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회 아비뇽 페스티벌

모든 세대가 함께하는 축제의 장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8월 1일 12:00 오전

올해로 68회를 맞은 아비뇽 페스티벌은 사람들이 매해 이 도시를 찾게 하는 무한한 신뢰를 쌓아왔다. 그리고 이들 관객이야말로 축제를 완성하는 최후의 조건이 된다


▲ 개막작이었던 조르조 바베리오 코르세타의 연출 ‘홈부르크 왕자’

아비뇽 페스티벌은 ‘생동하는 현재의 예술’과 ‘문화 대중화’를 추구한다. 프랑스의 문화예술 지방 분산 정책의 원조임을 자랑하듯 68년째 성공적으로 개최해왔다. 1947년 연극배우이자 연출가인 장 빌라로부터 시작되어 연극·무용·조형예술·음악을 아우르는 축제로 발전해온 아비뇽 페스티벌은 매년 7월 열리며, 40여 편의 작품이 초청되고 통상 13만 명의 관객이 관람한다. 한 작품당 5~10일 동안 공연되며 대부분 야외극장에서 열리는 것이 특징이다.

올해는 7월 4일부터 27일까지 도시 전체가 즐거움으로 가득 찼다. 중세에도 요란했다던 유럽의 축제 문화가 역사를 따라 이곳에 이르렀다는 생각과 함께 영생하는 인간의 본능적 행태에 대한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얻었다. 한편으로는 40여 편의 작품만으로 시내 중심가의 시계 광장이 ‘도시를 필요로 하는 현실이 아니라, 현실을 필요로 하는 도시’로 묘사될 만큼 왁자지껄한 이유가 납득되지 않았다. 작은 축제가 이렇듯 크게 느껴지는 원인은 바로 ‘아비뇽 오프(Avignon Off)’에 있었다. 아비뇽 오프는 도시 곳곳에 위치한 소극장을 자비로 빌린 단체들의 집합체다. 독특한 분장을 하고 노래와 춤을 보여주는 공연단들은 관객 동원을 위해 카페 손님과 행인들에게 홍보 전단을 나눠준다. 이들의 포스터는 시내의 벽지가 되고 전단지는 바닥을 장식하며 휘날렸다.

아비뇽의 또 다른 주류 ‘아비뇽 오프’

걸어서 이동이 가능한 시내 소극장만 132개. 각 극장에서 하루에 5~8개의 공연을 올리니 오전 10시 30분부터 밤 12시가 넘도록 공연이 넘쳐났다. 아비뇽 축제의 명성이 높아지자 참가를 희망하는 이들이 늘어났고, 그 수요를 충족하는 과정에서 아비뇽 오프가 성장한 것이다. 아비뇽 페스티벌 사무국에서는 자신들과 아비뇽 오프가 무관함을 명시하고 있지만 모순적이게도 아비뇽 오프의 사무실이 더 크고 공연 단체도 더 많으며, 축제의 풍경은 모두 그들이 만들어낸다. 작품 수준은 공식 축제가 월등하므로 차별성이 확실하면서도 서로 뭔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그야말로 공생과 상생의 구조이자 모두가 아비뇽 축제를 빛내는 별개의 조직체인 셈이다.

아비뇽 오프에서 주로 무용을 공연하는 골로뱅 극장의 경우, 대략 2천만 원 정도의 예산으로 하루 2시간씩 3주간 대관이 가능하다. 객석이 백여 석에 불과하기 때문에 매표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많은 단체가 지원금을 신청해 대관료를 충당한다. 작품 수준만 본다면 한국의 몇몇 무용단도 지원 자격이 충분해 보인다. 이 극장에서 관람한 작품 중 사라 마르티네가 안무하고 출연한 ‘의자(Siège)’는 한국의 무용 축제에 초청될 만한 완성도를 갖춰 좋은 인상을 남겼다. 툴루즈에서 활동 중인 이 여성 무용가는 하나의 높고 좁은 의자를 두고 그 의자를 통해 점증적으로 동작의 확장을 시도해 감탄을 자아냈다. 또 다른 무용 극장인 안무개발센터의 이베르날 극장은 더 현대적인 분위기이고 무용단의 규모도 컸다. 이곳에서 공연된 퀼비크 무용단의 ‘큐브(Cube)’는 한정된 공간을 가상해 연기하는 찌그러진 포즈와 힙합 테크닉이 중심을 이뤘고, ‘졸(Zoll)’은 희극적인 무언극으로 각국의 국기를 던지며 무언가 고발적인 주장을 제시하는 작품이었다.

