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하드보일드 멜랑콜리아’

'무감(無感)’의 도시에 깃든 우울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2월 1일 12:00 오전

연극 ‘하드보일드 멜랑콜리아’

1월 2~18일

쁘띠첼씨어터

‘무감(無感)’의 도시에 깃든 우울

연극계가 숨 고르기를 하는, 이른바 ‘비수기’인 요즘 젊은 연극인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비슷한 시기에 진행되는 세 개의 창작 육성 프로그램 아르코가 주목하는 젊은 예술가 시리즈, 두산 아트랩,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를 통해 적게는 세 편, 많게는 여섯 편의 젊은 연극인의 작품이 관객과 만나고 있다. 이 중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는 연출가 조광화와 극작가 배삼식이 예술감독이 되어 신진 발굴과 지원, 육성을 목적으로 한다. 지난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선보인 ‘바람직한 청소년’과 ‘소년 B가 사는 집’을 보면 나름대로 화제성과 일정 정도의 완성도까지 담보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올해에도 세 편의 작품이 선정되었는데, ‘하드보일드 멜랑콜리아’(작 석지윤·연출 이동선)는 그 첫 번째 작품이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이 작품은 범죄극을 표방한다. ‘고전적 의미의’ 과격한 형사와 그 형사를 취조하는 취조인 두 사람의 대사를 중심으로 형사의 기억 속 사건이 각각의 장면으로 만들어져 나열된다. 범죄극의 익숙한 관습에 대한 기대와 달리 극의 전개는 장르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 문제는 형사의 기억이다. 실제로 자신이 수사하고 겪은 경험을 기반으로 하지만, 그 속에 형사의 무의식이 교묘하게 얽혀 있어 현실과 환상이 그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작가의 초고에서는 연쇄 살인범을 쫓는 형사가 그 범인이 아내를 죽였다는 망상에 시달리면서 우울과 정신분열로 자살한다. 그런데 연출가와의 작업 과정에서 연쇄 살인범 자체가 형사의 환상이었고, 아내를 죽인 것도 자신임이 밝혀지면서 자살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서로 간 관계성이 토막 나고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된 도시는 그 자체로 무감(無感), 무정(無情)의 사막이자 진창인 하드보일드인데 그런 도시의 질서를 지키기 위한 형사의 완고한 의식은 그가 대면하는 사건과 범인들의 극악함에 전이되어 극단의 멜랑콜리, 우울을 앓는다는 설정이 보다 강화된 것이다.

형사의 의식을 중심으로 현실과 환상, 시공간의 교섭은 이 작품의 중요한 장점인데 실제 공연에서는 그것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그 구분의 불친절함 때문에 관객이 형사의 의식 세계를 함께 추적해나가기는 역부족이다. 비현실적 캐릭터 소녀는 물론 형사와 대면하는 유괴범·학살범·여대생·방화범 등이 왜 형사의 멜랑콜리를 만들어내고 작동시켰는지도 모호하다. 아내는 중요한 캐릭터임에도 형사와의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채 도구적으로 사용된다. 더구나 총기 난사의 학살범과 유아 연쇄 살인범 등은 할리우드 하드보일드 영화의 단골 소재다. 그로 인해 한국 극장에서 한국 작가가 쓴 미국 형사의 이야기를 보는 듯한 이질감이 발생한다.

범죄극이 특정 장르로 발전하지 못한 우리나라의 상황을 놓고 보면 이 작품의 단점은 지극히 사소한 부분이다. 조금씩 고치고 다듬으면 향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녹록지 않은 장르에 도전한 젊은 작가가 있다는 점이고, 그 의도를 존중하며 성실히 무대화한 연출가가 있다는 점, 그리고 지원을 결정한 시선이 있다는 점이다. 아직은 미숙하지만 그 가능성을 믿는다는 것, 그것이 자양분이 되어 다양한 색채로 연극계를 풍성하게 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이다. 한 가지 색이 아닌 일곱 가지 색의 무지개가 황홀하게 빛나듯이 말이다

사진 CJ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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