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비에 뒤부아 안무, 발레 뒤 노르 ‘비극’
4월 10~11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점증된 움직임을 담은 한 편의 무용시
2013년부터 프랑스 발레 뒤 노르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올리비에 뒤부아가 대작 ‘비극(Trag?die)’으로 내한 공연을 가졌다. 성남아트센터 개관 10주년 기념작으로 초청한 ‘비극’은 2012년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초연한 이후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1972년생 올리비에 뒤부아는 23세 때 무용을 처음 시작했다. 2003년 가수 셀린 디옹과 스펙터클 단체 ‘태양의 서커스’가 함께한 라스베이거스 무대를 비롯해 카린 사포르타, 앙줄랭 프렐조카주, 얀 파브르, 자샤 발츠 등과 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가 안무가로 두각을 나타낸 작품은 2006년의 ‘지상의 모든 금을 위하여’다. 여기서 등장한 폴 댄스는 이후 군무 ‘혁명’에 재등장했고, ‘혁명’에서 반복되던 행진이 ‘비극’에 다른 형태로 활용된 연관성이 보인다.
18명의 남녀가 90분 내내 나체로 공연하는 ‘비극’에 대해 안무가는 “한 편의 무용시로 감상하기 바란다”고 말한다. 니체의 저서 ‘비극의 탄생’에서 발췌한 “노래와 춤을 통해, 인간은 우세한 집단에 소속되었음을 명시한다. 그는 걷고 말하기를 잊고, 춤에 의해, 바야흐로 공중을 난다. 그의 몸짓은 그의 매혹된 상태를 대변한다”는 내용을 다룬 ‘비극’은 그리스, 디오니소스, 마이나데스를 연상시킨다. 고대 그리스에 대한 막연한 향수를 깔고 시작한 작품에 대해 사람들은 관대하다. 올리비에 뒤부아는 바로 이 관대함을 담보로 나체의 향연을 펼친다.
막이 오르면, 등·퇴장이 용이한 배경 막을 가르고 사람들이 하나 둘 등장한다. 중저음 타악기 소리가 반복되는 가운데 등·퇴장 행진이 반복된다. 점증, 다시 소수의 시작이 반복되면 시선은 자연스레 다른 모양새의 여러 몸을 관찰하는 데 집중된다. 몸과 몸을 비교하며 각각의 사연을 엿듣는 느낌을 받는다. 20분 행진 후의 암전은 전개상 변화를 기대하도록 했다. 하지만 당황스럽게도 걷기가 반복된다. 40분이 지나면서 남녀 집단이 분리되고, 한 박자에 하나씩 포즈를 변화시킨다. 교차 행진하는 그룹은 미니멀 기법에 작은 변형을 포함시킨다. 미니멀리즘은 움직임의 반복 자체가 목적으로 의미나 표현성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이후 아너 테레사 더 케이르스마커르 같은 부류의 음악에 상응하는 동작으로 보다 율동적인 반복의 춤을 제시했다. 올리비에 뒤부아는 반복 자체보다는 반복이 주는 감정적 효과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외양은 유사하나 목적이 다르다.
후반에 또다시 시작된 행진은 객석을 경악하게 한다. 기존 음악에 덧붙인 굉음, 빠른 걸음, 회전, 어깻짓, 미끄러지듯 쫓아가는 스텝, 고개 흔들기, 무릎 구부려 절룩이기, 사이렌 소리와 발작적 도약, 쓰러지고 달리기, 그리고 다시 반복된 행진은 몽롱한 의식, 접신 가능성을 내비친다. 통곡하며 머리칼을 날리는 마이나데스,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이브와 비교될 법한 여인의 고통도 보인다. 마무리로 접어든 조직화된 동작구, 그리고 결국 성적 욕망 분출이 절정에 배치되었다. 사이키 조명에 숨은 요란한 포즈가 지겨울 즈음 출연진이 하나씩 막 뒤로 사라진다. 꿈처럼, 아무것도 없던 처음처럼 무대는 조용하다. 한 인터뷰에서 올리비에 뒤부아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체 공연을 많이 했다. 나를 만난 안무가들은 항상 내게 벗기를 원했다. 항상! 나에게만!” 어쩌면 그의 벗기 경력이 성공적 누드에 대한 어떤 요령을 키웠는지도 모르겠다.
농 당스 마지막 세대로 분류하고 싶은 안무가, 미니멀리즘에 표현성을 가미한 올리비에 뒤부아의 ‘비극’에 대해 혹자는 “허세 부리고, 공허한, 매우 지겨운” 공연이라 평가한다. 하지만 니체를 앞세운 오랜 걷기 반복이 아폴론적이었다면, 격렬한 남녀 대무는 디오니소스적이라 할 만하니, 무용시 ‘비극’이 지닌 신화적 상상력은 풍성하고 자유롭다. 줏대 있는 배짱으로 객석과의 감각적 흥정에 성공한 올리비에 뒤부아의 안무. 연출력이 빛난 무대다.
사진 성남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