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게공선’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9월 1일 12:00 오전

7월 22일~8월 2일
인디아트홀 공

노동자의 자본주의

올해 제17회 서울변방연극제의 이슈가 절박하다. 최근 공공지원기금의 편파성에 항의하기 위해 정부지원금을 신청하지 않고 연극제를 진행하겠다고 선언했다. 서울변방연극제 임인자 예술감독은 이를 “스스로 곡기를 끊은 행위”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연극의 공공성 문제가 뜨거운 화두다. 폭염보다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는 연극계의 풍경이다. 마침 극단 동의 ‘게공선’이 변방연극제와 혜화동1번지 6기동인 기획초청공연에 연달아 올라가 찾아가보았다. 이번 혜화동1번지 기획초청공연의 주제는 ‘세월호’다. 혜화동1번지 또한 정부지원금에 대한 기대를 접고 기획전을 마련하고 있다. 이번 공연을 통해 혜화동1번지는 ‘극장의 공공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정면 돌파를 선택하고 있다.

‘게공선’의 공연장인 인디아트홀 공은 영등포구 양평동의 금형공장 골목에 자리한 실제 공장 건물이다. 대학로를 떠난 낯선 공연장이다. 뜨거운 쇳물을 끓이는 금형 공장의 굴뚝이 이제는 예술가들을 모여들게 하는 새로운 깃발이 되고 있다. 공연 또한 뜨거웠다.

‘게공선’은 1920년대 일본의 대표적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고전이다. 고바야시 다카지의 1929년 원작소설을 극단 동이 신체 행동을 중심으로 재구성했다. ‘게공선’이란 게를 잡아 통조림으로 가공하는 공장 선박이다. 그런데 게공선은 공장으로도, 선박으로도 취급되지 않아 공장법과 항해법에 모두 적용받지 않는 법의 사각시대에서 어업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가 심각하다. 러시아 캄차카 영해에까지 들어가 조업하지만 국가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

게공선은 대부분 러·일전쟁에서 파손된 고물배로, 애초부터 노동자들의 안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대신 막대한 보험금이 걸려 있는 고물선들을 침몰시키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이득이라는 사실도 밝혀진다. 비정한 자본주의다.

북해도 저 멀리 먼 바다 위에 흔들리는 배 위, 땅바닥조차 밟지 못하고 사는 어린 노동자들의 흔들리는 다리, 배 밑바닥에 웅크린 채 잠드는 동안에도 배의 진동으로 근육의 경련이 멈추지 않는다. 이것이 이 공연의 단 하나 이미지다. 먼 바다에 내던져진 자본주의의 모습이다. “어이, 지옥으로 가는 거야!” 소설 원작의 첫 문장이다. 80년, 90년, 100년이 지나도 노동자들의 삶은 변한 것이 없다. 못 가진 자, 프롤레타리아는 여전히 민족이나 국가의 논리로 포섭되지 못하는 먼 곳에 던져져 있다. 못 가진 자와 노동자는 국민도 아니다. 식민지 조선 노동자들은 벌레를 눌러 죽이는 것보다 더 쉽다는 현실도 함께 고발하고 있다. 노동의 현실과 식민지의 현실 모두를 노동자의 관점에서 잡아내고 있는 어느 젊은 일본 작가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김우진의 ‘이영녀’(1925)와 같은 시대다. 1920년대와 현재가 놀랍도록 똑같다. 1920년대와는 또 다른 프롤레타리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이 그렇다. 일본에서도 최근 이 작품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여 2009년엔 영화 ‘가니코센’으로 개봉되기도 했다.

무대는 빈 무대에 형광등 조명이다. 멀리 뱃고동 소리와 파도 소리만 들리는 음향 등 극도로 절제된 무대에서 배우들은 그물코를 꿰고, 밧줄을 잡아당기고, 통조림 뚜껑을 닫는 단순노동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고무바닥 하나 달랑 깔린 무대 위에 공연 1시간 반 동안 땀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남자 배우 10명이 등장해 장면별로 1명, 2명, 5명씩 집단적 군중 장면의 신체 이미지를 반복한다. 배우들의 움직임 중심의 공연으로 서로서로 주고받는 소리는 “밧줄 올려! 내려!” “어이-” 식의 신호음이 다다. 인간 사이의 ‘대화’는 없고 ‘신호’만 남아있다. 대신 인물들의 이야기는 화자의 내레이션으로 전달된다. 다만 공연에서 기계적인 동작의 재현에만 충실하고 자본주의의 구조 모순에 대한 전체적인 시각을 때때로 놓치고 있는 것은 큰 아쉬움이다. 게공선의 현실을 정직하게 몸으로 재현한 공연, 정직함이 미덕이자 한계인 공연이다. 배우들의 땀이라는 소금만 쳤다.

사진 극단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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