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13~14일
이희문 님. 직장 생활에 찌든 이를 꾹 짜면 야근·커피·술·스트레스가 줄줄 흘러나오듯 지금의 민요를 꾹 짜면 이상한 액체가 나올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게 나오지 않을까요? 삶의 현장을 떠나 ‘대학교(교육)’에 편입되면서 갖게 된 이상한 무게, ‘아무나’ 즐기며 불러 젖히던 노래가 ‘중요무형문화재’가 되면서 ‘특정 예술가’만 부르게 된 데서 온 이상한 품위와 특권 의식 같은 것들 말입니다. 이것들은 20세기에 들어 민요가 이상한 ‘직장’에 편입되면서 생긴 피로물질들입니다. ‘대중적 음악(Popular Song)’에 태생을 둔 경기민요가 ‘계승적 음악(Heritage Song)’이 되면서 얻은 것은 보존의 용이함이지만 잃은 것은 민요 특유의 ‘흥’과 ‘자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민요는 오늘날 노래라는 ‘형태’로만 존재할 뿐, 듣고 즐기고 부르는 ‘기능’은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당신이 선보였던 ‘쾌’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노래를 ‘감상’하는 시간이 아닌, 민요에 내재된 ‘원형적 재미’와 그것을 ‘즐기는 방식’을 복원한 작품이었습니다. ‘부정걸이’와 ‘만수받이’라는 굿의 절차를 차용해 관객들의 복을 빌어준 당신은 ‘(본조)정선아리랑’ ‘어랑타령’을 지나 ‘난봉가’와 민요접속곡(‘베틀가’ ‘오봉산타령’ ‘한강수타령’ ‘개구리타령’), 그리고 ‘노랫가락’ ‘창부타령’ ‘쾌지나칭칭나네’를 부르며 신나게 달렸습니다. 천장에 매달린 다섯 개의 샹들리에, 기묘한 무늬의 배경, 반짝이는 긴 드레스를 입고 신경질적인 높이의 힐과 여성 가발을 착용한 당신…. 힘줄이 과감히 드러난 다리와 허벅지를 감싼 망사 스타킹을 신은 당신의 모습은 기존의 민요 공연에서 볼 수 없던 광경이었습니다. 때로는 묘한 성적 상상력이 일어나기도 했고, 영화 ‘헤드윅’과 마돈나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야릇한 코러스를 맡은 신승태와 추다혜, 무대 뒤편에서 베이스를 맡은 장영규(음악 대감)와 기타의 이태원(개념 대감), 드럼의 이철희(박자 대감), 그리고 객석에는 안은미(몸주 대감)가 ‘쾌’를 위해 한 몸이 되었습니다. 특히 당신의 노래는 장영규의 지원사격을 받아 놀라운 화력을 뿜었습니다. ‘어랑타령’을 부를 때였죠. “바람도 안 부는 방 안에 이불이 펄썩하더니 비도 안 오는 방 안에 요가 쪼금 젖었네”라는 가사가 머릿속을 조준했습니다. 이내 곧 장영규의 음악은 몸을 직격했습니다. 장영규의 화약은 얌전하고 정련된 화음이 아닌 디스코와 웨이브 등 폭발력이 강한 것들이었습니다. 폭격당한 이들은 객석 의자에서 엉덩이를 살짝살짝 흔들었습니다.
이희문 님. 근대화 이후 민요의 역사는 감춤의 역사였습니다. 엄숙한 예술이 되기 위해 제 스스로 ‘19금’ 딱지를 붙였지요. 하지만 민요는 그 ‘19금’을 심장 삼아 자신의 피와 살을 세상에 순환시키며 자생해온 노래였습니다. 노래가 제 스스로 행해온 검열과 금기, “어쩔 수 없었다”고 고백하는 민요에게 “왜?”라고 묻는 것이 당신이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끝으로 ‘쾌’의 성과는 민요에 따라 춤추고 흔들고 싶어 하는 몸의 발견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엉덩이를 들고 일어나려 하면 자신의 머리가 그 몸을 눌렀습니다. “여기는 공연장이다!” “민요는 이런 예술이 아니다!”라면서요. 이제 당신이 겨뤄야 할 것은 그 엉덩이의 무게, 아니 머리 위에 타고 올라 몸을 누르는 이데올로기와 고정관념의 무게입니다. 시원하게 날려주기를 기대합니다.
사진 노승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