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춤을 통한 교류의 중심지가 되다
귓속을 파고드는 파도 소리, 푸른 바다를 가로지르는 크고 작은 배들이 만들어내는 풍광, 그리고 하얀 모래사장 위에 세운 무대.
해운대 바다를 배경으로 특설 야외무대에서 펼쳐지는 춤 공연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어두컴컴한 극장에서, 익숙한 공연장에서 보는 정형화된 무용 공연과는 확실히 그 분위기부터 다르다.
6월 13일 토요일. 해 질 무렵 흐린 날씨의 해운대 바다는 코발트빛으로 변해 있었다. 넓은 모래사장 위에 500개가 훨씬 넘어 보이는 의자가 놓여 있다. 도로와 해변을 경계 짓는 작은 둔덕을 중심으로 적지 않은 관객이 모여들었다. 개막 공연이 열린 전날보다 바람도 잦아들었고, 관객도 늘어난 탓인지 축제 관계자들도 한층 고무된 표정이다.
공식 초청 작품의 공연 전, 대학 무용단이 출연하는 춤 아카데미의 출품작들이 먼저 선보였다. 한국무용·현대무용을 전공한 무용수들의 각기 다른 색깔의 컨템퍼러리 댄스, 발레, 댄스 스포츠 등이 차례로 무대를 수놓았다.
7시 30분이 조금 넘어섰다. 개막 공연의 첫 순서를 장식한 얀 르뢰 안무의 ‘현행범(Flag)’은 애크러배틱한 움직임과 대중 무용을 접목한 프랑스 안무가 특유의 서커스와 춤이 오버랩되는 콘셉트의 작품이었다. 한국에서 몇 차례 공연한 이력이 있는 안무가는 무대 위 2m 남짓한 가설무대를 설치, 세 명의 남성 퍼포머를 등장시켰다. 점프를 곁들인 곡예적 움직임, 질주와 멈춤, 마치 소품처럼 자유자재로 자전거를 활용하는 기예, 그리고 힙합의 움직임을 버무려 프랑스에서 유행하는 아트 서커스 같은 유형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이어진 핀란드 카리 앤 로니 마르틴 컴퍼니의 ‘붉은색의 여인(Le Femme Rouge)’은 남녀 무용수의 2인무였다. 안무가 카리 마르틴은 컨템퍼러리 플라멩코 작업으로 유럽에서 주목받는 중견 안무가다. 그의 다른 레퍼토리에 비해 이날 선보인 작품은 플라멩코 고유의 맛깔스러움과 이를 현대적 감각으로 버무렸을 때 담아낼 수 있는 시각적인 화려함, 무용수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의 조합이 빠져 아쉬움을 남겼다.
스페인 엔토모 EA 앤 AE의 남성 2인무 ‘곤충(entomo)’은 곤충의 속성을 담아낸 듯한 신체의 분절을 통해 특유의 움직임과 두 무용수의 파트너십이 엿보인 작품이나, 동작의 밀도나 음악의 매칭 등 소극장에서 하면 더욱 예술적 완성도가 살아났을 작품이었다.
인도 샹카란안다 카라크셰트라 무용단의 ‘나바라사 삶의 표현(Navarasa-Expression of Life)’은 인도 전통무용의 색채가 강하게 묻어난 군무 작품이었다. ‘나바라사(Navarasa)’는 아홉 가지 감정을 뜻하는 말이다. 중국 쑤저우 발레 시어터는 ‘백조의 호수’ 2막 파드되를 선보였다.
국내 초청 무용단은 조윤라발레단의 ‘우리들의 별을 위하여’(안무 조윤라), 블루댄스씨어터의 ‘더 송(The Song)’(안무 김보라), 김용철섶무용단의 ‘웃게하소서’(안무 김용철), 비주얼 쇼크 크루의 ‘올드 앤드 뉴(old and new)’(안무 하휘동)가 차례로 해외 무용단 사이사이에 공연했다.
6월 14일에는 이스라엘·싱가포르·체코·이탈리아 무용단의 공연과 현대무용단 자유 등 국내 무용단의 공연이 계속 이어졌다.
