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홍석재가 말하는 연극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

저 안쪽과 여기 바깥은 정말 다른 세계일까?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7월 1일 12:00 오전

우리 사회의 ‘예외’를 보는 영화감독의 색다른 시선

인간과 사회에 대한 사회학적·인문학적·예술적 상상력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두산인문극장의 2015년 주제는 ‘예외’였다. 그동안 강의와 영화, 공연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의 ‘예외’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고민한 만큼 이번 주제의 마지막 작품이던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는 히키코모리 지원 단체의 출장 상담원이 된 토미오를 중심으로 상담원과 히키코모리, 그들의 가족 이야기를 다룬다. 한편 두산인문극장에서는 6월 한 달간 영화 ‘소셜포비아’ ‘들개’ ‘예외’를 주제로 한 작품을 선정해 관람하면서 관객과 감독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예외’라는 주제를 갖고 각 장르가 서로 소통할 수 있었던 시간. 그렇다면 SNS 마녀사냥을 소재로 누군가를 가해자 혹은 피해자로 판단할 것인가. 그 모호한 경계에 대해 생각하게 한 영화 ‘소셜포비아’의 홍석재 감독은 연극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를 어떻게 보았을까?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편집자 주)


▲ 영화 ‘소셜포비아’

실제의 나와 상상적인 나 사이의 간극

‘덕후’(한 가지에 과도하게 열광하는 사람) 입장에서 히키코모리는 꽤 친숙한 유형의 인간상이다. 히키코모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엄청난 성공을 거둔 라이트노벨의 ‘NHK에 어서 오세요’ 이후 일본 서브컬처에서 히키코모리를 주인공으로 삼은 텍스트는 이제 눈에 밟힐 정도로 많다고 할 수 있다. 지금에야 히키코모리를 다루는 텍스트도 자기 복제와 상투적인 클리셰로 진부해졌지만, 초창기 히키코모리라는 이전에 없던 유형의 캐릭터들이 다뤄졌을 때의 생경함은 놀라웠다. ‘NHK에 어서 오세요’를 읽었을 때의 기분 나쁨이 기억난다. 1인칭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 작품의 매력은 히키코모리의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자기혐오와 끊임없는 피해망상, 대인공포 그리고 갑작스레 분출하는 날 이렇게 만든 ‘누군가’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너무 생생하고 노골적으로 다가오는 데 있다. ‘NHK에 어서 오세요’의 작가 또한 본인의 히키코모리 경험을 바탕으로 고백하듯 소설을 완성했다. 역시 히키코모리 경험이 있는 원작자 이와이 히데토는 연극이란 매체에서 어떻게 히키코모리라는 전에 없던 현대적 문제 인간을 다뤘을까?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는 일부러 거리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우리가 바라보게 되는 극 중 히키코모리 캐릭터들은 매번 누군가의 시선을 통해 소개된다. 매 장면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는 누군가를 설정해둔다. 설정된 시점 인물은 무대 끄트머리에 서서 가만히 바라본다. 그런 설정이 히키코모리라는 인간들을 바라보기로 한 이 극의 거리감, 선택이 아닐까?

심지어 히키코모리 캐릭터도 한 명이 아니라 세 명이 등장한다. 그렇게 되면 관객은 비교하게 된다. 그런 비교를 통해 히키코모리를 어떤 개별적인 성격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나이나 세대를 불문한 인간의 한 유형으로 이해하게 된다. 다시 말해 ‘멀쩡함’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다 퉁치는 개념으로 히키코모리를 접근한 것 같다. 즉 연극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는 히키코모리라는 인간형 그 자체의 성격에 대해 깊게 파고들지는 않는다. 되레 극이 선택한 전략은 ‘넓게’ 그리고 ‘덜 불편하게’라고 하겠다. 인터넷 관심종자에 대한 영화를 찍었던 내 입장에서 멋대로 생각해보면 원작자는 히키코모리에 대한 묘사의 수위를 고민했을 것 같다. 나 역시 인터넷에 빠져 있는 아이들에게 관객이 마음을 줄 수 있길 원했지만, 그렇다고 그 아이들의 독기가 빠지는 건 싫었다. 타자에 대한 리얼리티를 확보하면서도 그 타자와 우리를 동일시하기를 원했다. 말이 쉽지, 이건 상당히 모순되는 요구다. 결국 그 농도가 아주 쥐어짠 엑기스를 뽑을 수 있음에도 조금씩 묽게 만들게 된다. 연극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를 보면서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그 부분은 경우에 따라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만 원작자의 선택은 더 많은 사람이 좀 더 쉽게 받아들이게 한다. 타로의 아버지를 굳이 다뤄주는 방식을 살펴보면 ‘멀쩡함’에서 벗어난 국외자인 히키코모리는 실은 우리 중 누구라도 될 수 있다는 걸 상기시킨다.