축제의 완성은 관객에게 달려있다

아비뇽 페스티벌의 공식 초청작 중에는 7월 6일부터 11일까지 여섯 편을 관람했다. ‘홈부르크의 왕자’ ‘쿱 파탈’ ‘아카이브’ ‘리드 발레’ ‘마하바라타 나라차리탐’ ‘돈 지오반니. 마지막 축제’를 보기 위해 매일 다른 극장을 찾았다. ‘아카이브’와 ‘돈 지오반니. 마지막 축제’를 제외하고는 모두 야외극장에서 오후 10시가 되서야 공연을 시작하다 보니 찬 바람에 담요를 두르고 두 시간가량 앉아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우천으로 30분 이상 늦게 시작한 첫날은 결국 번개와 폭우로 교황궁 안뜰에서의 공연이 중단되었고, 건물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 새벽 1시까지 출입구의 돌벽을 향해 서 있어야 했다. 둘째 날, 다른 수도원 안뜰에서의 공연도 중단되었으나 다행히 비가 그쳐 무대를 닦고 공연을 진행했다. 젖은 의자도 꺼리지 않고 날씨가 만든 해프닝까지도 즐기는 관객들의 존재야말로 아비뇽 페스티벌을 완성하는 마지막 조건임을 알 수 있었다.

아비뇽의 과거와 현재를 잇다

‘홈부르크 왕자(Le Prince de Hombourg)’는 하인리히 폰 클레이스트가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1810년에 완성한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이 연극적 무대에서 가장 흥미로운 광경은 몽유병 환자인 왕자가 꿈속에서 월계관을 쓰고 친구들과 노니는 첫 장면이다. 이탈리아의 연출가 조르조 바베리오 코르세타는 나체의 남성들이 무대 아래에서 위로 올라와 왕자에게 옷을 입히고 퇴장하게 했는데, ‘월계관을 쓴 꿈의 세계’라는 가정이 외설스러움을 눌렀다. 홈부르크 왕자는 왕의 조카인 나탈리를 사랑하는데 그를 조롱하며 관찰하던 자들이 그를 유인해 나탈리의 장갑 한쪽을 빼앗게 만든다. 이후 현실에서 장갑의 주인을 확인하고 들뜬 왕자는 전투 계획을 듣지 못한 채 전장에서는 승리하지만 명령불복죄로 수감된다. 그러나 나탈리의 노력과 왕자의 반성을 인정한 대제는 사형장에서 그를 살려준다. 교황궁 건물 벽에는 붉은 조명과 백마가 달리는 대형 영상을 투사했고, 건물의 창문에 선 연기자들과 그들을 운반하는 계단 구조물, 왕자를 줄에 묶어 인형처럼 다루는 시각적 연출로 개막작의 무게를 감당해냈다. 초대 예술감독인 장 빌라가 1951년 연출했던 작품이라 더욱 관심을 끌었고, 이전 공연에 사용됐던 의상을 국립도서관에 전시해 지금까지 작품이 변화해온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고전과 현대가 만나 새롭게 탄생하다

‘운명적 타격’으로 해석되는 ‘쿱 파탈(Coup Fatal)’은 알랭 플라텔이 연출한 작품이라 무용일 것으로 생각했지만 사실은 악단이 등장하는 음악 공연이었다. 그가 최근 공연했던 대작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작품으로, 콩고 킨샤사에서 활동 중인 악단이 출연했다. 화려한 색상과 문양으로 꾸며진 정장을 차려입은 콩고 멋쟁이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장면은 아프리카 문화의 전형처럼 보이지만, 민속 건반악기와 타악기·전자 기타·색소폰 등을 동원하고 카운터테너 세르주 카쿠지의 노래가 더해져 모든 음악 영역을 관통하는 연주를 들려줬다. 헨델의 ‘울게 하소서’의 후렴을 콩고식으로 붙인 것은 유럽 고전을 아프리카 현대로 이입한 연주이자 현대의 문화 교류가 만들어낸 독특한 산물이다.


