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회 라 로크 당테롱 페스티벌

관습 깨고 자유롭게 날아오르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9월 1일 12:00 오전

올해 라 로크 당테롱 페스티벌에서는 이색적인 장면이 많이 벌어졌다.

한 연주자는 공연 직전 레퍼토리를 바꿔 감독을 당황하게 했고,

또 다른 연주자는 폭발적인 연주로 악장마다 박수를 받았다

 

30년 후의 청중을 위한 준비

지난 7월 18일부터 8월 17일까지 프랑스 라 로크에서 제34회 라 로크 당테롱 페스티벌(이하 라 로크 당테롱)이 열렸다. 1981년 생 플로랑(Saint Florent)과 실바칸 수도원을 중심으로 출발한 라 로크 당테롱은 현재 엑상 프로방스·생 마르탱·루르마린 등의 12개 공간에서 87개 연주를 유치하는 일급 페스티벌로 자리를 굳혔다. 유료 관객 증가 등 실질적 성과로 현재 예산의 약 60퍼센트를 자급자족하고 있다.

이번 축제의 공연 중 8월 4일 생 플로랑에서 열린 야테코크 듀오의 연주회는 특별했다. 무엇보다 연주회장에서 보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 유모차를 탄 아기들부터 아장거리며 걸어 다니는 아이들, 바캉스를 즐기러 온 도시의 아이들까지 여러 지역 다양한 연령층의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축제의 창설자이자 기획을 맡은 총감독 르네 마르탱은 “라 로크 당테롱에는 어린 청중이 많다”라고 힘주어 말하며 “미래를 위해 이날의 공연을 다섯 살 미만 아이들을 위한 연주회로 꾸몄다”고 설명했다. 요즘 클래식 음악 페스티벌의 큰 고민거리 중 하나는 청중의 90퍼센트가 중년·노년층이라는 점인데, 미래의 청중을 길러내려고 노력하는 라 로크 당테롱의 앞날은 무척 밝아 보였다.

올해 라 로크 당테롱은 러시아 피아니스트들의 활약이 유난히 돋보였다. 2010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율리아나 아브데바, 설명이 필요 없는 미하일 플레트뇨프, 요즘 메이저 레이블의 간판스타로 급부상 중인 다닐 트리포노프·베조드 아브두라이모프 등 4일간 진행된 연주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더불어 김선욱의 리사이틀도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지방의 유력지 ‘라 프로방스’지는 7월 27일 루르마린 교회에서 열린 김선욱의 공연을 ‘김선욱의 태양 같은 피아니즘’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하며 최고의 연주회로 꼽았다.

 

나흘에 걸쳐 만난 네 명의 피아니스트들

8월 4일 선선한 바람이 부는 생 플로랑에서 율리아나 아브데바는 크레메라타 발티카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32번,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했다. 회색 슈트 차림의 아브데바는 지휘자 겸 솔리스트로 무대에 올라 명성에 걸맞은 뛰어난 테크닉과 음악성을 선보였다. 음악을 감칠맛 나게 쓰다듬다가도 때로는 정곡을 찌르는 듯 날카로운 연주를 펼쳤다. 이날의 클라이맥스는 앙코르로 연주한 쇼팽 마주르카 4번에서 터졌다. 아브데바의 감각적인 프레이징과 은밀한 터치는 청중에게 큰 환호를 받았다. 쇼팽 콩쿠르 심사위원들이 왜 그녀에게 1등을 주었는지 이해할 만한 무대였다.

미하일 플레트뇨프는 8월 5일 생 플로랑 공원의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그는 크레메라타 발티카와 신포니아 바르소비아의 목·금관 연주자들과 협연했다. 이후 자신만의 리사이틀을 열었는데, 갑자기 레퍼토리를 바꿔 르네 마르탱 감독이 진땀을 빼기도 했다. 플레트뇨프는 청중에게 등을 보인 채 피아노 앞에 앉아 맞은편에 위치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4번을 연주했다. 통상적으로 협연은 솔리스트의 비르투오소만 빛을 발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오케스트라와 환상적인 호흡을 보이며 조화로운 무대를 꾸몄다.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 영원성을 느끼게 했다. 미지의 어떤 곳으로 여행하는 듯한 신비감을 전하며 청중을 자신의 블랙홀로 끌어들였다.

