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진엽 개인전 ‘춤,그녀…미치다’
2014년 12월 29~31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춤추는 삶에 대한 독백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불광불급(不狂不及)은 예술가의 숙명과도 같다. 미치도록 빠져들어야만 비로소 하나의 예술을 잉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춤에 미친 한 여자의 춤추는 삶에 대한 독백은 2014년의 마지막 사흘을 의미 있게 장식했다.
차진엽은 기교·표현성·무대 장악력뿐 아니라 외형적으로도 빼어난 무용수다. 영국 호페시 쉑터 컴퍼니와 네덜란드 갈릴리 무용단처럼 세계적인 단체에 입단해 활동했다는 경력이 전혀 놀랍지 않을 정도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안무로까지 영역을 확장했는데, 무용수로서 존재감을 무기로 삼기보다 착실히 작품력을 높여나갔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일이라 할 만하다.
차진엽의 신작 ‘춤, 그녀… 미치다’는 지난 12월 29~31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펼쳐졌다. 영상에는 차진엽이 그동안 발표한 작품들이 짤막하게 흘러간다. ‘Sitting in C’(2013) ‘White Crow’(2011) ‘Fake Diamond’(2013) ‘The 1st’(2010)가 그것인데 ‘춤, 그녀… 미치다’의 직접적인 소재이기도 하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안무를 시작했을 때에 초점을 맞춰 춤에 미친 자신의 삶을 한 시간 가까운 독무로 그려나간 것이다. 광고나 영화 예고편처럼 감각적인 영상에 사실성과 상징성을 갖춘 세트, 미니멀한 세련미를 돋우는 조명, 감성적이다 때론 기이하게 울리는 음향까지 더해져 그녀의 춤 독백을 예술적으로 완전하게 만든다.
작은 방은 차진엽의 사적 공간이고, 그녀의 내면이기도 하다. 전쟁터 같은 창작 일선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취하는 공간에는 각종 술과 장신구 그리고 강아지 인형이 놓여 있다. 거기서 여성이자 무용가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마음의 동요와 갈등을 진솔하게 열어 보인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근심, 뼈를 깎는 창작의 고통, 정신없이 흐르는 시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 찾아오는 외로움 등 그녀의 내면에 잠시 머물다 온 듯한 느낌마저 든다.
여성 무용가들은 자신의 춤 인생을 독무로 스케치할 때 감정에 치우쳐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차진엽은 자신의 삶에 묻어 있는 춤에 대한 사유와 정서를 움직임으로 이미지화하거나 일련의 분위기로 나타낸다. 그런 점이 젊은 감각의 컨템퍼러리 댄스, 최근의 현대무용답다. 작품의 예술성을 탄탄하게 유지하면서도 관객의 공감과 수용이 가능하도록 제시한 점 또한 긍정적이다. 더욱이 자신의 창작을 스스로 가장 잘 실현해낼 수 있는 무용수라는 점에서 차진엽은 대체 불가능한 존재다.
차진엽은 국내 무용계를 대표할 만한 독립 여성 무용가로 급부상했다. 무용계는 남성보다 여성 인구 비율이 훨씬 높다. 하지만 열악한 창작 여건에, 남성 무용가들의 약진이 두드러지는 상황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여성 무용가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차진엽은 이런 상황에서도 꾸준히 성장을 거듭하는 예술가로서 자신의 가치를 높여왔다. 근래에는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젊은 여성 무용수를 이끄는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차진엽의 행보가 단지 한 개인의 성취가 아닌 우리 무용계의 독립 여성 무용가의 길잡이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진 최남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