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회 망통 페스티벌

음악과 어우러진 지중해의 축제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9월 1일 12:00 오전


▲ 성미켈대천사성당에서 독주회를 연 넬송 프레이리

자연이 빚은 아름다움과 음악이 만나 더욱 사랑스러운 곳이 된 망통에는 올해도 어김없이 거장들의 행진이 줄을 이었다

제65회 망통 페스티벌이 지난 8월 1일부터 14일까지 열렸다. 예술감독인 폴 에마뉘엘 토마는 올해도 눈부시게 화려한 프로그램으로 망통의 곳곳을 장식했다.

음악과 자연이 완벽하게 어울리는 망통 페스티벌은 앙드레 보로츠에 의해 시작됐다. 그는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가 한자리에서 만나는 망통의 바로크풍의 성 앞 광장을 우연히 지나던 중 근처 가정집 창문 너머로 들려오던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를 듣고, 이곳의 음향감에 사로잡혔다. 이후 페스티벌을 계획한 것이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망통 페스티벌은 프랑스 리비에라(망통을 걸친 남동부 프랑스 지중해 해안)를 넘어 이탈리아 리비에라(지중해 이탈리아령 해안)의 청중까지 사로잡은 전설의 음악 페스티벌로 승승장구해왔다. 50여 년 전 이곳에서 열렸던 피아니스트 바이런 야니스의 연주회를 경청한 그레이스 왕비와 마리아 칼라스, 그리고 앙드레 보로츠가 함께 찍은 사진은 당시 이 페스티벌이 누린 인기를 가늠케 한다. 이후 알도 치콜리니·게르하르트 리히터·아르투르 루빈스타인를 비롯해 빌헬름 켐프·마리아 주앙 피르스·아이작 스턴·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파질 사이·디아나 담라우 등 거장들의 행진이 줄을 이었다.


▲ 기돈 크레머가 이끄는 크레메라타 발티카는 색다른 울림을 선사했다

앙드레 보로츠에 대한 헌정의 시간을 열다

망통 페스티벌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중 하나는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의 재치에 관한 일화다. 창시자 앙드레 보로츠는 페스티벌의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그를 섭외하면서 개런티를 적게 주었다. 루빈스타인은 난간 위까지 밀어닥친 청중 앞에서 베토벤의 ‘열정’ 등을 연주하며 열광의 도가니로 만든 후, 휴식 시간이 시작되자 조용히 보로츠에게 한마디를 건넸다.

“개런티를 다 주지 않으면 당장 모자를 쓰고 떠나버리겠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입장료를 환불해야 했기에 보로츠는 어쩔 수 없이 개런티를 다 지불해야만 했고, 루빈스타인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라벨과 리스트 등을 연주하며 다시 한 번 청중의 마음을 앗아갔다.

리히터에 얽힌 이야기도 있다. 1967년 망통에서의 연주를 앞둔 리히터는 프로그램을 미리 보내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묻자 “1년 후 연주할 프로그램이 무엇일지 지금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내년 8월 4일 금요일 연주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연주를 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청중에게 큰 존경을 받는 평소 그의 신중함이 돋보이는 일화다.

올해 프로그램은 앙드레 보로츠에 대한 헌정에 중점을 두었다. 망통을 이미 여러 차례 방문한 바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와 피아니스트 넬송 프레이리의 연주가 그 예다. 또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주제로 니컬러스 안겔리치와 르노 카퓌송은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연주했다. 디아나 담라우와 함께 전성기의 절정을 누리는 폴란드의 테너 피오트르 베찰라는 슈만의 리트와 라흐마니노프 가곡 등을 열창해 더욱 화려한 밤을 장식했다.

폴 에마뉘엘 토마는 “피오트르 베찰라는 담라우에 비길 만한 성악가입니다. 이탈리아의 태양처럼, 찬란한 음성을 선보일 겁니다”라며 이번 캐스팅에 대한 흡족함을 표현했다. 그에게 훌륭한 음악가를 섭외할 수 있는 비결을 묻자 “제 자신이 연주자들의 고충과 심리를 잘 아는 음악인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페스티벌 내내 마치 자신이 연주를 하듯 스트레스를 받는 것처럼 보였고 예술감독으로서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저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연주는 연주자들의 몫이죠. 연주가 끝나기 전까진 성공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망통의 밤을 수놓은 음악의 거장들

8월 1일 9시 반, 기돈 크레머와 그가 이끄는 크레메라타 발티카의 연주가 시작됐다. 그들은 ‘계절’을 주제로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을 선택했는데 바이올린이 아닌 비브라폰(실로폰과 비슷한 형태를 한 타악기)을 솔로 악기로 내세웠다. 또한 피아졸라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계’와 레오니드 데샤트니코프의 편곡 버전, 필립 글래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 ‘미국의 사계’를 연주했다.

