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즐거운 복희’
8월 26일~9월 21일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알레고리의 작가’ 이강백과 ‘확고한 해석의 연출가’ 이성열의 두 번째 합작품, ‘즐거운 복희’가 막을 올렸다. 알레고리와 해석,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연적인 만남이 이루어진 셈이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강백 작가는 “연출가 이성열이 능력 발휘를 하지 못하는 것이 작품을 위한 길”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명쾌하고 뚜렷한 해석보다는 알레고리란 뜻 그대로 여러 가능성을 열어주어 관객들이 작품 속에 숨어 있는 많은 의미를 스스로 깨닫기를 바란다는 생각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즐거운 복희’는 외딴 호숫가를 배경으로 펜션 주인 중 한 명인 퇴역 장군이 죽는다는 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웃인 장군의 죽음 앞에서도 자서전 대필가·전직 레스토랑 주인·전직 교사·건달·백작·화가 등의 주변 펜션 주인들은 오직 ‘펜션 운영’ 하나만을 생각하며 조문객들을 대상으로 펜션 장사를 할 생각에 들뜬다. 급기야 딸을 부탁한다는 장군의 유언을 지킨다는 명목하에 복희에게 ‘슬픈 복희’의 삶을 강요하기에 이른다. 조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도록 말이다.
작가는 이야기 내에 잔혹한 현실을 철저히 녹여냈다. 평범한 직업뿐만 아니라 시대착오적이기까지 한 백작, 불량함이 그다지 강조되지 않는 건달 등 다양한 직업의 등장인물에서부터 여러 성격을 지닌 사람들이 공존하는 우리 사회를 표현하고 있는 듯했다.
등장인물들은 많은 사람이 호숫가를 찾도록 사실에 기반한 새로운 이야기를 끊임없이 ‘재생산’해낸다. 이는 자본주의사회의 이기심, 평범함을 넘어서기 위해 ‘그럴듯한 이야기’에 집착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었다. 극 말미에 복희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펜션 주인들이 또다시 이를 슬픈 이야기로 탈바꿈시키며 다음 이야기 대상을 찾는 모습은 충분히 현실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있기에 더욱 섬뜩하게 보였다.
작가는 ‘선과 악을 구분 짓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이 작품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극의 이야기만 놓고 본다면 펜션 주인들은 다분히 ‘악’의 모습을 지니고 있으며 이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스토리를 만들고 스토리는 인간을 만든다’라는 작품의 주제를 놓고 본다면 ‘우리는 과연 저 펜션 주인들이 나쁘다고 단정 지어 말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저 상황에 처한다면 누구라도 펜션 주인들처럼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 누구도 문제점에 대해 ‘악’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기에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인 것이다. 선악의 경계가 희미해진 만큼 수많은 문제점을 놓고도 개선할 의지가 없는 우리 사회를 지적하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 이강백은 이야기에 지배되는 사람들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다루며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반영해냈다.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이 사회문제를 깨닫게 하면서 그만큼 이야기가 가질 수 있는 어두운 힘의 파급력을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었다.
글 이지혜 인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