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9~10일
LG아트센터
반복 그리고 차이
1998년 8월, 빈에서 초연한 ‘드러밍(Drumming)’은 스티브 라이히(1936~)가 작곡한 동명의 곡에 아네 테레사 더 케이르스마커르(1960~)가 안무를 붙인 작품이다. ‘미니멀리즘’의 계보에 속하는 라이히의 특징은 음의 ‘반복’에 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특징이 벨기에 출신 여성 안무가에 의해 어떤 춤으로 이미지화될지 궁금했다. 무용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드러밍’은 예상과 달리 만만치 않은 작품이었다. 애초부터 ‘반복’과 ‘라이히’라는 제한된 코드로 이 작품을 예상-재단-예습한 결과다. 하지만 60여 분의 공연이 끝났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무엇이 있었다. 그것은 반복이라는 특징을 가능케 하는 ‘차이’의 존재론이었다.
라이히는 아프리카의 가나에 다녀온 후 1970~1971년 ‘드러밍’을 작곡했다. 총 네 파트로 구성했으며, 봉고·마림바·글로켄슈필을 기반으로 휴지 없이 이어지는 곡이다. 두 명 이상의 주자가 동일한 음악적 동기를 동시에 연주하다(반복), 각자 템포를 달리해(차이) 규칙적이던 리듬을 어긋나게 한다. 즉 규칙적인 대위법에 시간차를 두어 서로 어긋나는 시간대를 연출하는 것인데, 묘하게도 그 불규칙에서 새로운 규칙과 정련된 질서(반복)가 나온다. 그래서 ‘드러밍’을 듣다 보면 타악기가 뿜어내는 리듬이 흩어지다가(해체), 메트로놈이나 다듬이 소리처럼 혹은 일정한 장단을 타는 장구 소리처럼 들려온다.
1982년 아네 테레사는 라이히의 음악에 안무를 붙여 ‘파세(Fase)’를 선보였다. 그중 ‘피아노 페이즈(Piano Phase)’는 마치 무용수가 유리로 된 큐브에 들어가 반복적 움직임으로 모서리와 크기를 표현하는 것 같다. 이러한 춤은 하나의 마디를 무한 반복하는 라이히의 기법을 연상시킨다. ‘드러밍’도 이런 반복적 움직임이 중심이 된 작품이다. 다만 ‘파세’와 다른 점은, 한국 출신의 윤수연을 포함한 열두 명의 무용수가 60분 동안 무대의 구석구석을 뛰어다닌 것. 그들은 ‘면(面)’을 횡단하다 한 곳에 머무는 ‘점(點)’이 되어 투명한 큐브 속에서 그 모서리와 크기를 묘사하는 듯한 움직임을 선보였다.
그런데 ‘드러밍’에 심어놓은 아네 테레사의 또 다른 강령이 재밌다. 안무 노트를 보니 핵심은 ‘갈수록 큰 큐브를 표현하라!’인 것이다. 여기에 라이히의 음악은 조건을 덧붙인다. ‘(하지만) 그대에게 언제나 늘 같은 길이의 한 박자가 주어진다!’ 즉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한 박’을 기준으로 무용수들은 작은 큐브부터 큰 큐브를 묘사했다. 그래서 작은 큐브의 모서리와 크기를 묘사하던 무용수의 동작은 큰 큐브를 묘사할 때 그 움직임이 더 빠르고 커졌다. 예를 들어, 동일한 시간을 놓고 작은 그릇과 큰 그릇을 똑같이 채워야 하는 경합을 벌인다면 당연히 큰 그릇을 채우는 이는 작은 그릇을 채워야 할 이보다 더 분주하고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반복되던 춤에 새로운 명령 코드를 입력해 반복 속에 차이를 준 아네 테레사의 ‘드러밍’은 지능적으로 다가온 무용 작품이었다. 라이히의 음악에 대해 말할 때도 보통 ‘반복’을 내세운다. 하지만 ‘드러밍’은 음악적으로나 무용으로나 ‘차이’의 존재론을 느낄 수 있도록 시야를 확장시킨 작품이었다.
사진 LG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