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0일~7월 6일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공연예술에 세월이란 것은 어떤 의미일까? 무대에서 관객과 만나는 그 순간에만 비로소 완성되는 공연예술의 일회성은 그 자체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초연 당시 주목받았던 작품을 긴 시간이 지난 뒤 재공연할 때 초연의 명성을 어떤 방식으로 계승할 것인지가 관건일 터인데, 대부분 그 결과가 그리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그 작품과 소통하는 관객의 감수성이 달라졌고, 참여한 배우들이 나이 들거나 구성 또한 달라졌기 때문이다.
1993년 초연된 후 2004년 연극열전의 첫 번째 기획하에 재공연, 그리고 10년 뒤인 2014년에 공연한 ‘백마강 달밤에’는 재공연의 이런 우려에 대해 20여 년의 세월을 작품 속에 온전히 녹여낸 모습으로 대답해주었다.
오태석 연출은 이미 오래전에 안정된 틀을 갖추어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했는데, 이 작품에서도 그 매력이 십분 발휘되었다. 특별한 장치가 없는 무대는 공간 이동에 대한 활용도를 높였는데, 의상을 맡은 이승무에게 힘입은 바가 크다. 붉은 천이 무대 벽면을 가득 채우면서 저승와 이승의 갈림길을 구분하고, 그 물결처럼 흔들리는 모양과 그 밑에서 순단과 영덕이 팔다리를 휘젓는 움직임은 저승에 이르는 길의 역동성을 충분히 살려냈다. 오태석은 대극장이든 소극장이든 가리지 않고 그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연출가다.
작품 사이사이에 삽입되는 노랫가락과 가요 ‘백마강’, 굿의 다양한 장단은 적재적소에서 흥겨운 분위기를 창출했다. 선암리 주민들의 일상복과 저승사자들의 무채색 옷 사이에서 돋보이던 영덕과 순단의 원색 의상은 두 사람이 이승과 저승의 매개임을 시각적으로 보여주었다. 저승에서 자벌레가 된 성충의 옷과 족발집을 운영하며 쉴 새 없이 칼로 족발을 내려치는 계백의 과장된 오른쪽 팔은 이승의 업보가 영겁의 시간 속에서도 반복되고 있음을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백제 병사의 원혼이 그 한을 푸는 유일한 대상인 의자왕은 초연에서 마치 거대한 구렁이가 의자왕을 감고 있는 듯한 장치였기에 저승에서 오랜 세월 동안 병사들의 칼을 받아온 의자왕의 고난이 강조되었는데, 이번에는 거대한 그물로 바뀌었다. 그로 인해 그물 사이사이에 병사들의 원한 맺힌 검은 칼이 꽂힐 때마다 의자왕은 괴로워하면서도 그것으로 그들에게 위안이 되고 자신의 행적을 사죄할 수 있다며 편안한 표정을 짓는 대목이 강조되어 의자왕의 고난보다 백제 병사들의 원풀이가 더 부각되는 효과를 낳았다.
한국전쟁과 백제 폐망을 연결 지어 성충과 계백, 의자왕의 사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초연에 비해 이번 작품은 백제 병사와 의자왕, 그리고 순단으로 환생한 금화의 화해에 집중했고, 그만큼 갈등과 서사 전개가 담백하고 명료해졌다. 배우 정은표의 할멈과 황정민의 순단을 보지 못한 것은 개인적으로 못내 아쉽지만 그 선배들을 좇으려는 서울예대 출신 젊은 배우들의 에너지는 그 아쉬움을 충분히 달래주었다.
백제의 망국과 수많은 병사의 죽음에 대해 죽어 천 년에 이르도록 책임지고 있는 의자왕. 흉측한 그물을 벗고 같이 가자는 순단의 말에 아직 자신을 찌르러 올 병사들이 더 있어 못 간다는 의자왕의 태도는, 리더의 자리에 있으면서 그 무엇에도 책임을 지지 않는 그분들이 보고 배워야 하지 않을까? 오랜만에 만난 ‘백마강 달밤에’, 그 속의 백제와 의자왕이 우리와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은 참 서글픈 일이다.
사진 극단 목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