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24일 음악계에 비보가 전해졌다. 인디애나 음대 교수인 바이올리니스트 배익환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실내악의 대중화, 그리고 교육자로서 후학 양성을 위해 노력해온 그의 삶은 57세 젊은 나이로 세상과 뜻밖의 작별을 고했다. 그가 떠난 지 어느새 일 년을 맞았다. 바이올리니스트 배익환을 그리워하는 그의 동료와 후배 음악인들이 그의 삶을 추모하기 위해 9월 7일 한 무대에 선다.
‘그의 겸손과 용기와 사랑을 기억하며…’라는 부제로 펼쳐지는 이날 음악회에는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김남윤·배상은·양성식·이경선·이보연·임윤미·임지영, 비올리스트 김병완·김상진·최은식, 첼리스트 조영창·박상민·송영훈·이강호, 피아니스트 김영호·임성미, 그리고 화음쳄버오케스트라가 함께한다. 이들은 시벨리우스의 즉흥곡 Op.5를 비롯해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8번 ‘조화의 영감’, 바흐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BWV1060 등을 연주한다. 특히 배익환이 부인 임성미, 후배 송영훈과 함께 생전에 마지막으로 연주한 브람스의 피아노 삼중주 1번을 강동석과 송영훈, 임성미의 연주로 다시 만날 수 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일 년의 시간이 흘렀네요.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한 시간이었어요. 그동안 주위의 많은 분이 저희 가족을 많이 걱정해주시고 마음을 나눠주셨습니다. 무척 힘든 시간이었지만 마음만은 사랑으로 따뜻했어요.”
암 투병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 후 떠나보낸 남편이었기에 그녀의 마음은 더 아팠지만 한 편으로는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이라는 인생의 큰 조각의 퍼즐을 경험한 시간이었다.
“늘 연주만 하고 살았지만 투병하는 동안은 남편과 긴 시간을 함께할 수 있었죠. 얼마나 남편이 우리 가족과 음악을 사랑했는지, 순수하게 사람들을 아꼈는지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특별한 경험이었고, 모든 걸 바꿔놓은 시간이었죠. 하지만 요즘도 남편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 가끔씩 믿기지 않을 때가 있어요. 어디선가 연주를 하고 있을 것만 같고, 연주 여행을 한 후에 문을 열고 금방이라도 집에 들어올 것 같고요.”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그녀를 가장 위로해준 건 음악이었다.
“남편과 이별하고 이미 일 년 전 약속된 가을 시즌의 연주를 하게 되었는데, 연주를 시작하면 왠지 모르게 남편의 음악이 제 뒤에서 잔잔히 흐르는 것같은 따뜻함이 느껴졌어요. 그러면서 음악을 통해 많은 위안을 받았죠.”
배익환을 기억하는 많은 동료 음악인과 제자들은 따뜻한 말과 행동, 그리고 진지했던 그의 음악을 사랑했다. 가정에서도 그는 가족을 위해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주는 자상한 남편, 최고의 아빠였다.
“남편이 워낙 요리를 좋아했어요. 얼마 전에는 남편이 해주던 요리를 아들 수빈이와 둘이서 만들어 먹었어요. 곁에서 우리를 보고 있었다면 흐뭇하게 미소 지었을 텐데. 이번 음악회는 남편과 친하게 지내며 서로 아끼던 연주자들과 함께 하는 것이라 감격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남편이 더 그립고 보고싶어집니다.”
삶은 ‘기쁨과 슬픔의 변주’라고 했던가. 슬픔이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 건 그 빈자리에 사랑이 남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배익환을 아끼고 사랑하던 연주자들이 모여 그를 그리워하고 추모하는 자리. 그의 겸손과 용기와 사랑을 기억하는 그 자리에 ‘음악’이 있다는 것이 감사할 뿐이다.
첼리스트 송영훈이 기억하는 배익환
‘내 가슴에 남은 선생님과의 마지막 연주’
“배익환 선생님은 같이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특별히 더 사랑하는 연주자였어요. 음악에 대한 진지함이 정말 존경스러웠죠. 늘 공부하고, 자상하게 사람들을 대해주시던 분, 그래서 선생님의 음악에는 따뜻함이 있었어요. 선생님을 처음 만난 건 스물두 살 무렵 부산에서 이바하 페스티벌에 초청되었을 때예요. 당시 선생님과 함께 브람스·베토벤 앙상블을 한 것이 인연이 되어 저도 실내악을 계속하게 되었고 더 좋아하게 되었죠. 시간이 갈수록 그 분의 인품과 음악은 빛났고 저는 선생님을 정말 존경했어요.
더구나 선생님과는 마지막 가시는 길에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어요. 3년 전 어느 날, 선생님이 갑자기 점심식사를 하자고 하시더군요. 둘 다 바쁘게 지내다 아주 오랜만에 만난 거였는데, 그때 선생님은 피아노 트리오 연주를 정말 제대로 준비해서 무대에 한번 서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서 배익환 선생님과 임성미 선생님, 저, 이렇게 셋이서 트리오 연습을 시작하게 되었죠. 2013년 11월 무대에 서기 위해 그 해 여름부터 준비를 했으니, 저도 태어나서 실내악 연습을 그렇게 많이 한 건 처음이었어요.
혼신을 다했던 그날 연주는 뭔가 특별한 감동이 있었지요. 당시 선생님은 암 투병 중이셨는데, 선생님을 아끼고 사랑했던 많은 동료들이 연주회장에 오셨어요. 그날은 마침 선생님의 생일이셨는데, 마지막 연주가 끝나고 모두 박수로 감동을 나누던 순간,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무대에서 청중을 바라보고 있으니 왠지 모를 슬픔이 밀려오더군요. 그리고 느낄 수 있었어요. 사람들이 눈물로 그 분에게 사랑의 ‘굿바이’ 인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선생님이 그렇게 세상을 갑자기 떠나시고 나서 전 삶과 죽음이 한 일직선상에 있다는 걸 실감했어요. 그리고 정말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순간이 온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죠.
이번 추모 음악회 때 선생님과 마지막으로 연주했던 그 브람스 곡을 다시 연주하게 되어 감회가 깊습니다. 선생님이 하늘나라에서 들으시고 환하게 웃어주셨으면 좋겠네요. 선생님이 지금 함께 있다면 그동안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다시 밤새워 할 수 있을 텐데…. 이제 못 다한 안부는 음악으로 전해야겠지요. 환한 미소로 저를 안아주시던 배익환 선생님이 오늘 정말 그립습니다.”
배익환 추모음악회
9월 7일 오후 7시 30분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극장
브람스 피아노 3중주 1번 외
사진 경기도문화예술의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