원작자 이와이 히데토의 인터뷰를 찾아보면, 히키코모리는 현실의 자신과 이상적으로 꿈꾸는 자신의 차이가 너무 커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라 대답한다. 이 간극에 대한 언급이 흥미로웠다.

공교롭게도 내가 만든 영화에도 유사한 언급이 등장한다. 영화 속에서 미스터리의 키를 붙들고 있는 악명 높은 여자 악플러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묻는 질문에 그녀는 ‘에고는 강한데 그걸 지탱할 알맹이가 없어서’라는 대답을 들려준다. 어휘 사용이 다를 뿐 완전히 똑같은 말이다. 실제의 나와 상상적인 나 사이의 간극이 사람을 병들게 만든다. 흥미로운 건, 같은 병인이어도 서로 정반대의 벡터로 증상이 발현되었다는 것이다. 한쪽은 타인을 거부하고 틀어박혀버린다. 다른 한쪽은 타인을 헐뜯고 깎아내린다. 삐걱거림은 내 안에서 시작했는데, 왜 결론이 타인과의 관계성으로 튀어버릴까?

나는 이 두 정반대 양상의 병적 징후가 가장 현대적 유형의 인간상을 엿볼 수 있는 힌트라고 생각한다.

이런 병적 징후가 만연한 세계에 어떤 구원이 존재할 수 있을까? 여기서 모리타가 나온다. 연극 내내 모리타라는 존재가 흥미로웠다. 처음 이 연극을 봐야겠다고 생각한 부분도 히키코모리였던 사람이 히키코모리가 밖으로 나오도록 상담하는 일을 한다는 지점 때문이었다. 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구원받아본 적이 있는 사람 아닌가. 구원이라는 단어를 사랑이라는 단어로 바꿔도 말뜻은 성립한다. 인간과 인간은 계속 주고 또 받아야 한다.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으려 들면 그 순간 인간이라는 기계는 어딘가에서 오작동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모리타는 얼핏 보면 초인 같다. 카즈오·타로와 다르게 그는 히키코모리 시절을 극복했고, 이젠 히키코모리인 사람들을 구원하고 싶어 한다. 딱히 대단한 신념이나 의지 같은 걸 있어 보이지 않는다. 무언가 나사가 빠진 것 같은 헐렁함.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그런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어려운 일을 해내는 걸 보게 된다.

연극을 보며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카즈오가 밖에 나가기 위해 완벽해지려고 몇 년째 공부하고 있는데, 모리타를 만나고 나서는 이렇게 엉성한 사람이 밖에 나가 멀쩡히 잘 다니고 있다니 하고 놀라는 장면이다. 지금의 자신이 절대적인 게 아닌데, 우리는 그러기를 원한다. 거기서 간극이 발생하고 문제가 시작한다. 모리타가 훌륭한 구원자인 것은 나와 상상의 나 사이에 통합이 이루어져서다. 모리타는 자신에 대해 너무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위에서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현대인으로서 아주 어려운 일이다.

모리타가 어떻게 해서 그런 통합을 이루어냈는지 자세히 보여주지 않는 게 조금 아쉽다. 모리타가 집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된 에피소드에는 히키코모리의 고통이 자세하고 절절하게 담겨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지금의 모리타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모리타가 밖에 나와야 하는 이유를 토해내듯 내뱉는 장면의 울림은 크다. 밖에 나오면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다. 불행해질 가능성도 같이 높아질지 모르지만,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희망 때문에 모리타는 밖으로 나왔고 자신과 같은 처지의 동료들을 구하려고 애쓴다.

이 작품은 담담하게 세 히키코모리 캐릭터의 전말을 그려낸다. 밖으로 나왔지만 크게 바뀌지 않은 사람도 있고, 밖에 나와서 무사히 적응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마지막 한발을 앞두고 포기한 사람도 있고, 그럼에도 계속 밖에 나오길 잘했다고 외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연극은 묻는다. 다들 뭐하는 거지? 대체 우린 바깥세상에서 뭘 하는 거지?

그렇게까지 해서 나온 바깥이 정말 의미가 있을까? 혹은 저 안쪽과 여기 바깥은 정말 다른 것일까? 연극은 쉽게 답을 내려주지 않는다. 다만 먹먹한 질문이 남는다.

글 홍석재

중앙대학교 영화학부에서 여러 편의 단편 영화 작업을 하고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 만든 ‘필름’(2009)으로 미장센영화제 및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 소개되었고 신상옥 영화제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연출한 ‘과월사랑세 납부고지서’(2011)와 ‘Keep quiet’(2011)가 미장센단편영화제에 소개되었고 ‘Keep quiet’는 관객상과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다. 영화 ‘소셜포비아’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제작연구과정 작품이자 장편 데뷔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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