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8일~10월 5일 대학로 선돌극장
10월 9~26일 대학로 뮤디스홀
우리에겐 꼭 해결해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숙제가 여럿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일본 위안부 문제인데 지금도 일본은 용서를 구하기는커녕 “위안부 문제의 해결책은 일본이 제시할 수 없다”고 통보하기에 이른 상황이다. 그리고 지난 2009년에는 성 접대로 고통받던 여배우가 자살하는 일명 ‘장자연 사건’이 발생했다.
극단 고래의 작·연출가 이해성은 이 사건들을 시대는 달라졌지만 여성들에 대한 권력의 학대로 있어서는 안 될 고통들이 양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 선상에 있는 문제로 보았다. 그리고 우리 역사에 돌고 도는 폭력과 상처의 근본적인 원인을 바라보고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자 2011년 연극 ‘빨간시’를 무대에 올렸다. 올해 대학로 선돌극장과 뮤디스홀에서는 그 세 번째 막이 올랐다.
연극 ‘빨간시’는 일본 위안부 할머니를 둔 일간지 기자 동주가 자신이 여배우가 자살한 원인이 된 성상납 현장에 있었던 사실로 괴로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저승사자의 실수로 할머니 대신 저승에 가게 되면서 여배우와 할머니의 삶을 보며 아픔의 기억이 자신과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느낀다. 이를 통해 위안부와 성상납의 폭력 행위 그 자체보다는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거대한 침묵을 꼬집고 있었다.
위안부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할머니의 모습과 성상납으로 고통받는 여배우의 모습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강요된 침묵을, 그리고 사건을 모른 척한 채 뻔뻔히 동주를 협박하러 온 사장의 직원을 통해 가해자의 침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바로 스스로를 제3자라고 여기는 우리 모두의 침묵이었다.
우리가 가진 침묵의 잔인함은 할미의 비이성적인 행동과 ‘그 시대’의 회상을 통해 그대로 드러났다. 침묵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주인공의 모습, 당시 상황의 직접적인 재연을 통해 그 괴로움과 잔인함으로 관객의 의식을 일깨우며 반성을 촉구하는 보통의 연출과는 다른 방식이었다. 아무것도 말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동주의 모습이 드러나긴 하지만 그 모습보다 관객에게 더 큰 자극을 주었던 것은 할미 역을 맡은 장원경의 그 시절을 회상하는 연기였다.
할미 역으로 여러 연기상을 수상한 대학로 대표 배우 강애심과 더블캐스팅된 장원경은 그 시절의 아픔을 디테일한 감정 표현과 대사 처리만으로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위안부로 고통받았던 그 시절의 장면은 단 한 컷도 등장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가냘프게 떨리는 몸과 눈물로 그 시절을 회상하는 할미의 모습을 통해 그 시절의 아픔을 깊게 느낄 수 있었다. 극 초반에 보여주었던 이상행동들이 위안부 시절 얻게 된 상처의 흉터라는 점과 미워했던 아들이 위안부 시절 자신을 유린했던 수많은 일본군 중 한 명의 자식이라는 점이 드러났기에 더욱 아프게 느껴졌다. 그 때문에 관객석 여기저기서 흐느끼거나 훌쩍거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배우가 표현해낸 슬픔은 관객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지닌 침묵의 칼날이 할머니들의 가슴을 얼마나 아프게 찌르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들이 세상에 대한 용서를 남기며 하나둘 떠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우리의 침묵이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지 마음깊이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