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 서희 마스터클래스 현장 ‘꿈은 아름다워라’

‘객석’과 선화예술중·고등학교가 공동 주최한 마스터클래스 속에서 새록새록 꿈을 키워가는 학생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9월 1일 12:00 오전

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콜필드의 꿈은 파수꾼이다. 드넓은 호밀밭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을 때, 아득한 절벽 앞에서 떨어질 것 같은 아이들을 재빨리 붙잡아주고 싶었던 콜필드. 아이들이란 예나 지금이나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나타나 떨어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그는 말한다. 콜필드의 말처럼 모든 것이 두렵고 불안한 사춘기 시절에 누군가가 붙잡아준다면, 누구나 겪는 성장통이라며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면, 모든 것을 이겨낼 힘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월간객석과 선화예술중·고등학교 주최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수석무용수 서희 마스터클래스’가 지난 8월 6일 선화예고 델라스홀에서 진행됐다. ‘객석’은 미래를 책임질 예비 예술가들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자라나는 예술학도에게 선망하는 선배와의 만남의 장을 제공하고, 소통을 통해 ‘예술가’로서 자긍심을 고취하고자 마스터클래스를 기획했다. 이번 마스터클래스는 선화예술학교 출신인 서희가 후배들과 클래스를 진행하고, 진솔한 대화를 주고받는 시간이었다.

어린 시절 땀이 묻어 있는 델라스홀로 들어서는 서희의 마음은 호밀밭으로 들어가는 콜필드의 마음 아니었을까. 80분의 클래스와 30분의 공개 인터뷰로 프로그램은 예정됐지만, 후배들과 대화 시간을 늘리고 싶다는 서희의 따뜻한 요청으로 공개 인터뷰는 50분으로 변경됐다.

시작 30분 전, 학생들은 서희에게 묻고 싶은 질문지를 작성하고 홀 안으로 입장했다. 선화예술중·고등학교 무용과에 재학 중인 70여 명의 학생들이 모였고, 클래스를 진행하는 열네 명의 학생은 부단하게 움직이며 몸을 풀었다. 서희가 입장하자 학생들은 일동 기립했다. 열화와 같은 성원에 서희의 눈이 동그래졌다.

클래스를 시작하자마자 서희는 음악을 멈춘 뒤, “음악과 함께 숨을 쉬라”고 말했다. 흘러나오는 곡이 어떤 작품인지 확인하고, 영혼을 담아 춤을 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몸의 움직임과 음악의 끝이 분명히 맞아야 하고, 숨과 몸이 함께 움직였으면 좋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주로 사용하는 근육 외에도 잔근육을 훈련해야 난이도 높은 전막 발레를 수월하게 소화할 수 있다고 말하자, 학생들의 눈이 진지해졌다.

“힙합 무용수들을 보면 ‘소울’이 느껴지지 않나요? 우리도 영혼이 담긴 춤을 춰야 해요. 발레의 움직임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클래스가 끝나고 많은 학생이 ‘춤을 추라’는 그녀의 말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밝혔다. 한 학생은 “평소 학교에서 배우던 바가노바 스타일과는 다른 새로운 스타일을 접할 수 있어 뜻깊었다”고 했다. 학생들의 손끝 하나, 발끝 하나에도 정성을 쏟아 살펴보는 서희의 모습에서 다시 한 번 ‘호밀밭의 파수꾼’이 떠올랐다. 클래스가 끝나고 이어진 서희와의 공개 인터뷰를 풀어본다.

 

 

오랜만에 모교를 방문한 기분이 특별할 것 같습니다.

딱 15년 전에 학교를 다녔죠. 학교가 많이 좋아졌네요.(웃음) 홀 뒤쪽에 원래 바와 거울이 있었는데, 새벽에 거울 보면서 몸 풀었던 기억이 납니다.

학창 시절에 서희에게 가장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요?

어릴 때는 특정 무용수를 좋아하진 않았어요. ‘누구’처럼 추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선생님의 가르침이 더 큰 영향을 미쳤죠. 발레를 늦게 시작한 편이라 친구들보다 뒤떨어져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선생님이 지적하면 홀 뒤에 있는 바에서 매일 연습했습니다. 말 잘 듣는 학생이었어요. 오늘 클래스하면서 학생들이 참 좋은 선생님들한테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테크닉적으로 손 볼 데가 특별히 없는 거예요. 지금 기본기 튼튼하게 잘 잡혀 있으니까, 선생님 말씀 잘 들으면서 학교생활 했으면 좋겠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발레를 시작하셨죠. 빠른 시기는 아닌데요.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재능과 연습의 이상적인 조화가 중요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스스로 보기에 재능과 연습의 비율이 각각 몇 대 몇이라고 생각하나요?

