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보 두다멜/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5월 1일 12:00 오전

구스타보 두다멜/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3월 25~2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비극’을 통해 전달한 ‘긍정’의 메시지

퍽! 무대 왼쪽 맨 뒤편에 위로 솟구친 육중한 나무판을 거구의 타악기 주자가 자신의 키보다 길어 보이는 거대한 나무 해머로 내리쳤다. 순간 뿌연 먼지가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객석은 그 충격으로 휘청거렸다. 해머의 크기와 음량은 필자가 그동안 실연과 영상으로 지켜본 공연 중 단연 으뜸이었다. 더 이상 키우면 기계로 내리쳐야 할 터였다. 영웅은 이대로 죽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는 내내 그래온 것처럼 순식간에 ‘노래하는 영역’으로 진입했다. 탁월한 전환이었다. 그리고 5분쯤 흘렀을까. 나무 해머의 두 번째 타격이 가해졌다. 실로 무자비함의 극치였다. 비극을 이토록 그로테스크하고도 영화처럼 실감나게 그려낼 수 있음에 절로 탄성이 나왔다.

3월 2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8년 만에 내한 공연한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끈 이는 구스타보 두다멜이다. 말러 교향곡 6번 ‘비극적’ 4악장 피날레 가운데 발전부의 그 유명한 ‘해머의 타격’ 부분에서 두다멜은 눈과 귀를 모두 만족시켰다. 그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다이내믹의 극적인 대비는 이 부분에서 극대화되어 청중을 패닉 상태로 몰고 갔다. 진저리나게 암울한 것은 아니었다.

‘긍정의 비극’. 이 부조리한 역설이 그의 지휘봉 끝에서 뿜어져 나왔다. 결국 파국의 끝은 눈물이 아닌 소리의 향연에 도취된 객석의 환희였다. 4악장 러닝 타임 30분의 마지막 음표를 마치고 소름끼치는 정적이 흘렀다. 이를 깨뜨린 환호, 청중은 비탄에 잠긴 게 아니라 밝게 웃고 있었다. 두다멜식 말러의 종착역은 일그러진 청중의 얼굴이 아니라 말러의 의도와는 사뭇 다른 ‘긍정의 비극’이었다. 말러가 의도한 비극적 쾌락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건 젊은 두다멜이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였다. 그가 LA 필하모닉과 함께한 교향곡 9번 음반에서 느껴지던 장고(長考)는 타악기 전시장이나 다름없는 악기 수를 뒷받침하는 소리의 향연에 묻혔다.

두다멜의 열광적 팬을 일컫는 ‘두다 마니아’는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5관 편성으로까지 부풀려져, 110명의 단원이 무대를 꽉 채운 뒤 등장한 두다멜에게 연주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엄청난 박수가 쏟아졌다.

1악장 도입부의 진군하는 군대의 행진곡은 일사불란하게 질주했다. 벨을 치켜든 목관악기의 기세는 마치 하늘을 찌를 듯했다. 카우벨의 효과는 4악장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채로웠다. 때로 무대 밖에서도 울려나오는 갖가지 모양의 소리는 두다멜이 낯선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의 구조를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파악했음을 보여주는 결과물이었다.

아쉬움은 2악장에 있었다. 안단테 악장을 스케르초 앞에 전진 배치했으나 1악장의 연장선이었다. 현은 계속 거칠었고, 저음 악기는 앞으로만 들이밀었다. 사유하는 말러의 모습을 두다멜은 아직 보여주기 싫었던 걸까. 바츨라프 노이만과 주세페 시노폴리의 연주에서 감지된 칠흑 같은 내면의 울림이 부족했다. 미국 악단의 한계일 수도 있다.

다음 날, 두다멜은 연주 도중 놓친 지휘봉을 두 곡의 앙코르가 끝나고 주워준 청중에게 선물했다. 어쩌면 이번 내한 무대에서 그가 남기고 간 것은 음악이 아니라 진한 인간미였는지도 모른다. 하루도 쉬지 않고 사고와 부정이 난무하는 세상에 조금이라도 긍정의 위안을 주고 싶은….

사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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