▲ 알랭 플라텔의 연출은 아프리카 문화를 토대로 현대의 문화 교류를 만들어냈다

슈베르트를 비롯한 독일 가곡 리트에 맞춰 춤추는 ‘리드 발레(Lied Ballet)’는 피아노 연주에 미성으로 노래하는 남성을 동반한다. 감미로운 노래와 함께 현대적인 춤 동작이 군무와 듀엣 등으로 전개된다. 영상과 함께 춤추는 이스라엘 안무가 아르카디 자이데스의 ‘아카이브(Archive)’는 말 그대로 영상 기록이 작품의 주역이다. 국경 지대의 난민들이 돌을 던지고 불을 지르며 총에 맞아 죽는 장면들이 제시되고 안무가는 영상 속의 한 사람이 되어 그들의 동작을 모방한다. 한 동작을 반복하고 강조하다 보니 이미지와 메시지가 형성되는 방식이다.


▲ 독일 가곡 리트에 춤추는 ‘리드 발레’

독특한 무대에서 펼쳐진 동서양의 문화 교류

인도의 고전을 일본 스타일로 연출한 ‘마하바라타 나라차리탐(Mahabharata-Nalacharitam)’을 보기 위해서는 버스로 20분 정도 걸리는 공연장으로 이동해야 했다. 채석이 끝난 산에 망을 씌워 개조한 공연장에 무대와 객석이 자리했다. 객석을 한 바퀴 감쌀 수 있도록 높은 곳에 설치된 좁은 무대는 특이한 연출에 일조했다. “순수한 문화란 불가능하다”라고 말하는 연출가 미야기 사토시는 이 작품에서 일본 문화의 뿌리 중 하나인 인도의 서사시를 다뤘다. “성경과 셰익스피어가 혼합되었다”라는 평을 받는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 중 나라차리탐을 선택한 이유는 이 부분이 전체 내용의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연출자는 일본 전통 연희인 노·가부키·분라쿠·가미 시바이 그리고 인도의 쿠티야탐 형식을 사용해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감정의 일부를 재확인했다.

타악기 연주단이 같은 리듬을 반복해 연주하는 가운데 흰색으로 통일한 일본 전통의상과 장식들이 화려하게 꾸며졌다. 출연자들이 직접 말하기도 하며 극의 상황은 주로 정좌하고 자리 잡은 한 남성의 목소리로 전해진다. 인물의 성격에 따라 해설자의 목소리가 달라지는 연출은 관객의 이해를 도왔다. 나라차리탐은 왕과 왕비의 사랑 이야기로 두 사람이 결혼에 이르는 과정과 그들을 시기하는 악마의 등장, 주사위 놀음으로 모든 것을 잃고 뱀에 물려 외모가 바뀐 왕, 그를 알아보는 왕비와의 재회가 통일성을 유지하며 다양한 장면으로 설명된다. 해설자는 쉬운 프랑스어를 구사하거나 민요 ‘아비뇽 다리 위에서’를 부르는 등 웃음을 위한 해프닝을 가미해 객석을 더욱 흡족하게 했다.


▲ 인도의 고전을 일본 스타일로 연출한 ‘마하바라타 나라차리탐’

아비뇽 그랑 오페라에서 관람한 ‘돈 지오반니. 마지막 축제(Don Giovanni. Dernière Fête)’ 역시 원작이 아닌 개작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은 작품이다. 연출가 안투 로메로 누네스는 모차르트의 원작은 그대로 진행하면서 관객까지도 공연에 끌어들였다. 쉰 목소리로 등장한 하인 역의 연기자는 관객이 소리를 내도록 유도하는 마력을 발휘하더니 휴식 시간에는 여성 관객들을 직접 무대로 초대했다. 막이 닫히자 요란한 음악 소리가 지속됐고, 2부가 시작되자 술잔을 손에 든 무대 위의 관객들은 어느새 연기자가 되어 있었다. 동시에 객석에서도 오페라의 한 대목을 반복해 따라 불렀다. 생각 깊은 연출이 만든 가벼움이 즐거웠다.

짧은 여정이었지만 아비뇽 페스티벌의 초청작은 믿어도 된다는 신뢰를 쌓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하늘·밤·대본·사람·축제’로 요약되는 이 축제의 예술감독 올리비에 피는 “우리의 미래는 다른 것이 아닌 문화를 통해 지나간다”라고 말한다. 개방성과 다원성을 강조하며 모든 세대가 함께할 수 있는 축제를 지향하는 예술감독의 의지가 곳곳에서 배어나고 공감되는, 범접할 수 없는 문화의 장을 목격했다.

사진 Christophe Raynaud de Lage/Festival d’Avign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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