처음 시작했을 때는 5 대 5였어요. 사실 발레뿐 아니라 모든 예술은 재능이 있어야 수월하잖아요. 발레를 같이 하던 친구들 중 지금까지 계속 춤추고 있는 친구들이 별로 없어요. 예전에는 재능도 있고 노력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노력이 재능을 이긴다고 생각해요. 자기한테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아요.

스스로 연습 벌레라고 생각하나요?

연습을 하고 싶어서 한 것은 아니고, 연습 말고는 할 게 없었죠. 기숙사가 학교 바로 위층이었거든요. 그래서 사실… 스파르타 교육에 찬성하는 편입니다!(웃음)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똑같이 할 수 있을까요?

다시 돌아가기는 싫어요. 그래도 만약 다시 돌아간다면, 똑같이 살 것 같습니다. 그때 배운 것들이 제가 평생 쓰는 것이거든요. 발레하는 동안 사용할 모든 것을 학교에서 배웠어요. 여러분이 바로 그 나이라고 생각해요. 단단하게 기초를 만들어야 할 가장 중요한 시기죠.

선화예술학교 재학 시절부터 워싱턴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하셨죠. 어린 나이에 외국에서 공부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어떻게 극복했는지도 궁금합니다.

기숙사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학교 밖으로 나가는 것이 자유롭지 않았어요.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갈 자유조차 없었죠. 당시에는 정말 답답했습니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싶어 하는 학생이 많은데, 쉬운 결심으로 할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에서 연수를 받았고,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 수습단원으로 시작해 현재까지 10년 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느낀 한국·유럽·미국의 발레 교육과 발레단의 분위기가 궁금합니다.

한국에서 배울 때는 튀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모두가 비슷한 학교에 다니니까 친구들과 어른들의 눈 밖에 나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반대로 미국에선 굉장히 자유로웠죠. 유럽에선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고요. 각각의 발레단 성격도 비슷한 것 같아요. 한국 발레단의 무용수들은 다들 굉장히 잘하지만 모두 같은 곳에서 배웠다는 느낌이 강하고, ABT는 다양한 나라에서 온 무용수들이 모여 있으니 스타일이 들쑥날쑥해요. 유럽의 무용수들은 편안하게 춤추는 느낌이 듭니다.

현재 수석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는 ABT를 학생들에게 직접 설명해주세요.

ABT의 제일 큰 장점은 뉴욕에 있는 게 아닐까요. 뉴욕은 발레뿐 아니라 다른 예술을 접할 기회가 많죠. 다른 도시에 가지 않아도 뉴욕에서 좋은 공연을 즐길 수 있어요. ABT는 크게 가을 시즌과 봄 시즌으로 나뉩니다. 가을에는 모던 발레 위주고, 봄에는 클래식 발레 위주로 공연해요. 시즌이 아닐 때는 투어 공연을 다니고요. 1년 동안 33개 정도의 레퍼토리를 합니다. 어마어마한 양의 레퍼토리죠. 전막 발레가 10개, 나머지는 창작 발레입니다.

ABT는 클래식 발레와 모던 발레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이 특징인데요. 클래식 발레와 모던 발레 중 무엇을 더 좋아하나요?

요즘은 모던 발레에도 관심이 많아졌어요. ABT 수석무용수 다닐 심킨과 함께 프로젝트 그룹 인텐시오를 만들었습니다. 여덟 명의 무용수가 모던 발레를 중심으로 투어 공연을 다니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클래식 발레가 더 좋아요. 클래식 발레를 하면 할수록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온 이유를 알 것 같아요. 동작 하나하나에 특별한 의미가 있고, 이 동작을 어떻게 바꾸냐에 따라 극의 흐름이 바뀌죠. 그러면서도 동작은 정확히 맞아야 하고요. 이런 것들을 완벽하게 표현해야 하면서도 그 안에 자유가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클래식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캐릭터에 대한 연구는 어떻게 하는 편인지 궁금합니다.

‘백조의 호수’를 가장 좋아해요. ‘백조의 호수’를 춘다는 것은… 정말 발레리나가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보통 발레가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잖아요. 사랑이란 것은 마음으로 느끼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에게 연애를 권장하는 게 아니에요.(웃음) 사람을 사랑할 수도 있고, 동물을 사랑할 수도 있죠. 중요한 것은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무용단에 적을 두지 않고, 10년 넘게 한 무용단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얼마 전 은퇴한 줄리 켄트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ABT에 10년 동안 있으면서, 줄리 켄트를 ‘무용수’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알게 됐죠. 줄리 켄트는 ABT 무용수들이 가장 존경하는 발레리나입니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에요. 무작정 발레단에 오래 있다고 존경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요. 줄리 켄트는 ABT를 위해서, 관객을 위해서,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어요. 줄리 켄트처럼 함께 춤추는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무용수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시간이 이렇게 오래 지났는지도 몰랐어요. 눈 깜빡하니 10년이 지났거든요.