3일 동안 펼쳐진 야외무대 공연은 해외 초청 무용단의 경우 전체적으로 서커스·플라멩코·민속무용·발레·현대무용 등으로 작품의 성격을 차별화했고, 국내 초청팀의 경우 한국무용·발레·현대무용·대중무용 등 각기 다른 성격의 작품으로 프로그래밍을 시도한 흔적이 눈에 띄었다.
부산국제무용제는 메르스로 인해 6월 16일 폐막 공연과 시민과 함께하는 춤 등의 프로그램이 취소되었고, 젊은 안무가들의 무대인 AK21 안무경연대회는 6월 15일 비공개로 부산문화회관 중극장에서 치러졌다.
관객 대부분이 일반 대중인 점을 감안하면 앞선 대학 무용단들의 공연팀 선정도 그렇고, 각기 다른 음악과 의상, 춤의 맛깔만으로도 다채로웠다. 3시간 이상 공연을 쭉 지켜본 관객은 하루 만에 국내외 14개 무용단의 다양한 춤을 한꺼번에 관람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3일에 걸친 축제 기간 동안 야외무대에서만 30여 개의 작품을 선보이는 양적인 풍성함을 제공했으나, ‘공식 초청 공연 단체를 포함해 적지 않은 작품이 야외 공연에 적합한 것이었나?’라는 측면에서 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야외 공연을 빛낼 작품을 고르기란 그리 쉬운 작업이 아니다. 공연 단체 대부분이 실내 극장에서 하는 작품을 우선적으로 제작하기 때문이다. 야외 공연을 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만큼, 야외용 작품을 따로 보유한 단체는 적을 수밖에 없다. 공연 예술 축제를 프로그래밍할 때, 각기 다른 성격의 작품을 배치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작품의 질적 수준과 축제의 성격에 맞는 공연 작품을 제대로 조합해내는 일이다.
질적 성장을 위한 과제
부산국제무용제는 올해로 11회를 맞았다. 2005년 1억 원의 예산으로 시작된 축제는 한동안 7억 원 안팎의 규모로 늘어났으나, 2년 전부터는 절반 이상으로 줄어들었다. 참가 단체나 프로그램의 수는 확연히 늘었다. 외형적 규모에서 보면 출범 당시보다 확장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부산광역시가 계절별로 대표 축제를 표방하고 그 안에 부산국제무용제를 수용한 만큼 이제 부산국제무용제는 부산을 대표하는 무용 축제로, 10년이 넘은 연륜에 걸맞게 내실을 갖춘 예술 축제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
부산은 전통적으로 춤의 기운이 강하게 흐르고, 무용 예술에 대한 열정 또한 다른 어떤 지역보다 거세다. 무용 축제도 그에 걸맞은 질적 성장을 동반한 ‘인터내셔널’ 축제로 거듭나야 한다. 부산 시민과 관광객에게 수준 높고 다양한 공연 예술의 감상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문화적 감수성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기여해야 한다. 올해 축제에서 보여준 것처럼 대구·대전·서울 등 전국의 지역 무용수들이 해운대에 모여 함께 축제를 꾸미는 것만으로도 부산은 춤을 통한 교류의 중심이 되었다.
인구 20만의 프랑스 몽펠리에 시는 수준 높은 춤 축제(몽펠리에 댄스 페스티벌)를 통해 시민의 예술적 안목이 파리 시민의 수준을 넘어설 정도로 키워졌고, 축제를 통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했다. 예술을 통한 질 높은 축제를 꾸준히 지향하고 이에 대한 투자를 지속했기 때문이다.
부산국제무용제는 휴양지 댄스 페스티벌이라는 차별화된 특성이 있다. 그동안 부산국제무용제에 참가한 외국의 축제 예술감독이나 무용 전용 극장의 감독들은 하나같이 부산 해운대의 입지적 여건과 관객의 열기, 바다를 배경으로 한 야외 공연의 요소를 꼽으며 축제로서 부산국제무용제의 경쟁력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예술감독제를 도입해 휴양지 축제로서 프로그래밍을 특화하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것이다.
글 장광열(춤 비평가) 사진 부산국제무용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