 준비하는 앙상블블랭크의 음악감독 최재혁과 이야기를 나눴다.

기본에 충실해서 만드는 음악

앙상블블랭크의 창단 10주년 콘서트인 만큼, 레퍼토리 선정에 무척 고심했을 것 같은데요. 이번 공연에서 연주되는 곡들을 어떻게 선정했나요?
피에르 불레즈(1925~2016)와 헬무트 라헨만(1935~)의 곡은 앙상블블랭크(이하 블랭크) 초창기부터 여러 번 무대에 올렸던 작품입니다. 10주년 공연인 만큼, 저희가 가장 잘하는 작품을 소개해 드리고 싶었어요. 불레즈의 ‘파생 1’은 아주 작고 간결한 작품이지만, 그 안에는 불레즈의 모든 것이 축약되어 있습니다. 라헨만의 ‘압력’은 대단한 몰입감으로 밀어붙여야 하는 곡이죠. 스트라빈스키의 ‘병사의 이야기’는 의외로 자주 연주되는 작품은 아니지만, 특히 연주자들이 선호하는 곡이며 이번에 단원들에게 가장 많은 표를 받은 곡입니다. 존 애덤스(1947~)의 ‘실내 교향곡’은 2023년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 관객의 반응이 무척 좋았던 곡으로, 유쾌하게 음악회를 끝맺으면 어떨까 싶어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2중주의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고자 힌데미트(1895~ 1963)의 비올라와 첼로를 위한 2중주를 골랐습니다.

프로그램이 모두 현대음악으로 꾸려졌지만, 각 시대와 스타일이 모두 다른 것이 눈에 띕니다. 각 작품 사이에 어떤 흐름이 숨겨져 있나요?
연주회 작품을 배열할 때, 이 공연을 객석에서 직접 들으면 어떨지 생각합니다. ‘병사의 이야기’는 마지막 악장에 이르러 2중주(바이올린·타악기)와 전체 합주가 교대로 등장하다가 결국 타악기 독주로 끝나는데, 이어지는 곡으로 블랭크의 대표 레퍼토리인 ‘압력’이 떠올랐습니다. 작품의 미학은 서로 다르지만 ‘병사의 이야기’의 들썩이는 분위기를 완전히 전환할 수도 있고, 무대 배치나 동선에 있어서도 효율적인 흐름이라고 생각했어요. 한편, 첼로 독주곡인 ‘압력’ 뒤에는 대편성이나 중편성의 작품을 연결하기보다는 점진적으로 확장되는 소리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작은 소리에 익숙해진 귀에 ‘그라데이션’되는 진행이 더 좋겠다고 여겨져 현악기 듀오 작품을 그 뒤에 배치했습니다.

현대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지휘자의 해석과 관점을 투영하는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사실 현대음악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곡이기도 하고, 작곡가가 악보에 써놓은 것만을 연주하는 데에 급급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작품을 다루는 것도 베토벤이나 브람스를 공부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나는 이 크레셴도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와 같은 사소하면서도 기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부터 고민과 해석의 방향이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모두의 도움으로 성장한 ‘앙상블’

블랭크의 멤버는 어떻게 꾸렸나요?
처음에는 유학생이었던 단원 3~4명으로 시작했어요. 현대음악에 대한 특별한 열정이 있었다기보다는, 방학에 한국에서 연주를 하고 싶은 친구들끼리 마음을 모은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한국의 연주를 살펴보니 대부분 비슷한 시대의 음악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친구들에게 앙상블을 만들어 현대음악을 연주해보자고 했어요. 제가 작곡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대음악을 좀 더 수월하게 소개할 수 있었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 현대음악을 다루면 우리만의 색깔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 뒤에 점점 더 다양한 편성을 찾게 되면서 기존 연주자의 지인들로 단원을 섭외했습니다.

새로운 단원을 선발할 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콩쿠르 실적 같은 배경보다는 우리와 이야기가 잘 통하는지, 함께 잘 지낼 수 있을지, 그런 것들을 봤어요. 무엇을 해도 불평불만이 많은 경우는 도전적인 레퍼토리를 함께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레즈나 라헨만을 연주하더라도 모차르트를 대하듯 악보를 보고, 음악을 통해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인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10주년에 이어서 20주년, 30주년까지 앙상블블랭크의 음악을 듣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현대음악 공연을 지속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나요?
저희가 아직 학생일 때, 현대음악을 무대에 올리는 데에 열정적이신 일신홀 관장님께 “돈이 없어서 그런데 무대를 한번 빌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라며 손 편지를 쓴 적이 있어요. 다행히 흔쾌히 홀 대관을 후원해 주셨고, 저희는 그렇게 이런저런 도움을 받으면서 커왔습니다. 그러다가 한 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연주 요청이 들어왔는데, 그것이 블랭크가 보수를 받았던 첫 공연이 되었습니다. 저희의 정체성을 알아주시는 것 같아서 너무 기뻤죠. 그 이후로는 최대한 초청공연을 할 수 있는 경로를 알아봅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나 서울문화재단 등의 지원사업에도 도전하면서 단원들과 함께 나름대로 꾸준히 성장해 왔습니다.

롯데콘서트홀 ‘BBC 프롬스 코리아’ 앙상블블랭크 공연(2024.12) ©Studioshyest

 

 

 

 

 

 

 

 

 

 

 

스스로 일반적인 무대에서 접할 수 없는 작품을 연주하는 것, 그리고 그저 함께 연주하는 것이 좋았다는 앙상블블랭크. 음악을 대하는 깊은 진심을 바탕으로 ‘함께 연주하는 즐거움’ 자체를 즐기며 쌓아온 연주자들끼리의 시너지는 초여름의 공연장에서 현대음악의 향연으로 이어진다.

이민희(음악학자) 사진 앙상블블랭크

 

최재혁(1994~) 줄리아드 음악원 학사 및 석사, 바렌보임 사이드 아카데미 아티스트 디플로마, 메네스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을 마쳤다. 스위스 제네바 콩쿠르 작곡 1위, 스페인 리리아 콩쿠르 지휘 부문 1위, 부쿠레슈티 지휘 콩쿠르 3위 등에 입상했으며, 런던 심포니·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 등을 지휘했다. 현재 앙상블블랭크 음악감독 및 유니버설 에디션 소속 작곡가로 활동 중이다.

PERFORMANCE INFORMATION
최재혁/앙상블블랭크
6월 13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

스트라빈스키 ‘병사의 이야기’, 헬무트 라헨만 ‘압력’, 힌데미트 ‘비올라와 첼로를 위한 2중주’, 피에르 불레즈 ‘파생 1’, 존 애덤스 ‘실내 교향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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