 

 

자. 이제 학생들이 직접 서희에 대해 궁금한 질문을 적은 쪽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두 명의 학생이 비슷한 질문을 했네요. 평소 다이어트는 어떻게 하세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다이어트 안 해요! 어릴 때도 안 했어요. 말라서 안 한 건 아니에요. 부모님이 항상 ‘네가 먹고 싶은 것은 몸이 그것을 필요로 해서 그렇다’고 말씀하셨죠. 그래서 잘 먹었어요. 그 대신 제 몸이 필요한 것을 먼저 먹습니다. 다이어트는 밥을 안 먹는 것이 아니라, 밥을 선택해 먹는 거예요. 프로틴·고기·빵·쌀·채소같이 꼭 필요한 것들부터 먹어요. 일정량을 먹고 힘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음식을 고르는 것이 달라지죠. 지금 몸이 변하고 있는 중·고등학생들은 특히 몸을 잘 보살펴야 해요. 몸이 바뀌고 어른이 되가는 과정이잖아요. 몸의 변화를 막을 수는 없지만, 몸을 아끼면서 그 과정이 잘 지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다음 질문. 연습 외에 다른 체력 관리를 하나요?

근력 운동이랑 스쿼트를 하고 있어요. 몸 부상이 많은 편이었는데, 운동을 하니까 몸이 점점 좋아지는 것이 느껴져요. 마시지도 열심히 받고요. 몸 관리, 굉장히 중요합니다!

지금부터는 서희 씨가 선택한 질문입니다. 슬럼프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유학 갔을 때 슬럼프가 심했죠. 엄청 슬프고, 발레도 하기 싫고, 다 때려치우고 싶었어요. 극복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지나갔어요.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은, ‘모든 것은 지나고 나면 다 괜찮아진다’는 거예요. 이제는 어떤 힘든 일이 와도 극복할 것이라는 걸 알아요. 슬럼프는 학생 때 오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발레단에 들어간 뒤에 오면 더 힘들더라고요. 여러분도 슬럼프를 겪는 시기일 텐데, 다 지나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보장할게요.

자기만의 개성을 찾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 즐기면서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줄리 켄트를 존경하지만, ‘아니, 저 여자는 어떻게 30년 동안 매일 똑같은 것을 했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매일매일 하다 보니 뭔가 다르게 느껴지는 거예요. 남의 개성을 따라 하지 않으려면, 남을 의식하지 않으면 돼요.

감정 표현하는 법 좀 알려주세요.

역할과 상황을 잘 인지하고 있어야겠죠. 예를 들어 왕자를 유혹해야 한다면 어떻게 유혹하면 좋을까, 감정을 세분화하는 거예요. 자기 취향과 생각하는 상황에 맞춰서요. ‘이 왕자는 손으로 유혹하는 게 좋겠다’ ‘이 왕자는 눈빛으로 유혹하는 게 좋겠다’ 이렇게 하다 보면 어떻게 춤추고 싶은지 답이 나옵니다.

남자친구는 있나요?

없어요. 하지만 슬프지 않아요! 왜냐면 여~러 남자를 만날 수 있으니까!(웃음)

발레무용수가 가져야 할 좋은 습관은?

무용수가 아니더라도 사람이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좋은 습관이 있잖아요. 그런 것을 다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잘 먹고 잘 자는 거요. 오늘 학생들 보면서 안타까웠던 점은, 아픈데도 몸을 챙기지 않는 거예요. 자기 몸을 해치고 있는 거죠. 무용수로서 삶을 길게 보고 있다면 좋지 않습니다.

한국의 재능 있는 무용수들을 위해 장학재단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어린 시절 콩쿠르에 많이 나갔는데, 금전적으로 무척 부담이 되더라고요. 하지만 해외 콩쿠르 입상을 통해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많으니까 자꾸 도전하게 되죠. 많은 학생에게 외국 발레단이나 학교로 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를 한국에 새로운 형식으로 도입해, 미국에 가지 않아도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콩쿠르를 구상 중이에요. 내년 상반기쯤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두의 질문일 것 같습니다. 오늘 후배들과 가까이에서 만난 소감은?

이곳에서 연습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후배들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영광스러워요. 저는 발레의 아름다움이 깊은 곳에 숨어 있다고 생각해요.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만날 수 있는 거죠. 여러분도 그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좋은 무용수가 되어 다른 갈라 공연에서 만나면 좋겠어요. 만나서 정말 반가웠습니다!

사진 이규열(라이트하우스 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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