이날 비브라폰 연주는 크레메라타 발티카의 솔리스트 안드레이 푸시카레프가 맡았다. 비브라폰은 생소하면서도 흥미로웠지만 역시 바이올린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번개가 번쩍이는 여름 하늘을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글리산도로 놀라운 기교를 보여주었다.

기돈 크레머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계’ 중 ‘여름’에서 서정적인 바이올린 연주를 들려주었고 이어서 우수에 가득 찬 ‘가을’을 표현해냈다. 레오니드 데샤트니코프의 편곡은 원곡에 비해 현대적이었는데, 비브라폰이 때로는 재즈적인 화성을 연출했지만 탱고 부분에서는 탱고 특유의 감성과 간결하고 지적인 감흥을 선사했다. 하지만 일부 청중을 제외하고는 다소 이해가 안 되는 편곡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필립 글래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 ‘미국의 사계’였다. 이 곡은 몇 개의 음이 반복되다가 프레이즈로 변하는 프렐류드로 시작해서 작곡가 특유의 선율들이 격차를 두고 반복되는 악장들로 짝을 이루며 완결된다. 바이올린 솔로를 맡은 기돈 크레머는 프렐류드를 아이가 장난하듯 D음과 E음을 반복하며 단순한 멜로디로 연주했다. 단순한 음들의 반복이었지만 연극적인 과정을 창출하여 어떤 감동이 엄습해왔다.

8월 2일은 르노 카퓌송과 니컬러스 안겔리치가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1·2·3번을 연주했다. 이날 안겔리치의 피아노는 매우 독특했는데 그의 브람스는 중성적이고 내면적인 심오함을 표현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브람스를 말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은 아주 이상하게 들렸다. 이미 브람스 스페셜리스트임을 입증해온 안겔리치는 카퓌송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뒤를 바라보곤 했는데, 이는 오히려 둘 사이에 어떠한 괴리감이 있어 서로의 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것처럼 비춰졌다. 다행스럽게도 바이올린 소나타 2번부터는 최상의 호흡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날 카퓌송은 아이작 스턴이 소장했던 1737년에 제작된 과르네리 델 제수로 연주했는데 성스러운 악기에서 오는 효과를 떠나, 카퓌송을 좋아하지 않는 청중일지라도 그가 최선을 발휘한 무대인 것만큼은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무대였다. 두 사람이 만든 브람스의 감성은 그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그들만의 것이어서 마치 기름기가 제거된 담백한 브람스였다고 말하고 싶다.

8월 3일은 ‘카르트블랑슈’로 이름 붙인 넬송 프레이리의 독주회가 열렸다. 그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번, 드뷔시의 ‘그레나데의 저녁’, 라흐마니노프의 프렐류드 10·12번 등을 연주했다. 그의 베토벤은 건반을 스치는 듯한 미세한 터치로 시작되어 구조가 분명하면서도 본질만 차근차근 짚어나가는 듯한 특색이 있었다. 특히 찰랑거리는 아르페지오 패시지 부분은 조용한 피아니시시모로 시작해, 엄청난 강도로 광채를 발했다. 그럼에도 이날 성미켈대천사성당 앞 광장까지 꽉 메운 청중을 사로잡은 것은 그의 조용한 피아니시시모였다는 점이 아이러니컬하게 느껴졌다.

넬송 프레이리는 다소 지나친 프랑스적 매너리즘으로 치닫는 드뷔시에서도 핵심만을 이야기하며 거장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라흐마니노프의 프렐류드 역시 남달랐는데, 불필요한 센티멘털리즘에 허덕이는 프렐류드 12번을 엄숙하고도 경건한 멜로디와 왼손 저음 화성의 감칠맛 나는 밸런스로 처리했다. 프레이리의 피아니즘은 요즘 젊은 피아니스트들처럼 거창한 기교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모든 것을 아우르며 청중을 이끄는 멋이 있었다. 마지막 연주곡인 슈만의 ‘교향적 연습곡’은 놀라운 기교와 매끄러운 핑거링으로 연주했다. 그 어떤 경우도 지나치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으며 스케일이 크면서도 고상하게 마무리되었다. 자정이 다 된 시간인데도 청중의 기립박수는 끝날 줄 몰랐고 이에 그는 두 번의 앙코르로 답했다.

망통 페스티벌은 지난 2012년 폴 에마뉘엘 토마가 부임한 후부터 눈에 띄는 발전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는 초대권까지 합해 1만 4,000명이 넘는 청중이 이 페스티벌을 찾았고 올해 결과는 이보다 더 놀라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보로츠 시대의 영광을 되찾는 것은 시간문제가 아닐까 싶다.
사진 Festival de Musique Men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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