다닐 트리포노프의 무대도 성공적이었다. 8월 6일 생 플로랑에서 리사이틀을 열었다. 차이콥스키의 피아노를 위한 여섯 개의 소품을 연주할 때는 감정이 다소 과장돼 들쑥날쑥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내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역동적인 오스티나토(같은 높이로 일정한 음형을 반복해서 연주하는 것)와 오른손 멜로디가 대조되는 다섯 번째 연주는 감칠맛이 났다. 무엇보다 라흐마니노프의 쇼팽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 압권이었다. 그는 체중을 피아노 위로 옮기며 역동적인 포르티시모를 연주했다. 각 변주 간 유기성을 큰 흐름으로 분명하게 표현했다. 이어 슈만의 곡을 선보였다. 숨찬 달리기를 멈추고 화성이 자연스럽게 울리도록 두어야 하는 순간이었지만, 너무 빨리 크레셴도로 치달아 이완의 느낌도, 다이내믹의 변화도 느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이번 무대를 통해 그의 잠재력을 선보인 것은 분명하다. 그는 앞으로 디테일에 신경 쓸 것인지, 그보다 버릴 것은 버리고 본질의 큰 라인을 파악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8월 7일에는 베조드 아브두라이모프가 로버트 트레비노의 지휘로 신포니아 바르소비아와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협연했다. 이날 지휘자는 흰 슈트를, 피아니스트는 검은 슈트를 입었다. 아브두라이모프는 언론으로부터 ‘무서운 신예’로 호평받는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피아니스트다. 스물세 살 나이로 소년 같은 앳된 외모를 지녔으나 그의 연주는 반전이다. 팔을 높이 들고 내려치는 동작 등은 폭발력을 지녔다. 소리를 아래에서 위로 뽑아 올리는 듯한 타건으로 유명한 1악장 첫 테마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포르테 부분도 둥근 소리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연주 후 만난 아브두라이모프는 “모든 것은 악보에 쓰여 있다. 그대로 연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테크닉을 덤덤하게 설명했다.

느리고도 드라마틱한 2주제는 놀랄 만한 감성으로 분명하게 마무리했다. 발전부 중 하강하는 솔로 옥타브 패시지에서 그의 손가락은 공중을 가로지르는 듯했다. 얼굴 근육마저 떨렸다. 불꽃놀이처럼 작렬하는 옥타브 부분과 마지막 총주부는 또 한 번 비르투오소의 극치를 보여줬다. 그러면서도 오케스트라와 완벽한 협연을 이끄는 여유로운 모습도 보였다. 젊은 연주자이지만 이성과 감성의 한계를 조절하는 혜안은 놀라웠다.

이어 첼로와 듀오로 이어지는 2악장 주제 멜로디에서는 벨칸토 같은 중후함과 말끔하게 이완된 연주를 선보였다. 3악장의 역동적인 도입 부분에서도 메조포르테·포르테·포르티시모의 다이내믹 변화를 명쾌하게 표현했다. 거의 정확한 속도로 연주했던 전 악장들에 비해 이번 악장은 이따금 들리는 점점 빨라지는 패시지가 묘미였다. 마지막 코다 전 옥타브로 반복되기 전의 주제 중 스타카토로 상승하는 패시지에서 거의 손목을 쓰지 않으면서도 엄지손가락만 높이 들어 건반을 때리는 것은 색다른 테크닉이었다. 그는 자신의 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엄지손가락이 아주 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라 로크 당테롱의 많은 청중은 악장 간 박수는 생략한다는 관습을 깨고 악장마다 큰 박수를 보냈고, 그는 머리 숙여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현재 세계무대에서 가장 바쁘게 활동하고 있는 아브두라이모프는, 올가을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등을 이탈리아 메라노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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